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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서 나시매”
2020년 12월 22일 (화) 10:54:48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태복음 2:1-12) 
 
1.
예배가 자유롭게 드려지지 못하기에 예년과 달리 성탄 설교를 자주 듣기 어려울 것 같아, 대림절부터 성탄 본문으로 쭈욱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누가복음 2장의 설교를 했고, 오늘 다시 마태복음 2장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그 이전의 역사, 베들레헴에서 실제로 태어나시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이미 다 아실 줄 믿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창세전에 작정하신 ‘예수 구세주 탄생 프로젝트’, 그리하여 때가 이르매 동정녀 탄생의 방식을 통해 그것이 철저히 하나님의 역사임을 드러내시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임마누엘의 축복’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중, 하나님의 마음이 누구에게 가장 많이 가 있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난한 부부의 가정에 구세주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셨고, 만인이 기뻐할 그 축복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준 대상도 서민 중에 서민이라고 하는 들판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마음에 담아두고 계신지, 누구를 마음에서 늘 기뻐하시는 지를 알려주신 축복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는 이 평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이 때 등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언제 왔을까요? 몇 명이 왔을까요?
 
박사라는 말로 봐서 이들은 유명한 점성술사, 별을 연구하는 이들로 보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들은 유명했고, 그들이 갖고 있는 권세 역시 대단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동방에서 왔나는 것으로 짐작건데 아마도 페르시아의 유명한 점성술사들로 여겨집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헤롯조차 무시하지 못하고 정중하게 대할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언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까요? 우리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왔다고 여기지만, 말씀을 가만 보면 그 날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한 거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 날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출발한 동기를 증언하는 데 이럽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의 별, 즉 성탄의 날 새벽에 떴던 그 메시아 탄생의 별을 보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출발했으니 실제로 도착한 것은 적어도 몇 개월 뒤일 것입니다.
 
몇 명이 왔을까요? 어릴 때부터 동방박사 3사람이라고 했는데, 성경을 살펴보니 3명이란 말이 없습니다. 그럼 왜 3사람이라고 했을까요? 그들이 예물로 드렸다는데,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다고 해서 아마도 3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쨌거나 그토록 유명한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등장하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요?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헤롯 왕은 왜 흥분했을까요? 한 아기가 태어나든 말든 그게 통치자인 헤롯에게 무슨 상관인가요?
 
헤롯 왕이 관심을 보인 것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헤롯이 관심을 보인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란 사실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것엔 관심도 없습니다. 아기의 인권, 생명이란 헤롯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일입니다.
 
나중에 자신이 속은 줄 알고 화가 나서 2살 아래 아기들을 냉혹하게 모조리 죽일 정도로 그는 아기의 생명과 인권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아기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온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헤롯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세속적 권세와 그 유지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이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뭔지, 하나님의 인류 구원, 십자가, 부활, 거룩함, 영광, 영생, 아기, ... 이런 것엔 관심도 없습니다. 성탄의 의미가 뭔지 알고프지도 않습니다. 관심이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것을 지키고 누림에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요?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도 오로지 자신의 현실,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 오로지 거기에만 온 관심이 쏠려있기에 그런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들로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예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신앙의 세계 안에 들어섰다면, 이젠 좀 더 깊이 있는 것, 좀 더 심오한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 그 뜻에 관심을 갖고 뭔가 좀 세속인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가 갖고 있는 관심은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처럼, 세속적인 권세와 자신의 기득권, 그리곤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이런 것들로 인해 성탄이 괴롭습니다. 어떨 때는 성탄이 귀찮습니다. 성경은 성탄이 기쁘고 즐거운 축복의 절기라고 하는데, 자기는 그게 귀찮을 뿐입니다. 헤롯 계열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
그러면 예루살렘 시민들은 왜 소동하였는가요? 이 소동은 무슨 의미의 소동일까요?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면서도 이상한 것은 그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선 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이는 그저 스캔들(scandal)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정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확신한다면 어찌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현실에서 메시아를 대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뒤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를 찾아 나선 이가 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장소까지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하게 맞춘 서기관과 대제사장들도 가만있었습니다.
 
뭘 뜻하는 걸까요?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어진 예루살렘, 소동에 휩싸인 예루살렘, 그러나 그들은 실상 그 뉴스를 스캔들 정도로 받았지, 확인해볼만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흥미로운 스캔들 정도로 받았습니다.
 
요즘에도 누가 믿음으로 치료를 받고 완쾌되었다고 하면, 그래? 하면서 그저 흥미롭게 바라볼 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경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들의 입에선, 그들의 주위에선 누가 어떻게 했대, 누가 저떻게 했데, ... 그저 소문 정도, 스캔들 정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그걸 스캔들 정도로만 받아들인다면 평생 놀라운 소식, 놀라운 역사를 듣기는 무지 무지 많이 들어도 하나도 그것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어떻게 해서 어떤 축복을 받았데, 누가 어떻게 해서 어떤 은혜를 받았네 하는 이야기들이 평생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결코 자신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은 무지 많은데, 그 성경의 역사가 단 하나도 자신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자라고 배워서, 성경 무슨 구절! 하면 그 배경까지 줄줄 설명할 정도인데, 그런 성경의 역사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성경 어디 몇 장 몇 절 하면 암송을 술술 하는데도 결코 그 말씀대로 변화되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이들이 많습니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 권사 아들, 집사 아들, 목사 딸, 장로 딸, 권사 딸, 집사 딸, ... 어릴 적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것은 많은데 그 놀라운 역사들이 아무런 영향을 그에게 갖지 못합니다. 왜? 그저 스캔들 정도로, 남의 이야기, 그저 흥밋거리 정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4.
성탄의 스토리(story)는 스캔들이 아닙니다. 그건 동화가 아닙니다. 성탄의 스토리는 실제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고 원하셨던 역사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사9:7) 성탄의 역사는 하나님의 열심이 이룬 대서사시입니다!
 
그러기에 벧전1:10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많은 선지자들이 그 때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답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까 늘 연구했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합니다. 살펴본다는 단어는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도리, 메시아 강림에 대하여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지 허리를 굽혀 자세히 살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은 우주적인 빅 이벤트(Universal Big Event)였습니다.
 
그러기에 헤롯이나 예루살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 땅도 아닌 먼 나라에서 사는 동방의 박사들, 평상시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이방인들, 그들이 이 하나님의 역사를 감지하였습니다. 뭔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만약에 그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경배해야 한다고 매우 귀한 예물까지 챙겨들고 그 먼 길을 나섰습니다.
 
그것도 밤하늘의 별을 의지하고 말입니다. 낮에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낮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도 못합니다. 방향을 갸름할 수도 없습니다. 50일 걸리는 길이라면, 정작 걸을 수 있는 날은 낮뿐이기에 100일이 걸리는 여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석 달 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여정일 것입니다. 매우 답답한 행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길을 나섰습니다. 왜? 확실한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뭔가 있다고 확신했기에!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발길을 성탄의 별에다 두고, 그 안내를 따라 다소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그 먼 길을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자처하던 유대인들은 단 한 명도 알지 못하고, 경배하지 않는 그 현장에서 아기 예수께 무릎을 꿇고 경배와 찬양을 돌리고 돌아갑니다. 그 썰렁하고 무정한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정중하고도 신중하게 자신의 예를 다하여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돌아갑니다!
 
이들이 메시아가 태어났다고 이스라엘로 향할 때, 그들의 기대는 왕궁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궁전으로 직행했습니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장소, 화려한 분위기의 성탄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보니 그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더니 베들레헴, 그 마구간! 초라하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곳입니다. 실망스러운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정중히 경배하고 말없이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몇 해 전부터도 그랬지만 올해는 코로나 격리 때문에 더욱 더 성탄절 분위기가 안 난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충 성탄절을 보내려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 분위기는 첫 번 성탄절 때도 그러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유일하게 알고, 마땅히 찾아뵙고 경배해야할 택함 받은 백성 유대인들은 아무 관심도 없던 그 때, 정말이지 성탄절 분위기가 도무지 나지 않던 그 때에,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 그 박사 3 사람은 오로지 예배하기 위해 그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진실을 찾아 길을 나서는, 그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신앙의 열정,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경배! 이 동방박사들이 그 힘든 길을 와서, 그 귀한 예물을 드리고, 그리곤 요구한 게 있었던가요?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 그 수고도 마다않고, 그 귀한 것도 아깝다 하지 않고 들고 왔던 것이요, 그 분, 그 아기 예수께 모든 것을 드리고 말없이 돌아갑니다.
 
5.
이걸 우리는 예배, worship,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에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합시다. 돈 버는 일만 하려 하지 말고, 권력 얻는 일만, 인기와 명예 얻는 일만 하려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일을 합시다. 쓸모없는 세상 낙에 빠지지 말고, 가치 있는 일을 합시다.
 
남들이 다 이해 못해도, 이상하게 쳐다보아도 스스로 흐뭇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합시다. 성탄절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가치한 일로 보내지 말고, 정말 가치 있는 일들을 찾고, 성도로 흐뭇한 가치 있는 삶을 삽시다.
 
그 가치 있는 일 중에 으뜸이 성도에겐 예배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성탄절은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입니다. 교회 가지 말랍니다.
 
정말이지 유감스럽게도 이 문재인 정부는 지난 부활절에도 비대면을 강요하더니 성탄절까지 비대면을 요구합니다. 방역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사회에선 50인 모임 금지임에도, 유독 교회에만 비대면이면서 20인까지만 모이랍니다. 교회가 가장 중요시 하는 절기, 부활절, 성탄절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무작정 교회는 모이지 못하게 합니다. 참 못 됐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 성도들, 왕중 가족은 온 가족이 영상 예배로라도 아기 예수님께 예배합시다.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나에게 예수님께 예배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드러냅시다. 아니 어쩌면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여 할 일이 없지만 그럼에도 성탄의 아기 예수님께 예배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드러냅시다.

6.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요?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 이들은 이런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누군지 압니다. 예수가 드디어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것이 어떤 하늘의 사인(sign)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내 삶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 복잡한 의식 속에, 내 추한 생활 속에, 불안함에 흔들리는 나의 생활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곤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구원하십니다. 이 복잡하고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빠져버린, 자신이 판 웅덩이에 빠져버린 나를 구하여 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그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갑시다. 그 아기 예수님께 예배하러 갑시다. 성탄절입니다. 가난한 이도 찾아보고, 외로운 이도 찾아보고, 생이 힘든 이도 찾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이도 찾아보고, ....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꼭 찾아뵈어야 할 이, 아기 예수!
 
오늘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라고 성경은 말하는데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그 아기 예수께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썰렁하지만 그래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내 삶의 구원자이시 때문입니다!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세주 났네.”
 
내가 엎드려 경배할 때 그 분은 나의 구원자로, 날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이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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