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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홀드(Behold)!”
2020년 07월 08일 (수) 09:05:11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에스라 7:8-9)
 
    1.
    미국의 어느 목사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아들의 방을 지나가는데, 아들의 침대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평상시와 다르게 모든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웬일인가 싶었습니니다. 그런데 배게 위에 봉투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아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지금, 저는 후회와 슬픔이 가득합니다. 엄마, 아빠와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제 여자 친구와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스테이시와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합니다.
 
    그녀는 아주 멋져요. 하지만 스테이시의 피어싱과 문신, 오토바이 탈 때 입는 꽉 끼는 옷, 그리고 저보다 훨씬 많은 나이 때문에 아빠가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실 거란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에요.
 
    그녀는 우리가 정말 행복할거라고 말해요. 숲 속에 트레일러를 마련해 두었고 겨울을 날 땔감도 쌓아두었대요. 우리는 가능한 한 아기를 많이 낳고 싶어요. 스테이시는 대마초가 해롭지 않다는 걸 제게 가르쳐주었어요. 우리는 그걸 재배해서 코카인이랑 액스터시와 교환할 거예요. 그리고 과학이 발전해서 에이즈 치료법이 계발되면 스테이시가 건강해 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걱정 마세요, 아빠. 저도 이제 열다섯 살이잖아요. 제 자신 정도야 돌볼 줄 알아요. 언젠가 아빠에게 손자들을 보여드릴게요. 사랑해요. 아들 존 올림.”
 
    순간, 목사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토록 착했던 아들이 이게 웬일인가.... 그런데 편지 끝에 이런 추신이 붙어 있었습니다.
 
    “추신 : 아빠, 이거 전부 다 뻥이에요! 저는 지금 토미네 집에 있어요. 살다보면 제 책상 서랍에 있는 성적표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가 화 안 내실 때가 되면 제게 전화주세요.”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고는 야단맞을 것을 고민하던 아이가, 좋지 않은 성적표 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성적표는 잊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나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가 가라앉아야만 감사할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나쁜 일들,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합시다. 아니, 지금 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다고 절망하고 투덜대지 맙시다. 실은 그 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습니다.
 
    올 상반기는 코로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모든 삶의 평온이 깨져버렸고, 이젠 입 다물고 살라는 듯이 입마다 다 마스크로 덮여버렸습니다. 괜히 친한 척 가까이 가지 말라고 거리두기까지 해야 합니다. 참, 세상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지키고 계시며, 그 든든한 보호의 손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아무리 힘들고 암울하고 어두워도 나를 향해 높이 들린 주님의 손을 신뢰합시다. 그 든든한 손을, 여러분, 우리 다 함께 바라봅시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패망하여 포로로 끌려가 종살이 하였습니다. 무려 7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패망시킨 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려 1차로 스룹바벨의 인도로 귀환하였고, 에스라의 인도하에 2차로 아닥사스다 왕 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왕의 호의를 입어 많은 은, 금과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예물과 성물을 갖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 예루살렘에 5월 초하루에 닿았습니다. 약 5개월간의 여정이었는데, 이 길이는 880km에 해당하는 거리였습니다. 거리도 먼 거리였지만, 그 길은 위험이 도사린 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해방의 길이었지만, 더욱이 하나님께 드릴 보물을 싣고 가는 기쁨의 길이었지만, 그러나 위험이 깔려있는 길이었습니다. 당시의 치안 상태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했습니다. 이들은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하던 이들로서, 자체 방어 능력도 없고, 군사력도 없었고, 그 수까지 42,360명으로 소수였으니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보물까지 갖고 간다는 소문이 났으니 주변의 강대국들, 산적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습니다.
 
    이런 위험이 쫘악 깔린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땅으로, 하나님의 전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죽더라도 그곳에 가서 죽어야지 ...’ 하는 심정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이후 심방을 자제하고 있는데, 지난 주중에 어느 가정에 이사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 교회 어른들이 모두들 교회에 오고 싶은데 올 수가 없어서 늘 그리움에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교회에 누가 나왔는지 카메라로 예배실을 좀 보여달라고 하신다기에 이번 주일부터 카메라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른들이 교회에 대한 큰 그리움 속에 영상예배에 참여했다가 담임목사인 제가 강단에 서면 많은 분들이 울컥한답니다. 그렇게 그리운 것이 교회입니다. 얼마나 오고 싶으시겠습니까? 게다가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니 마음은 이미 이 성전에 와 눌러 앉아계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에, 가다가 죽어도 가야겠다고, 길에 무수한 위험이 깔려있고,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결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곤 어찌 되었습니까? 그 위험한 길들을 무사히 다 지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9절,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입었습니까?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에스라8: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가 어떤 구체적 위협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무슨 위기가 어떻게 닥쳤는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피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무슨 질병이 돌았는데, 어떻게 기도해서 놀랍게 다 치료받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모래 폭풍이 몰아쳐서 갈 방향을 잃었는데, 놀랍게도 하늘이 열려 그 길을 따라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은 그 와중에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고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무슨 조그만 위협거리라도 만나야 도우심을 얻었다고 말할 것인데,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도우심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가요?
 
    3.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무슨 일을 당해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은 내가 아팠다 고침 받아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다.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면 더욱 큰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한 번도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살았다면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면 놀라운 보호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사야 26:11절,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하나님은 나를 향해 손을 높이 들고 돌보시고, 축복하십니다. 그것도 매우 열성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다. 자기 잘나서 잘 사는 줄 압니다. 자기가 똑똑해서, 자기 팔자가 좋아서 잘 나가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패한 뒤에야, 위기에 빠진 뒤에야 눈을 들어 하나님의 열성을 바라봅니다.
 
    보십시오! 잘 나갈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을 보십시오. 나를 돕기 위해 높이 들린 그 든든한 손을 보십시오. 보지 않으면 나중에 심히 부끄러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나를 향해, 여기 좀 봐라 하시는 하나님의 열성을 보라 하십니다. 그리곤 당당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답게 그리 살라십니다.
 
    야곱은 불안한 마음으로 형 에서를 만나러 가다가 도중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땅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호위하고 간다는 뜻입니다.(창32:1-2)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자기 혼자였습니다. 두려움속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는 마하나임, 그 군대가 자기를 감싸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곤 용기를 얻습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토착민들과 전쟁을 앞두고 불안해 할 때, 마하나임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납니다.(수5:14) 구약 성경 곳곳에서 여호와의 군대가 성도를 감싸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이 군대를 본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찬송이 나오고, 못 본 사람은 ‘이를 어찌할꼬, 이를 어쩔까...’ 전전긍긍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음을 기억하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미국 사람들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사, ‘굳 바이’(Good bye)는 사실 ‘God be with you.’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그 은총의 손길에 감사를 표하지 못하십니까? 왜 마치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것 같이 말하는가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그리고 노래하십시오. 평안함이 깃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합시다!
 
    전에는 바닷가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 매우 감상적인 기분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하며 사춘기 감상에 젖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바닷가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보다도 ‘파도야 무섭단 말이다’부터 나옵니다. 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난 뒤로부터 생긴 감정입니다.
 
    시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지 않으셨다면, 밀려오는 파도들은 언제 나의 모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세상의 쓰나미들이 나의 삶을 이미 황폐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지키시기 위해 그 모든 악한 것들의 경계를 정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2-3)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설령 물속을 지나고 위태롭게 강을 건너고, 불 한 가운데로 지나는 것 같은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더라도, 그것들은 다 종이 호랑이, 그것들은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왜? 내가 너를 해치지 못하도록 경계를 그어놨고, 그것들을 꽈악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믿습니까?
 
    4.
    2020년 상반기 내내, 우리들은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손길을! 이 불안하고 뒤숭숭한 세상에서, 이 처음 경험하는 사회 현실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생명싸개로 싸매시고 지키심을 보았습니다. 모두들 어렵다 어렵다 함에도 우리는 나름대로 감사와 감격 속에 교회를 지켜가게 하시는 그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도 여전한 그 분의 은총의 손길이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거듭거듭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나와 우리와 우리 교회에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작년까지 매 주일예배 마칠 때마다 축복의 말씀으로 이 말씀 받은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18:15)
 
    이 말씀을 영어 성경으로 읽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Behold, I am with you and will keep you wherever you go, and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for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that of which I have spoken to you.”
 
    이 말씀에 독특한 한 단어가 눈에 띕니다. 우리 한글 성경엔 없는데, 영어 성경을 보면 서두에 ‘Behold’, 즉 ‘보라!’란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 성경만 그런가 싶어서 히브리어 원어 성경까지 보았는데 역시 같은 의미의 ‘히네’, ‘바라보라’고 하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비홀드(Behold)! 보라고 권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축복할테니 자, 보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온통 감싸고 있는 주님의 선한 손을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으라는 것입니다. 일이 생기고 시달리다 고침 받아야만 그 때에야 은혜 받았다 하지 말고 평강의 삶을 주시는 하나님께 주목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현실보다 그 뒤의 높이 들린, 나를 위해 손을 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곤 미소 지으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0년 남은 세월, 나를 돕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바라보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복된 세월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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