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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보세요.”
2022년 01월 14일 (금) 09:01:27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사야 26:11-15)  


1.
한 부흥사가 어느 작은 지방 교회의 강단에 섰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부흥회에 억지로 불려왔는지 딴전만 피웁니다. 이를 보고 부흥사가 물었습니다.
 
“나 좀 보시오.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하나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은 오래 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때야 모두 궁금해서 강사를 일제히 쳐다봅니다. 이에 부흥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는 양쪽이 뚫려서 한쪽 귀로 들어가면 다른 쪽 귀로 새나갑니다. 그러나 눈은 보세요, 이렇게 뒤통수가 막혀서 한번 들어온 것은 안 나갑니다. 그러니 날 좀 보시오. 그러면 은혜가 나가지 않을 겁니다.”
 
날 좀 보십시오. 잘 생겨서 보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오래 담아두기 위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만 그런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여기를 좀 보라’고 하십니다.
 
2.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손이 높이 들렸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왜 하나님의 손이 높이 들렸을까요?
 
성경에 하나님의 손이 높이 올라가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징계하기 위해, 야단치기 위해 하나님의 손이 높이 올라갑니다. 또 다른 경우엔 축복하기 위해 높이 드십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사자들은 축복할 때 손을 들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이 높이 올라갈 때는 하나님의 백성에겐 축복의 손이요,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징계의 손입니다. 바라건대, 높이 들리는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에겐 늘 축복의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징계이든 축복이든 하나님께서 손을 높이 드셨다는 것은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 정신 팔려 있는 우리에게, 세상에 정신이 쏙 빠져 있는 우리에게, 코로나로 정신이 나가 있는 우리에게 여기를 보라고, ‘내 할 말이 있으니 여기를 좀 봐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렇게 높이 들린 주님의 손에 대하여 사람들은 2가지로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는 여전히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하루 3끼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 것 쳐다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괜한 소리들이지! 하며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냥 살아갑니다. 몇 번이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려고 기회를 주시고, 찾아가셨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너 왜 예수 믿지 않았냐?’ 하시자 당당하게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왜 나에겐 예수 믿을 기회를 안 주셨습니까? 왜 다른 사람에겐 많은 기회를 주고선 나에겐 왜 예수님이 찾아오지도 않고, 그런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그 사람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시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다른 때는 삶의 위기로, 어떤 때는 큰 축복으로, 심지어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통하여 노골적으로 수도 없이 찾아가셨습니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 뒤에 여기를 좀 보라고 손짓, 발짓하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그의 삶은 온통 차 있었습니다. 다만 그 자신이 그 많은 사건과 위기, 축복, 만남 속에 담겨 있는 높이 들린 주님의 손, 그 뭔가를 말씀하시려는 싸인(sign)에 관심도 없었고, 그러기에 그것이 기회인 줄도 몰랐던 것뿐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나에게 뭔가 말씀하시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시는 주님을 여러분은 제대로 의식하는가요?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주님의 높이 들린 손, 여기를 좀 보라고 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무시하고 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래전에, 지방에서 올라와 신앙생활을 하는 한 젊은이의 직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조그만 공장인데, 공장 안에 들어가 그 형제를 찾으니까 사장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교회 목사라고 하니까 퉁명스럽게 형제를 큰 소리로 부르더니 볼품없는 작은 사무실 안으로 쑥 들어갑니다. 그리곤 조금 있으려니 안에서 우리 들으라고 하는지 큰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수가 밥 먹여 주냐? 할 일이 없으니까 괜히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짓들이나 해!”
 
미안해서 쩔쩔매는 형제에게 괜찮다고 하며, 기도해 주었는데, 무엇보다도 예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은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에게 그리고 저 사장에게 주님이 밥 먹여 주시는 분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곤 그 청년에게 그랬습니다. 자기는 교회에 와서는 꼭 밥 먹고 가라고.
 
몇 년 후, 그 공장 사장은 여전히 다 쓰러져 가는 공장 사장이었지만, 그 젊은이는 더 큰 공장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인정받아 작은 공장 사장보다 더 나은 생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손이 높이 올라갔는데, 여기를 좀 보라고 하는데 관심도 없고, 쳐다보지도 않고, .... 이런 이들에겐 하나님의 그 축복들, 그 놀라운 약속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늘 그림의 떡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6:14)
 
“땅은 그것의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레25:19)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 이런 많은 축복은 이런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3.
그러나 이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 할 것이니라.”
 
주께서 그 손을 높이 드시고 외치십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55:1-3)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러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치시는 하나님의 열성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높이 들린 주님의 손을 바라보며, 왜 진작 그 손을 보지 못했던가, 왜 좀 더 일찍 믿음의 눈을 뜨지 않았을까, 왜 좀 성실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열심히 섬기지 않았을까, 왜 좀 더 기도하지 못했을까, 왜 좀 더 확실하게 주님을 의지하지 못했을까 하며 심히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 집사님께 아버님이 계셨는데, 해병대 장군 출신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늘 아버님 영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아버님께 예수 믿으라고 해보았자 야단이나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그 아버님은 고집이 세고, 자신만을 철저히 믿는 억센 분이었습니다.
 
이 아버님이 70이 넘어 위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사님 부부는 야단맞을 것을 각오하고, 아버님 병상에 다가가서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 영접할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님이 눈도 뜨지 않고 묻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너무나 무게 있게 물으셔서 집사님 부부는 쩔쩔매면서 “예 아버님!”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님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이렇게 호령하셨습니다. “야 이놈아, 그렇게 좋은 예수라면 진작에 전해 줄 것이지 이제야 말을 해!”
 
이 호랑이 같은 노인이 그 뒤 심방을 갈 때마다 이럽니다. “하나님께 염치가 없어요. 힘 있고, 돈 있을 때는 모른 체하다가 이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가 되니까 하나님 찾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요. 정말이지 하나님께 염치가 없어요.” 날 좀 봐라~~~ 하고 손을 드시는 하나님을 드디어 눈치채고, 비록 다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열성에 감복하여 감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늦었지만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이렇게 일찍 주님의 사랑을, 주님의 싸인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은 엄청나게 밀려옵니다.
 
4.
이러한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아는가요? 많은 일들이, 책망과 징계의 손이 축복의 손으로 바뀌어 엄청난 많은 복된 일들이 일어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만 살펴보면, 12절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주변의 모든 일들을 선하게 선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래서 ‘아, 참 좋다. 감사하다.’하는 고백이 나오게 하십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3가지 역사가 보입니다.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십니다! 작은 이들을 더 크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커지기를 원합니다. 신체도 커지기를, 사업도 커지기를, 지식도 커지기를, 마음도 커지기를, ... 모든 것이 커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요? 그런데 높이 들린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기대감을 갖고, 그 의미를 알고 신뢰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크게 하십니다!
 
일찍이 시골의 무명 목동에 불과했던 이가 이렇게 하나님의 높이 들린 손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한 발 한 발 걸어가 마침내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누구 이야기? 다윗!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대상17:16,19)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29)
 
촌구석의 한 작은 집을 일으켜 전적으로 주를 의지하고 살던 이를 한 나라의 왕으로 키울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고 까지 엄청나게 키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높이 들린 손을 보고 감격하는 이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역사입니다.
 
그뿐 아니라 스스로 영광을 얻으신답니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은 그만큼 그 백성들이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잘되어야 세상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 섬기는 백성은 다르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 아닌가요?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하는 일들, 여러분이 살아가는 가정, 여러분의 모든 삶의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얻으실 수 있을 정도로 잘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십니다. 경계란 넘어가서는 안 될 선입니다. 그것을 넘어갔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나라와 나라 간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경계가 있고 대개의 경우 이 경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경계를 하나님께서 확장하십니다. 내 삶의 영역을 점점 더 넓혀 주십니다. 왕십리에서 서울로, 한국으로, 세계로 점점 더 뻗어 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자에게 말입니다.
 
세상에선 운명이라는 말이 있어서 넘어선 안 되는 경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겐 운명이란 없습니다. 하지 못할 제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확장하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겐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분명하게 성경은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여러분의 모든 삶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확장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5.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요? 그저 하루 3끼 먹고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사느라고 하늘을 쳐다볼 새도 없이 사는 것은 아닌가요?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고요하게 홀로 십자가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독대한 적이 있는가요? 대체 내게 뭘 원하십니까,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주님께 몸부림친 적이 있는가요?
 
일주일에 적어도 주일 하루,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도 여유가 없이 오로지 발 등의 떨어진 불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여러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 눈을 들어, 우리의 영적 감각을 살려 높이 들린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분주함에서 벗어나 고요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자기 삶을 관조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향해 높이 들린 주님의 손이 징계의 손이 아닌 축복의 손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늘 주님의 싸인을 제대로 읽고 살아야 합니다. 뭔가 우리의 가는 길을 미리 보시며, 나의 걸음걸음을, 나의 계획을 수정 지도하시기 위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을 주목해야 합니다.
 
높이 들린 하나님의 손, 선한 손입니다. 대적에겐, 원수에겐 두려움과 공포의 손이지만, 그 백성에겐, 자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축복의 손이요, 보호의 손입니다.
 
열심히 삽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향해 높이 드시는 주님의 손, ‘여기 좀 봐라!’ 하시는 주님의 손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리곤 그 의미를,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자신의 가는 길, 방향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일입니다.
 
이 높이 들린 주님의 손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그 손이 든든한 축복과 보호, 은총의 손으로 여러분의 가정, 건강, 사업, 삶을 감싸시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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