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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학개 1: 1- 6 너희 행위를 살피라
2020년 10월 14일 (수) 17:45:08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예루살렘에 성전을 최초로 지은 사람 이름이 누구이지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제 일 성전입니다 성전이 파괴되었는데 두 번째 성전을 지었는데 그 성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지요 총독 이름을 따서 하는데 스룹바벨 맞아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헤롯 대왕이 대대적으로 수리를 해서 헤롯 성전이라고도 하는데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여건이 좋았어요 아버지 다윗이 막대한 부를 축적해 놓고 아들이 그 조건 아래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바벨론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이 지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 지어집니다 성전 건축이 계속 된 것이 아니어요 중간에 멈출 때도 있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예배당들 보면 백년 이상 건축해욘 예배등이 있었습니다 수 백년을 건축해온 예배당도 있습니다 스페인에 가면 바로셀로나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라고 하는 성 가족 교회 그러거든요
 
  바우디라는 건축가가 100년이 넘었거든요 지금도 짓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자 중단하기도 하거든요 그 때 다른 케이스입니다 성전 걱축을 해야 될 이유를 그 백성들에게 일깨어준 선지자가 있어요
 
  학개 선지자가 있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학개 말고 또 한 사람이 있어요
  스가랴 아 맞았어요  학개와 스가랴이거든요 그런데 그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달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학게서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참담한 기억이 있다고 하면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경험일 것입니다
 
  바벨론이 여러차레 침공해 와 가지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가는데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망하게 된 것은 기원전 586년이어요 그들이 바벨론에서부터 귀환하게 된 것은 고레스라는 임금의 칙영에 의해서 돌아오게 되는 주전 538년경에 돌아오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간지 50여년만에 돌아옵니다 돌아 온 시간이 그만큼의 세월은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습니다 그만큼의 포로로 잡혀가 있다  인생의 상당한 기간을 전반 이상을 포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씁씁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돌아와서 예배를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전을 지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제단을 만들고 에스라 3장 4절 최초로 초막절 절기를 지켰어요
 
 
  얼마나 감동적이었겠어요  상당히 큰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이 제단을 만들고 초막절 축제를 하고 그러자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도 비용을 낼게 우리를 동참할게 하는 것이어요
 
  유다인은 물론이고 사마리아인들도 우리도 도울게 고맙지 않아요 돌아온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 드릴 생각이 없었어요 왜냐 하면 우리는 저 당에 잡혀 갔어도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의 습속을 신앙의 순수성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는것은 성전을 짓는 일에 적절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문제는 우리가 일제에 해방이 되었을 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분들이 신사 참배에 동참한 사람들을 저 사람들은 변절된 사람들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고
 
  신사 참배한 사람들은 참해 하면서 속 상해하던 일이 있거든요  똑 같은 일이 역사속에서 반복이 되고 있는데 나도 동참 시켜줘 안 돼 너희는 너희는 더러워 거룩이라고 하는 게 더럽혀짐과 관련된 개념이거든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거룩하지 않아 하는 말이지요  그 때 여러분 나는 더럽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사람들이 싫어져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저 사람들을 끌어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해하고 위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어요 이 사람들이 성전 건축한다고 하는데 페르시아 임금에게 복종하기 보다는 다른 임금에서 복종하기 위해서 성전을 짓는 것이야 이것 막아야 돼 이런 식으로 합니다
 
  에스라 4장 이런 식으로 무기를 들고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졌어요 그래서 중단이 됩니다 얼마동안 중단이 되느냐 하면 근 20년 가까운 시간 중단이 됩니다
 
  시작을 해 내놓은 데 20년간 방치를 해요 정말 흉물 스럽습니다 기원전 516년에 준공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바로 학개 예언자입니다 그 무렵 20년이 지났을 때 돌아온 사람들도 삶에 지쳤어요 돌아올 때는 희망이 있지 않아요 내 고향에 돌아오면 우리가 자유인으로 멋지게 살 것이야 삶이 너무 힘들어 흉년이 들고 먹을 것 부족하고 인심이 흉흉하고 머물러 있던 사람하고 갈등 때문에 삶이 힘겨워요
 
  그 때는 공적인 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너무 힘든 것이야 거기에만 몰두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 건축에 대한 열정도 싫고 성전을 건축할 만한 여럽이 없다고 스스로 느껴요
 
 
  바로 그 때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어요
  1절 다리오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가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우리가 예언서를 보다 보면 예언자가 부름을 받았던 때를 늘 적시를 하지 않아요 대게의 경우에 그 때 무슨 무슨 임금 시대에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 이야기 되고 있는 임금 이름이 누구지요 다리오 왕
 
  그런데 이미 다 아시겠지만 다리오는 유다의 임금이 아닙니다 유다의 임금이 아니어요 이 사람은 다리오는 누구냐 하면 페르시아의 임금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가 부름을 받았을 때를 이야기 할 때 이렇게 유다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 이야기 하는 것이 드물지요
 
  학게는 다리옹 때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임금이어요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고레스라는 임금으로 유명합니다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 세속의 역사 속에서는 고레스라고 안 하고 씨루스 임금이라고 하는데 씨루스라는 사람이 대 제국으로 성장을 시켜요 페르시아는 영토를 확장 시킨 왕입니다
 
씨루스 고레스를 이어서 왕이 된 사람이 캄비세스라는 왕인데 이 캄비세스 왕은 애굽까지 정복해요 애굽까지 정복을 함으로서 제국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데  그 다음 그를 이은 임금이 다리오어요
 
  이 다리오 임금은 인더스 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 합니다  대 제국을 형성한 것이지요  어마 어마 어마한 제국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페르시아가 다른 제국과 다른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어떤 것일까요? 페르시아는 다른 제국들의 특색은 무엇이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속에 들어와야 돼 그렇게 제국을 운영을 했어요
 
  우리가 바벨탑 이야기를 할 때 바벨탑의 재료를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벽돌이라고 했거든요 이것을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없으나 이전에는 자연석을 썼어요 벽돌이라는 게 규격화 된 것이거든요
 
  이것은 무엇이냐 도량형의 통일과 관련이 되어요 길이를 젠다든지 부피를 젠다든지 마차 바퀴 사이의 간격을 만든자든지 이런 것들이 도로 건설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국들은 도량형의 통일을 하려고 합니다
 
  중국의 진시왕도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이 용납되지 않아요 규격화 된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페르시아는 달랐다 그 이야기여요
 
 
  다양한 언어 문화 경제 시스템 종교 이런 것들을 그래 너희들이 누리고 있던 그것을 그대로 누려 이렇게 허용을 해 주는 것이어요  그 조직들을 잘 융합을 해  페르시야 문명은 무엇과 같은 가 하면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 조그마한 지천이 와서 합류하지 않아요 다른 물이 와서 합류를 하지 않아요 큰 강이 되지 않아요
 
  이것처럼 페르시아 문명은 흘러가면서 융합하는 문명이었어요 다름을 이렇게 포함하는 문명이었어요 어어느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결혼한 사람에게 강을 가지고 이야기 했어요
 
  강을 가지고 이야기 했어요 북한강이 흐릅니다 충주 저 쪽에서부터 남한강이 흘러요 어디에서 만나느냐 하면 양수리라는 곳에서 만나요 양수리를 두물머리라고 하지 않아요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한강이 되는 것이어요
 
  나를 버렸지만 나는 더 큰 나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신비한 부부가 된 것이 그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렇지요 나는 끝까지 갈 것이야 그러면 곤란하지요 페르시야 문명이라는 다양한 것을 받아 드림으로 자기를 크게 만들었어  문화적인 것이 컸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어요
 
  다리오 왕이 중요한 왕인데 그 왕이 즉위한지 2년 여섯째달 초하루에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렇게 본문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 하면 누구에게 주어졌어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했다
 
  스알디엘은 첫 번째 총독인 것으로 보여요 스룹바벨이 그 아들이고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바벨론에 태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임했는데 이 다리오왕 2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항상 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 교체기에 위기를 맞이 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강력한 왕이 물려나고 아직 리더쉽이 확정되지 않은 후임 왕이 들어올 때 자기 세력을 키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즉위하자마자 반란을 효과적으로 제압을 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 반란에 가담한 벌주면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총독 제도를 두기 시작 합니다 이런 전환기에 학개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학개가 예언한 시기는 어떤 예언자는 상당히 긴 시간 예언하지 않아요 그런데 학게가 예언한 것은  6월 1일부터 시작에서 9월 24일까지 날자가 딱 있어요 3개월 넘은 4개월 안 되는 그 정도의 시간동안 활동을 합니다 분명한 포커스가 있지요
 
 
  이제 어쩼던 4개월 정도인데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때가 며칠 날이었다고요 다리오왕 2년 6월 1일 그런데 성전 건축이 재개 된 날자는 언제이냐 하면 6월 24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겨우 세주 지난 다음에 일이 시작이 된 것이어요
 
  상당히 빠른 진척을 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개라는 사람은 보통 예언자를 이야기 할 때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나오더근요 아니면 할아버지 이름이 나오고 증조 할아버지가 나오는데 학개는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안 나타납니다
 
  이것을 보면 학개라고 하는 사람이 종교 귀족이 아니었구나 종교 귀적이 아니었고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었구나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흙수저 출신이어요 학개가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어요
 
  학개라는 이름은  학가이라는 것이 히브리어 발음입니다마는 축제를 뜻하는 하그라는 말과 연결이 되지요 학개와 스가랴 성전 건축을 독려한 선지자들로 성전이라는 게 절기 축제를 바치는 고것이고 순례의 중심이었음을 생각할 때  성전 건축을 촉구했던 학개의 이름이 축제와 연결된다는 것이 상당히 적절한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학개는 철저히 가문의 전통에 의지한 것이 아니고 우리 조상이 대단한 사람이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신빙성이 있어요 이렇게 안 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런 선지자였던 것이지요
 
  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짜증이 나신 것이어요 여기 하나님을 일컷는 말이 만군의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전사로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셔요 적을 무찌리시는 분으로 여기에 등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에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은 의미는 있는 것이어요 백성들 사이에 만연한 패배주의 무기력 절망감  그것과 맞서 싸우시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 여기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무너질 때 사람이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저 사람 살만한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어요 열악한 환경이 있는데 씩씩하게 살아가는 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기력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가 있는데 이 분은 나치 수용소에 갇힌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가진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을 포인트라는 사람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살아갈 쾌락에의 의지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야기 합니다  아플레라는 사람은 권력의 의지가 인간을 살게 만든다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수용소에 갇혀 보니까 쾌락의 의지도 아니야 권력의 의지도 아니야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느냐 하면 내 삶이 의미가 있다고 할 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어요
 
  빅터 프랭클이 자기가 수용소에 내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이 사람은 바로 용광로에 들어가지 않고 노동 사역에 쓰이게 되어요 살아 남았지요 그런데 비밀을 말하자먄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빅터 프랭클의 가족들은 이미 죽었어요 같이 끌려 간 가족들이 바로 죽었어요
 
  프랭클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강제 노역은 너무 힘들어요 그가 노동하면서 힘겨울 때 만도 그가 생각한 것은 내 가족이 평안하기를 바래 그러니까 힘겨운 노동이 즐거운 노동이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니까 어떤 일이 의미있다고 느낄 때는 사람들이 살아 그가 한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은 윌 투 미닝 Will to meaning 의미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의미의 의지를 가진 인간 미닝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그가 나치가 망한 다음에 돌아와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치는 데 결국 무엇이냐 하면 삶의 의미를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찾아 주므로 그들이 치료 되도록 해요
 
  그것을 로고 테라피라고 하는 데  로고스 말씀이거든요 내 속에 의미가 돌아올 때 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매우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무기력과 절망 그것과 맞서 싸우도록 하셔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의미가 채워지는 순간 사람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주는 일 이게 중요해요
 
  만군의 하나님은 외부에 적과 싸우시기도 하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떠 오르고 있는 무의미 고통 무기력 절망과 이런 것들과 싸워서 우리가 삶의 의미를 되 찾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어요 그 하나님이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그 하나님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우리가 그 백성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최초의 열정이 남는 것은 곤고한 삶의 무게일 수 밖에 없어요
 
 
  열정이 식고나면 남루한 이 현실만 남지 않아요 미국에 라스베가스에 가면 그렇다면서도 밤중에 화려하고 번쩍 번쩍하고 우아하고 그러는데 다음 날 아침 보면 조명이 꺼진 그 도시는 사막 가운데 있는 적막할 도시일 뿐이지 그런 것입니다
 
  열정이 식고 나면 남는 것은 곤고한 삶의 무게 밖에 없는 것이야
  그 다음에 성전 재건을 안해야 할 이유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성전 건축이 자칫하면 페르시야 당국의 의혹을 살 수 있어 페르시아의 반역을 저지르기 어떤 중심을 만드는 것이 아니야 이런 의혹을 살 수 있다 백성들은 그런 핑계를 생각한 것이어요
 
  세 번재는 이런 것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이 죄를 하나님이 흔연히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아닐까 우리의 삶이 곤고한 것은 주님이 아직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니 성전을 짓는 것은 그 분의 뜻에 반하는 일일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안할 핑계는 얼마든지 있어 그래서 제 테드 강연에서 어느 미국의 대학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것을 듣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것인가 하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의 눈에 잘 노출 되도록 해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어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이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핑계를 댈 수 있는 여지를 없도록 만들어야돼
 
  그러니까\  12월이 되면 구세군 자선남비가 딸랑 딸랑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거기 지나갈 때 약간 질리거든요 어떻게 하냐 하면 저기 있네하고 돌아가지요 돌아가면서 못 봤다고 하고 무엇이냐 하면 핑계를 댈 수록 여기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데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유치하게 어쩼던 그렇게라도 선을 행한 게 좋은 데 금방 이야기 한 것처럼 무엇인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이게  백성들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용기가 꺾이면 안 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인간의 재능입니다  
  그 때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이어요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제 판벽한 집에 거주한 것이 옳으냐
  성전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내 버려지고 무너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판벽한 집이라는 게 백향목으로 지은 집이야 아름답고 튼튼하게 잘 꾸며진 집이 판벽한 집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렇게 퇴락했는데 너희들 사는 집은 좋은 것으로 꾸미려고 그렇게 지내고 있느냐
 
  그게 옳으냐 어떤 사람이 옳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대책이 없겠지요 그것은 한 대 맞는 수 밖에 없어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자기의 집을 꾸미는 일에는 열중하면서 하나님의 집을 꾸미는 일은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언약 공동체의 비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백성을 선택하셨을 때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 꿈을 실현하도록 주는 중심이 성전인데 그 성전에 퇴락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그 꿈을 버린 것이어요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린 것이어요 자기 망각이어요 결국은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공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어요 성 다미아노 성인이 누더기를 걸린체 울면서 오는 것이어요 프란체스코가 놀합니다 성인님 천국에 어찌하여 울고 계셔요 이렇게 물어요
 
  천국에 계신 분이 울고 있다니  천국에도 눈물이 있단 말이어요 그러자 다미아노가 대답합니다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오 그것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메고 있는 사람의 눈물이다네 이렇게 말해요
 
  그리고 다미아 성인이 이야기 합니다 지금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그런데 너는 이렇게 평안한 잠 자리에서 잠만 자고 있을 것이냐 가서 무너지는 교회를 세워 이렇게 이야기 해요
 
  프란체스코 성인은 하나님의 계시로 알아 듣고 수리하는 일에 나섭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 다미아노가 프랑체스코를 그렇게 부른 것은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건물을 고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스스로의 부요함 속에서 도전 없이 왔던 카도릭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였고 그것을 어깨를 떠 받혀 일으키라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프란 치스코 성인이 13세기에 교회에 가지고 들어온 것은 가난이라고 하는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하야 한다고 들어오거든요 이것이 공공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탄식하였다
 
  5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 행실을 돌아보라는 것이어요 돌아봄을 자기를 돌아보는 것 반성이라고 하지요 어디에서 나온 말이어요
 
  논어에서 증자가 한 말입니다 五日오일 三省삼성五오 나는 하루에 세 번 나를 돌아 본다
  첫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불충하지 않았는가 하는 게 첫 번째이고
 
  벗과사귀면서 진실하지 배운것을 불신 믿음직하지 않은 것이어요
  그 다음에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불 습입니다
 
  불신 불충 하지 않았는가 자기를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맑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지금 그 백성들에게 너희 행위를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결국은 무엇이어요 내가 고백하고 있는 그 내용을 삶으로 번역한 과정인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정 반대로 왜곡하고 있는 그 현실을 하나님은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은 일상적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되어요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결국 백성들이 선택한 삶은 풍요로움이었지만 본인의 행복이었지만 그들의 행복을 추수하지 못해요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흉년이 찾아오기도 하고 제국의 수탈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라는 삶의 중심성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삶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이 바로 서지 않는 경우에는 말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본이 무엇인지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것은 말을 추구하기 위해 본을 버린 것이야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습니까?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본 그 본을 내가 정말 굳게 붙들어야 하고 내 속에 가물 가물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심지에 불을 붙여야 하는 데 우리는 무엇이냐 내 속을 성찰하기 보다는 바같에 있는 외부적 조건들을 바라 보느라고 본을 상실한 본말이 뒤집힌 삶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아픔을 우리들이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속에 크게 와 닿은 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인데 우리 속에 있는 절망 우리 속에 일어나는 무의미 나는 할 수 없어 무기력 이런 것과 맞서 싸우면서 우리 속에 숨을 불어 넣으셔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꿈을 불어 넣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제게는 크게 다가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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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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