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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2021년 01월 06일 (수) 15:04:44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느헤미야 8:8-12) 
 
1.
새해, 202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어떤 해가 될까요? 모두들 작년 같지는 않기를 바랄 겁니다. 작년 2020년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작년 이맘 때, 2020년 새해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큰 기대감을 가졌었습니다. 세상에서는 2020년이 동양의 세법으로 경자년(庚子年), 하얀 쥐의 해라고 해서 매우 좋아했습니다. 흰 쥐는 지혜롭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뿐만 아니라 생존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해서 2020년은 풍요와 희망, 기회가 가득한 해라고 기대감이 충만해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해였습니다. 중세 때 쥐로 인해 퍼진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 2억 명이 죽어나간, 그런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모든 것이 단절되고 후퇴한 정말이지 쥐 죽은 듯이 산 그런 해였습니다.
 
올해는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라죠? 신축년은 근면성실하고 정직한 소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해랍니다. 나는 그런 것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이인데 그러나 소의 특성이 드러나는 해라면, 단 하나의 이미지, 우직함만이 드러났으면 합니다.
 
우직하게 삽시다. 세상은 쥐같이 잔머리 굴리며 사는 이들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지도 모릅니다. 올 해는 우직하게 사는 이들이 주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더욱이 신앙의 세계에선 머리 굴리는 이보다는 우직하게 주님 바라보고 사는 이가 으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우직하게 삽시다. 그러면 어떤 눈으로 하나님을 우직하게 바라볼까요?
 
2.
오늘 본문은 이른바 수문 앞 영성 대회의 현장입니다. 이 수문 앞 영성대회를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선 강한 민족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구약 경전 율법과 예언서가 이때에 거의 다 완성됩니다. 실로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금 백성들을 단합시키고 일어서게 한 것은 바로 이 수문 앞 영성대회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수문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왜? 목적은 오직 하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말씀을 참 귀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읽기,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들이 어느 정도로 말씀 듣기를 좋아했는지 아십니까?
 
3절,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즉 6시간 동안 모여서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서 무려 6시간 동안 낭독되고 해석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우린 예배 1시간만 지나도 시계를 보고, 몸을 꼬고, 오늘 목사님이 왜 저러시나 하는데, 이들은 6시간 동안이나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4절,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라고 증언합니다. 강단이 있었겠지만 특별히 나무 강단을 높은 곳에 세워 모든 백성이 다 우러러 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오래된 교회들을 가보면, 회중석으로 돌출되어 나온 높은 강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하는 것에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강단을 높이 만들었습니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인데, ‘읽는 말씀인 성경’과 ‘먹는 말씀인 성찬’과 ‘듣는 말씀인 강단의 설교’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연설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성도가 그런다면 그건 잘못된 자세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5절,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보통 유대인들은 앉아서 듣고, 기도할 때 일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에스라가 책을 펼 때에 백성들이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리곤 책을 편 상태에서 낭독할 때, 계속 그들은 서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말씀의 사자 에스라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배 중,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 표현을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요? 예배드릴 때에는 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태도로 하나님께 예배하십시오. 지금 각 가정에서 예배하는 여러분, 그 태도가 어떠십니까?
 
6절,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일테면 에스라가 “할렐루야!”하고 소리치자, 모든 백성이 그에 응답하여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였습니다. 그리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우린 가급적 예배를 점잖게 드리는 풍토이기에 손을 들거나 은혜 받음을 표현하면 이상한 눈총을 줍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예배 중에 소리 내면 안 되고, 감격의 손을 들면 절대 안 된다는 풍토가 있습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조용히만 있으면 다 됩니다. 그러니 때론 졸 수 밖에!
 
어느 아버지가 장년 예배에 처음으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왜 떠들지 말고 조용히 예배드려야 하지?” 그러자 애가 그러더랍니다. “모두 자니까요.”
 
예배 중에는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합니다! 그 강한 성령의 역사, 성도들에게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이는 마음 깊이 그러나 조용하게! 어떤 이는 뜨거운 눈물 속에! 또 다른 이는 가슴이 터질 듯 한 벅찬 감동 속에, 어떤 이는 견디다 견디다 못해 손을 들고 ...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동의 역사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배드리는 우리 위에 운행하십니다. 그러다가 간절히 사모하는 자,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그 애타는 심령에 찾아와 역사하십니다. 마음이 닫혀있고,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그저 기계적으로 앉아 순서를 따라 흘러가는 신자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습니다. 수십 년을 다녔을지라도 없습니다!
 
3.
그러나 사모하는 자에겐 분명 역사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66:2) 예배 중에 심령 깊숙이 통회하며 주의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돌아보십니다! 올해는 말씀을 듣다가 떠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예배 중에 상한 심령으로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용서하시고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의 마음과 심령을 주님께서 결코 멸시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a)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예배 중에 누가 자기에게 전심으로 마음을 쏟고 향하는 지. 그리하여 그런 이들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그에게 부어주십니다. 감동을 주시고 감격을 주시고, 눈물을 주시고, 몸서리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사모하는 심령으로 온 백성들이 모여 주의 말씀을 경청하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임하는 데, 거기에 모인 모든 백성들이 다 울었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8:9a)
 
여러분, 여러분도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정통으로 맞으십시오! 바쁘다고 핑계 대며 주어지는 기회를 피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데에 참여하여 그 살아계신 말씀으로 정통 맞으십시오! 특별히 제직 여러분, 올해는 제직 세미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홈피에 동영상 몇 개를 올렸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접하기 바랍니다.
 
늘 바쁜 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해결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수문 앞에 모여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의 말씀을 듣는다면 이런 놀라운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은혜 받는 자에겐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는 자에겐 눈물, 콧물이 다 있습니다. 그 눈물이 여러분의 영혼을 정화시킬 것입니다. 그 눈물이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보십시오, 백성들이 모두 주의 말씀에 통곡을 하자, 지도자들이 권면합니다. “울지 말라. 오늘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 준비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에게는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주어 함께 기뻐하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주의 말씀으로 인한 눈물은 기쁨으로, 미소와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으로 우는 이가 평생을 울며 산다면 복이 아닙니다. 그 눈물과 아픔은 곧 기쁨과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더군다나 이 축복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가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전에 쓰던 개역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의 힘이 뭐다구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돈이 아닙니다. 건강이 아닙니다. 권세가 아닙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힘입니다. 얼마나 좋은가요! 따라해 봅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할렐루야!
 
4.
우리 집 아이들이 어릴 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생이 뭔가를 놓고 그럽니다. ‘아버지가 이거 사 주실까? 비싼 건데 ...’ 그러자 그 애 누나가 큰 소리로 그러더라구요. ‘야, 우리 아버지 부자야. 1000원도 더 있어.’
 
그래서 그런지 이 딸이 이번 성탄절에 자기 어린 아들에게 그러더라구요. ‘할아버지에게 사 달라고 그래. 할아버지 부자야.’ 그래서 성탄절에 비싼 장난감으로 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자기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 그러면서 어렵고 힘든 자신들의 삶에 힘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 참 즐겁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딸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 딸이 조금 더 컸을 때, 철이 들었을 때, 침울한 표정으로 지냅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말을 안 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말해 봐야 아버지가 안 들어줄 것 같아서 그런답니다. 이 정도 되니까 기분이 조금 나빠지더라구요. 그래서 대체 뭐냐고 다소 강압적으로 물었더니 그럽니다.
 
자기는 당시 아이들의 세계에서 유행하던 청치마, 청조끼를 입고 싶은 데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안 사줄 것 같아서 말 하고 싶지도 않답니다. 내 그 말 듣고 자존심이 상해서 빚을 내서 머리부터 신발까지 청 세트로 사다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열 받아서 다 사 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하시시오! 빚을 내서라도 사다 줍니다.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하나님은 이걸 해결해 주신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기뻐하면 해결됩니다! 내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5.
올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는 정말 잡힐까요? 어제까지 전 세계 코로나 현황을 봤더니 확진자가 총 84,365,200명, 1억 명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고, 사망자는 1,835,478명이더라구요.
 
게다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세계가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극도의 긴장을 다시 하고 있는데 세상은 과연 쉽사리 코로나로부터 안정되어 갈까요? 우리가 잃어버린 노멀(normal)의 세상, 그 자유스러움과 만남과 여행과 예배와 교제와 소통의 세상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경제가 너무 어려워 수많은 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이 무너질 것 같은 이 현실, 아울러 장기화 되는 이 현실로 인해 이제는 작은 상가교회들도 이 어려움의 파고를 넘기 어려울 텐데... 과연 우리의 불안한 경제 상황은 개선될까요?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념과 가치에만 몰두하여 나라가 두 쪽이 나든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투의 이 나라 지도자들, 그들의 고집스러운 통치로 인한 혼란함은 과연 개선이 될까요? ...
 
그런데 말이죠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코로나 아니라 그 이상이 유행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나라가 두 쪽이 나든 세 쪽이 나든 설령 육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살까요? 걱정과 두려움과 분노와 절망 속에 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설령 피눈물 나는 일이 있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눈물을 뚝뚝 흘릴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곤 마침내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시편에 보면 믿음의 선배들도 다 그리했더라구요. 고통과 고난, 아픔과 두려움, 억울함과 분함 속에 기도를 시작한 이들이 결국은 모두 찬송으로 끝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개역)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끝납니다.
 
6.
올해 우리는 이렇게 삽시다. 현실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것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과 시선으로! 그리하면 결국 우리도 찬송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시37:4) 이렇게 여호와를, 하나님을 기뻐하는 가운데 소원 성취하는 복된 해가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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