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1.9.17 금 21:12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제3강 시2편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2021년 09월 08일 (수) 15:33:33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아버지에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아버지하고 이렇게 부르는 자식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애가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나도 아들 딸을 키우다 보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빠 이것해 주세요 하고 이야기를 하면 늘 해 주지요 어느 날 무련듯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어요 이 애들이 누구인데 나에게 요구를 해 그런데 마음속에 감동이 되는 것이어요.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허물없이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해 주세요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요구 받는 다는 것이 기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 그런데 아이들이 크니까 잘 요구를 안해 요즈음은 자기들 알아서 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한편에는 서운해요. 이제 내가 필요가 없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이 컸구나 독립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에는 우리들이 누구를 의지하는 것이지요. 물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만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기일을 자기가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더 기쁠 것 같아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는 늘 무엇을 달라고 하는 칭얼거리는 것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기쁜 보고가 되는 될 때도 있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 아버지 우리에게 거짓 안정감을 주는 거짓 아버지를 떠나서 진자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요. 끊임없이 찾아가는 단계여요. 어느 누구도 당도했다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는 길 위에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도상의 실존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길 위에 있는 것이지요. 항상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것이 실존의 모습이다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편 여행도 결국 우리의 거짓 아버지를 떠나서 어떻게 참 아버지를 찾아 갈 것인가 하는 그러한 과제를 가지고 우리가 함께 떠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시편 1편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시편 2편입니다.
시편 2편 말씀을 한번 낭독을 할 터인데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성경을 눈으로 읽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소리를 듣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4가지의 번역본을 가지고 성경 낭독한 것을 들을 터인데 여러분이 갖지 않은 성경을 낭독을 할 것이어요. 다른 분들이 그 때는 경청을 한번 해 주세요. 그 시의 리듬이 내 속에 들어오기를 그리고 낭독하는 이들은 정성을 다해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05.00
 
개역 개정판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시며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도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가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네가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 다
9 내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트리며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 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13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06.30
 
새 번역
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세상의 통치자들이 음모를 꾸며 여호와를 거역하여
 
가톨릭 성경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주님을 거슬려 그분의 기름 받은이를 거슬려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 일어나며 군왕들이 음모를 꾸미는 도다
 
공동번역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되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들은 12.00
 
네 가지 번역본으로 우리가 시편 2편을 낭송하였습니다. 어떼요 경청을 해 보니까 느낌이 다 달라요 그런데 성경 말씀을 똑 같은 말씀을 다양한 번역본으로 읽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좋았던 것은 네 분 모두가 훌륭한 낭송자라는 것이지요. 참 좋았어요. 잘 하셨어요.
우리가 시편 1편은 어떤 말로 시작이 되었지요. 복 있는 사람은 그런 말로 시작이 되었어요.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어떤 사람이 복이 있었습니까?
 
그 모든 것을 뭉떵꺼려서 이야기 하면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요.
 
주님의 말씀 개인적인 측면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묵상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어요. 그 개인이 이루어 살고 있는 사회가 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 원리로 작동할 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겠지요.
 
시편 1편은 개인들이 어떻게 복 있는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이야기다면 시편 2편은 한 사회가 한 나라가 어떻게 해야 복된 나라인가 보여 주는 시입니다. 금방 이야기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율법이 통치 원리로 받아지는 사회 이것이 복된 사회이다 이것이 시편 2편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시편 1편과 2편이 상당히 유기적인 맥락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시는 두편의 시이지만 하나의 시로 읽혀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1절이 복 있는 사람 이렇게 끝났지요 복되어라 히브리말로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시편 2편의 마지막 구절은 어떻게 되어 있지요 복이 있도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복에서부터 복으로 끝나고 있어요 마치 괄호 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복된 삶이라고 하는 것은 복 있는 사회가 무엇인지 보여 지고 있지요 흥미로운 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편의 구조 전체를 보면 이런 맥락을 우리가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여러분 나라들이 전쟁을 해 가지고 힘의 우위를 결정을 하지요. 내가 전쟁을 벌여 가지고는 이 네 나라를 복속시켰어요. 내가 정복을 했는데 너무 땅 덩어리가 넓고 사람이 많다 보면 내가 다 다스릴 수 없지 않아요
 
그래서 나의 통치를 대행하는 중재자를 두어서 임금들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라들을 그렇게 해서 봉신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자 신하국가들은 군주 국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요 그들이 지키지 않으면 군주국가가 봉신 국가를 치겠지요. 그들이 지켜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봉신 국가들 신하 국가들은 어떨까요 저 지배를 벗어나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들겠지요. 그럴 수 밖에 없어요.
 
그리하니까 어찌하든지 군주 국가가 혼란스러워 지거나 약화되기를 기다리겠지요. 약화될 때 막 일어나서 독립을 하고 싶은 게 뭇 민족들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편이 상정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이제 맥락을 두고 우리들이 봐야 되지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국가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 있는 유형적인 나라들로 상징적인 나라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떨까요. 내가 내 세웠던 통치하도록 내 세웠던 그 사람이 유고 사항이 생겼어요. 그래 새로운 사람을 내 세우려고 할 때 그 신하 국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지금이야말로 대박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때이다 생각하겠지요. 바로 이것을 맥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2편 1절을 보면 어떤 말로 시작하느냐 하면 어찌하여라는 말로 시작이 되고 있지요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될 일을 꾸미는가 하고 말합니다.
 
여기 이방나라 그리고 민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요. 이방나라 민족 이방나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한다고요.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방나라는 물론 이스라엘이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이외의 나라를 이방나라라고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언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분노하고 이제 무언가 독립의 때가 왔다 생각하고 그리고 그 일을 독립을 도모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세상의 약소국들이 어떻게 하든지 강대국으로부터 지배국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이 시에서는 어찌하여 벗어나려고 하고 말합니다.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민족들의 통치였지만 사실은 누구의 통치였지요. 하나님의 통치였어요. 그것을 벗어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도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세로 주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수확철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종들을 보냅니다. 수확철이 되었으니 수확물 가운데 일부를 내게 바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생각하는 것이어요. 주인은 멀리 있고 주기 싫어요. 자기들이 땀 흘려 아깝게 농사지어 놓은 것이니까 그래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때려서 보냅니다. 주인은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더 인내하고 또 다시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니까 또 때리고 모욕하여 보냅니다. 주인이 생각합니다. 야 이럴 수가 있지 내 아들을 보내야 겠다 내 아들을 보내면 나를 본 듯 어려워하겠지 그래서 아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다고 하지요. 이 아들이 상속자니 이 애를 죽여 버리면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그것처럼 이 이방나라와 민족들이 2절에서는 세상의 군왕 그리고 관원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들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했다하고 말합니다.
 
여기에 이제 군왕들도 나오고 관원들도 나옵니다. 관원들도 나오고요. 그들이 했던 것은 결국 무엇하는 것이지요. 여호와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했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 이러한 형편 속에 지금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 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인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마는 이런 사람들이 어쩧던 이런 맥락을 놔두고 저들이 저들이 저런 일들을 꾸미고 있을 때 그 다음에 4절에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4절에 “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시며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셨데요 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시며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즐거운 웃음이었을 것일까요? 비웃음 어처구니 없는 것이지요. 바로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이야기가 더러 등장하는 데 하나님이 기뻐서 웃으시는 일은 별로 없어요. 성경에 보면 어이없어서 웃으실 때가 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을 웃기는 방법이 좀 있어요. 어떻게 하나님을 웃길 수 있을까? 어이없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어떤 것들이 어이없을까요? 하나님이 들으시면 웃으시는 단어가 있습니다. 단어가 있어요.
 
하나님이 그 말 들으시면 웃으셔요. 어떤 말이냐 하면 인간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나는 절대로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절대일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도 우리는 어떤 일을 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 절대로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나는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웃으십니다. 틀림없이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웃으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세상 살면서 하나님 우울하시지요. 제가 웃겨 드릴께요 나는 절대로 이렇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웃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웃기게 해 드리려고 이야기 하면 즐겁게 웃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런 웃음은 괜찮지만 하나님을 웃기게 하면 안 될 것인데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입니까? 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인가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우주 가운데 별들이 얼마나 많은 가하면 얼마나 많은지 상상이 안 되지 않아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했지요. 지구에 모든 저장과 사막에 있는 모래 알갱이 모든 알갱이가 얼만큼 많아요. 상상이 안 되지요. 우주에는 그 모래 알갱이의 열배 만큼의 별이 있어요 상상이 안 되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절대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들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웃으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떤 한계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세상에 있는 통치자들인 것은 맞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대통령이 있고 미국에 대통령도 있고 여러 나라에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이 지구의 문제를 상의하는 유엔 같은 것도 있지요. 직접적인 통치의 도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의 고난조차 하나님의 법아래 있다고 하는 사실이지요.
 
세상에 어떤 통치자도 하나님의 법 밖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단어가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고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면서 저 왕의 통치를 우리가 벗어 버려야겠다 하고 헛된 일을 도모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비웃습니다.
 
그 다음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5 “ 분을 발하사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여기 보면 6절 짧은 곳에 나라고 하는 단어가 몇 번 등장하고 있지요. 세 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도 글을 씁니다마는 글 쓰는 이들이 가장 주의해야 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한 문장안에 반복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글을 쓰고나서 항상 생각합니다. 읽어 보다가 반복되는 단어가 있으면 다른 말로 바꾸어 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비슷한 표현이지만 뉘앙스가 다른 단어로 바꾸어 주지요.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사람들 보면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이게 글 쓰는 비결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시편 2편 6절에 나라고 하는 단어가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글 대게 못 썼지요. 그러나 이게 대게 못 쓴 게 아니고 여러분 이 세 번이 정말 글을 함축성 있게 쓰고 있는 이 시인이 시인의 언어는 절제된 언어이지 않아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절제하고 생략함으로 무엇을 만드느냐 하면 사람들이 공명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거든요. 내가 남긴 없이 설명하면 읽는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없는 것이어요.
 
자꾸 비어내는 것이 시인이 하고 있는 일이어요 언어를 굉장히 절제를 하고 있는데 같은 단어를 세 번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강조입니다. 내가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음을 보여 주고 있어요
 
하나님 내가 하고 나의 왕을 하고 이야기 했어요. 나의 왕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나의 왕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세운 왕이지요.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내가 나의 세운 왕을 어디에 세웠는가 하면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시온이다고 하는 것을 유다인들은 우주에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다 배꼽이 있지요. 배꼽이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종교학에서 우주에도 배꼽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주에도 배꼽이 있어요. 그것이 우주의 중심이어요 그래서 그 배꼽 같은 장소가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우주의 배꼽이다고 생각을 해요.
우주에 배꼽 그 중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바로 이것이 우주의 중심이다는 것이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그곳이다고 것입니다.
 
6절에 나오는 세 번의 반복은 이 분이 언어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고 어마 어마한 강조여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시온에 세워진 그 왕의 통치의 세계야 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통치를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이 6절에 나온 시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세상을 향하여 말을 전합니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하면서 마치 칙령을 내리듯 이야기 합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앗도다” 하고 말합니다.
 
그 시온에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게 될 왕을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낳았도다 합니다. 여러분 강렬한 이미지 아닙니까? 하나님이 낳으셧답니다. 물론 문학적 표현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를 낳았다 하나님은 이 지상에 있는 당신의 통치의 대상을 대행자를 당신이 낳으신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이지요. 얼마나 강력한 표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당신의 통치를 위임해 주신 그 왕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8절에 나오는 이야기 이지요. 내게 구하라고 말합니다. 내게 청할 것을 청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될 때 하나님 앞에 번제를 바치지 않아요 그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에게 구할 것을 구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솔로몬이 무엇을 구했지요. 지혜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내게 주십시오 하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낳은 아들들은 내게 구할 수 있어요. 그 이야기지요.
 
아까 이야기 처음 시작할 때 아이들이 어느 날 내게 아빠 무엇 해 주세요 이야기 하면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지요 이 애가 누구인데 나에게 달라고 하느냐 그런데 마음속에 감동이 있는 것이어요
 
나에게 아무 이해관계 없지요. 이 아이가 무엇을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어 그런데도 아이가 요구한다는 자체가 기뻐요 아 우리가 부자라고 하는 것을 부녀라고 하는 것을 이 애들이 내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이게 감동인데 내게 구하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이 통치를 대행하는 사람에게 내가 너를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겠다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권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9절에 보면 “ 내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트리며 질 그릇 같이 부수리라” 고 이야기 합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전쟁을 통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하는 일들이 지금 상기되고 있지요.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깨트린다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 이것은 지금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좋다는 이야기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이어요. 여기에 철장이라고 하는 것은 정의의 왕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의를 가지고 불의한 세상을 깨트린다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드리려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드리려하지 않은 나라들을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 받은 사람이 그들은 이제는 정복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뜻이 지배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을 연상 시키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이 통치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그 군왕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아라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왕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왕은 어떨 때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통치원리로 삼을 때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 받은 사람이 있지요. 그러면 위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자기의 뜻과 생각을 관철 시키는 것이 위임 받은 자가 할 일입니까? 아니지요.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지요 그가 해야 할 일은 자기에게 위임해 준 그 분의 뜻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이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졌지요. 말씀이지요.
 
특히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율법 토라 토라를 통해서 그렇지요. 그러니까 토라가 통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보면 여러분 예언자들도 그렇고요 또 왕을 세우는 사무엘도 그렇고요 그들에게 신신 당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옆에 항상 토라를 놔두고 나라를 다스려야한다. 이야기 하거든요. 이 통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통치하지 않을 때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변해 가는 것을 우리들이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지요 우리는 이런 것을 느낍니다. 생산성은 감소되고 효율성도 감소되고 있고요 성장도 둔화되고 있고요 또 그 때문에 불안정한 삶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발전을 이야기 하면서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시며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시를 읽는 우리들이 마음속에 가져야 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군왕들에게 권고되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요. 지혜를 얻으라 교훈을 받아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라 떨며 즐거워하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야기는 결국 어떤 것일까요. 메시야 왕에게 복종하라 항상 하나님의 듯이 어디 있는지 묻고 그 뜻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를 써야 한다 이야기여요. 그렇지요. 이것이 시편 2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대한 교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절은 그래서 시편 2편의 마지막 절을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입 맞추라는 말은 그와 깊은 친교의 일치 속에 머물러 있으라 하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자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너희가 망하게 될 것이라 하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세상의 군왕들과 또 관원들이 또 이방나라와 민족들이 헛된 일을 도모하고 분노하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이 아들과의 깊은 일치 속에서 머문 것이고요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를 보면서 내 마음 속에 깊이 와 닿는 것은 오늘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우리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국민들의 권한을 위임받아서 통치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있을까 하나님 뜻을 자기들이 대행한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다스림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늘 강조하는 바입니다마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 하나하나를 아끼는 것이고요 특별히 하나님은 성서에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요.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기꺼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분이지 않아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좋은 통치란 무엇입니까? 배우지 못하고 병약하고 한 사람들이 인간적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북돋아 주는 통치 이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기뻐하는 통치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착취해 가지고 힘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목전에 두고 있는 세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시편 2편이 주는 강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겠지요.
 
시편 2편 함께 여행을 했는데 아름다운 여행이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것을 아름답게 수행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총신대 등 6개 신학대, '2021년
코로나 이후 중점 목회는?
한국교회, 아프간 난민 수용하고 돕는
의미도 감동도 주지 못하는 한국교회
어떤 신부의 생활 체험
“뒤집지 않은 전병”
9월 14일 별세한 조용기 목사에 대
메타버스(Metaverse)
이슬람이 몰려온다
어머니는 수술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올라온 기사
9월의 선교편지
9월의 선교편지
하늘의 뜻 밝힐 때
누구나 이럴 수 있다.
제4강 시3편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동강의 아름다운 가을풍경(1)
자동차 운전자
추석 합동 추도예배가 그리워
사랑방지기의 기도
“우리는 지금”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