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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강 합3:8-19 하나님의 철저하신 보호
2020년 11월 26일 (목) 10:22:08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재능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게 재능이지요? 재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르지만 지속에의 열정 어떤 일을 지속하는 것 이것이 진자 재능이다
 
살면서 보니까는 아름다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기 보다는 꾸준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재능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의 열정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성경 공부도 그래요
 
성경 공부도 다 아는 것 같고 이 정도면 이만 하면 되었지 중단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알듯한 이야기이지만 반복해서 듣고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 세기어 지고 이것이 연륜이 쌓여지다 보면 성품이 되고 성품이 우리 인생을 만들기도 하고 꾸준함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가 하박국 공부하고 있는데 하박국의 뜻을 알고 있었지요 어떤 뜻이었지요? 안아주다 포옹하다 그런 뜻이다고 굉장히 따뜻한 의미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 뜻이 있어요 보니까 안아주다 포옹하다 그런 의미도 있지만 씨름하다 붙잡으니까 가만히 보니까 하박국은 자기 시대와 문제하고 치열하게 씨름을 했어요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다고 이야기 할 때 그 교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다른 게 없습니다 타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사람은 자기의 아픔은 작은 아픔에도 절박하게 반응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 안해 이것이 인간이지요 우리자 정말 사랑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때 그게 깊어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나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야 하지만 자기 시대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지요
 
하박국은 그랬어요 강포와 패역에 가득차 있는 세상 괴로워하고 이러면서 씨름해 왔지 않아요 오늘 하박국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탄식이 있었고 하나님 세상이 왜 이 모양이어요 탄식이 있었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나의 심판은 늦추지 않는다 그 다음에 하박국의 기도 하나님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기도가 있었지요
 
8절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말타는 분이시네요 주께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전사로서의 이미지로 전사 하나님 악과 싸우는 하나님의 이미지인데 어떤 특정과 대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더불어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니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님이 말을 타고 병거를 몰고 있는데 묻는 것이어요 바다 때문에 화를 내십니까? 강들 때문에 화를 내십니까? 바다와 강하고 싸워 봐야 여기 강들과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강이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격이어요 그 신격이라고 하는 것을 특별히 믿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강과 바다와 싸운다고 그런 신격들을 하나님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강이나 바다 같은 것들을 신격으로 할 수 없는 까닭은 사실 문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것 아니어요 물이 있어야 바다나 강을 통해서 운송할 수 있고 모든 것들이 경제 문제가 강과 바다를 통해 이루어 졌단 말이어요
 
밤은 무섭기도 합니다 범람하면 홍수로 범람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을 돌아가게 하고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일은 강을 다스리는 일이 매우 중요했어요 중국에서도 홍수 피해나고 하면 황하를 다스리는 일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왕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치산치수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우임금을 물을 잘 다스리는 임금으로 여져져 있습니다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삶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때로는 복된 삶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몰아가기도 하기 때문에 그 신격들을 달레는게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였겠지요
 
그래서 그 신들을 강이나 바다를 신격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이방인들이지요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 어떤 바다이지요 홍해 갈대 바라들 또 요단강을 가르셨지요 명령하자 요단강의 물이 흐름을 중단하고 이런 것들이 물과의 싸움이다기 보다는 물을 신격으로 숭배하고 있는 자들의 그릇된 생각과의 싸움을 드러내 보인 것이지요
 
그런 사건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말을 타고 전차를 모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트렸다 강과 바다와 더불어 싸우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9절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그 하나님은 말을 타시는 뿐 아니라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꺼내시고 당시시고 하나님이 여기서 궁수로 되고 있습니다 궁수로 표현된 하나님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내게 떠오른 사람은 그리스의 문학가인 니코스 카잔자키스입니다
 
니코스 카잔 자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라는 책을 통해서 많이 알고 분입니다 젊은 날부터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든 사람이 니코스 카잔자키스인데 오래 전에 그리스에 갔을 때 아테네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이 땅은 니코스 카잔스키의 땅이야 그래서 숙소에서 나와 가지고 뒤졌어요 굴목을 서점을
 
저는 성서 그리스어는 하지만 현대 그리스어는 못 합니다 현대 그리스어는 할 수 없는 데 스리스말로 쓰여진 니코스 카잔 자키스의 책을 샀어요 읽지 못하는 책을 사 가지고 와서 호텔에서 만나는 그리스 사람에게 부탁을 했어요
 
내가 영어로 이야기 해 줄테니까 그리스어로 기록해 주어 자유를 새의 목적으로 상을 사람을 기억하며 그리스 말로 책에 쓴 적이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 자서전을 보면 하나님을 궁수로 표현한 대목디 등장합니다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하나님께 그렇게 인생이란 게 전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팔이야 나를 당겨지지 않으면 썩가든요 나를 당기소서
 
두 번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요 운명의 타격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게 당겨지면 내가 부러질 수 있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있어요
 
세 번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자기를 맡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다 보면 상처 많이 받지 않아요 상처를 상처로만 간직하고 살면 인생이 우울해 집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생은 부러진 갈대 하나님이 그 속에 술겸을 불어 넣으시면 피리가 되어 가지고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 합니다 상처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 상처 속에 하나님이 그 속에 아름다운 선율을 상처가 없기를 바라기보다 그 상처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나를 당겨 주소서 만약에 그런 당겨진 것이 없다면 내가 썩어 버릴지 몰라 그러나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내가 부라질 지 모릅니다 인간적 생각
 
세 번째는 그 기도 내용이 바뀌지요 내가 부러진들 어떻습니까? 내가 당신 안에 있는한 이것이 니코스 카잔 스키의 생각입니다 운명을 대하는 자세가 이러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도 화살을 메겨 쏘시는 분 전투하시는 분으로 나오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9절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시적 표현이지요 물이 땅위를 흘러가지요 보통 땅에 고랑을 만들면서 흘러가지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을 했어요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이것 어마 어마한 표현이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가끔 자연 하천들을 보면 일직선일 때가 없지요 구비 구비 이렇게 가지 않아요 특별히 몽골의 초원 같은데 물이 흐르는 곳을 가보면 초원이니까 나무들이 별로 없어요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보면 물이 흘러가고 있는데 거기만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어요
 
무엇처럼 보이느냐 하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 천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사행천이라고 해요 뱀 사자 해 가지고 뱀이 지나가는 처럼 보여요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 상공을 날아가다 보면 밑을 내다보면 모래사막으로 된 그 곳에 초록색 뱀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여요
 
나일강이어요 그 나일강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이 산림을 일구어 가지요 그런데 강이 흘러간다 표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강으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역동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어떤 자들이냐 하면 우리가 바라보고 편견적 시선 상투적인 시선을 뒤집어 냄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존재들입니다
 
정현정 선생님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다 그래요 무엇인가 기대지 않고 사는 것이 있네요 하면서 저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를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한단 말이어요 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그 나무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야 공기를 기대고 서 있는 것이야
 
공기가 무슨 힘이 있어 그럴런지 모르지만 공기가 없으면 나무도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시적 표현이지요 무엇인가 뒤집어서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예언자가 그렇게 보고 있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베어 있음을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이 하박국의 이야기가 점점 커집니다
10절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이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우리는 산이나 이런 것들이 무정물이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데 하박국이 하는 이야기는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립니다 또 창수 창이라고 하는 것은 점점 넓어져 가는 것을 이야기 하니까 큰 물이야 큰 물이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고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이것 굉장한 표현들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시인입니다 월터 블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는데 최근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있어요 그 분의 책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Finaly Comes The Poet 그래서 번역을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마침내 시인이 온다
 
그 이야기는 성서의 언어는 시적인 언어라는 것이어요 산문적인 언어가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기 때문에 이것을 성서적 표현으로 이야기 하면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하나님의 구원이 십자가라는 어리석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거든요
 
고린도 전서 1장 18절 이 세상에 멸망 받는 자에게 십자가는 어르석은 것이어요 그러나 구원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시인 어느 잡지에서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들 새롭게 상투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인이어요 그래서 정오승 선생님은 시에도 나오고 카리지브라의 시에도 나오는 데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 분은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접촉하고 살면 세상을 이전처럼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어요 이것이 시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면 굉장히 역동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0절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를 높이 듭니다 소리를 높이 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인들은 예언자들은 자연 현상이야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이는 것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107편 25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
 
26절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 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절 그들이 이리 저리 구르며 피한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속에 빠지는 도다
 
28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뱃사람들의 지각을 혼돈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들을 바다를 고요하게 하시고 항구로 인도하게 하시도 합니다
29절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절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
 
바닷물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 처럼 어려운 일들이 벌어져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겪어낼 때 하나님은 바닷물을 잔잔하게 하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준다고 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사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든든함을 그렇게 노래하고 있거든요
 
하나님은 그렇게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게 만드신 분입니다
이 시인들의 역동적 표현은 대단합니다
시편 77편 16절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절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이게 표현이 너무 아름답니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 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아름다운 표현이지요 이것을 읽을 때 떠 오르는 옥스퍼드 대학생이었던 17세기 18세기 시인입니다 이 바이런이 시험을 보는 데 수험관이 보니까 답을 안 쓰고 창 밖을 내다 보고 있어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행된 종교학 수업이었는데 그 시험 문제가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된 영적의미가 무엇인지 논하세요 이런 문제였단 말이어요 바이런이 두 시간 동안이나 창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남들이 적고 있는데 수험관이 한 글자라도 적으라고 바이런이 썼던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물이 그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게 하나면 다 된 것 아니어요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이야
 
그러나 짧막한 한 문장이지만 무엇인가 설명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공감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시적 세계인데 성경에도 보면 물들이 주를 바라 보았나이다 대단히 역동적인 장면입니다
 
말 타시는 하나님 활 쏘시는 하나님 그분의 현존 그 자체가 바다가 손을 들게 만드는 하나님의 위엄을 말한 다음에 11절 날아가는 주의 화살이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전사 하나님이어요 이제 화살을 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고 주님의 창을 휘두르는 전사로서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광채가 얼마나 놀라운지 해와 달도 무색해 졌다 이렇게 이야기 할까요 해와 달도 낯 빛이 창백해 졌다 그런데 화살이 막 날아가는 그 모습들을 우리가 영화를 통해 종종 보기도 합니다마는
 
이 화살 날아가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대가 있습니다 그게 어디이냐 하면 헤로토스가 쓴 역사라는 책인데 주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크세르크스라는 왕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그리스는 인구도 많지 않고 속절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데 병사들이 서로를 얼마나 많이 오는지 정말 그들이 쏘는 화살이 해를 가릴 정도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페르시아의 병사들이 쏘는 화살이 해를 가릴 것이라고 하니 정말로 반가운 소식 우리는 그늘 속에서 싸울수 있지 않겠소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페르시아는 그들이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이 만났던 최초의 압도적인 타자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군인은 무엇이냐 하면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전제 군주에 의해서 강요되어서 온 사람들이어요
 
그런데 아테네 사람들은 노예들은 전투에 안 나갑니다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가지요 압도적 타자를 경험하고 있지만 강요된 사람들이 아니기에 자유스러운 주체야 저들이 쏜 화살이 태양을 가린다고 한다면 그들 속에 싸울수 이게 무엇이냐 굉장한 자부심입니다
 
아테네에 민주정에 대한 자부심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어요 아시아적 존재인 페르시아를 폄하나는 듯 보여도 기분이 나쁘기는 하나 헤로도토스는 아테네의 자유 여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장을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지를 보여 주는 데
12절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주님의 노로 땅을 두르시고 여러 나라를 밟으십니다
 
13절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 그 기름부은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직접 개입하시고 그들이 무너질 수 이것이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악인의 집과 싸움으로 점점 하나님의 싸움이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는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14절 그들이 회오리 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를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가만히 가난한 자를 삼키기를 즐거워 하나 하나가 중요합니다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결국 폭력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타자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그들은 자기들의 무기에 의해서 스스로 해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십니다
 
15절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말을 타시고 하나님의 모습이 여기에 아름답게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장면이 있지요
 
옛날에 영화가운데 몬트리올 예수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공연을 하는 사람이어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것을 시연하기 위해서 문 밑에 받힘을 쭉 만들어 놓고 그 위는 걷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사실은 많은 성도들의 관심은 무엇이냐하면 예수님이 정말로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을까 그 고민들을 하지요 이것이 사실이야 꾸민 이야기야 그런 관심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상훈씨는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인지 모르나 동일한 이야기를 했을 때 상훈씨가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한쪽 발이 빠질 것 같으면 다른 발음 옳기고 발을 빨리 움직이면 된다고 했어요
 
어떤 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26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면 무서워하며 소리 지르거늘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고 두려워하는 데
27절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29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서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시면 나도 걷게 해 달라고 오라 그러자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걸었어요 몇 걸음 걸었어요 몇 걸음 걸었는지 알 수 없지요 그런데 결국 베드로는 빠졌지요 왜 빠졌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어요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 그의 마음을 예수님에게 맡겼을 때 그는 걸었는데 그 마음을 되 찾아 왔어 네가 걷는 것이야 천사가 가볍기 때문이거든요 무게가 안 나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늘 하늘을 향해 바라보지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이 바다를 걸으신 그 사건이 신약 성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형상되고 있는가 하면
하박국 3장 15절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흉흉한 물결위를 밟고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욥기 9장 8절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바다 물결을 밟는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누구임을 나타내신가 하면 하나님이심을 예수 그리스도가 물위를 걸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동시에 그것만이 아니라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실 무렵에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사람이었어요 로마는 아우수스투스를 신화화하기 위해서 동전을 만들어요 거기에 상징물을 집어 넣고 있는데 말을 타고 수레를 타고 그러니까 전투 수레를 타고 물결 위를 달려가는 아우구투스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어요
 
그것은 결국 무엇이냐 하면 물위를 달린다고 하는 마차를 타고 달린다고 하는 것은 신적 존재라는 것이어요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물 위를 밟고 걸으셨다는 것으로 누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냐 고백이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본문하고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말을 타시고 압도적인 하나님의 권능 여기 15절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싹이 나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를 떨리는 도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중요한데 왜 이게 중요한가 하면 이전에 하박국이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햐였느냐 하면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실지 내가 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2장 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른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이라 하였나니
 
하나님 대답좀 해 보세요 이 세상에 대해서 그가 말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내 입술이 떨렸음이라
 
그런데 그가 이제 말합니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 떨리는 도다
 
창자가 흔들린다고 하는 말은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인간의 신체 장기 속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깊은 정서가 머무는 자리가 창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내 창자가 흔들렸다고 하는 것은 내가 서 있던 하나님의 압도하심 앞에서 내가 들었음으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느니라
 
적들의 패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견디어야 할 현실은 무겁기만 합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들어왔어요 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강포와 폭력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박국에서 제일 잘 알려진 본문이 등장한 것이어요
 
17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기 보면 없고 없고 없고 그러지요 내 삶의 조건으로 이러 이러한 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면 무엇입니까? 불행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치부합니다 평화로운 조건이 하나도 구성되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18절에 하박국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탄식이 변하여 기쁨의 찬양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를 그렇게 괴롭게 했던 그 현실이 해결 되었습니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하박국에 생긴 것은 이 현실이 지속될 수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요 실편될 수밖에 앞을 내다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속에 생긴 것은 기쁨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저 악인들인 줄 알았더니 아니야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가
18절 여호와와로 말미암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합니다 이런 것을 급진적 낙관주의라고 이야기 합니다 래디컬 이야기 하고 있는데 래디칼이라는 말은 근본에서부터 그 뜻이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급진적 낙관주의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거기에서 헛된 생각하지 말고
 
예레미야 29장 3절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가게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절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딸들 시집 장가 보내고 그들에게 평안을 구하라
7절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그들이 평안해야 그럴 이 때는 하나님의 정한 때가 지나가면 그 때까지는 경거 망동하지 말고 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라 미래가 없다고 한다면 힘들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했기 때문에 급진적인 낙관론을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 하박국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보아내는 것입니다 그 희망의 근거는 나가 아입니다 이 절망 속에 빛을 비추어 하나님의 역사 섭리 나는 패배할런지 몰라도 나는 패배할 수 없다는 신념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해 주는 것이지요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여호와는 우리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높이를 가지며 싸움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다 여러분 하박국이 씨름 끝에 얻은 결론이 주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제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와 더불어 있다고 할 지라도 나는 패배할 지라도 패배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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