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11.19 목 13:03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칭찬이 있으리라”
2020년 07월 29일 (수) 11:44:15 양의섭 목사 www.cry.or.kr

(고전 4:1-5) 

1.
역사를 배울 때, 충신은 의인이요, 간신은 악인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느끼는 것은 충신 못지않게 왕에게 필요했던 것은 간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4세입니다. 당대 최고로 좋은 음식을 먹고,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다 섭취하며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들이 일찍 죽은 이유가 뭘까요?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운동 부족, 근친결혼, 보약남용과 함께 심한 스트레스를 꼽습니다. 자신의 결정에 의해 국운(國運)이 좌우될 수 있는 그 자리,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습니까!
 
엊그제 뉴스 해설을 보니 박원순 서울 시장 성추행 건에 대해 왜 대통령이 평소와 다르게 침묵하느냐고 물으니 판결나지 않은 건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충이라고 대변인이 말하더라구요. 사실일 것입니다. 자기와 반대편일 경우에는 이미 지나간 것이라도, 공소 시효가 지난 것이라도 상관하지 말고 캐내라고, 그래서 적폐로 처단하라고 했었는데, 이번엔 자기 편 사람이 그랬으니 얼마나 마음의 고충이 크시겠습니까?
 
이렇게 임기가 정해져 있는 대통령도 스트레스로 때로는 말 하라 하라 하는데도 침묵해야 살 수 있는 판인데, 임기도 없는 임금 자리는 평생 얼마나 큰 스트레스의 자리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곁에서 충신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 뭐였을까요? ‘아니 되옵니다!’였을 겁니다. 그러나 간신이 주로 하는 말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였을 것입니다. 그 외롭고도 심한 중압감, 스트레스의 현장에서 왕에게 정말 필요한 이는 누구였을까요? 충신이지만, 그러나 어떨 때는 간신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2천 년 전, ‘필로 주다에우스’라는 지혜자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친절하라. 네가 만나는 모든 이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뭘까요? 그건 서로에 대한 칭찬, 위로, 격려입니다.
 
몇 년 전 영국의 한 전화국에서 주부들을 위해 자동응답기를 개설해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부부싸움, 또는 아이들과 싸움, 가족들이 서운하게 했을 때, 등등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 자동응답기에 전화를 걸면 아주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이렇게 들려온답니다. “당신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지요?” 이런 사탕발림에 과연 넘어갈까요?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에 보면 이런 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를 칭찬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비록 사람들의 칭찬이 명백한 사탕발림일지라도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직장, 어느 공동체나 인기 있는 사람은 칭찬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칭찬이 인색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칭찬이 풍성한 사람은 늘 그 사람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서로에게 칭찬 한 마디 합시다. “당신은 나의 기쁨입니다!”
 
2.
칭찬했는데 인상 쓰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칭찬 받는 것, 이렇게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칭찬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는가요? 오늘은 그걸 한 번 찾아봅시다.
 
첫째로, 칭찬은 자기가 자기를 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外人)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 27:2)
 
칭찬 받고픈 열망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칭찬 해주지 않자, 자기라도 자기를 칭찬해야겠다 싶어,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데, 그게 바로 자화자찬(自畵自讚)입니다. 정신위생학적으론 좋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미련한 짓이라고 합니다.
 
물론, 얼마나 힘들면, 얼마나 칭찬해 주는 이가 없으면 자기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겠는가 ... 동정심이 가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런 칭찬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대신에 칭찬 받을 일을 하라고 합니다.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십시오!
 
그러려니 필요한 것이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칭찬 받을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해 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십시오!
 
둘째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기를 쓰지 말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욕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구에게는 칭찬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아쉬움이 됩니다. 내 스타일이 누구에게는 맞지만, 어떤 이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양 목사의 설교가 익숙한 우리 교우들에게는 은혜가 되지만, 처음 온 이들에게는 낯 설을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욕망이 때로는 범죄를 가져옵니다. 그것이 교만으로 나타나고, 그 욕망이 이기주의와 극도의 명예심을 불러옵니다. 자살까지! 그건 저주입니다. 100% 칭찬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고,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버리십시오!
 
셋째로, 그러기에 사람의 칭찬에만 집중하지 말라십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전 10:18)
 
주님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롬2:29절은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합니다.
 
사람에게만 칭찬 받고, 사람에게만 존경 받으려고 기를 쓰다가는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인정, 하나님의 칭찬을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단 한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면 삽니다. 누구? 자기 아내! 그러기에 출근길의 따뜻한 아내의 격려와 칭찬 한 마디가 남편으로 하여금 그 험한 경쟁 사회에서 가족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게 만듭니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기를 인정해 주는 가족을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여자도, 마찬가지!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칭찬 받지 못해도 단 한 사람에게만 제대로 칭찬 받으면 삽니다. 누구? 자기 남편! 사랑하는 이!
 
그렇다면 성도도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칭찬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도 단 한 분에게 제대로 칭찬 받고, 인정받으면 삽니다. 누구? 우리 하나님!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칭찬 받으면 상황이 어떻다 할지라도 우리는 삽니다.
 
사실 사람들의 칭찬을 의지하고 살다보면 으쓱 할 때보다 낙심될 때가 더 많습니다. 목회 초년병 시절에, 예배 끝나고 문에 서서 교우들을 배웅할 때, 교우들이 나가면서 ‘목사님, 오늘 말씀 정말 감사해요’하거나 ‘은혜 많이 받았어요’ 하면, 그날은 뿌듯한 날이었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교우들이 아무런 말없이 나가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늘은 죽 쒔구나’하는 낙심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오늘, 기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즘은 어떠냐고요? 죽을 쑤든 밥을 짓든 내 마음은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외치라고 해서 외친 것뿐입니다. 주님께서 ‘그래, 잘 했어’하시면 그것으로 저는 족합니다.”하는 심정입니다. 주님의 인정으로 족할 뿐입니다.
 
3.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 일행을 무시했습니다.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고, 교회를 개척해 준 분인데, 사이비에 현혹되어 바울 일행을 존경하고 칭찬하고 격려한 것이 아니라,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일꾼이란 말없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일하는 이입니다. 더군다나 여기서 ‘일꾼’이란 단어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노를 젓는 사람, 노예였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커다란 배들, 특별히 로마의 군함들은 거의 모두 이 배 밑창에서 노예들이 노를 저어서 움직였습니다. 그러니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일이니, 그 존재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존재한다는 것은 커다란 배가 움직임으로 알 뿐이었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일하는 이들입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이들, 이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러니 사실 얼마나 외로울까요, 얼마나 서러울까요, 얼마나 힘들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가 배 밑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어떤 이들은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고.
 
오늘 돌아가실 때 맛있는 옥수수를 드릴 것입니다. 이게 어디서 났을까요? 물론 양평에서, 충주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점심 때 식당에 갔더니 권사님 서너 분이 옥수수 900개 껍질을 벗기고 계시더라구요. 옥수수 900개, 만만한 게 아닙니다.
 
나는 옥수수가 올라왔다고, 그저 봉사부장에게 그거 쪄서 주일에 교우들에게 줍시다 하기만 했지, 그 과정의 수고로움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그저 순종하는 주의 일군들이 있기에 모두가 행복해 할 수 있는 교회 섬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이런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어야만 일을 한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만 알아주시면 되지 하는 믿음으로 섬길 때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감춰진 것들, 아무도 몰라주던 것들, 이름도 빛도 없다고 무시하던 것들, 그 모든 감춰진 것들이 주님이 오실 때 천하에 드러난답니다. 그리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답니다.
 
각 사람이란 이런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 주님의 백성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섬겼던 이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십니다.
 
4.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를 살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 41:9)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고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나를 종이라 불러주시고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어디서 나를 붙들고, 어디서 나를 불렀다구요? 땅 끝, 땅 모퉁이! 절망의 자리입니다. 절망의 자리로 내몰린 나를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싫어하시지 않으시고, 나를 부르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게다가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b)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하나님은 내가 실수했다고 나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시지 않습니다. 나에게 은사 주시고, 은혜 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그 분은 나를 기뻐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우주 만물이 주목하는 그 자리, 하나님과 천사들이 주목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를 시인하시겠답니다. 시인하신다는 말이 뭔가요? 나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모든 만물이 주목하는 그 엄숙한 자리, 그 영광스러우면서도 숨 막히는 그 최종의 결정적 심판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천하 만물 앞에서 나를 지목하시면서 묵묵히,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밑에서 충성한 내 인생을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 아침 조회를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하였습니다. 고2 때, 기독학생회 회장으로 당시 고등학생으로는 흔하지 않은 충청도 예산에서 농촌 봉사를 하고 왔다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불려나가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구요.
 
그런데 말이죠, 이게 나는 한 번도 생각난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전교생 앞에서 불려 나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단 한 번도 기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이 말씀을 묵상하며 준비하는 중에 생각이 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침 조회 정도는 댈 것도 아닌 우주 만물이, 하나님과 천군 천사가 다 주목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나를 호명하고 나를 불러내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요! 그 정도로 하나님은 나를 챙기시고, 격려하시고 세워주시기를 기뻐하신다니 더욱 힘을 내어 서로를 섬기며, 서로를 축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5.
한 때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정도로 놀라운 일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이런 칭찬을 인간에게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 낼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가 뭔가요? 인간은 이런 칭찬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은 좀처럼 남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깎아 내리려고 하지 인정하거나 칭찬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좀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야 할 사명이 주어진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찌해야할 것인가요? 칭찬함에 더욱 열심을 냅시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칭찬을 많이 하는 이가 바로 나 자신이 됩시다. 칭찬 받는 일에 열을 내기보다, 칭찬 하는 일에 더욱 힘을 씁시다. 위로와 칭찬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칭찬해주는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해 주십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의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삶이 버겁고 힘들어진 이들, 낙심하는 이들,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따뜻한 한 마디, 칭찬과 격려로 지친 이들이 더욱 삶의 의욕과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서 이와 같이 살라! 이번 주간에는 이와 같이 삽시다. 기쁨과 행복, 평화를 만드는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들로 그리 살기를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종교개혁 503주년 앞두고 ‘다시 희
온라인 예배 문화 정착하면, 교인들은
"한국교회 연합은 역사적 소명이자 필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이 왜 이래
궁여지책(窮餘之策)속에 피어난 은혜
부끄러움
멘토와 사랑방지기
제2강 합1:12-2:3 악인이 득세
제3강 하박국 2:4-8 악은 장구하
최근 올라온 기사
낙엽을 태우며
바이든의 人生
제5강 하박국 3:1-7 광채속에 감...
고구마 감사
매화틀
떡인가? 돌인가?
이게 왕중교회죠...
“예수님이 염려하십니다.”
대전환의 시대와 경험의 덫
이대로는 어렵다…자구 노력 나선 기독...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