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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2021년 09월 14일 (화) 18:09:38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빌립보서 2:12)
 
1.
오래 전에 나는 구약 성경을 읽다가 시험에 든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40:13)
 
아론을 거룩하게 하랍니다. 그러기 위해 그에게 거룩한 옷을 지어 입히고, 거룩한 기름을 붓고, 그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랍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랍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의 상황을 안다면 이게 쉽게 이해가 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난 815일에 내 책임이 아닙니다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모세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 위로 올라가 있는 동안, 산 밑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우상숭배에 미친 듯이 빠져듭니다.
 
그런데 그 금송아지를 만들어준 장본인이 누군지 아는가요? 바로 아론입니다. 아론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이지 얼굴도 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자기도 할 말이 없었는지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무책임하게 이럽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32:24)
 
이런 아론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거룩한 대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그를 거룩하게 해 주라고 합니다. 온 백성들에게 그를 거룩하게 바라보랍니다. 그리고 아론에게는 거룩한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랍니다. 그런 비겁하고 문제 많은 이를 거룩한 대제사장이라고 부르랍니다. 왜 그러시는 걸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2.
그러나 사실 그게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람, 특출난 사람, 똑똑한 사람, 완벽한 사람, 착하디 착한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게 아닙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을 택하여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게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 혼자는 어림도 없는 사람, 큰소리 잘 치는 사람, 잘난 체하는 사람, 자꾸 넘어지는 사람, 경력도 배경도 별로인 사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대형 교회인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좀 기분이 나쁜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을 택하시고 부르셨답니다. 지혜롭지도 않고, 능하지도 않고, 문벌도 별로고,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자랑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이들을 하나님께선 택하셨답니다.
 
내가 십 년 전에 이 본문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왕십리는 주변인들로 별 볼 일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고. 그러자, 왜 내가 별 볼 일 없는 주변인이냐고, 왜 내가 변두리 마지널맨(marginal man)이냐고, 나는 중심인물, 센트럴맨(central man)이라고 종알대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 자기 자신은 완벽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좀 기분 나쁘시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고, 약한 것들을 택하셨고, 천한 것들을 택하셨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고, 없는 것들을 택하셨답니다.
 
그러기에 잘나갈 때는 모릅니다. 건강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빵빵할 때는 귀담아듣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것을 다 잃었을 때, 그때야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런 역사입니다. 이런 약한 이들을 택하사 강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고, 이렇게 추한 자들을 택하사 거룩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며, 이기적인 자들을 택하사 이타적인, 희생적인 이들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며, 세속적인 이들을 택하사 신령한 이들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3.
나는 정확하게 35년 전에 목사로 임직, 안수받았습니다. 그때, 35년 전의 나는 목사로 안수받는 그 순간 목사가 되었을까요? 되기도 했지만, 되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란 칭호는 얻었지만, 목사로서 엄청나게 부족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쪼매 나아졌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온전한 목사는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 우쭐하고, 비난을 들으면 기죽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어떨 때는 맘 졸이며 삽니다. 카톡을 보냈는데 대꾸도 없으면 기죽습니다. 정성 들여 중보기도문을 보냈는데 반응이 없으면 맘이 아픕니다. 페북에 글을 올렸는데 좋아요가 별로면 인기가 없다고 풀이 죽습니다. 2년 가까이 되도록 교회 오지 않는 이를 생각하면 이분이 나를 미워하나... 코로나 핑계로 그러는 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합니다. 어떨 땐 주님만 아시면 된다고 위로를 삼지만 마음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위의 반응과 시선에 민감하게 지내는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께서 그러십니다. ‘, 니가 목사냐? 제발 나에게 좀 민감해라.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걱정도 안 되냐?’
 
그래 말입니다. 나는 목사이면서도 아직 온전한 목사가 되려면 멀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까요? 에이 나 같은 게 무슨 목사야 하고 때려치울까요?
 
그런데 말이죠, 이런 나의 부족함을 주님께서는 모르셨을까요? 다 아십니다. 내가 늘 넘어진다는 것 모르실까요? 말해 무엇하리요... 내 안의 이 심한 갈등을 모르실까요? 척 보면 다 압니다. 사람도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는데 아무렴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39:1-4)
 
하나님은 나를 다 아십니다. 나의 변덕스러움, 다 아십니다. 나의 조바심, 다 아신다. 내가 눈치 보며 산다는 것, 늘 선한 것은 잠깐이고 곧 세속적이고 감각적으로 산다는 것, 다 아십니다. 뭐 순간적으로는 거룩한 백성으로의 모습도 잠깐잠깐 보이지만, 은혜받으면 쓸 만해 보이지만 실은 그게 그야말로 눈 깜박할 새라는 거 다 아십니다. 지금 이렇게 감격적으로 결단하지만, 며칠 못 간다는 거 다 아십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세우셨다는 것, 우리들 말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렇게까지 일러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우리가 죄인일 때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고, 그런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셨고,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고 증언합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그러나, 즉 전에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은 이젠 진짜 왕 같은 제사장들인가요? 거룩한가요? , 이게 자신이 없죠?
 
4.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뭔가요? 잘 나서 택함받은 것도 아니고 뛰어나서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자격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합격한 것도 아닌데, 그러면 그 부족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우리들, 우리가 할 일이 뭔가요?
 
이젠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오늘 본문, 빌립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구원은 내가 노력함으로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요?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기껏 예수 믿어 이름 석 자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줄 믿었는데, 그게 말소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에 대하여 내가 그 내용을 채워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것도 좋은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렇다면 그 아기가 당장에 그렇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앞으로 그렇게 살라는 부모의 바램입니다. 아이는 인생을 살되 적어도 부모 앞에서 그렇게 살 책임이 있습니다.
 
내 이름은 양 의섭입니다. 양씨! 그리고 옳을 의(), 빛날 섭() 자가 내 이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그때 갓난아기인 나를 향해 옳을 의, 빛날 섭 자를 지어주셨는데, 그 갓난아기가 옳고, 빛난다는 것인가요? 천만에! 그리 살라는 것! 이제 나는 태어났고, 의섭이란 타이틀은 주어졌고, 이제 살아가면서 이름대로 그 내용을, 삶을 채워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여, 성령의 역사 속에 목사로 안수받고 임직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목사이지만, 또 완전한 목사가 아닙니다. 칭호와 자격은 갖추어 목사가 되었지만, 목사로서의 품성과 기능과 덕성을 완전히 갖춘 목사는 아닙니다. 목사이긴 하지만 목사로서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목사로서 온전한 인격을 갖추기엔 아직까지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혈기도 부리고, 때로는 다투기도 합니다.
 
앞에서 고백한 대로 때때로 나는 내 스스로 심한 갈등에 빠집니다. 자괴감에 빠집니다. ‘니가 목사냐?’하는 자책감에 빠집니다. ‘에휴 나는 아직 멀었어하는 한탄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섭니다. ? 그거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거 모르시고 주님께서 나를 택하신 것도 아닙니다. 다 아십니다. 다 아시면서도 나를 택하신 것은 그럼에도 나에게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침내 나에게 보고 싶은 게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시작할 때 아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론,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거들먹거렸을까요?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까요? 평생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얼굴도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거룩한 분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낮아지고 또 낮아져 겸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론의 평생 과제는 부끄럽지 않은 진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론만 그런가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다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선 그들을 붙드시고 칭호를 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 그런 부끄러운 처지에 끝까지 있을 그들이 아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단하고 일어서고, 설령 또 넘어져도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군사로 분명 설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그런데 솔직히 나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나는 여전히 물질적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늘 성령의 감동과 보호하심 속에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곤 쉬지 않고 나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
 
왜 이렇게까지...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하고 믿을 수 없는데 하나님은 대체 왜 그러시는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 보신 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에베소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5)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것은 기쁨 속에 하셨다고 합니다. 나를 억지 춘향이식으로 택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b)
 
하나님은 나를 택하심을 기뻐하십니다. 별 볼일도 없는 상황인데 왜 기뻐하실까요? 순간순간 변덕이 심하고 넘어지고 뒤집어지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왜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실까요? 내가 지금 은혜받았다고 큰소리치지만, 그거 뻥인 것을 잘 아시면서도 왜 나를 기뻐하시는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린 밑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성 안에 그려놓으신 그림이 있습니다. 나에게 최종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직 그 그림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그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시며 부족한 나를 참아주십니다.
 
그러기에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그리신 나름대로의 밑그림이 있습니다. 꼭 그대로 멋지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멋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거 아닙니다. 최종 시험장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어 나아갑시다.
 
오늘 본문 말씀 뒤로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내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답니다. 즉 자꾸 속에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 그것도 거룩한 생각, 신령한 생각, 괜찮은 의지가 생긴답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데도 아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한답니다. ?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과 욕구와 느낌과 결단을 주신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꾸 내 안에 그런 생각과 결단과 감정들을 주신답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모두 그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권해 줍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6:3) 된 척 하지 맙시다. 이룬 척 하지도 맙시다. 우리는 아직 성인군자도 아니고, 흠 없는 온전한 거룩한 백성도 아닙니다.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우린 아직 안 되었습니다. 아직 길 위에, 도중에 있습니다.
 
6.
우리는 지금,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2)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역하며 산 사도바울조차도 얻었다고, 이루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것을 잡으려고 부지런히 달려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뭐하는 건가요? 순간순간, 매일매일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허물이 많고 여전히 나약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강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십니다. 나는 결국 주님의 그 기대를 이루어 드릴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면서도 늘 넘어지고 휘청대곤 하지만, 주님 앞에 설 때쯤 되면 , 나는 목사가 되었구나! , 나는 이제야 진짜 장로가 되었구나!’하는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격려하며 삽시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에 있습니다. 비난하며 살지 말고 서로 힘이 되어 줍시다. 휘청대는 이를 흔들지 말고 지탱해 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줍시다. 당사자도 늘 실패한다고 낙심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사랑과 뜻을 믿고 일어섭시다.
 
우리는 지금 모두 길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끝까지 함께 달려갑시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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