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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며”
2020년 06월 17일 (수) 18:30:1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이사야 40:27-31)
 
 
   1.
    “혹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줍지 않으셨나요? 틀림없이 엊저녁에 그 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 한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뇨. 하지만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전화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지배인은 직원을 동원하여 극장 안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샅샅이 뒤지다보니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얼마 뒤, 지배인이 돌아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부인, 기뻐하세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 여인은 지배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간 사이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여인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기도를 해 놓고는 기다릴 줄 모릅니다. 또는 급한 마음에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데 가서 헤맵니다.
 
    2.
    시77편을 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내용의 탄원시가 보입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77;1-2)
 
   이 사람에게 상당한 어려움, 큰 고통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자신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 기대하며 부르짖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그래서 밤새 부르짖습니다.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어설픈 위로는 거절하며 철저히 철야기도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함에도 왠지 불안합니다. 이렇게 계속 고백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들려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한숨을 짓습니다. 주님 생각에 골몰하면서, 내 기운은 쇠약하여 갑니다. 주께서 나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시니, 내가 지쳐서 말할 힘도 없습니다.”(3-4,표준새번역)
 
    심지어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도하는 이 사람의 마음 상태가 이렇습니다. 시77:6-9절,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무슨 소린가요? ‘주께서 나를 버리셨나? 이젠 은혜를 안 베푸시려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이제 끝났나? 은혜 베푸시겠다는 약속은 취소하셨나? 혹시 잊으셨나? 아니면, 너무 화가 나셔서 나에게 실망하셔서 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시는 건가?’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초조해 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에 자기 스스로 상상의 슬픈 소설을 쓰는 모습입니다. 그리곤 급기야 이런 심정이 됩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사49:14)
 
   어렵고 큰 환난이 있어서 그토록 기도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고,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나 보다 할 정도의 느낌이 듭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문자를 보내고, 카톡을 보냈는데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혼자 끙끙 앓습니다. ‘이젠 나를 싫어하나? 변했나? 왜 대답이 없나? 왜 카톡을 씹나 ...’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위인들의 가장 큰 아픔과 고통도 이와 비슷한 경우들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구하며, 부르짖고 부르짖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뭔가 커다란 벽에 부딪혀 자기의 부르짖음은 단순히 자신에게 메아리쳐 올 뿐,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부르짖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실 때, 그 때가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3.
    그런데 말이죠, 놀랍게도 힘들고 답답하고 외로운 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야곱’, ‘이스라엘’ 은 동일인의 이름들인데,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은 다 불러주어, 친밀함과 더불어 답답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한탄하는 나를 향해 ‘야, 양 목사야, 야, 의섭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뭐가 그리 답답해서 나를 이렇게까지 부르시는가요? “어찌하여 너는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왜 너는 그렇게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으셨다고 한탄하며 절망하며 슬퍼하는 백성들이 도리어 답답하시다는 것입니다. 너 왜 그리 쉽게 절망하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주저앉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갖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도무지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주여!”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러셨답니다. “야, 이놈아, 좀 조용히 해라. 네가 헝클어뜨리고 꼬아놓은 것들을 풀 동안엔 말이다.”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나? 하나님께서 변하셨나봐?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젠 하나님께서 나를 아예 무관심으로 대해주실 건가? ...’ 별의별 아프고도 서러운 생각이 다 듭니다.
 
    그 때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시는가요? 정말 나를 버리셨는가요? 도리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너는 어째서 내가 너를 버렸다고, 내가 너에게 무관심해졌다고 탄식하느냐?” 도리어 하나님께서 답답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하시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부모가 어찌 자기 자식을 잊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무응답이라고 절망하는 우리를 보고 답답하시다는 것입니다. 그 무응답이라고 여기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향해 일하고 계시며, 역사를 이끌고 계시는 데 말입니다. 때가 되면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우물가에서 숭늉을 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를 잉태하였으면 열 달은 기다려야지 왜 당장 안 나오느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요?
 
    기다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기다려야 할 게 있습니다. 절차가 필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엔 뭔가가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 보여도 기다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데 순서가 있습니다.
 
    4.
    그래서 하나님께선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않는 이는 소년이라도 장정이라도, 즉 육신적으로 강건하고 건장해도 마침내 피곤하며 곤비하며 넘어지고 쓰러지되, 어쩌면 비실비실하고 약골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아직도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침묵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살아계시니,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하며 하나님을 끝까지 기대는 자는 매일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새 힘을 얻을 것이고, 마침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고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앙망’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카와’라고 하는 히브리어입니다. ‘기다리다, 기대하다 wait, look for, 바라다, 소망하다 hope’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결정적으로 행동하실 것을 확실하게 소망하며 끈기 있게 참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꾸준한 인내의 기다림으로 위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마침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듯이 올라갈 것입니다.
 
    5.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 이 거대한 쇳덩어리가 도대체 어떻게 날아오르는 걸까? 덩치가 크기에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아 날아오르기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육상선수들을 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요? 비행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 거대한 공기 저항이 도리어 자신의 거대한 몸을 붕 띄우고, 떠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트엔진의 힘, 추진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그 거대한 쇳덩어리를 받쳐주는 것이 공기의 힘입니다. 그런데 이 공기의 힘은 사실 공기의 저항이었습니다. 뜨기 전까지는 사실 공기의 저항은 앞으로 못 나가게 하는 어려움, 박해,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자신을 공중에 띄워줍니다. 받쳐주는 힘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공기 저항을 이용하여 위로 날아오르려면 꼭 필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비행기는 반드시 머리를 하늘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기수를 땅으로 향하면 땅으로 내리꽂히고, 수평으로 하면 자동차 달리듯 치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추진력이 붙고, 저항이 심해질 때 머리를 위로, 하늘로 향하면 어느 순간 그 거대한 쇳덩어리 비행기는 하늘로 쑹 날아오릅니다.
 
    삶의 저항, 삶의 고통이 때로는 나를 위로 올려 보내는 계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기도할 때 마침내 붕 떠오를 것입니다.
 
    6.
   큰 어려움이 생겨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부르짖으라는 말씀을 듣고 더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제 이만큼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사태는 더욱 더 심각해지고, 힘든 일은 더욱 더 힘들어지고, 아픈 것은 더 아프고, ... 급기야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는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외면하셨는가? 어째서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가? 어찌하여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시나? 왜 하나님은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셨는가? 억울하고 슬픈 것은 일도 일이고,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렇게 속 타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침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서운해 하고, 왜 무너지는 소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너를 위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속상하게시리 왜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낙심 되려고 할 때, 그래도 그 때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마음이 너무 아파 주저앉고 싶을 때에,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앙망하고 바라볼 때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나를 떠받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갈 것 같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안 올 때, 마음이 낙심이 되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게 새 힘이요, 그것은 하나님을 앙망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목표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바라보게 하시고, 바라보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어 버티게 하시고, 마침내 그곳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 때, 날아오를 그 때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안 돼요, 못해요 하던 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날아오를 그 때가 우리의 믿음의 역사에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걸 어쩌나 이걸 어쩌나 하던 내 앞을 가로막던 그 모든 눈물덩어리들, 고난 덩어리들이 도리어 나를 날아오르도록 하는 그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앙망하며, 도우시는 성령님을 앙망하며, 새 힘을 얻어 우리 가야 할 길을 갑시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큰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것도 하나님을 끝까지 앙망할 때, 도리어 한 차원 올라설 수 있는, 날아오를 수 있는 역사로 열매 맺을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앙망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침내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시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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