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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강 시23편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2021년 12월 22일 (수) 10:03:44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와 하지 않는것은 주의 지팡이가 나와 함께 함이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는 시편 23편 이 노래는 아마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어요 유명하지요
 
그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의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는 자의 땅에 돌아와서 자기들의 경험을 들려 준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해 주고 있는 경험 가운데 하나가 어두운 터널같은 대를 지나가는데 그것이 너무 두렵게 느껴졌는데 그 때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중간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가 그 사람속에 내면화 되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속에라도 상기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함께 공부하려고 하는 시편 23편 그 유명한 시편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23편은 아주 짤막한 시입니다.
6절 밖에 안 되는 시인데 여기에서 몇가지 특색을 찾을 수 있어요
첫 번째 특색이 1절 2절 6절에서는 하나님을 표현할 때 여호와라고 표현이 되고 있지요 그런데 3절에서 5절 사이에 여호와라 하지 않고 주라는 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말을 주로 받았겠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요 여호와는 우리들이 공부했던 대로 야훼의 하나님 당신의 언약에 충실하시는 야훼의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였지요. 그 하나님은 공식적입니다. 어떤 민족을 이끄시는 하나님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3절부터 5절사이에 나오고 있는 주라고 하는 것은 관계를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그 분을 주라고 고백하는 그러니까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합해져서 하나의 시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 1절부터 4절까지는 우리의 목자가 되신 주님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그 목자되신 주님 덕분에 우리의 삶이 축제로 변할 수 있다 목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 때문에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축제로서의 삶 이것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시고 있는 복이 무엇인가 보니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말이 있고 또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인도하실 때 주로 쓰는 도구가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이끄신다 하고 있는 데 두가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축제로서 주시는 여러 가지 삶이 있지만 원수들 앞에서 보람듯이 상을 차려 주셔서 어떻게 한다고요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셔서 내 잔이 넘친다고 말하는 데 여러분 기름 부어 가지고 잔이 넘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것이 이해하기 좀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은 그 말을 뜻을 풀어가지고 설명해 주었어요 옛날에는 귀한 손님이 오시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이 그 분을 귀한 분으로 대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나라 터키 같은 나라에 가 보니까 버스를 타거나 그러면 기사들이 손에다가 향수 같은 것을 이렇게 뿌려줘요 왜냐 하면 자기 차에 타는 손님들이 귀한 손님인 것이어요 손에 뿌려 주는데 머리에다가 기름을 뿌려 주는데 살짝 묻혀 주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듬북 뿌려 주었더니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들고 있던 잔이 넘쳐 그래서 새번역은 그것을
 
5절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셔서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중간에 들어간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셨다는 이렇게 번역하신 것이 새 번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동시에 당신과 그 백성사이에 계약에 맺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구조라고 볼 수 있어요
 
1절 부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목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잘 와 닿지 않는 개념이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산업 사회속에서 목자라는 개념이 잘 안 들어오지요.
 
옛날에 우리는 농사를 짓는 것이 위주였는데 목자라는 것이 잘 안 들어와요 어떤 분들은 요한 복음에 이 말을 더 좋아합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시라 마음에 와 닿는다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살면서 내 아버지도 농부셨거든요. 그렇지요 농부들이 하고 있는 일을 우리들이 알고 있거든요. 무엇입니까? 여러분 토마도 모종 심어 놓으면 그냥 심어만 놓으면 열매 맺는 것 아니고 순질을 해 주어야 토마도가 탐 스럽게 열리거든요 포도도 그렇지 않아요. 가지치기 해 주어야지요 전지하고 우리에게 경험 세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농부시다는 것이 와 닿는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하면 이야기 하면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한 구절이기에 익숙하기는 하나 목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수 없지요
 
이 시가 나오는 주로 유목을 하고 있었던 전통적인 시라고 본다면 목자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들은 즉각 알아 차리지 않아요 목자들이 하는 일은 양들을 위험으로 지켜주고 그 양들을 풀이 있는 곳이로 인도하여 주고 양들을 위험으로부터 풀이 있는 곳으로 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아브라함과 이삭도 유목민이었기에 늘 어디를 가야 하면 풀밭이 있는 곳을 가야 하고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우물을 파는 동기가 나타납니다. 이삭은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팠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이 복 주셔서 판 곳마다 물이 솟아 나왔다고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감동적인 장면은 어떤 대목이냐 하면 이제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랄 땅에 우두머리입니다 마는 이삭의 목자들하고 싸우고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싸워요 누가 풀밭을 차지하느냐 누가 우물을 차지하느냐 그것 때문이지요
 
이삭의 목자들이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와요 다른 사람들은 우물을 파기 어려워요 질투심 때문에 이 우물을 막아 버리고 그러지요 이삭이 자꾸 이주해 갑니다.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이 복 주셔서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와요
 
어느 날 아비멜렉이 찾아와요 어떤 말을 하느냐 하면 내가 보니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 알았어 우리 평화롭게 잘 지내자고 그래서 이삭은 우리가 평화롭게 지냅시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짐승 가운데 좋은 것을 잡아 가지고 함께 화해와 친교의 계약을 맺는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들이 잔치를 다 나누고 돌아가요. 이삭의 종들이 와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파고 있던 우물물이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야기 해요 이것이 굉장한 일이나오거든요 물이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니까 목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양떼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양과 목자 사이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호와가 우리 목자라고 해서 이 언어를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하면 아 하나님이 목동이셨구나 이렇게 받아 드리면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그렇게 보살피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하나의 은유적 언어로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유목적 삶의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중근동 세계에서 목자로 지칭되고 있는 사람들은 대게 누구냐 하면 왕입니다. 왕이 주로 목자로 지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에스겔서 34장을 보면 그 백성들을 잘 돌보지 않는 왕과 지도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노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에스겔 34장 2절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찐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터를 있데 양떼는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말합니다.
 
목자들이 해야 할 일은 양 잡아먹는 게 아니야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다에서 빈 그물질을 하던 제자들을 찾아오시지요 그들에게 조반을 먹이신 다음에 베드로를 따로 불러 내 가지고 물으시지요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내 양을 먹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그러니까 목자의 책임은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릇된 목자들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으라로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세상에 정말 이게 글자 하나 차이인데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데 에스겔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이지요
 
내 양을 먹이라고 목자로 삼아 주었더니 너는 내 양을 먹이기는 커녕 내 양을 잡아 먹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속상하신 것이어요
 
에스겔을 통해서 목자들이 해야 할 일을 이야기 하여 주는데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 주어야 해요 연약한 것 강하게 해 주어야 하고 병든 양이 있으면 고쳐 주어야 상한 것이 있으면 싸메 주어야 하고 그렇지요 쫓기는 것이 보호하고 돌아오게 해 주어야 하고 또 길을 잃어버린 양이 있으면 길을 찾아와야 지요. 이것이 목자의 일인 것이지요
 
왕이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백성들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왕 또는 목자라고 이야기 하는 데 이 글자는 여러분 다 아는 글자이지요 재미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이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상상해 보는데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공간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왕이 하는 존재는 두루 꽤 둟을 수가 있어야 해요 왕은 이 시대를 향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인간 세계에서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이것을 통하게 만드는 것이 왕들이 해야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하늘의 세계도 분별하지 못하고 하늘의 소리도 땅의 소리도 분별하지 못하는 왕들이 많은 것이지요 이게 다 깨진 것이어요. 하나로 깨는 이것이 깨져 버린 것이지요 주님하고 이야기 할 때 하나 더 찍으면 주자가 되지 않아요. 그것 까지도 깨 뚫고 나가는 것이지요
 
세상에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왕 혹은 목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분별력이 없어요 땅에 대해서도 모르고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대체 자기 나라의 속해 있는 백성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세상에 너무 많이 있다 그 이야기지요.
 
그런데 예언자들은 그런 왕 혹은 목자들을 자기만 먹는 양을 잡아먹는 목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단 말이지요 그렇지요 이것이 참 중요한 말이라고 우리들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들이 자기만 먹는다도 이야기 했는데 이 속에서 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왕을 뜻하는 단어가 멜레크입니다. 멜렉이어요. 그런데 모음을 살짝 바꾸면 몰렉이 되어요. 멜렉이 멜렉이 멜레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목렉 몰렉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제물로 받는 신이어요. 사람을 번제로 바치곤 했어요 몰렉신에게
 
그러니까 사람들은 멜렉이라고 이야기 할 때 이것이 지도자를 뜻하고 왕으로 뜻하는데 멜렉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무엇을 연상을 하느냐 하면 그릇된 지도자들에 사람들은 모음만 바꾸어서 이렇게 연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이런 목자들 거짓된 목자들이 많이 있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그 백성에게 좋은 목자 선한 목자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기가 막힌 대구가 나오는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지요 여호와와 내가 대비되고 있어요 목자라고 하는 사실과 목자가 베풀어 주는 삶이 부족함이 없어요
 
아주 절묘하고 완벽한 대구가 여기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여호와는 목자시니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시인이 그 안에다가 나의 목자 나라고 하는 것을 집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우리 모두의 시이기도 하지만 나의 시가 되는 것이어요 일인칭으로 이야기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 이 한 마디만 가지고도 우리의 마음이 평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친밀함을 느낄 수 있게 되겠지요. 이것이 이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히 이야기 하면 우리가 야훼 하나님을 믿었더니 우리의 삶에 정말 부족함이 없어요.
 
솔직히 이야기 해 봐요 있지요. 어떼요 정말 결핍이 많지요. 우리는 나는 가끔 이런 기도를 하기도 해요 아침 하나님 오늘도 내게 일용할 건강을 주십시오 하나님 오늘도 일용할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가 일용할 무엇인가 달라고 하는 것은 양식 만이 아닙니다. 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요 너무 바쁘기 때문에 나를 성찰할 수 없는 시간조차 없을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일용할 우리는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습니다. 돈도 부족하고 건강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고 삶의 기회조차도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이 말 거짓말인 가요. 믿음으로 영적으로 감사함으로
 
여러분 때때로 생각을 해 보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내 삶에 결핍이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발전도 없고 무기력하고 그런 이야기인대요 결핍이 없다고 한다면 감사도 없으면 내가 늘 건강해요 건강이 고마운지 몰라요 밥 한끼의 고마움을 몰라요
 
아침을 뜻하는 단어가 브레크 패스타 패스트 단식이거든요 단식하는 것을 깨는 것이야 브레이크 하는 것이야 아침이거든요 밤늦게 까지 배 불러가지고 자고 아침에 기분 나쁘게 일어나고 아침을 먹을까 말까 이러니까 아침이 고맙지 않지
 
우리의 삶에 결핍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람이 될 수가 없지요 솔직히 이야기 하면 그래요 여러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어요 여기에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게 갖추어 졌다는 것이 아니고 부족함 까지도 내 삶으로 받아 드리니 내 삶이 충만합니다. 그 이야기여요
 
여러분 보면 욕망을 중심으로 자기 생을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채워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서 그 물건을 소유했어요 잠간 행복합니다.
 
보니까 나운씨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만족했던 마음이 불만으로 바뀌지 않아요 저것이 왜 내것이 아닐까 열심히 나운씨 가진 것을 가졌더니 미란씨가 더 좋은 것을 가진 것이어요. 이것이 욕망의 수레바퀴입니다.
 
자본주의라고 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만들어 내느냐 하면 내 속에 욕망을 창조함으로서 우리에게 결핍을 느끼도록 만들어요 끊임 없이 너 이것 가져야 행복한 것이야 계속 가르쳐 주어요
 
내가 이 성경 공부를 통해서 이야기 한 것 처럼 그 수레 바퀴에서 내려와야 돼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나는 이것이면 되었어 이것이면 충분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것이 욕망이 나를 사로잡는 힘이 약화되는 것을 우리들이 느낄 수 있어요.
 
욕망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나는 결핍 투성이어요. 저 사람이 있는 내가 소중하다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잏어 버린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시작해요 그렇지요 여러분 내가 건강하다가 죽을 병에 걸려 있었어 어쩌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 가치 있었던 것이 가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이전에 소중하게 느낀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것을 알게 되어요. 이제는 전혀 돌보지 않았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각이어요. 병이 좀 나아지면 다 잊어버리고 옛날로 돌아가요.
 
마치 여러분 어른들이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군대 가서 사람 됬다고 그러는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군대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전역하는 순간 다 반납하고 온다고요
 
그런 것들이지요 그래서 내 생을 욕망이라고 하는 렌즈를 바라 볼 것인지 아니면 내게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감사함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질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면 신명기 2장 7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내가 이 광야에 두루 다임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음으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부족함이 없었다 여러분 광야에 산 사람들이 얼마나 부족함이 많아요 그러나 부족함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내 속에 주어지면 결핍조차도 내 삶으로 시인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있어요.
 
그리고 나서 양떼를 이끄는 양떼를 이끄는 목자의 모습이 나오는대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미란씨가 이야기 했던 것 처럼 시편 23편을 읽으면 그런 목가적 광경이 떠 오른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목자이신 하나님이 그 다음에 하는 일이
3절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가지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중요한 일이 보니까 영혼을 소생 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전에는 나만 알고 있던 사람들 그런데 그 삶을 극복하고 의의 삶 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어요 누군가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이 내 속에 생겨난 의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사람들의 삶의 내용은 어떠한가 보았더니 결국 결핍되어 있는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이어요 이것이 의의 길입니다. 이것이 참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성경은 도처에서 선택 받은 백성들의 더럽혀진 주님의 이름을 주님께서 스스로 회복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모두 다 순조롭게 잘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4절로 넘어가면서 음울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불행한 일은 나에게 다가오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를 지켜 주시고 순조롭게 인도해 주시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지만 사다 보니 그렇게 않을 때가 많지요.
 
정말 그런 경우가 많지요 정말로 그래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그렇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이게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인지 도 모르지요
 
이게 우리의 현실인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잘 믿는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면제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잘 믿는 사람들도 아프기도 하고요 실패도 경험하고 배신당하기도 하고 기도하는 것이 응답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삶입니다.
 
이 시인이 하고 있는 말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설사 그런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래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나의 삶의 자리가 어디이든지 간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뮌헨에 있는 파워엔 큐에라고 하는 것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라워엔 큐에라고 하는 것은 큐에는 교회이고 파워엔 여성을 뜻합니다. 성모 교회여요 다리를 쉬기 위해서 한 바뀌 돌고 잠시 앉아서 기도하고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 게시판에 칸트의 말이 적혀 있었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나는 일생동안 참 훌륭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 시편 23편에 나오는 네 단어보다 내 마음을 고요하고 기쁘게 해 준 말을 발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독일 말로는 두 비스드 바이 미어 네 마디이지요. 두 비스트 바이 미어 네 마디입니다. 여러분 일마누엘 칸트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위대한 철학사상을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많은 책을 읽었지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자기 일생의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하는 이 말처럼 내 영혼을 고용하게 하고 또 기쁘게 하는 말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 많은 구절 가운데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칸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런 것 아닙니까? 이름이 운명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우리의 생에 고통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에 고통이 많을 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가 다닌다 할찌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그 길이 고통의 길이라고 해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해도 그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머리로가 아니라 존재 전체로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인처럼 나는 두렵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데기가 나를 안위하시니이다 하고 말합니다. 지팡이와 막데기라고 하는 것은 왕홀을 뜻하는 것이기도 할 수 있지만 옛날에 여러분 돼지를 끌고 어디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돼지를 보면 옛날 시골에서 보면 돼지를 키울 때 말뚝을 이렇게 뽑아 주면 돼지가 밖에 나와요 이놈이 제 마음대로 가요 논둑길 같은데 그런데 모는 사람은 막대기로 몰고 갑니다.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안위하시나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인간은 자꾸만 곁길로 갑니다. 우리 살다 보면 자꾸만 가지말아 할 곳을 갑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번번히 인도해 주신다 어떤 때는 인생 채찍으로 치시기도 하고 때로는 담으로 막으시기도 하지만 기어코 우리들이 가야할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삶을 이끌고 있다 나는 이제 두려움이 없는 것이야
그 하나님이 정말로 고마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기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항상 우리는 부족한 것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 잔이 넘치니이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환대받은 경험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환대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 누군가에게 내가 극진히 귀한 손님으로 한번 받아 드려진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인생의 어려운 일이 있어요 그 어려운 순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환대의 힘이 그런 것이지요 자기 생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그 속에 생기는 것이지요. 이 시인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환대해 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시인인 이브 본느푸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진정한 장소라는 시를 썼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이에게 자리를 내 줄것 그는 춥고 집이 없는 자이기에 외 딴 집에 외로운 호롱불 타는 소리에 불안과 피로에 그가 지쳐 있다면 그를 위해 회복의 말을 다시 해 주기를 단지 침묵하는 이 마음에 무엇이 필요하리 성호에 기도의 말이 아니라면 밤중에 느닷 없이 만난 작은 불빛 같은 것이 아니라면 가난한 집에 조촐한 식탁을 넘겨보기가 아니라면
 
저는 이 시에서 우리도 누군가에 작은 불빛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아닐까 이런 느낌을 가져야 하는데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나를 환대해 주셨던 그 경험들 주님의 환대는 주님이 직접 하시기도 하지만 누구를 통해 배풀어 주시는 가 하면 우리의 이웃을 통해 베풀어 주십니다.
 
예를 들어서 미란씨가 나를 전폭적으로 받아 들여 주었을 때 나는 미란씨의 환대를 통해 하나님을 받아 드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두를 품어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으 품이 되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있거든요. 바로 이 체험입니다
 
이 체험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 무엇인가 하면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입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선하심으로 이끌어 주시고 또 인자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헤세드인데 그것은 계약의 바탕을 둔 사랑이었어요.
 
하나님은 당신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준다고 했지요 이 시는 목가적인 행복한 삶 만이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임마누엘 하나님을 알기에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알기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런 긍정적인 고백이 이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지속적인 친밀한 관계속에 있게 될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고백을 우리들이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공부하면서 이야기 하나님은 나의 무엇 무엇 들어갈만한 서술어를 일인층으로 자기 스스로 찾아 보라고 했지요.
 
이 시인은 목자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을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말고 고통 속에서도 그 분의 은총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우리가 여호와를 그렇게 고백한다고 한다면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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