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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2021년 01월 14일 (목) 08:51:1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고전 10:23-33) 
 
1.
올해 우리 왕중가족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해결된다고 서로 축복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장로교회 신학의 뿌리인 소요리문답 제 1번이 뭔지 아십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은 이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즉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담스러워하거나 하나님을 슬슬 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합니다. 막연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즐거워해야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를 늘 맑고 밝게 바라보며 언제나 기대감과 신뢰감을 갖고 살듯이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뻐합시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아멘!
 
그런데 말이죠, 여기엔 선행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민, 나의 결심, 나의 선택, 나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런 기쁨과 축복이 임합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b) 나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은 그런 나를 기뻐하는 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네 삶,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기를 원하시는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무엇보다 모든 면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신다는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1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움 그 자체이신 것 같이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 그 자유를 잃어버려, 세상의 종, 죄의 종으로 전락하여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대해 자유롭습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뭔가에 눌려 살던 나,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살던 나, 세상 눈치 보며 살던 나, 이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구원 받았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주인집 아들, 딸로 산다는 것입니다. 종도 아니고 머슴도 아니고 손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집안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딸이 집에서 눈치를 슬슬 보는 모습, 그걸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거시기 한지 아십니까? 눈을 내리 깔고 기가 죽어서 부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 어떤 마음인지 아십니까?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는 하나님을 피하려고, 하나님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리고 어둠에 숨는 아담과 하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 얼마나 아프신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자녀가 세상의 종이 되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끌려가듯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자녀로 자유함을 얻으십시오. 이 자유함이 올해는 여러분에게 늘 우선시되기를 바랍니다.
 
3.
그러면 이제 나는 내 맘대로 살면 되는가요? 아닙니다.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시는 게 있습니다.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올 해 그 많은 할 일들 중에, 그 엄청나게 솟아나는 내 욕망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언제나 우선시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 달리 말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 그것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기꺼이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어느 선교지 빈민가에서 초라하고 더러운 아이들을 돌보는 한 젊은 자매가 인터뷰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일을 본래 좋아하십니까?” “아닙니다. 난 이런 일이 싫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아이들을 좋아하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기자는 당황합니다. “그러면 왜 이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 자매가 그러더라구요. “이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일 하기를 원하셔서 하는 겁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날 보고 하라 하시기에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에 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거라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면 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인데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하는 거라면 그건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아는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요?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애매한 것, 안개 속에 있는 상황이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지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인지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수요예배 때 전담 목사님들이 다 자기 격리하기에 얼떨결에 박 목사님이 설교 하게 되었는데,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박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선 감정적으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으라고, 기도하라고 설교하시더라구요. 맞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으며 삽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으며 삽시다. 주의 성령의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30:21)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감동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택합시다. 성령의 감동 속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신다 싶을 때 하나님의 기쁨, 그 영광을 위해 그것을 행합시다. 그렇게 삽시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 특별히 교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란 친구들에겐 공통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술 문제였습니다. 안마시면 그만 인데, 사회와 학교가 술 권하는 사회이기에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술을 마신다는 것은 교회에서 자란 젊은이들에겐 무척 어려운 결딴을 내려야 하는, 어쩌면 여태까지 신앙 교육받은 것을 모두 허사로 여겨야 할 정도의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젊은 목사님이 부임해 오셔서 우리들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격의 없이 젊은이들을 만나 주시고, 상담해 주시곤 하셨는데, 한 번은 그 목사님께 여쭈었습니다. “목사님, 술 마시는 게 죄라고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왜 우린 술 마시면 안 되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더니 그러십니다. “아직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런 고민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술 먹고 안 먹고 보다도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냐 아니냐에 더 비중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자유를 얻은 성도가 이 자유를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자기 하고픈 대로 행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하고, 결단을 합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욕망,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동과 늘 다퉈야 합니다. 그리곤 마침내 자기를 쳐서 성령의 감동에 복종케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시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24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에 하나 더 추가, 플러스(plus) 하십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십시오!
 
복음서에 보면 율법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많은 율법들, 그 두꺼운 구약 성경의 핵심은 뭡니까 라고.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한 마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이웃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성경의 가르침, 핵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그 못지않게 뒤따라야 하는 게 이웃 사랑, 이웃 배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게 나옵니다. 27절,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어라.”
 
불신 친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식사를 청할 땐, 주는 대로 다 먹으랍니다. 나는 신자니까 이건 먹고 안 먹고 하지 말랍니다. 물론 건강상, 자기 신념상 그러는 것을 모르겠는데, 적어도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하지 말랍니다.
 
당대에 육류(肉類), 고기들은 대개 우상 신전에서 나온 것이기에 어떤 성도는 부정 탄 음식이라고 안 먹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이미 자유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 이 세상의 주인이니 그런 사소한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디모데전서4장은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3b-5)
 
이렇게까지 말한 성경이 오늘 말씀 28절에선 이렇게 가르칩니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여기서 ‘누가’는 아마도 믿는 사람인 듯 보입니다. 그 식사 자리에서 어떤 성도가 ‘이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이라고 귀띔한다면 먹지 말랍니다. 왜? 그 개름 찍해 하는 성도를 위해 먹지 말랍니다.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지만 그 이를 위해 억제하랍니다.
 
그러면 대뜸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습니다. 29절,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남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고 자제해라 했더니 반발합니다. ‘왜 내 자유가 남의 양심 때문에 판단 받아야 합니까?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했는데 어째서 내가 감사한 것에 대해 비방을 받아야 합니까?’
 
맞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으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 자유는 완벽한 자유함입니다. 그리고 음식물의 문제 역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내신 것으로 믿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못 먹는 경우는 딱 2가지 경우입니다.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습니다. 그 외에는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그걸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성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자기를 후퇴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나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시는가요? 내 권리를 포기하라는 이유가 뭔가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33절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십시오! 내가 마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나 깨나 타인의 구원을 위해 신경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십니다. 나의 생활로, 말로 어떡해서라도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전도하다 보면 끈질기게 거부하는 이를 가끔 보게 됩니다. 나중에 가서야 이유를 알아보면 그 사람 주위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서 실망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가 싫은 게 아니라 예수 믿는 이가 싫은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가 되겠습니까? 예수 믿는 이나 안 믿는 이나 차이가 없는데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말하고, 행하는 것은 성도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내 권리, 내 유익만 고집부리고 주장하는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게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말하고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를 볼 때 기뻐하십니다.
 
5.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일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들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이런 복이 임할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히6:1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이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엔 늘 이 축복이,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이,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은총의 손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고 마음에 결단하는 성도들에게 민수기의 축복을 전하여 드립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꼭 그리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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