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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별세한 조용기 목사에 대한 단상
2021년 09월 14일 (화) 17:46:07 김용민 이사장 www.cry.or.kr
조용기 목사가 별세(別世)했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애석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가 한국개신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란 점에서
추모는 추모대로 평가는 평가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기 목사 없는 한국 개신교회의 대형화 주류화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 이전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였습니다.
그 미국 개신교는 곧 미국이기도 했습니다.
그 미국 개신교는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갈립니다.
 
3.1 운동 이전 미국 개신교를 두고 조선인은
한국 사회에 신문명을 조건 없이 제공한 주역인 줄 알았습니다.
또 사심 없이 풍전등화 상태인 조선을 도와줄
구원자로 이해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일본과 내통했고
국권(國權)을 지키려던 뜻있는 교인을 내쫓았습니다.
(열 받은 교인들 상당수는 공산주의자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을 집어삼키고 10여년 후,
천도교인과 개신교인은 3.1운동을 통해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인이 투옥에 고문에 학살당했습니다.
일본은 배후에 미국을 의심했고
침략 전쟁 기 때에는 선교사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패망 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영어 쓸 줄 아는 개신교인을 택했습니다.
38선 이남에 친미 반공 개신교 국가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친일 이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준장)부터 일본 놈과 조선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에게 협력자 아니면 비협력자만 있었을 뿐이에요.
 
이어 리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친미 반공 개신교인들이 득세했지요.
선거 때마다 개신교단은 리승만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적산(敵産) 부동산, 지상파방송(CBS), 군종제도 등,
사회적 이권을 독식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러다 4.19를 만나지요.
대통령 부통령이던 정동제일교회 장로 리승만과 권사 이기붕은 쫓겨납니다.
4.19 때 감리교본부도 공격당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축출 대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소생하면서 한국교회는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런데 1년 뒤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자
한국 개신교는 제 세상 만난 듯 만세를 불렀고
미국에 박정희를 보증해주는 사절단으로 가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개신교가 곧 국가 통치이념이다시피한 시절은
리승만 때로 끝났습니다.
미국형 개신교로는 부흥 성장이 어려웠던 터지요.
당시 한국의 대형교회는 영락교회 정도로 5천명이 안 됐습니다.
1961년 집계한 한국 개신교인 수는 60만 7천여 명.
 
이때 조용기 목사가 나타납니다. 조용기 목사는 은평구 대조동에
가난한 동네에서 무허가 천막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는 전도에 나섰지만 신통찮았어요.
그러다가 판자집 어떤 아주머니에게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요"라고 했을 때
이런 답을 들어요. "여기가 지옥인데 어딜 또 가냐?"고요.
이때부터 조용기 목사는 '현세에서 희망을 주는 목회'를
목표로 새기게 했다고 하지요.
병고치고, 축복의 은사를 강조하는 등
한국교회가 빠르게 기복주의(祈福主義)에 물들게 된
계기였습니다. 교인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순복음중앙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0년대에 등록교인 수 50만을 달성합니다.
(지금은 허수 더해 80만이라고 하는데
세계 최대 규모임에 틀림없습니다.)
 
선한 양심으로, 아름다운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복으로 호객한 교회.
고속성장을 추구하던 박정희의 노선과 맞아 떨어졌습니다.
많은 역사 연구자들은 박정희 정부 시절
도시빈민이 폭증하는데도 민란이 안 일어난데 놀라움을 표합니다.
조용기 목사의 역할이 큽니다.
일주일 내내 고통을 당하다가 패배감에 젖어 있다가
주일 순복음교회에 나오면 조용기가 ‘3중 축복’ 운운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분노로 조직화하지 못하게 유보하게 만들지요.
조용기와 박정희는 찰떡궁합이었습니다.
박정희 사망 시점, 한국 개신교인수는 598만여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지금은 900만을 헤아립니다.
 
오늘 조용기 목사가 별세했습니다.
요컨대 조용기의 물레방아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조용기 목사가 희망을 주고자 한 선의(善意)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그 희망이란, 병에서 가난에서 헤어 나오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지금도 그러한가요?
물론 인생의 병마와 빈곤의 질곡을 끊기 위해
답을 얻고자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희망을 찾아갈 때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정의, 평화, 생명을 위한 헌신일까요?
교회의 욕망 채우기일까요?
조용기 목사가 역사 저편으로 넘어간 시점,
코로나로 인한 교회 모임의 공백기,
우리는 큰 숙제를 받아들었습니다.
 
/벙커1교회 담임, 평화나무 이사장, 김용민 TV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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