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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시키시매”
2020년 08월 06일 (목) 09:02:43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에스라 1:1-6) 
 
1.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몇 개나 있을까요? 문체부 통계에 의하면 약 63,000 여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이 모두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을 믿고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많은 교회들도 실은 다 같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습니다. 전도 잘 하는 교회, 사회운동 잘 하는 교회, 섬김을 잘 하는 교회, 잘 나누는 교회, 이론적이고 냉정한 교회, 찬양 잘 하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교회, ... 교회들마다 다 자신들의 공동체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그게 자기들이 제일 잘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걸로 인해 힘을, 에너지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 왕중교회는 뭘 잘하는가요? 뭘로 힘을 얻는가요? 최근에 우리 교회를 다녀간 분들을 몇 분 만났는데, 다들 한결같이 그러시더라. ‘왕중교회, 정말 따뜻한 교회입니다. 교인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들 따뜻한지 모르겠습니다. 왕중교회가 아니라 왕중왕교회입니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내가 평생 소원했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화려한 교회, 대형화된 교회보다는 교회에 들어섰을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마치 하나님의 품안에 들어온 것 같은 교회, 주안에 머물러 있는 교회가 되기를 늘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임을 믿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있는 공동체임을 믿고, 성령의 교통하심을 따라 더욱 더 따뜻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서로를 축복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큰 감동이 있을 것이요, 교회 다녀가는 것이 자신의 삶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어느 집사님 부부, 부인 집사님이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여보, 오늘 목사님 넥타이 봤수? 얼마나 촌스러운지. 지난 주일에 맨 것을 오늘도 매셨어. 아, 그 이 장로님 면도 제대로 안 한 것 영상에서 봤어요? 성가대에 앉아 있는 김 집사 설교 시간에 조는 것 봤어요. 우로 세 번, 좌로 세 번 그러더니 뒤로 벌렁 자빠집디다. 당신 봤수?” 열을 내어 부인 집사님이 물어볼 때마다 남편 집사님은 못 봤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인 집사님이 열을 받아서 그럽니다. “아니, 당신은 예배 시간에 뭐 했어요, 그런 것도 못 보구?”
 
그러자 남편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응, 나는 예수님만 보았어.” 여러분, 예배 시간엔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그 때 성령의 감동이 갑절로 여러분에게 찾아들 것입니다.

2.
교회에는 이런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 때마다 이런 감동을 받는 이는 세상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감동이 올 때 힘이 난다. 뭔가 결단하게 됩니다. 맨송맨송한 정신에는 별로 힘이 안 납니다.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게 치솟아 올라올 때 우리는 어디서 났는지 결단과 충성의 힘으로 충만해집니다.
 
주일날 은혜를 못 받으면 문제가 뭔가요? 기대감에 왔다가 허탕치고 가는 허전함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 주간을 살아갈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맞습니다! 이 세상은 험하고 나는 약합니다. 하지만 주일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힘, 영적 감동에 힘을 얻어 이 험한 세상, 이 냉정하고도 이기적인 세상을 예수의 이름으로 이겨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 예배를 통해 은혜를 얻어야합니다, 감동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설교, 설교를 통해 감동을 받으십시오. 이른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설교 시 감동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이 완고하면 천국의 씨, 복음의 말씀이 그 마음 밭 안에 파고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감동의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앉아서 말씀을 대하면 그 말씀은 늘 치우친 자기 욕망의 소리가 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 제 3자의 입장에 서면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귀에 잘 들어오든, 거슬리든 감동이 올라옵니다. 귀에 잘 들어오는 말씀은 기쁨이 배가 되고, 거슬리는 말씀은 괴로운 마음에 씨름하다가 회개로 자신을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향한 것으로 듣지 못하면, 감동이 없습니다. 졸리기만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대체 누구에게 전하는 말씀인가요? 누구 들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 집사? 이 집사?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히 ‘주님,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들이 다 자신 안에 쏙쏙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매주일 선포되는 말씀이 자신을 향한 것으로 받는 이들에겐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집, 성령의 전인 교회에 와서는 마음을 열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마음대로, 당신의 뜻대로 역사 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주의 성령께서 맘껏 내 안에서 감동의 역사를 만들어 내시도록 순종하고 겸허하십시오. 그러면 곧 내 영이 그 성령의 역사를 감지하고 따라 갈 것입니다.
 
설교는 나를 향한 것이고, 기도와 찬송은 내가 주님께 드리는 것들입니다.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헌신함을 확신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3.
“감동”이란 히브리어는 ‘헤이르’라는 단어인데,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동을 시킨다 말은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고, 감동을 받는다는 말은 ‘일으켜 세우실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단어는 주의 뜻을 성취할 때 동시에 발생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합니다. 내용인즉,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 언제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였는데, 그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망하였습니다. 그리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어느 날, 왕명으로 칙령을 하나 내렸는데, 바벨론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45:1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하며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4)합니다. 그리곤 이어서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5b)합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1절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곤 5절에는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이들은 올라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두 구절에 모두 ‘하나님의 감동’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다른 점은 1절에서 고레스 왕은 ‘하나님이 감동시키셨고’, 5절에선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이란 것입니다. 1절은 피동사이고, 5절은 능동사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동을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일어서서 주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감동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체면 때문에, 습관 때문에, 이해관계 때문에 애써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데도, 모처럼 ‘일으켜 세우기’위해 감동을 주시는데도 일어서지 않으려는 듯이 감동을 죽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거든, 영적으로 일으켜 세우시거든 순종하여 그 감동에 반응하십시오.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주시거든 우십시오. 찬송을 부르다가 가슴이 먹먹해 지거든 멈추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거센 감동을 주시거든 꺼이꺼이 우십시오.
 
4.
그러면 하나님께선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가요? 왜 우리를 감동시키시는가요? 심심풀이로?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 사역을 위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감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으면 일군을 세우시는데, 그 일군들은 대개 하나님께 감동된 자, 성령에 감동된 자들입니다.
 
특별히 출애굽기에 보면,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감동된 이들을 통해 짓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여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출35:21)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출35:26)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출35:34) 전부 감동을 받고 일을 합니다!
 
감동을 못 받았는데 주의 일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가요? 그거야말로 기름기 없이, 윤활유 없이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기름을 치십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십시오!
 
교회는 이렇게 성령의 감동을 받는 이들에 의해 움직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신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큼을 깨닫게 되고, 이건 내가 해야 하겠다 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예배드리는 가운데, 찬송하는 가운데 ‘아, 내가 뭔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감동과 결단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어져가고 역사가 펼쳐집니다.
 
5.
하나님의 감동을 사모하며 삽시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삶은 어느 상황에서나 행복합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합니다. 성경은 약속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선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 할렐루야! 하나님의 감동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선 주시고 우리는? 받고!
 
구소련 시절에 한 농부가 하나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나님, 농사를 짓는데 농기구가 필요합니다. 농기구를 구입할 수 있도록 100만원만 주시옵소서!” 이 편지가 어떻게 해서 당시 지도자인 흐루시초프에게 전달되었답니다. 흐루시초프가 그 편지를 보고 이렇게 돈과 함께 답장을 보냈습니다. “동무, 하나님이 어디 있소? 내가 50만원을 주겠소!”
 
그걸 받아 든 농부는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다음부턴 주시려면 저에게 직접 주십시오. 흐루시초프가 절반을 떼어먹었습니다.”
 
믿음 좋은 농부입니다. 자기가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선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 그리고 자기는 그것을 받아야겠다는 의욕!
 
부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모하는 여러분에게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허락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늘 감동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주께서 감동이 홍수를 이루게 하시고, 여러분은 그에 변화되고 결단하여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중에 무엇보다 여러분의 영이 감동 받기를 바랍니다. 내 영이 감동 받으면, 내 영이 은총을 받으면 그 모든 것이 변합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 절망과 좌절, 질병과 고통, 모두 변합니다. 무엇으로? 천국으로!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현실도 변화되겠지만, 그 현실을 대하고 다루는 내가 변합니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도 나에겐 천국으로 변합니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으면 말입니다. 주의 성령에 감동을 받으면 말입니다.
 
6.
감동을 받지 못하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못 삽니다. 감동을 받지 못하면 사는 것이 힘듭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하나님께선 수시로 당신의 백성들, 특별히 당신의 역사를 위해 일으켜 세우기 원하는 이를 늘 감동시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에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가요? 나는 왜 맨날 밋밋한가요? 하나님은 왜 나만 미워하시는가요? 아닙니다. 그건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와 핑계로 그 감동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생활은 주일날 받은 그 감동을 죽이는데 쓰고 있습니다. ‘아닐 거야’ ‘에이 그럴 리 없지’ ‘에이 그렇게 살면 남들이 미쳤다고 할 거야’ ...
 
찬송 중에, 기도 중에, 말씀 묵상 중에, 이야기 중에 하나님께서 잔잔한 감동으로 말씀하시거든, 그러한 생각이 들게 하시고, 의욕을 불러일으키시거든 거기에 순종하십시오!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못이기는 체 하면서라도 순종하십시오. 감동시키시매 감동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역사,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감동 속에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는 충만 충만한 은혜의 삶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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