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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강 회복의 꿈
2020년 09월 25일 (금) 13:57:27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스바냐 3: 9-13)
 
사람이 야단만 맞으면 주눅들지 않아요 그런 것이 있지요 때때로 격려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보면 우리가 야단치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사람이 될려면 그냥 야단 안치고 전폭적으로 받아 주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이게 역할 분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 아빠가 야단치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받아주고 이런 역할 분담이 아이를 균형있게 키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도 예언자들을 통해서 계속 야단을 쳐요 매를 많이 맞으면 주눅들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야단침은 언제나 무엇으로 귀착되느냐 하면 사랑이지요 정의가 전제되지 않은 사랑이라는 것은 잘못될 가능성이 있지요 바르게 사랑을 해야 하지요 사랑은 정의를 내포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스바냐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무서운 이야기들이 했어요 정의가 공의가 무너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을 향한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거듭 나왔어요 우리는 움츠려 들였어요
 
오늘부터 스바냐서의 마지막 부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위로와 희망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비교적 희망적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민족들을 회복시키실 때 제일 먼저 어떤 일을 하시는 지가 9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케 하며 입술이 깨끗한가요? 하나님의 계획은 입술을 먼저 깨끗하게 하는 데 사실은 입술가지고 하는 일이 무엇이 있느냐 말 입술이 더럽다고 하는 말은 말을 더럽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입술을 가지고 정말 거짓말을 하고 악한 말을 하고 남을 해치는 말을 하고 하는 것들이 더러운 입술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하나님이 맨 먼저 회복을 하시는 일은 말을 회복하신다 더러운 말이 사라지도록 만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의 소명 이야기를 보면 이사야 6장 5절 이사야가 성전에서 환상을 봐요 하나님의 환상을 보거든요 그 때 이사야가 탄식합니다 화로다 나여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주하면서 만국의 왕을 뵈었음이라
 
거룩함에 섰을 때 사람이 느깨게 되는 것은 참 좋다가 아니라 두려움이어요 내가 너무 어둡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위에 빛이 있어요 내가 저만치 떨어져 있으면 빛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면 내 몸에 묻은 것 잘 안 보이지요
 
나는 스스로 어떻다고 느끼느냐 하면 나는 깨끗해 그렇게 느껴요 그러나 빛을 가까이 다가가면 내 옷에 묻어 있는 것도 보이고 어두운 것들도 보이지요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빛에 가까이 갈수록 자신이 흠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아름다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면 스스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면 디모데전서 1장 15절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해요 그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바울은 정말 나쁜 죄인이야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요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는 말은 겸양을 떨기 위한 말이 아니어요 빛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자가 한 자기 하는 자기 인식이어요 그래서 빛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 수록 나만큼 한 사람 누가 있어 나만큼 떳떳하게 사람 누가 있어 말한 사람은 잘 못된 것이어요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다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안 했지요 죄짓고 들어가는 사람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들어가지 않아요
 
이사야도 거룩 앞에 섰을 때 아 나는 이렇게 이 땅에서 살면서 입술이 부정한 자인데 저 영광된 하늘의 세계를 보았으니 나는 죽을 수 밖에 없겠다 그 때 스랍하나가 제단에 숲불을 가져다가 입술에 가져다 댑니다
 
그래서 정결하게 되지요 입술을 정화해 더 이상 이사야는 이전에 자기의 말을 하고 살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정화된 입술로 하나님이 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요 소명이 그렇게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술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살리는 말 무엇인가 살리는 말 올바른 말 참된 말 친절한 말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일전에 물은 적이 있는데 음 높이가 부드럽게 이어 부르려고 할 때 무엇이라고 이음줄 영어로는 스로우라고 하기도 하고 레가토라고도 하거든요
 
그런 표시가 있으면 어떻게 불러야 해요 이어서 부드럽게 이어서 불러야 하지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본래의 언어의 기능이라고 하는 게 그 레가토 이움을 줄을 닮았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데 오해도 말로부터 비롯되고 이해도 말로부터 비롯되어요
 
말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어야 하는데 말이 띠때로 사람을 멀어지게도 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아담이 잠에서 깨어나니까 자기 앞에 낯선 존재가 있었어요 그 때 아담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창세기 2장 23절 새 번역 이제야 나타났구나 남자에게서 났으니 여자라 하리라 이 사람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인간이 누구인데 나를 보고 내 뼈 내 살 이렇게 안 하지 않아요 처음인데 누군가가 내게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가까워 지지 않아요 그런데 죄가 들어왔을 때 아담의 언어가 바뀝니다
 
창세기 3장 12절 너 왜 다먹었어 당신이 내게 주어 함께 살라고 한 여자가 먹었나이다
그 언어는 갈라지는 언어이지요 죄가 우리를 지배할 때는 갈라지는 언어로 상처를 주는 언어를 하게 되지요 죄가 우리를 지배하기 전에는 이어주는 말 서로 아름답게 다가서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아요
 
입술이 부정한 자는 갈라서는 말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부정한 말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정말 제단 숯불로 우리 입을 이렇게 지저 주면 좋겠는데 우리가 뭐 욕은 하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속에서 발화되고 있는 말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줄 때가 있고 이런 경우가 꽤 많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입술이 깨끗해 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입술이 깨끗해 지니까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깨끗해 졌다 입술이 깨끗해 지니까 하나님을 경외심이 생겨났다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음이 청결해 내 영혼에 드리워져 있는 더러워진 것을 닦아 지니까 하나님이 보여요 입술이 부정한 자리에서 그 입술이 깨끗해 지자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온 것이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로 주님을 섬기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 가지로 번역되어 있는 이 단어는 한 어깨로 그런 뜻이어요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하고 놀 때 어떻게 하지요 어깨동무 내 동무 그러지요 이렇게 어깨 동무를 하지않아요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어깨를 겪는다 함께 어깨 동무를 하는 것이어요 다정하게 가기도 하고 레미제라블 같은 데 보면 서로 어깨를 겪고 어려움을 이겨 나가지 않아요 한 가지로 나를 섬길 것이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이 전에는 어깨를 겪지 않았어 친구가 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말은 여기 섬긴다고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에 관련된 단어에 주로 쓴 단어이어요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그들에게 주신 소명이 있었는데 그 소명이 무엇이냐 하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었지요
 
출애굽기 19장 6절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소명이었어요 흩어져 있던 뭇 나라 사람들이 입술이 깨끗해 지자 그들이 어깨를 함께 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 섬겼다는 단어가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된 사명을 보여 주어요
 
이 구절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받아들인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적 중심 속에서 내 삶을 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여호와의 통치가 받아 들여진 세상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미국이 굉장히 큰 상처를 받은 사건이 있지요 2001년 9 11 테러 사건 미국이 본토 공격을 받은 게 일본에 의해서 태평양 전쟁 벌어졌을 때 본토 받은 것 외에는 거의 처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멘허턴에 있는 다리들이 폐쇠개 되고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 있는 무슬림들은 피잡을 하고 다니다든지 이러면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인식이 될 수 있어요 그 당시에는 그러니까 밖에서 나가면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분들은 공포를 느낍니다
 
그 때에 뉴욕에 있는 교회들이 모든 교회는 아니지만 뉴욕에 있는 교회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면 주변에 있는 이웃 무슬림들을 찾아가 그래서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면 이야기 해 주세요 사다 줄게요
 
그분들이 밖에 나오지 못할 때 그분들을 위해서 장을 보아다주고 이런 것들을 했어요
이것이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살기를 원하는 생명이고 사람은 누구나 미움의 표적이 되어 있을 때 그들을 품이 되어 감싸 주려고 한 것이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다 그 관계속에 이것이 여호와의 통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건으로 저는 보아요 이렇게 되면 서로 바른 말을 하고 상처주는 말을 하고 해해치는 말을 하고 이런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어깨를 겪고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벨탑 사건의 역전이 일어난다
 
창세기 11장 8절 바벨탑 때는 언어를 혼잡해 가지고 흩어 졌어요
지금은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적 통일이 일어나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함께 섬기게 되는 바벨탑의 역전이 벌어졌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여주는 비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0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으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 것이라
 
하나님께 구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은 품을 열고 맏아 드리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젠에 죄 때문에 흩어 버렸던 자들이 구스 강 저편은 아프리카 저 편이거든요 저 멀리까지 가 있던 사람들이 주님께 예물을 가지고 와서 바치게 될 것이다
 
구스 강 건너편은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면 그 당시에 땅 끝 가장 먼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중심을 가지고 나아와서 예물을 바치고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11절 내게 네게 범죄한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내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 교만하지 않게 할 것이니라
 
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날은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께 거역했던 행위로 인하여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고 말핮ㅂ니다 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까?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들이 벌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파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잘못한 것을 징계하시는 까닭은 분풀이를 심판의 목적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화이고 하나는 연단 그렇지요 이 둘이 함께 가도록 되어 있어요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서 자기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심판을 자초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본말을 뒤집기 때문에 인간이 심판을 자초해요
 
한자로 본이라는 글자 나무 목자가 있지 않아요 밑에 하면 본이야 여기에다 나무를 그렸어요 줄을 그으면 말자여요 본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 땅이야 이것은 무엇이어요 뿌리 땅에서 올라오는 데 여기에 메달리는 것은 열매 본은 뿌리이고 말은 열매인데 말도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어요 이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러나 나무를 지탱해 주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뿌리인 것이지요 문제는 본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 밑에 있기 때문에 무엇이 보이지요 열매가 보이지요 사람들은 열매에 관심을 가져요 여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인 말을 추구하는 말을 내 삶의 중심으로 추구하는 결국은 심판을 자초해요
 
이것은 욕망과 탐욕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탐욕적인 삶이라는 것이 심판을 자초하게 되고 심판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말이 아니라 이것을 얻는 것이어요 내 삶이 말이 아니라 본에 정화된 삶이라고 말하고 이런 일이 내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게 될 때 나는 연단된 존재가 되는 것이어요 이것이 중요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겪어 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는 것이어요 그래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제거 되었고 자기 힘에 도취되어 들떠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죄의 무게 때문에 스러졌기 때문에 이렇게 정화되고 연단된 사람들이 그 도성을 채우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의 잘못에 붙들려서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세상에 과거의 잘못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이 이야기 한 것은 애교스럽게 볼 수 있는 잘못들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의도하고 지은 잘못도 있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도 죄도 많이 있고 그렇게 보면 죄 없는 사람이 없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 죄라는 과거가 어두운 인력이 되어서 나를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는 죄 의식속에 살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이냐 과거에 저지른 그 죄들을 네 아픔을 내가 알아 너를 용납했어 용서를 해 주셨다고 하는대도
 
용서를 해 주셨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그 속에 묶여 사는 것은 바보짓이지요 그러나 너무 헤픈 용서 쉬운 용서 문제가 될 수 있어 그래서 하나님은 대가를 꼭 치루게 하셔요 그러면 용서해 주셔
 
더 이상 붙들리게 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하나님이 심판을 통해 정화하고 연단하심으로 사람들이 정말 교만하지 않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시는 것이지요
 
12절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두리니 그들이 여호와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의 모습이 드러나지요 나는 그 거룩함에 가르쳐 주고 있는 레위기의 성결 법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일이어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어요
 
레위기에 성결 법전은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 행위에 국한 시키지 않았다 요즈음으로 이야기 하면 예배당 교회에 참석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금요 철야 기도회하고 그리고 금식 기도하고 또 성경 많이 읽고 은혜 받은 집회에 빠지지 않고 이러면 굉장히 거룩한 삶으로 사는 것 처럼 보여요
 
이 거룩한 삶이라고 하는 게 항상 성결 법전에서 무엇과 연결되느냐 하면 윤리야 윤리적 삶이어요 윤리라고 하는 것은 거룩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고 한다면 윤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인데 기독교적 윤리 성서적 윤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만ㅁ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임을 뜻해요
 
나 좋을 대로 저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의 관계속에 중심이 되어 드리기 바라는 윤리라는 말이어요 그는 거룩하긴 하나 윤리적이지는 않아 이것은 안 돼 어떤 사람이 성경을 백번을 읽었어 거룩해 보여요 은혜 받은 집회에 빠지지 않아 그러나 자기 회사에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갑질을 한다면 그는 거룩하지 않은 것이야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윤리적이기는 하나 경외할 줄을 몰라 나쁜 짓은 안해 그런데 그의 내면속에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이 있다든지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윤리적인 행위가 아니야 그 속에 무엇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경외해야 될 대상으로서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사회 속에서 윤리적 삶으로 드러나야 하고 사회 속에 드러나는 윤리적 삶은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으로 나타나요 고아 과부 나그네로 상징되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래서 레위기 23장 22절 추수할 때 밭의 한 모퉁이를 남겨 두라고 하는 것이어요 그들의 몫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바로 저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만족이 되기 쉬어
 
나는 신양 생활 정말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데 여기에 대해서 격멸한다든지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모르는 체 한다든지 내가 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 처럼 가난하지 않는 것을 감사합니다 기도를 한다든지 그것은 경건이 아니어요 거룩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거룩함은 반드시 이런 삶으로 나타날 때 진자 거룩함이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일관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아야 합니다
 
12절 하나님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 공동 번역은 그것을 기를 펴지 못하는 사람들 기를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었어 사회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들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 또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그들 가운데 남겨 두시고 이것이 하나님이 정화한 세상이어요
 
그들이 기를 펼 수 있어야 돼 그들이 누구를 의지해서 사느냐 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이 보호함을 입고 그들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의 삶을 할껏 살아 가도록 만들어 하나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어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3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 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악을 행하지 않는다 악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어요 타자에게 무덤을 안겨 주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타자에게 무덤을 안겨 준다는 것은 해고지 하는 것이어요 그의 생명을 축소시키려고 하는 모든 행동은 악이야
 
우리가 누구에게 욕을 한다든지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든지 무시한다든지 그려면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생명이 위축되지 않아요 그것은 살인이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염두에 두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누구를 대하든지 나는 저 사람에 생명을 키워 주는 일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 해 멸시하고 격멸하고 이런 일을 통해서 생명을 키울 수 없어요
 
여기 중요한 것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여러분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이 남겨둔 사람이어요 그 다음에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면 입에 거짓된 혀가 없는 것이어요 그 다음에 먹고 누울 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게 어떻게 방생하지요 왜 우리가 두려웁지요 우리 두려워요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두려워요 시간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특별히 성서적 의미로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에덴에 동쪽에 살고 있거든요 에덴에 동쪽에서 살면 불안이어요
 
창세기 4장 16절 가인이 에덴에 동쪽에 이주하여 놋 땅에 거주하더니 에 놋이야 이 말의 뜻은 유리하다 방황하다 이 뜻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등 돌이고 이웃에게 등돌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 놋이야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두려워 방활 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도 때때로 두려워하고 불안해 빠져 삽니다 에덴에 동쪽에 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하나님이 십판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정화가 일어난 다음에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것은 외적 침입에 대해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내면의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내면에 일고 있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요
 
그러나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자기의 평안함을 위해 누군가를 어려움 속으로 몰아내지 않은 사람은 조금 가난할 수 있지만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데요
 
결국 인간들이 모두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불안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불안 없는 삶 두려움이 없이 살고 싶지요 많은 예언자의 이야기입니다
 
주전 8세기에 굉장히 아름다운 비젼을 보여 주고 있지요 육식에 동물들과 초식에 사는 동물들이 꿈 꾸거든요 이사야 11장 6절 그 꿈 이야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
 
그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자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어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사자로 상징되고 있는 것이 강자들이야 그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자기들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일을 내려 놓고 다시 이야기 하면 그 육식성의 폭력성을 버리게 될 때 평화가 오는 것이어요
 
세상에 평화가 없는 것은 힘 있는 저 사람들이 세상을 불 안전하게 만들기 대문이 아니어요 힘 없는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먼저 힘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려는 욕망을 내려 놓고 섬기기 시작할 때 평화가 와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삶은 한결같이 높아지려는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리켜 주지요
 
마태복은 20장 27절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높임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지요 이것이 이사야 11장의 신약 성서의 버전이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힘 없는 사람들 너희가 문제야 너희 대문에 세상이 소란 스러워 그럴 게 아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 힘을 사용할 대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세상이어요 정말로 평화를 꿈꾸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간단하게 이야기 할께요 첫째 기도안에 머무르라 다시 말하면 날마다 평화를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돼
 
세상 도처에 있는 아픔들 아프리카에 곤고한 사람들이라든지 이 사람들을 우리의 기도속에 모시고 와서 하나님께 그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돼 이것이 첫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기도만 하면 안 되어요 죽음의 세력에 항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고통 스럽게 만드는 생명을 해치는 사람과 제도에 굴복하지 않아야 되어요 이게 우시 속에 있어야 돼
 
2018년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두분이 있는데요 데니스 무쉐거라는 콩고 공화국에 의사입니다 이 분은 어떤 일을 했느냐 하면 전쟁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치료하고 돌봐 주었어요 회복해 주는 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세상은 끊임없이 여성들을 도구화 하지만 이렇게 끝끝내 그들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어요기도만 하지 않았어어요
 
나다이 무라드 이라크 소수 민족의 여성입니다 아이에스에 납치 되어 가지고 집단 성 폭력을 당했어요 그리고 탈출한 다음에 전쟁을 반대하고 인신 매매를 막기 위해 매진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그들은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기도안에 머물러야 되지만 악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해야 되어요
세 번째는 삶을 축복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돼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는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든든하게 매력적으로 살아가는지 보여 주어서 세상의 아름다운 삶의 표지를 세워가기 시작해요
 
그래도 소용이 없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살것이야 저 사람들을 보니까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구나 이렇게 느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에 민권 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1965년 3월 7일 아리바마 주에 셀바라는 곳에서 몽고메리를 행진하던 사람 가운데 한 노인이 한 말이 있어요 자기들의 행동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모험에 뛰어 들어 희망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고 결과는 사랑으로 감내하자
 
이것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해야 할 마음속에 세겨야 할 요소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세상에 만들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렇게 만들기 워하시거든요 기도 안에 머물고 그 다음에 이 불의와 죽음의 세력에 대해서항거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뻐하며 경축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내적 능력이 내 속에서 생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증언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 여러분의 삶이 그런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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