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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는”
2021년 10월 14일 (목) 10:10:44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시편 113:1-9) 
 
1.
권세있는 자와 사회적 약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먼저 들으실까요? 능력이 많은 자와 능력이 젬병인 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일까요?
 
잘생긴 자와 못생긴 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더 주목하실까요? 가정이 유복한 자와 그러지 못한 과부, 고아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먼저 귀 기울이실까요?
 
물론 진심과 성심으로 기도하는 이, 열정과 믿음으로 기도하는 이의 기도를 먼저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들이 같은 상황이라면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먼저 귀를 기울이실까요?
 
2.
오늘 본문 시편 113편,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나는 할렐루야 찬송시입니다. 우리는 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요?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까 그리해야 한다고 교리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를 묵상하면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이 증언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시인은 3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온 세상 만민들에게 권합니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그러면서 4절부터 그 이유가 나오는데,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맞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중에 계시며, 그와 견줄 자가 없다. 우리의 안목과 지혜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 우리가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더 기막힌 사실은 이어지는 그다음 절입니다. 그렇게 영광중에 계신 위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뭘 하시는가요?
 
6절,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답니다. 왜? 뭔가 허리 숙여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뭘 잘 보시려고? 천지를,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네 삶을 잘 보시려고 그러셨답니다. 그리곤 살피신답니다. 왜? 도와주기 위한 거 아니겠습니까? 살핀다고 하시니 감시보다는 도와주기 그럴 것입니다. 누굴 그렇게 도와주시려고 누굴 그렇게 살피시는가요?
 
7절,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가난한 자, 궁핍한 자, 그것도 먼지 더미, 거름 더미같이 더럽고 추한 삶의 환경, 그런 정황에서 헤매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뿐 아닙니다. 마지막 절,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그 옛날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면 고통받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시어 자식을 낳게 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살피신답니다.
 
하나님께서 잘난 자의 하나님, 있는 자의 하나님, 권세자의 하나님이었다면 나같이 부족한 이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도 없지만,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부족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살피신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막혀 나는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성경은 이를 아주 분명하게 밝힙니다.
 
대개의 종교에선 똑똑한 이, 뛰어난 인물, 하늘이 낸 인물들을 그들의 신들이 총애하고 능력과 권세와 부를 더하여 줍니다. 그러기에 왕족들을 선호하고, 귀족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잘난 사람, 권력자, 권세자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하나님은 이 사회가 버린 나약한 자, 가난한 자, 추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돌아보십니다. 게다가 우리 예수님은 더 엉뚱하십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0-11) 무슨 뜻인가요?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거는데, 예수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자기들과 같은 점잖은 사람들, 배운 사람들과 어울려야지 어찌하여 예수님 같은 분이 저런 하찮은 이들, 세리와 죄인들, 천시하는 이들과 어울리는가 하는 책망이요 시비입니다. 이는 그만큼 평상시 예수님은 있는 이들, 가진 자들, 배운 자들, 스스로 온전하고 완벽하다는 이들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늘 부족한 이들, 죄인들, 아파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들과 함께하시기를 즐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예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가난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재물이 부족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재물만 부족하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부족한 이들, 그것이 재물이든, 지식이든, 재능이든, 인식능력이든, 건강이든, 인간관계이든, 소망이든, 영적이든, 육적이든, 정신적이든, 생김새이든 아무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 누군가가 도와주고 채워줘야만 살 수 있는 이들, 자기 혼자의 힘으로 못 살 이들, 그들이 가난한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5장에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결코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이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는 이, 나같이만 생겨보라고 자신만만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적이 없습니다. 지혜나 지식이나 스스로 총명하다 여기는 이들에게 그 심오한 하나님의 지혜가 임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런 이들에겐 하나님의 책망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47:8 이하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나에겐 그런 억울하고 슬픈 일이 생길 리 없다.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을 일이 전혀 없다’고 교만을 떠는 여인에게 저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답니다.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사 47:10b-11) 얻어맞으면서도 왜 맞는지조차 모를 것이랍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너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왜 그럴까요? 왜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물리치시는가요? 왜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이를 외면하시는가요? 왜 완벽하다고 자부심을 갖는 이에게 미련하다 하시는가요? 왜 잘 생기고 멋있고, 품위있는 이들을 뒤로 미시는가요? 왜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시지 않는가요?
 
사실은 완벽하지 않고, 사실은 지혜롭지 못하고, 사실은 채워지지 않았고, 사실은 강하지 않고, 사실은 속이 허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선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8)
 
자기 스스로는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초라하고, 헐벗고 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 부족을 보고 주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미련합니다. 나는 가난합니다.’하고 무릎을 꿇을 때, 우리 하나님은 그를 들어 세우실 것이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도와주십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야고보서 5:1-4절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1)
 
부한 자들, 단순히 재물이 많은 자가 아닙니다. 재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자랑하고, 사치하며, 의지하는 이들, 재물을 쌓아놓았음으로 이제 잘 먹고 잘 살 것입니다 하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마치 하나님 없이도 이제 자기는 먹고 살 준비를, 노후를 잘 준비했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2-3) 재물, 좋은 옷, 금, 은, ... 쌓아놓기만 해도 마음 든든한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썩었고, 녹이 슬어 도리어 해가 될 것이랍니다. 왜?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4) 나에게 상처를 받고, 불이익을 당한 이들이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스스로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손해를 보고, 빼앗긴 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를 고발하면 나는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약자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작은 자들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병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힘이 달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이들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조선 시대에 신문고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원한이 맺히는데, 아무도 풀어주지 않습니다. 그럴 때 한양으로 달려와 신문고를 둥둥 울리면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풀 수 있었습니다. 누가 풀어주는가요? 왕이! 왕이 직접 그러한 억울한 일을 듣고 풀어주었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풀어줄 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당했지만, 힘이 없어서, 나약해서, 돈이 없어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려 합니다. 이 억울함을 어찌할까요?
 
기도의 신문고를 울리십시오! 그러면 누가 들어 주는가요? 누가 그것을 풀어주는가요? 하나님! 하나님은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힘이 없는 이들의 눈에 억울한 눈물이 흐르게 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셔서 늘 나를 축복하신다고 믿으면서 불의와 불법, 착취와 사기로 산다면 그 하나님은 돌변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당하는 이들, 약자의 기도에 먼저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고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다” 왜? 힘이 없으면서 괜히 큰소리치는 것이기에! 그러나 얼마나 분하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얼마나 힘이 없으면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무서운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두고 보자고 할 때는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왜? 그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기도하면 들어줄 하나님이 무서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힘이 없는 나약한 자들의 기도를 최우선순위로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지키시고, 약자를 지키시고, 양심을 지키시고, 힘이 없는 자를 지키시고, 가난한 이를 지켜주십니다. 과부와 고아의 기도를 신원하십니다. 세상에서 보호자 없는 나약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자가 되어 주셔서 지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한 자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감사합시다. 정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약자를 억누르고, 불의와 타협하여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말고, 지켜주시는 하나님 편에 서서 이 땅에 정의를,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도와주십시오.

5.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 지식인과 무식자, 잘난 이와 못난이가 기도할 때 부족한 이를 먼저 살피시는 이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경쟁 사회에서 밀리고 밀리는 못난이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똑똑한 이, 강자, 부자, 지식인, 중앙인, central person, 잘난 이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의식 속에 자기 자신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고, 자기는 그렇게 인정받을만한 이라 여기고 사는 이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 은혜를 얻기 힘듭니다.
 
도리어 그런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무릎 꿇는 이를 하나님은 더 사랑해 주십니다. 더 복을 주십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리 경건한 지식인, 경건한 부자를 만나기 어려운가요? 요즘 우리나라 지도층은 왜 이리 천박하고 무례하고, 교만한가요? 왜 이다지도 경건한 권세자, 경건한 강자를 만나기 어려운가요?
 
여러분이 아무리 손에 큰 것을 쥐고 있고, 큰 권세와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의식은, 여러분의 영혼은 가난해야 합니다! 겸허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방글라데시에서 온 기독교인이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귀여운 협박(?)을 합니다. “만약 한국 교회가 우리를 돕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한국 교회를 고발하겠습니다. 부자인 한국 교회가 가난한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요.”
 
어렵고 힘든 이들, 도와주십시오. 나눠주십시오. 붙들어주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있는 자의 하나님, 권세자의 하나님, 강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스스로 낮추사 허리를 숙이고 힘들어하는, 고통스러워하는, 두려워하는, 아파하는 이들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놀라운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곳에서 억압을 당하고, 사는 것이 힘들고, 삶의 질병과 사고로, 냉철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붙잡아 주기 위해,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힘주시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 낮추시어 이 낮고 천한 세상을 살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시선에 누구보다 여러분이 먼저 그 눈에 띄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심령으로 사십시오. 궁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빈티 내며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득 채워진 교만한 부자의 심령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까지 닿은 교만한 바벨탑 같은 지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접한 것으로 가득 채우고 부족함이 없다고 교만을 떨어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 마십시오. 오직 겸허한 심령, 가난한 심령으로 살아 하나님의 눈동자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긍휼이 풍성한 복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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