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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바라보며”
2020년 10월 22일 (목) 06:33:29 양의섭 목사 www.cry.or.kr

(하박국 2:1-4) 
 
1.
세상 돌아가는 게 마음에 드십니까? 많은 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내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자기의 능력, 자기의 힘 밖의 일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속에서 울분은 올라오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마냥 기다립니다. 세상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고, 자기 의도대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속에서 늘 열불이 납니다.
 
더군다나 기도하는 데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변화되는 게 없습니다. 이만큼 기도했으면 뭔가 좀 달라져야하는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래서 은근히 하나님께도 불만입니다.
 
누구 이야기? 한 선지자의 이야기요 심정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선지자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이란 뜻은 ‘포옹하다’, ‘씨름하다’는 뜻으로, 문제를 안고 씨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무슨 문제를 안고 씨름을 하는가요? 다 포옹해 줄 일이지, 뭐 때문에 포옹하지 못하고 씨름을 하는가요? 왜 속으로 끙끙 앓는 것인가요?
 
2.
때로 세상 사람들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뭐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뭘’ 하면서 그냥 지나갑니다. 비리, 부정, 부패, 사기, 뇌물, ... ‘세상에서 살려면 다 그런 거지 뭘 그래’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민합니다. 씨름합니다. 전쟁, 폭력, 폭행, 살인, ... 인생 사는 데는 다 있는 문제라고 그냥 넘어가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선 진실과 기만, 정의와 부정, 참과 거짓,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이 분명합니다. 하박국은 선지자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당시 사람들이 비리, 전쟁, 폭력, 부정, 억압, 착취 등을 그냥 넘기며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만은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씨름을 합니다. 그리곤 결국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또 씨름합니다. 그런데 그가 살던 시대는 어떠한 시대였기에 그렇게 몸부림을 쳤을까요?
 
그는 주전 600년 경 유다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신흥 강대국으로 바벨론이 일어나 주전 605년에 기존의 강대국 애굽을 정복하는 등, 당대 세계정세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 형편에,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 멋에 겨워 제멋대로 큰소리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사회의 도덕성과 인간성에 약육강식의 시대상이요, 영적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목이 쉬도록 일러주셨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고, 계속 범죄 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박국과 동시대에 선지 활동을 했던 예레미아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당시 왕이었던 여호와김은 그 말씀 두루마리를 칼로 조각조각 내면서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범죄함에 하나님 모독의 죄를 더하였습니다.
 
악인은 계속 잘 먹고 잘 살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바보 취급당하고 멸시를 당하며 못 먹고 못 살았습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이미 사라져버린 그런 사회였습니다. 출세하려는 이들, 야망이 있는 이들, 돈 벌려고 하는 이들은 의 보다는 악을 더 선호하고, 그리로 줄을 서려고 기를 쓰는, 가치관이 뒤죽박죽인 세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하박국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한참 인기 있는 노래, 아시죠?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오죽 했으면 대중가요 가수가 철학자 소크라테스까지 불러내며 이런 노래를 불렀겠습니까? 가사 그대로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아 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오늘의 현실, 많은 이들이 아니라고, 요즘처럼 좋은 때도 없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더 많은 이들이 이런 노래를 듣고 마음에 큰 위로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 심정입니다. 하박국의 심정이 그러합니다.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답답해 미치겠답니다.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아도 답답함은 더해만 간답니다. 괜히 화만 난답니다.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답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덮쳐서 더 짜증이 나고 더 답답하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 어째서 이런 답답하고도 악한 상황이 계속되는 건가요? 하나님은 왜 악한 자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내버려두시는가요?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는데 왜 보고만 계시는 건가요?
 
답답한 마음에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세상이 왜 이래요? ...’
 
3.
이렇게 답답해하는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정한 때가 있답니다. 악과 부조리의 종말이 속히 이르겠답니다. 결코 거짓말이 아니랍니다. 그러므로 좀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십니다. 지체되지 않고 정한 때에 반드시 응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뭐가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하고 반드시 역사를 이루고, 열매를 맺고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공수표가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 지금 무지 답답합니다. 왜 약속대로,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미치겠습니다. 속 터져 죽겠습니다.
 
일전에 어떤 이가 내게 찾아와 답답해 미치겠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해 오던 것이 열 가지는 더 되는데 될 듯 될 듯 하는데 막판에 이루어지지 않는답니다. 속이 타 죽겠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니 내 속이 다 탑니다. 나도 덩달아 열이 오릅니다. 무정하신 하나님, 매정하신 하나님, 야속하신 하나님 ... 하면서 같이 하나님 흉을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무정하시고 매정하시고, 때로는 얄미운 하나님, 그럼에도 나는 그 분을 부인할 수가 없어요.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그것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달리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가 죽겠다고 기도하고 부르짖음에도 응답해 주지 않는 것을 보니 그것은 내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닌 가 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보셨는가 봅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며, 그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데, 결국은 선한 길로, 선한 열매로 맺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조금 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신앙은 말이죠,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의 램프 요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앙은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손에 쥐고 금 나와라 뚝 딱, 은 나와라 뚝 딱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를 알고 그 분을 믿고,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지금 모든 행위는 실은 다 도를 닦는 겁니다. 신앙은 도 닦는 겁니다. 도를 함부로 닦을 수 있습니까? 내 욕망대로 되지 않아도 도를 닦는 이는 참습니다. 이를 악물고 참습니다. 그러다 도통하게 되면, 깨닫게 되고 행복해집니다.’
 
동의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하신 말씀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런데 현실은? 말도 안 됩니다. 맘에 안 듭니다.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속이 뒤집혀 죽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세상은 왜 배운 대로 안 되는 거고, 양심대로 안 가는 거고, 뻔뻔한 이들이 잘 되고, 음흉한 권모술수 부리는 이들이 더 잘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건가 ... 이거 나만 바보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그래서 진리의 하나님께 나아와 투덜거립니다. 종알거립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그러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 마음이 교만하답니다.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답니다.
 
마음이 교만하다구요? 입으론 아멘 하면서도 마음속에선 믿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계속 주어지는데, 그것을 신뢰하지 않고 매 순간 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감동보다도 자신의 생각, 지식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내적으로 매우 교만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가장 예수를 잘 믿는 것처럼 위장합니다. 믿음 보다 불신이 더 많으면서도 그 불신은 지성으로 위장하고, 순박한 믿음은 어리석음으로 치부합니다.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주어진 성령의 감동이 있음에도 그가 더 신뢰하는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그에게 성공하는 처세술에 불과합니다.
 
성경, 찬송가 들고 다니지만 마음속이 교만하여 진실 되게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종말이 어디 있어, 천국은 무슨 천국, 지옥? 말도 안 돼,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심판이 어디 있어, ...’ 마치 자신이 신(神)인 듯이, 자신이 모든 세계를 만들고 주장하는 듯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 기대대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듯이 그런 자세를 갖고 삽니다.
 
그러나 의인,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의인은 어떻게 사는 이인가요? 믿음으로 사는 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주어진 말씀에 대한 신뢰로, 그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이가 마침내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끊임없이 현실을 계산하고 있는 이가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삼는 이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의인입니다. 설령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성경 말씀과 아주 딴 판으로 흘러가도 그는 절대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고 그것을 믿고 삽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를 인정해 주십니다. 의인이라고! 믿습니까?
 
5.
그러니 우리는 어찌 살까요?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보며, 세상이 왜 이래 하면서 불평과 불만,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원망으로 세월을 온통 다 보낼 것인가요? 아니면 길거리로 뛰쳐나가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며 살까요?
 
하박국서를 읽어보면, 처음에, 즉 1장에 보면 하박국은 현실의 부정과 부패, 폭력과 추함 속에 파묻혀 울부짖습니다. 부르짖고 부르짖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바라보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1장에선 현실 바닥에서 기도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더니 2장에선 성루로 올라가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임하는가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더니 3장에선 하나님의 섭리, 그 놀라운 역사를 보며 우리가 잘 아는 그 놀라운 믿음의 최고봉에서 드리는 감사를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1장에선 왜 정직한데 못 사느냐, 왜 선하게 사는데 얻는 게 없느냐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던 하박국, 이제 점점 그의 영적 상태가 상승되더니 이제는 아예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것들 다 잃어버려도, 기존의 자신의 가치관이 와르르 다 무너져도, 자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만족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박국서 맨 마지막 절에 의미 있는 고백을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3:19)
 
높은 곳! 삶의 현장 바닥에서 불평으로 시작하여 기도로 성루로 오르더니, 계속 올라 결국은 영성의 최고봉에 올라서서 감사로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현실 속에 기도하며 엎드리고, 하나님의 응답, 역사를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중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깨닫고 그리고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며 찬양합니다. 기도하고 바라보며 기대하고 바라보며 점점 자신의 영성이, 자신의 영적 상태가 맑아지며, 그 단계가 up, up, 상승합니다. 그러면서 확신이 생기고,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리곤 ‘그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거야!’합니다.
 
6.
바닥을 헤매는 영적 상태, 왜 그런가요? 불평만 늘어놓을 뿐, 기도가 없습니다. 끝없이 투덜대기만 할 뿐, 고요히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하고 바라보십시오! 기대하며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실 지를 기도하고 바라보십시오. 아직은 현실에 답이 없지만, 세상이 왜 이래 하고 싶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 반드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리며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삽시다.
 
세상은 요란합니다. 변죽이 죽 끓듯 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자가 더 잘 됩니다.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고 내로남불이 더 큰 소리칩니다. 정의는 무능해 보이고, 정직은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어느 거짓과 기만이 끝까지 승리하던가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읍시다. 우리네 삶을, 우리나라와 민족의 삶을 이끄시는 그 거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손길을 믿읍시다. We shall overcome! 우리의 믿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더욱 더 기다리고 바라보며 성도의 삶을 굳세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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