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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말2:17-3:6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
2021년 07월 23일 (금) 09:18:36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늘 이야기하지만 말라기의 말이 끝말이 아니지요 말라기가 구약 성서의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문학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이 나나요 여섯가지 논쟁 구조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명제를 던제요
1장 2절 내가 너희를 사랑했노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하지요 언제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러 저러하지 않았느냐 이야기 하는 구조였습니다
 
두 번째가 제사장들에게
1장 6절 너희들이 내 이름을 멸시했어
우리가 언제요
이러 이러한 것이 멸시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합니다
 
세 번째는
2장 10절 한 아버지에게 태어났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조상드르이 언약을 욕대게 하느냐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언제 언약을 위반했어요 하는 것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우매함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가 제일 안 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 남을 지적하는 것은 굉장히 잘해 자기를 돌아보는 일은 잘 안하거든요 왜 이럴까요? 사실은 이게 재미난 이야기인데 어려워서 이기도 하고 싫어 왜 싫으냐 하면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이게 인간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오거든요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보기 싫어가지고 한사코 뒤로 미루어 놓은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을 드리대며 보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내 모습 보기 싫거든요 나의 비겁하고 추악하고 다양한 요소들 이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늘 뒤에 돌려놓거든요 그런데 재미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은 보거든요 이것을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보기에 문제가 없는데 나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우리는 나를 무엇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해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해요 이것을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는 그 눈 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내가 이웃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과 같다 하는 이야기인데요
 
오늘 네 번째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게 2장 17절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하고 있지요
2장 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지요 이는 너희가 나를 괴롭게 했어요 하는 말로 우리가 언제요 이 사람들의 말은 하나님을 향하여 욕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을 향해서 욕한적은 없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서 그들이 욕했다고 여기 이야기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세상에 좋게 보이며 세상에 악이 만연하였다고 보니까 이것을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세상에 악이 만연해 있는 것을 보니까 약이 만연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허용했기 때문이고
 
그러면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께 기쁨이된다 그들이 말하면서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저는 이 마음이 이해가 되어요 요즈음 세상을 바라보면 악한 사람들이 저하고 잘 아는 분이 계신데 성경 공부 깊이 하신 분이시고 목사님 진주를 돼지에 던지지 말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늘 고민을 했어요
 
그 분이 이야기 합니다 정말 돼지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을 짓밟고 이런 사람들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런 말을 하실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데 세상에는 정말 영혼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드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에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대인의 전설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인데 인간이 태어날 때 인간이 세상에 잉태 되어서 태어나요 그 때 하나님은 하늘 창고에 영혼을 하나 꺼내 가지고 집어넣어 주어요
 
그래서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서 아이가 태어난 것이어요 어느 날 영혼 창고가 빈 것이야 애는 태어나요 영혼 없는 아이가 태어나요 이게 영화적으로 이야기 하면 존비 같은 것 이지요 공포지요
 
그러니까 영혼이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는 이 이야기는 굉장히 묵시 묵학적이기도 한데 어떨 때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저 사람에게 영혼이 있을까 그렇지요 쇼셜 페스라든지 보면 영혼이 없는 것 처럼 느낄 때가 있어요
 
이런 사람들 보면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님은 악인들을 허용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악인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하나님의 정의가 어디 있어 이런 말을 하는 심정이 하나님은 그것을 책망하고 계시거든요
 
어떻게 왜 책망을 하느냐 하면 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내 속에 들어올 때 결국 그런 생각 하나님이 악을 허용한다든지 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부질이 없는 것이야 내가 생을 절제하면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 결국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 우리에게 찾아올 때 허무주의 특별히 역사 허무주의 역사가 어딘 가를 향해 고 있다고 느껴요
 
이것이 성서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입니다 시작이 있고 마치 뱀이 자기 꼬리를 가지고 순환적 역사관이어요 기독교적 역사관은 이 순환을 끊어 가지고 펼쳤어요 기원이 있고 완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어요
 
역사의 목적을 향해서 이 목적을 향해서 간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의무주의인데 세상에서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해 우리가 착하게 살아 봤자 무엇해
 
사실 악을 행하고도 처벌을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회의를 우리속에 심어 줄 수도 있는 것입ㅁ니다
 
하나님은 부당한 일을 바로 잡을 생각이 없는 것 처럼 보여요 이게 문제중에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무능하신가 하나님이 관심이 없으신가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기 시작해요
 
이것을 마틴 부버라는 유대인 철학자는 무엇으로 표현했는가 하면 신의 일식 일식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하나님이 그러니까 일식이라는 것이 달이 지구와 해 사이에 들어가므로서 해가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일식이지 않아요
 
해가 삼켜진 상태이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어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까닭은 마틴 부버는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인간의 자아가 전능해진 자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어요
 
보면 여기 나가 있고 하나님이 있어서 마치 우리가 해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보고 살아야 하는데 어느 순간에 팽창된 자아 이것이 내가 있고 우리가 해를 바라보는 것 처럼 어느 순간에 팽창된 자아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자 안 보이게 됩니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나 밖에 안 보여 이것이 우리 시대에 슬픔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단 말이지요 그 시대는 어떤 시대이냐 하면 이 오만한 자 특생이 무엇이냐 하면 만나는 모든 대상을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대해
 
그런데 결국 누군가를 수단으로 대하게 시작할 때 우리에게 사라진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안 보인다 마틴 부버는 이렇게 나와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서로 대할 때 서로를 인격으로 대하는 그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라고 이야기했고 어떤 대상을 대상을 대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수단으로 삼는 것을 그것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나와 그와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하나님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너는 사라지고 그것만 남은 것이어요
 
인간의 소외이고 세상 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의 물화 물건처럼 만드는 것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얼마나 생산성을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거든요
 
이런 세상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서 서로 소중한 존재로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었거든요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될 때 사람들은 경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세상에 적당히 발맞추어 살기 시작합니다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이런 태도를 문학가들도 표현을 했는데 도스토엡스키라는 소설가 아세요 대표적인 소설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런 책들이 있지 않아요 죄와 벌 알지 않아요
 
도스에프스키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돼 그래서 여러분 죄와 벌이라고 하는 책에서 기본 동기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라스고트니 코프라는 젊은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세상에는 유용한 사람이 있고 무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어요
 
전당포 노파는 언제나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는 나쁜 사람이기에 없에는 게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도끼를 가지고 죽이거든요 전당포 노파를 이것이 죄이어요 나스니코프를 사로잡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신이 없기에 모든 것이 허용이 돼 신이 없는 자리에 니체의 초인같은 존재이어
 
이 초인은 인간이 가진 윤리와 도덕에 구애 받지 않는 것이어요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이 초인이다는 것이어요 이것이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어요 자기도 세상에 쓸모 노파 죽이는 것이 허용돼 신이 없다면 만약에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신판이 없다고 한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악인들을 좋아하신 것 같아 하나님의 정의가 어디 있어 이것은 이런 삶으로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야 하나님은 이것을 엄격하게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너희가 나를 괴롭게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반격을 하는 것이어요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내 사자 말라기 말라기 뜻이 말라기지 않아요 내 사자이지 않아요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연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세상에는 하나님이 정의에 관심이 없어 하나님이 악인들의 본성을 기뻐하는 것 같아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 버렸어요 그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 난장판인 세상을 질서 있게 바꾸어야 해
 
그 때 보내신 것이 나의 사자를 보낼 것이다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이 대목에 이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아요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 세례자 요한이 떠 오르지요
 
이사야 40장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절 골짜기 마다 돋으어 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판한 곳이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그러니까 정말 골짜기는 메어지고 높은 산과 언덕은 낮아지고 굽은 것들이 곧게 되고 메시야 오실 길을 닦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이사야 40장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 까닭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사람들이 귀환하는 통로가 광야길이거든 이 길이 닦아져서 그들이 평안하게 귀환하게 될 것을 비젼으로 이야기 하고 그것을 신약 성서 기자들은 바로 메시야 오실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을 바로 이사야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을 했단 말이지요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 여러분 거덜이라는 말 알아요 거들먹 거리다 이런 말도 알지요 사실 거덜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나 하면 조선 시대에 양반이나 이런 사람들이 행차할 때 사람들에게 말꼬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 물렀거라 물렀거라 그 사람을 거덜이라고 했어요 그 사람을 일컷는 말이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기 체신에 맞지 않게 폼 잡을 때 거덜먹거린다고 하는 것이지요 재미 있는 말이지요 그런 거덜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나의 사자는 주님 오실 길을 닦는 것이어요
 
보면 움푹해진 것은 돋아 주고 너무 불쑥 튀어 나온 것은 좀 깎아 주고 결국 무엇하는 것이냐 하면 사람들이 층하가 많이 나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어요
 
하나님이 임하시는 세상은 너무 도드라진 말고 너무 뒤쳐진 사람도 없는 그런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를 통하여 열어가는 세상이단 말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가 길을 준비할 것이요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이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주님이 성전에 임하신다 말라기에서는 당연하지 않아요
우리가 말라기 공부할 때 앞에서 놀라운 구절을 하나 읽었어요
말라기 1장 10절 너희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우리 이 대목 보고 놀랬지 않아요 하나님이 오직하면 성전문을 닫았으면 좋겠다 하실까
3장 1절 주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장 8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하나님이 레위와 맺은 거룩한 언약이 깨졌다고 선언하셨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 회복된 역사를 지금 보여주고 있어요
 
주의 사자가 옵니다 그래서 오실 길을 닦아요 그리고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주님의 영이 임하고 성전에 임하고 언약의 사자가 임함으로 하나님이 이제는 이 역사를 회복하시려고 작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요 희망입니다
 
그런데 그 날 주님이 임하시는 그 날은 그동안 우리가 늘 보아 왔지마는 궁극적으로는 그 날은 회복의 날이지만 무너진 것들이 회복된 날이지만 그러나 회복은 낡은 기초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낡은 기초가 무너지는 곳에 세워지는 새로운 질서가 회복이어요
 
그러면 이 회복이라는 것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냐 하면 낡은 질서는 무너져야 하고 새로운 기초가 세워져야 하지요 이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하여 있던 낡은 삶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어요 더러워진 그것들을 무너뜨림 혹은 정화한 것이어요 깨끗하게 무너짐을 통해서 깨끗해진다
 
어떤 분이 깨끗이라고 하는 이 말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이것은 깨닫다의 깨일 수도 있고요 깨트리다 옛것이 깨뜨려지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당도해야 하는 끝 우리의 목적 그것에 잇대어 있을 때 깨끗해진다는 것이어요
 
내가 낡은 것들이 무너져야 깨끗해져 낡은 것들이 바로 그게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분이 임하시는 그 날이 심판의 날이거든요 아무도 그 심판을 왜 이러십니까 이야기할 수 없어요 무너뜨릴 수 없어요
 
그런데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연단이라는 단어의 짜렙이라는 히브리어는 찌꺼기를 제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들을 무너뜨리고 정화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찌거기 속에 있는 순도 놓은 수수한 것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요
 
깨끗하고 맑은 것들을 드러낸다 그 때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어요
때때로 여러분 우리가 병에 걸리면 병처럼 싫은 게 없지요 병 걸려서 너무 좋아 이런 사람 없어요
 
병 걸리면 정말 힘들어 심리적으로 일단 두려워 져요 내가 큰 일 난 것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병이 심각해지면 무엇을 하느냐 하면 구조조정을 시작합니다
 
그 동안 이 일 너무 바빠서 절대로 시간 낼 수 없어 그랬는데 갑자가 병에 걸려서 위기가 내게 내게 닥쳐오면 다른 일들이 무의미하게 변해 다 내려놓고 자기 삶의 대한 구조 조정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고난을 기뻐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나 고난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 엉망일 가능성이 있어요 때때로 예기치 않는 고난은 우리의 삶을 구조조정하라는 부름 일 수도 있어요 일 수도 있다고 했어요 이다가 아니어요
 
모든 고난 보고 고난당한다고 이야기 할 때 미란씨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미란씨 미란씨에게 온 고난은 이래서 온 것이야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어요 다만 미란씨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닥쳐온 이 고난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할 수는 있지요 이게 창의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결국은 이것이 낡은 것들이 무너짐으로 정화가 일어나고 그 정화의 결과가 순수한 삶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순수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일 것이단 말이어요 그것을 지금 이야기하여 주고 있어요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사실 잿물이야기는 성경에 더러 나와요
이사야 1장 25절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우리 속에 달라붙은 비 본래적인 것들 어느 신학자는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 하였어요
비 본래적 비 본래적인 것들이 있어요 어려운 말이기는 해요 이게 어센틱 (authentic) 하다고 볼래적 이야기 인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저자를 뜻하는 어더 (author)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독저적인 것이어요 저자는 독창적이 어센틱하다는 것은 나다운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이 나답게 살지 못했어요 비 본래적인 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곧 본래적인 것이어요
 
그런데 내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흐릿해 졌어요 본래적인 것이 가려졌어 내 욕심과 죄와 태만함과 나의 교만함 하나님의 형상을 흐릿하게 가려져서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나지 않을 때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비 본래적 삶 그렇게 이야기해요
 
이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타락이야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ㅊhd에 의해서 벗겨지는 것이어요 그래서 본래성을 내가 회복하는 것이어요 본래적인 것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비를 벗기는 것을 잿물로 씻듯이 찌꺼기를 제하여 버린 바로 이 표현이다는 말이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때로 고통도 주고 우리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결국 무엇이냐 하면 비위를 벗겨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냐 아무런 고통을 안 겪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사람이어요 그들이 잘 사는 사람이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은 그런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해요
 
3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옇오ㅘ게 바칠 것이라
 
드디어 일반 백성들만 아니라 하나님이 레위 자손들 하나님 앞에 정결한 예물을 바치지 못하였지 않아요 앞에서 보았을 때 그들을 깨긋하게 하신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직분으로 위임을 받을 때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었어요 회막 앞에 사람들을 다 모으고 광야 시절에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 데려다가 물로 씻겨 그리고 속 옷을 입히ㅣ고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고 에봇을 걸쳐 입게 하고 에봇 장식 띠를 띠어요 에봇을 몸이 붙이고 거기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집어 넣고
출애굽기 29장 5절 의복ㄹ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휼채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띤 띠를 띠게 하고 에봇을 걸쳐 입게 하고 에봇 장식띠리 띠우고 흉패를 붙이고 거기에 우림과 둠민이라는 것을 집어 넣고
 
29장 6절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이렇게 해야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어요
 
이렇게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어요 번거롭지요 그 번거로운 일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찌끼가 떨어져 그것을 정성스럽게 수행할 때 하나님이 이게 귀찮아서 그 번거로움이 귀찮아요 대충 대충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편리하기는 한데 이렇게 된 것이야 안 떨어지는 것이야 오히려 더 달라붙은 것이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레위 자손들도 저기에 있는 비를 벗겨내는 것처럼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을 연단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 비로서 공의로운 제물을 하나님게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제사의 회복이어요
 
하나님 앞에 제사의 회복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4절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아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하고 말합니다
결국 여기에서 벗겨지고 있는 비의 내용이 무엇인지 거기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어요 찾아 보세요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점치는 자 또 무엇이 있어요 간음 하는 자 거짓 맹세 하는 자 품꾼의 삯을 억울하게 하는 자 과부와 고아를 압제 하는 자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을 통칭하여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이어요
 
결국은 본래적으로 삶으로 회복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운명을 개척해 보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간음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은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여기에 보면 본래적인 삶이라는 것이 종교적 행위라는 것인지 아니어요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 품군의 삵 떼어 먹지 않는 것 고아와 과부를 억제하지 않는 것 어려운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것 결국 그것이 젯물처럼 씻겨 나가는 것이어요 그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어요 일목 요연하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결국 말합니다
3장 5절 경외하지 않는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무엇을 증언합니까?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회의론에 대한 대답입니다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정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계시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신실의 의무 약자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바로 그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이 역사를 정화하고 제사를 바로 잡으실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 신의 일식이 아니라 우리가 구름 끼었다고 해서 구름 너머에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 않아요 그러나 구름의 세월이 오래 계속되다 보면 푸른 하늘 잊어버릴 수 있거든요
 
신동엽 같은 우리가 지고 있는 머리에 쇠 항아리 같은 것을 찢어버리라 그래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쇠 항아리 같은 것을 이고 있는데 이게 바로 이런 것들이단 말이어요 이것을 찢어 버려야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나가는 것이어요
6절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이 말에 대칭적인 말이 무엇일까요?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변하는 것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우리가 변하지요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는데 우리는 조변석개여요 하나님은 병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야곱의 자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효화하는 일은 없다 바로 이것이 희망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희망은 거기에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소명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3장 6절에서 그 백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게시지요 야곱의 자손아 그렇지 않아요
이게 1장 2절과 관련이 되어요
1장 2절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야곱을 그렇게 사랑했어 그런데 그 사랑의 응답을 하지 못했어 그 백성들이 사랑을 받지 못했어 그런데 다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야곱의 자손아 라고 부름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내어 놓은 명제는 너희가 말로 나를 괴롭게 했어 어떤 말이었어요 하나님은 악한자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히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를 기쁘게 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그러나 정의의 그 보여줌이 결국 비 본래9적인 삶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을 심판함을 통하여서 심판을 비를 제거하는 과정이고 이런 것들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살아겠시다는 사실 하나님이 야곱의 백성들을 소멸치 않고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네 번째 논쟁이었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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