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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갚을 수 없는 것”
2022년 05월 14일 (토) 06:01:56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시편 103:13-14) 
 
1.
어느 목사님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씀하시는데 한번은 80세가 넘은 할아버지와 함께 나들이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길을 가시던 할아버지가 돌부리에 걸려 휘청하며 “아이구 어머니!”하시더랍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지금 연세가 몇이신데 어머니를 찾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랍니다.
 
“얘야, 한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란다.” 맞습니다, 한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압나다. 나 역시 지금도 ‘어머니’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영원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우리 모두 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에 부른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 이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젠 내가 어머니 나이가 되었건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찡해지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뭉클하게 떠오릅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아버님 살아계실 때 정말이지 잘하십시오.
 
2.
다 갚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평생 빚졌다고 하면서 갚는다 갚는다 하면서도 결코 다 갚지 못하고 가는 게 우리에게 두 가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기에 찬송가 304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아멘! 어느 정도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 거기다 다 기록해도 모자랍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우리의 생각,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도무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눅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집 나간 아들, 그것도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다 털어 갖고 간 아들, 그걸 허랑방탕 다 까먹은 아들, 그래서 거지가 된 아들, 이 아들이 별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집에 돌아가면 자기는 아들이 아닌 머슴으로 밖에 살 수 없을 거라 예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매일 매일 문밖에 나와 그 아들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아들이 마침내 거지가 되어 먼발치에 나타나자 달려가 껴안고, 새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잔치를 벌여줍니다. 야단 한 번 치지 않습니다.
 
당시의 아버지 상, 당시의 하나님 상, 그 이미지는 근엄하고, 무서운 모습이었습니다. 잘못하면 혼나는 그런 엄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기대를 훨씬 벗어났습니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우리의 치밀한 계산을 비껴가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왜 이리도 사랑하시는가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오늘 성경은 이렇게 일러줍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내 체질, 우리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늘 나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 각별하십니다. 건강한 체질이라면, 든든한 체질이라면, 강철같은 체질이라면 하나님께서 ‘됐다, 네가 알아서 챙겨라’하셨을 것인데, 우리 하나님, 늘 나를 향해 염려하시는 듯 사랑의 눈길을 보내시고, 살펴주십니다. 왜? 내 체질이 연약하기에!
 
더군다나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시기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먼지 인생입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는 모두 흙으로 만들어진 흙먼지 인생입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을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십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요? 난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다른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나도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랑, 다 갚지 못하고 갈 겁니다. 하느라고 애는 쓰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큰 빚 진 자로 살다 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떠날 때, 이 말 한마디는 분명히 고백하고 갈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3.
또 하나의 사랑이, 결코 내가 다 깊을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데 누구처럼?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몇 년 전, 가축전염병이었던 구제역과 싸우느라 온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때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발생지역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가축을 안락사시켰습니다.
 
그때, 강원도 횡성에서 마음이 뭉클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어느 축사에서 구제역 방제위원이 새끼를 낳은 어미 소에게 안락사시키는 주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소들은 주사를 맞은 뒤 빠르면 10초, 아무리 늦어도 1분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새끼 젖을 먹이던 어미 소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며 배고픈 새끼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3분 정도 가량 버티고 버티다 쓰러져 죽더라구요.
 
자식을 향한 어미의 사랑,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해도 죽음의 고통을 충분히 견딜 만큼 그토록 숭고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부모가 되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소월 시인의 ‘부모’라는 시가 있습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 겨울의 기나긴 밤, /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 옛 이야기를 들어라. //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 이 이야기 듣는가? / 묻지도 말아라. /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어디서 듣던 내용이죠? 대중가요로도 작곡이 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시입니다.
 
내가 부모가 되면 내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아 그때엔 부모님께 잘해 드릴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각대로라면, 자식이 생기면 부모님의 마음을 비로소 잘 알게 되어서 그만큼 부모님께 잘 해 드려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자식에겐 끔찍해도 부모님께는 무심합니다. 정말 잘 해 드려야겠구나 생각은 하지만, 자식에게 하는 만큼의 새 발의 피도 못 미칩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기에 그러합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사랑, 결코 모르고, 모르니 갚을 수 없을 것은 뻔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되면? 부모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사랑은 모두 아래로 흐리기 시작합니다. 결코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이 흘러갑니다. 자식에게 해 주는 것 십 분의 일이라도 부모님께 해 드리면, 그 어느 부모가 행복하지 않을까 마는 이게, 절대 쉽지 않습니다.
 
종종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대부분이 자식 문제에 걸립니다. 교육의 평등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알고 보니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냈고, 심지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었습니다. 사회 정의, 법을 준수하고 지켜야 하는 이들이 위장 전입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그때마다 하는 말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그러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식에게 부모는 맹인이 됩니다.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제대로 느낄 줄 모릅니다. 그저 자기 자식은 예외입니다. 남들에 대해선 그렇게 정확하고 예리한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도 자기 자식의 문제, 그 형편에 대해선 무딘 칼입니다.
 
다윗에게는 참으로 많은 잘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일 똑똑한 아들, 가장 잘생긴 아들, 다윗이 마음에 품고 있던 자랑스러운 아들은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압살롬이 이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의 꾐에 빠져 반역을 꾀합니다. 주위에서 자꾸 압살롬 보고 잘 났다 잘 났다 하며, 당신 아버지보다 당신이 훨씬 더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겠다 하며 충동질하자 마침내 반란을 일으킵니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봉기했기에 성공합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아버지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고, 아버지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울며울며 쫓겨납니다.
 
그러다 마지막 일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일전을 벌이러 나가는 자기 군사들에게 다윗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요?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삼하18:5) 그리곤 마침내 자기 군대가 승리하였다는 승전보와 더불어 적군의 수장 압살롬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는 다윗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말도 안 되는 모습입니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왕좌에서 쫓아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모습, 아들에 의해 살해 위협을 받으며 도망가야 하는 치욕적인 모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기 군대와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모두들 ‘그놈, 압살당할 놈, 잘 죽었다.’하는데 정작 가장 큰 피해자인 그 아버지 다윗은 마음 아파 웁니다. 왜? 자기 아들이기에!
 
부모의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입ㄴ이다. 그 사랑을 받고 살 때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오. ‘나중에’ 라는 말, 하지 마십시오.
 
요즘 젊은 사람들, 결혼해도 자식은 안 낳겠답니다. 애완견이나 대신 키우겠답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식 키우는데 들어가는 세월과 비용이 너무 크고, 너무 힘들답니다. 더군다나 아기 낳고 1-2년 동안 잠 못 자는 게 너무 힘들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안 낳겠다고 한답니다. 어느 여대의 설문 조사, 앙케이트 결과였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진자리 마른자리가 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얄팍한 계산에 의해 성장한 것 아닙니다. 우리 부모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열약한 환경에서도 우리를 키워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시켰습니다. 우리가 큰 것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존하는 것은 부모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일 뿐입니다. 자식은 돈으로 크는 게 아닙니다. 사랑으로 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정말 큰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어머니’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말만 들어도 마음 깊이 뭉클해집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네 인생이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 두 분 있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 부모님을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며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불효하는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의 참 마음을 모른다며 책망하셨습니다.(막7:10-11)
 
하나님 공경 잘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님 공경 잘하십시오. 어느 집안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드린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부모님을 같이 잘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효의 도리를 모르는 이는 성도도 아닙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다고 아예 포기하고 이기적인 생을 살지 말고,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생을 삽시다. 정성을 다해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복에 복이 더하여지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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