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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시험입니다.”
2021년 01월 20일 (수) 13:52:46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태복음 4:1-4) 
 
1.
제 가정 이야기로 설교 시작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아들이 있죠, 양하힘 집사. 기도하는 중, ‘너는 평생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라’ 하는 소망에서 그리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한글 이름 때문에 성장기에 놀림 받으며 마음 부담이 컸을 텐데 그런대로 잘 성장해 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아드님이 대학원 시험을 치르게 되어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날 새벽, 기도가 절로 절실하게 나온다. ‘주님,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라고 한 아들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도와주세요, ...’ 그러자 잔잔한 감동이 찾아듭니다. ‘걔 이름을 아는 이가 도와 줄 거다.’
 
면접하고 온 날 저녁에 물었습니다. 어땠니? 그랬더니 그럽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많이 물어봤는데 자기에게는 별로 물어보지 않았답니다. 뭘 물어봤는데? ‘양하힘? 이름이 독특한 데, 뜻이 뭐예요?’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랬더니 면접 교수님이 그러더랍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신가 봐요?’ “네” ‘고생 많았겠네.’ 뭐 그게 다였습니다. 물론 소소한 몇 가지 더 있었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거였습니다. 그리곤? 합격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동시에 하나님을 기뻐하겠다고 결심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올해 분명히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시험들,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
 
2.
예수님도 시험 받으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 때에”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때를 말합니다. 세례 받으시고는 바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금식 기도에 들어가셨습니다.
 
40일 금식은 인간의 한계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경엔 40일 넘는 금식이 없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40일 금 식을 우리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주리셨답니다! 이쯤 되면 금식 해 본 사람들은 경험이 있습니다. 눈만 감으면 짜장면이 떠다니고, 초콜릿이 돌아다니고,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풍겨오고 ...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눈 앞에 보입니다.
 
이런 때,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이 교묘하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단은 모르습니까? 아빈다. 그럼에도 사단은 예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시험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만약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구약 성경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입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광야 시험과 같은 코로나의 고된 현실을 걷고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벅찬 삶 속에서 고생할 때, 꽉 막힌 것 같은 현실을 조심조심 걸어갈 때, 정말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생각하라! 누구를? 성령님을!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사단이 임의로, 제 멋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40일을 굶고, 성경 말씀처럼 “주리신지라”고 표현될 정도로 힘든 시험이었지만, 그러나 그 시험은 사단이 마음대로 한 시험은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시험받을 때에도 성령께서 주목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고난 받을 때, 성도가 힘이 벅찰 정도로 어려울 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도가 받는 시험은 반드시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사단이 제멋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 내가 이렇게 속앓이 하는 것, 내가 이렇게 눈물 흘리는 것, 하나님은 아시는가?” 회의(懷疑)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나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나의 모든 것, 모든 상황을 주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시험 받을 때, 위태위태할 때,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성령님은 어떠실까요?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시험받아 힘들고 괴로울 때 그래서 믿음과 생활이 휘청거릴 때, 이런 위태위태한 나를 보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는 이를 기억합니다. 침체되고 또 침체되고, deep pressed 되어 사명감마저 희미해 질 때 이런 나를 보고 너무 좋아 깔깔대고 웃는 이를 기억합니다. 누구일까요?
 
사단입니다. 성도가, 주의 종이 흔들리는 것보다 사단에게 더한 기쁨이 있겠습니까? 좌절하라고, 맨날 팔자타령이나 하라고 시험을 주었는데, 거기에 걸려서, 늘 침체되고, 불평이나 하고, ‘내 팔자는 왜 이래’하며 어두운 세월을 보내는 성도를 바라볼 때 사단은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반면에 이렇게 휘청대는 나를 보고 근심하고 마음 아파하는 이를 나는 또 생각합니다.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 내가 성도로써 흔들릴 때, 내가 연약해 질 때, 고난과 어려움 속에 믿음이 휘청거릴 때 성령님은 이런 나를 보고 근심하십니다.
 
벅찬 삶 속에서 힘들어하는 여러분, 사단의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들리진 않습니까? 성령이 근심하는 탄식 소리가 들리진 않습니까? 시험받을 때에,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나를 보고 기뻐하시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그런데 오늘 시험에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 40일 금식 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젠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 때 사단이 지혜를 줍니다.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 곳은 광야로, 발끝에 걸리는 것이 돌덩이들입니다. 그 돌에게 주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임자 없는 돌들입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배고파서야 되겠는가? 자,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이 굴러다니는 돌덩이들을 떡덩이가 되게 해라. 그래서 주린 배를 채워라”
 
얼마나 기발한 제의인가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사단은 정말 머리가 좋습니다.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안 하셨습니다. 왜 안 하셨을까요?
 
그게 순리(順理)가 아닙니다. 돌을 떡이 되게 할 수도 있으나, 그게 순리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은 순리를 따릅니다. 사단이 제시한 것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물질을 얻으려는,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으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지금 배고픈데, 앞 뒤 따질 것 뭐가 있느냐,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지 하는 논리입니다. 내가 지금 당장 아쉬운 데, 정의고 정직이고 무슨 배부른 소리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면 그만이지 하는 주장입니다. 깜짝 쇼를 하고, 은근한 뒷거래를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야 무슨 상관이냐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려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니 돌을 떡으로 먹으며 배가 부르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돌이든 철이든 먹을 수만 있으면 됐지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검은 돈인지, 흰 돈인지, 노란 돈인지 상관하지 않고 돈 돈 하여 부정이 생활화된 공직자들이 많습니다. 옳지 못한 돈에 기웃거리는 사업가들이 많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서는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그랬다고, 생계형 범죄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래 전에, 잘 알고 지내던 어느 집사님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금의 회전이 안 되어 큰 어려움을 겪는데, 어느 날 어떤 이가 찾아와서 어려운 형편을 들었다며 자금을 대 주겠다고 합니다. 무척 고마운 이라고, 기도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통일교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통일교가 이런 식으로 세를 넓히던 때였습니다.
 
이 집사님은 고민하였습니다. 당장에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는데, 이를 어쩔까요? 망하게 된 마당에 통일교면 어떻고, 백백교면 어떠랴 싶은 생각도 났지만, 집사 양심으로, 통일교가 어떤 데인지 모른다면 모르겠는데, 아는 이상 어떻게 통일교 돈을 받으랴 싶어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입니다. “나는 이제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망했을까요?
 
주린 예수님께 찾아와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을 사단은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도가 아니라면 모르겠거니와 하늘 백성으로, 하늘의 법도를 아는 성도로써, 부정한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시험에 실패하여, 결국 사단이 박장대소하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부정한 길을 걷지 마십시오! 돈 되는 일이라고 신앙과 양심을 팔지 마십시오!
 
먹어버리면 다 내 것이 된다고? 아닙니다, 제대로 된 것이 아니면, 나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면 결국 토해 낼 수밖에 없습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몸이 탈납니다. 몸이 받을 수 없는 상한 음식이 들어가면 토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내게 맞지 않는 부정한 것을 꿀꺽 삼키면, 먹는 게 남는 거라고 그리한다면 탈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곤 그 추함과 고통은 배고플 때보다 한결 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힘들어 죽겠는데 ...
 
4.
예수님의 대답에 유의합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다시 살펴보면 떡으로도 삽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지금과 같이 특별히 시험받을 때, 곤경에 처해 있을 때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입니다. 평상시에는 모르겠거니와 지금, 어렵고 벅찬 삶 속에서는 더욱 떡으로만 살 때가 아닙니다.
 
가장 떡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가요? 굶었을 때입니다. 그것도 40일을 굶었다면, ‘떡’ 소리만 나와도 침이 도는 그런 때입니다. 그런데 이 때 떡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요? 죽습니다. 가장 떡이 아쉬울 때 대책 없이 떡을 마구 먹어대면 그는 죽습니다. 그 어려운 40일 금식을 하고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어려울 때 사실은 떡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는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들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티게 하시고, 마침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이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이라면, 반드시 그 길도, 해결책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 말씀이 나를 살립니다. 그 말씀이 곤경에 처한 나를 붙들어 줍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성경을 읽다가 거기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고, 경험하고 용기를 내어 이겨낼 뿐만 아니라 한 차원 올라서는 성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예수님은 사단이 “떡”시험을 했을 때, 어떻게 바로 그에 상응된 신 8:3절의 말씀을 기억하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모르는 말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간적 생각으로는, 금식하시며 예수님은 사실 엄청 나게 많은 음식의 유혹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음식의 유혹을 강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아무도 안 보는데,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까, 고놈 꼭 떡덩이 같이 생겼네 ... 물은 괜찮으니까 미숫가루라도 타 먹을까... 많은 유혹을 스스로 가지셨을 것입니다.
 
전에 나는 겨우 5일 금식을 해보았는데, 배가 고프니 생각나는 것이, 어릴 때 읽은 동화 “헨델과 크레첼”에 나오는 빵과 초콜릿으로 만든 집이 다 생각나더라구요. 어른이 되어서 한 번도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책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배가 고프니 동화책 이름까지 다 생각이 나더라구요. 당장에 책상부터 뜯어먹고 싶고, 의자, 책, 방석, ...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성지 순례 갔을 때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는 유대광야의 돌들을 보니, 꼭 떡덩이, 빵덩이 같이 생겼더라구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걸 보실 땐 오죽 했겠습니까? 전에 잡수시던 음식들이 눈앞에 날아다녔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때마다 예수님은 그런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찾았을 것이고, 늘 그것을 입 속으로 중얼거리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어휴 배고프다...” 그리곤 한번 참고, 잠시 후 또 배가 고프기 시작하고, 음식 환영(幻影)이 떠오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렇지 참아야지, 그렇지만 참 배고프긴 고프다...”
 
뭐 이런 식으로 주님은 힘들면 힘들수록,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결국 최종적 사단의 시험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가까이 하십시오! 늘 양식으로 삼으십시오! 거기에 길이 있고, 위로가 있고, 치유가 있고, 힘이 있고, 권능이 있고, 돈이 있고, 기적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불행한 이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기억나는 아무런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입니다. 뭔가 하나님의 말씀이, 응답이 있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얀 사람, 불행한 사람입니다.
 
벅찬 삶이라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한계 상황에서 시험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5.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 예수님을 도와주시지 않고 방관만 하시는가요? 예수님이 흔들리는 것을, 아파하고 갈등하는 것을 어째서 즐기시는 듯 하시는 건가요? 왜 가만 계시는가요?
 
여러분, 이건 시험입니다. 무슨 시험? 자격시험! 이 사람이 그런 일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만방에 선포하는 자격시험입니다. 이 분이 세상을 구원할, 사단을 능히 물리칠 메시아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자격시험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에게, 광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감당하기 벅찬 힘든 시험들이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갈등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는 마치 혼자 광야에 내버려진 것 같습니다. 이럴 수 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기억합시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자격시험인 것을!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성도임을 증거하는 자격시험인 것을! 내가 땅의 백성이 아닌 하늘 백성인 것을 드러내는 자격시험인 것을!
 
하나님을 기뻐하는 가운데 올 해는 이 자격시험들을 통해 더욱 큰 믿음의 사람으로, 더욱 풍성한 축복의 사람들로 인정받고, 그 복을 누리는 성도들로 살아가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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