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2021년 한국정치는 주술의 힘을 상징하는 애굽의 마법사들과 학대받는 히브리인들을 대변하는 모세가 바로의 궁궐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금 한국사회는 권력의 대투쟁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부동산, 재벌, 기레기 언론에 서식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단맛을 대대손손 누려왔던 기생충같고 거머리같은 부패집단과 광주~촛불을 계승하면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걷어내고 보편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는 시민적 이성 사이의 대격돌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은 '시민적 정치이성'이 부활해야 할 카이로스적인 시기다.   

왜 그런가? 정치가 주술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광장에 점괘와 미신, 무속이 활개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버젓히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근혜-최순실의 저급한 무속 광풍으로 국정을 파탄낸 전력이 있음에도 윤석열과 김건희가 '천공도사'니 하는 무속인을 추종하는 주술정치가 재현되고 있다.   

세계는 '주술'에서 '세속화'로 이동했다

지금 우리는 주술의 세계가 아니라 세속화된 세계를 살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눈앞에 주술의 정치가 출현한 것이다. 마법, 주문, 부적, 점괘, 운세니 하는 주술 현상의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그 반대 개념인 세속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세속화는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잘못 이해하기 쉬운, 그래서 그 의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빠지는 개념이다. 세속화(secularization)란 신들로 뒤덮여 있는 세계를 "탈신성화" 하고, "탈신화화"하여 바라보는 세계관적 관점이다. 한 마디로 세속화는 세계에서 신성한 것을 벗겨내어 바라보는 세계관적 틀이다.    

근대 이전의 세계관은 자연과 사물 속에 온갖 정령(anima 혼)이 깃들어 있고, 마법(魔法)의 힘이 작동하는 세계였다. 근대 이전에는 정령, 영들, 악령과 같은 인격화된 정신적-영적 실체들과 힘들이 물리적  공간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러나 정신과 물질의 공간적 분리가 일어나자, "목적과 의미가 깃든 세계"는 "기계로서 세계"로 파악되었다. 그리하여 주술적 세계에서 세속화된 세계로의 세계관적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 이후 현대 세계관은 우발성(contingency)의 맥락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런 세계관의 변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여,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창조된 세계는 외부의 알 수 없는 힘이 아니라 신이 설계한 자연법칙과 자연질서에 따라 합법칙적으로 굴러 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세속화된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더 이상 인간은 주술과 미신에 미혹되어 놀아나는, 미성숙한 수준에서 벗어 났으며, 본회퍼의 말처럼, "성인(成人)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신앙은 주술을 퇴각시키고, 세속화를 촉진시켰다

흔히 오해하듯, 세속화는 '반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부도덕한 의미의 윤리적 개념도 아니다. 세속화는 세계를 '탈신성화'시키는 인간의 세계이해이며 세계관의 변동을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세속화 이전의 인간은 주술, 즉 마법의 힘을 빌려 세계를 '신화화'하거나 '신성화'하던 방식으로 이해했으나, 세속화가 찾아오자 인간은 마법과 주술로부터 풀려나게 되었다. 따라서 세속화는 세계를 신성시하거나 신격화하여 자연을 숭배하는 숭물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자연세계를 신령한 실체가 아니라 신이 창조한 피조물적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모두 세속화 덕분이다 그러므로 세속화는 기독교의 적이 아니라 자연과 세계에 대한 미몽에서 깨어나게 함으로써 계몽의 정신을 가져다 준 우군인 셈이다. 마법과 주술의 마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고의 원천은 다름 아닌 세계와 자연을 비신화하게 만든 세속화 덕분이다 

그러므로 세속화는 불신앙 때문에 파생된 것이 아니라 주술 종교에서 계시 종교로 발전하도록 촉진하면서, 더 나아가 도덕 종교로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세속화는 불신앙과 무신적 사고를 촉진하는 부작용과 역기능도 초래한다).  

지금은 주술이나 마법의 힘으로 인간의 운명과 세계 역사가 움직이지 않고, 이성과 합리성으로 운영되는 세속화된 세계다. 세상의 진보는 주술에서 세속화로 이행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는 세속화된 세계에서 점괘나 운세로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의탁하는 주술의 시대로 가는 것은 역사와 이성의 퇴보다.  

세속화를 거친 지금, 보통의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아무도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는 주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계몽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자신이 미성숙한 인간이며, 주체적인 판단능력이 결여된 인간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적 이성은 종교와 정치를 구분할줄 안다. 더구나 정치영역에 점괘나 부적과 같은 주술이 등장하는 것은 사회진보와 발전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주술도 종교로서 보호받아야 하는가? : 다원주의 사회에서 주술행위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따라서 샤머니즘이나 무속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원주의 관점에서 윤석열의 주술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개인의 종교적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종교가 정치영역에서 기형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위험하다. 만일 주술이 공적인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와 힘을 발휘한다면, 가공할만한 역기능이 나타날 위험이 매우 많을 것이다. 

'개인 윤석열'은 주문이나 마법의 힘을 신봉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의 윤석열'이 공적인 영역에서 주술의 힘을 사용하거나 주술행위를 벌이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시민도 개인적으로는 운세나 점괘나 부적의 힘을 의지할 수 있다. 이미 현대사회의 거리에는 타로(점집)가 즐비하고,  주술적 요소가 가미된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대중에게 친근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손바닥 '왕'자는 "(종교) 다원화된 사회에서 왜 용인될 수 없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의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만큼, 샤머니즘이나 무속으로 점괘, 운세, 부적을 신봉하는 것은 개인의 종교적 자유이고 자기 선택의 권리라는 항변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따져 물어야 한다. 다원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신념과 가치를 포용하는 '관용'이라는 덕목을 중시하지만, 그 관용은 타인의 모든 행위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무제한적이고 무제약적인 관용은 아니다. 

어떤 경우, 특정한 방식의 종교행위는 그 사회의 통념 가치나 평균 가치에 위배될 경우 어느 정도 제한과 제약이 가해진다. 미국의 병원에서는 백신접종을 도맡고 있는 간호사들 가운데 자신들은 백신을 접종받지 않겠다고 한다. 누구든지 백신을 거부할 자유가 있으므로, 그것을 국가 당국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침해하거나 강요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할 때,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국가는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공공의 관점에서 그들에 대한  해고조치는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생각할 것은 부적, 점괘, 운세, 손보는 날 등의 주술행위는 사회적으로 '적극적으로 권장할 행위'는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으로 허용될 행위'에 속한다. 흡연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만,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이므로 공공 장소에서 제약을 받을 만큼 소극적으로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왕(王)자 부적은 "개인의  공간에서는" 허용될 수 있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윤석열"과 "정치인으로서  윤석열"이 정치적 공간에서 부적이나 주술을 동원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하듯, '주술과 정치'는 더더욱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문제는 그가 무속신앙을 추종하는 것에 있지 않고, 주술과 무속을 공적인 정치 영역에 까지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주술이든, 무속이든, 그리고 기독교신앙조차도, 세상 왕국은 법치와 보편상식과 시민적 이성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윤석렬의 손바닥 주문은 바로 이것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그것을 방치할 때, 심각한 비극이 초래할 위험이 있다.  

정치적 이성이 작동해야 할 정치적 공간에 주술과 미신이 활개치다니 21세기 한국정치는 합리성과 이성이 아닌 점괘와 운세가 지배하는 주술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윤석열의 손바닥 주문 파문을 보면서 21세기 한국정치가 세속화 시대에서 주술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긴글을 적어 보았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