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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
2020년 09월 15일 (화) 09:31:55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이사야 1:1-20) 
 
1.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 때, 종종 이사야서를 읽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이사야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것들을 전해주는데, 특별히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큰 격려를 선사합니다. 이는 아마도 이사야 자신이 험한 세월을 살아가면서 많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국에서 4대의 왕을 섬기며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를 거치며 예언 활동을 하였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최소한 47년에서 최장 64년까지 활동을 하였다고 추측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 기간 동안 국외적으로 두 번의 큰 외침을 당하였고, 국내적으로도 힘든 시기가 있어서 사악한 왕 아하스 시대에는 거의 침묵을 지켰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우상을 숭배하는 므낫세에게 책망을 하다가 널빤지에 묶여 톱으로 켬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달픈 현실 속에서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가장 많은 메시아 예언을 하였고, 동시에 미래, 즉 소망에 대하여 많은 메시지를 전한 위로와 격려의 예언자였습니다.
 
요즘같이 답답한 현실 속에, 이번 주간에는 이사야서를 묵상해 보십시오. 이사야서는 소망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보화들이 가득 찬 책입니다.
 
2.
이사야서의 서두, 오늘 본문을 보자. 2절부터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늘이여, 땅이여’ 하는 걸 보니 하나님께서 작심하시고 온 세상에 고발 하십니다. 누구를? 이스라엘을! 왜? 그들을 자식으로 여기고 양육하였는데, 이놈의 자식들이 부모를 우습게 여긴답니다. 즉 하나님을 거역한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어린 아들 때문에 속상해 하는 엄마가 시험 보러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오늘 산수 시험에서 70점 이상 받아오지 못하면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아주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오후에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어린 아들이 문을 열면서 그럽니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속 뒤집어질 일입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먹여주고 입혀주고 했더니 제 잘나서 큰 줄 알고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말대답을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부모를 아예 무시합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인의 구유’란 주인이 양식을 담아주는 밥 그릇, 즉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오래 전에 서재에서 붕어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독특한 장면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어항 안에 있는 붕어들이 한가로이 떠다닙니다. 밖의 세상에 대해선 아예 무심한 듯 그렇게 떠다닙니다. 그러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서면 그 무심히 떠돌아다니던 붕어들이 우르르 내게로 몰려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먹이를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먹이를 준다는 것을 알고 다 몰려옵니다. 붕어도 자기에게 밥 주는 이를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건가요?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도 못하고 살아가는 건가요? 하나님께서 늘 우리를 살피시고 도우시고,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고백하면서, 어째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제 멋대로 제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이 행세하는가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분통 터질 일 아닙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가 어떻게 나타났는가요? 4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요? 잘 살았는가요?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상처투성이 입니다. 그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고, 그 누구도 치료해 주지 않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삶의 터전조차 황폐화되고, 침략의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을 다 외국에 빼앗겼으며, 마치 외로운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초라하고도 쓸쓸하게 자신들의 처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지 않았다면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홀라당 다 타버리고 멸망당했을 것인데, 그나마 불쌍히 여겨주시사 생존자들이 겨우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가 뭔가요?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제 멋대로 자기들 하고픈 대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 패역을 쌓아가며 죄악의 길로 달려갔기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신 삶이 있는데, 그것을 모른 체 하고 제 멋대로 달려간 결과,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황폐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웃기는 일은 그 다음 11절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우습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도 수많은 제물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도 안 하면서 말입니다.
 
자기들의 종교적 만족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기에 상대방, 하나님이 받으시든 안 받으시든 그것은 괘념치 않고 무조건 자기 할 일 다 한다고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수한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분명 말씀하십니다.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그 뿐 아닙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주일 성수를 한다고 기를 쓰고 성전에 찾아 나옵니다. 하나님을 뵈어야 한다고 열심히 찾아 나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그저 마당만 밟고 가는 의미 없는 백성들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요구하십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헛된 제물 가져오지 마라. 분향? 싫다! 월삭, 매월 첫째 날 모이는 집회입니다. 안식일,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일입니다. 대회, 특별 집회입니다. 이 모두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지키라고 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가져오지 마라, 분향도 싫다, 모이지도 마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그런 집회로 너희들이 모이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하겠다, 싫다!’ 하십니다.
 
게다가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모인다는 그것들이 도리어 하나님께는 부담스럽고 피곤하시다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이 말라기서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누군가가 아예 성전 문을 좀 닫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마치 요즘 코로나로 인해 교회 문이 닫힌 것 같은 모습! 다른 이유로, 정치적이거나 사상적, 교리적으로 교회 문을 닫으라고 했으면 순교자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나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성전 문을, 교회 문을 억지로 닫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문이 닫혔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해서 그렇게 굳게 닫힌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분명, 율법서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에 나올 것이요, 나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말고 제물을 들고 올 것이요, 그것도 기쁨과 열심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도리어 싫어하신다고 하는 걸까요?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달라고 하는 걸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5절,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손을 편다는 것은 기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할 때에 우리와 달리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고 손을 펼 때에 하나님께서 눈을 가릴 것이고, 더욱 많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귀를 막을 것입니다. 왜? 이유가 뭔가요? 내가 기도하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이유가 뭔가요?
 
기도하는 그 손에 피가 가득하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남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그러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주세요, 주세요’ 하며 기도하기에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회 장로는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회개는 하지 않고,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를 욥처럼 연단하시는가 봅니다.”하고 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더라구요. 그로 인해 피해를 본, 고통을 당한 이들이 여전히 있는데, 자신 때문에 아픔을 당한 이들이 여전히 그 공동체 안에 있는데, 기도하는 그 손에 피가 여전히 묻어 있는데 회개는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만 한다고 그 기도가 통하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으셨는데?
 
듣지 않겠다, 귀를 막겠다, 얼굴을 돌리겠다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해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스스로 씻으십시오. 스스로 돌아서십시오. 스스로 잘못한 것을 청산하십시오! 악한 행실을 버리십시오! 우리 교회가, 한국 교회는 회개할 게 참 많습니다. 씻을 게 많고, 돌아설 게 많고, 버려야 할 게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번 기회에 정말이지 하나님 목전에서 악한 행실을 버리고 악행을 그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어차피 문은 닫혔습니다. 닫힌 동안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 때문에 분주했고, 무엇에 열을 내 왔는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교회의 본질에 충실했는지, 스스로 회개하는 기회를 갖읍시다.
 
그리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선행을 배우랍니다. 정의를 구하랍니다.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과부를 신원, 변호해 주랍니다. 이건 모두 적극적인 동사들입니다.
 
선한 일에 적극성을 띱시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 이 세상에서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게 없는 이들을 도와주고 붙들어 줍시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합시다! 가서 너도 그렇게 살라 하신 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그리 삽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다 해결되는가요?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할 것인가요? 18절, 거룩한 하나님의 초청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어떤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오면, 회개하면 그 죄가 용서함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가벼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은총이 없습니다. 허지만 기독교인은 어떠한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통회하면 하나님께서 죄 씻음, 용서함을 베푸십니다.
 
무엇을 통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를 제외한 그 어떠한 죄라도 우리는 다 용서받습니다! 믿습니까?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뭐가? 네가! 네 영혼이! 네 삶이! 그렇게 되리라! 할렐루야!
 
4.
첫 사역지로 수색의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길 때, 교사 중에 매우 성실한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열심인지 매사가 정확하고 맡겨진 책임은 칼 같이 잘 감당하였습니다. 모두들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라고 여겼습니다.
 
한번은 그 분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집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열심일 수 있으세요? 비결이 뭐예요?”했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솔직히 하나님이 무서워요. 성경을 보세요, 하라 했는데 하지 않으면 무섭게 치시잖아요. 나는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러니까 무서워서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잘 하고, 늘 말썽을 피우는 아이를 엄마가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 교회당에 들어서서 엄마와 함께 예배를 드린 아이, 그 날 목사님 설교가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였는데, 그 날부터 이 아이가 교회를 출입하며 거짓말을 뚝 그쳤습니다. 엄마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는 정말 대단한 곳이구나 했습니다.
 
며칠 뒤, 엄마는 아이와 이야기하며 물었습니다. ‘교회에 오니 기분이 어때?’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가리키며 겁먹은 목소리로 그러더랍니다. ‘엄마, 교회에선 거짓말 하면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아?’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말이죠, 십자가가 뭔가, 도처에 이런 무서운 명령들이 있습니다. 돌로 치라. 그 대(代)에서 뿐만 아니라 자식 3-4대까지 벌하리라, 어디를 가든 저주를 받으리라, 나가도 망하고 들어와도 망하고 네가 반드시 망하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온통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패망과 절망, 책망과 저주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해도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명령, 지시, 책망, 처벌, 징계! 그런데 이게 다 인가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책망하는 즐거움으로 사시는가요? 이루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어려운 도덕적 기준을 정하시고는 늘 넘어지는 인간을 야단치는 즐거움으로 사시는가요?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뭔가요?
 
오늘 본문을 다시 잘 보십시오. ‘그들이 나를 거역하도다, 깨닫지 못하는도다,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견디지 못하겠노라, 곤비하였느니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그러더니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십니다. 이건 뭔가요? 이 많은 말씀 속에 뭔가가 있습니다. 거기에 서려있는 하나님의 정서, 마음의 표현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삐졌다는 것!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웃기지요? 그런데 삐졌으면 좀 삐졌지, 그걸 구태여 ‘나 삐졌다’ 하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 그뿐인가요,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아도 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 그 놀라우신 하나님,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들을 향해 간절하게, 때로는 삐져서, 때로는 좀 유치할 정도로 말을 많이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이 세상의 어느 신이 이렇게 인간에게 매달리듯이 많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의 창조주요, 모든 권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뭐 때문에 이토록 말을 많이 하시는가요? 뭐 땜시 그토록 우리에게 매달리듯, 우리에게 알아들으라는 듯이 말씀을 많이 하시는가요?
 
이유는 단 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그래서 자식이 못 알아듣기에, 자식이 애비의 사랑을 정녕 모르기에, 그냥 두면 패망의 길에서 완전 망하겠기에, 지옥 불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겠기에, 알아들을 때까지 이리 치고 저리 치며 계속해서 설명하시고, 말씀하십니다!
 
5.
내 한 가지 확인해 볼까요? 자신이 분명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임을 확신하는 이, 지금 아멘 해 보십시오! 아멘!
 
여러분을 향한 엄청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삽시다. 사 49:15절의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설령 육신의 부모가 나를 잊어도,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결코 잊지 않습니다.
 
이 사랑 속에 여러분의 삶이 터 잡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무섭게 야단치고 두렵게 하시지만,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절망과 패망, 낙심이 아닙니다. 회개와 회복, 그리고 사랑입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에 지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가서 그리 살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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