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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나훔 2: 1-13 니느웨에 임할 재앙
2020년 06월 05일 (금) 08:57:29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여러분 산에 올라가 보신 적 있나요 산에 올라가신 적이 있나요 올라갈 때가 어려워요 내려올 때가 어려워요 내려갈 때가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할 때는 내려올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리 힘이 없거나 다리가 아프거나 산에 갈 때 조심해야 되는 것은 내려올 때 무릎에 체중의 하중이 걸린다고 하지요
 
그리고 꼭데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때면 마음이 약간 풀리거든요 안심하게 되고 인생 사는 것도 마찬가지여요 올라갈 때 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올라가지요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 올 날도 있어야하거든 거기에 머물 수 없지 않아요
 
산의 경우는 그렇지만 인생의 경우는 올라가서 거기 머물고 싶지 않아요 그게 문제이지요 그런데 머물수가 없어요 왜 그 꼭데기라고 하는 자리는 정상의 자리는 좁아요 좁지 않아요 바람도 많이 불어요
 
그러니까 그 좁은 자리에 올라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뒷사람을 위해서 자리를 내 주어야 하고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속상해지고 인생이 잘 사는 것이 아니지요
 
인생을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잘 올라가는 중요하지만 잘 내려 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생의 과정이지 젊음이 아름답지만 젊음만 아름답다고 하면 안 되거든요 하나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였기 때문에 젊음의 정점을 찍고 내려 올 때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도 그렇고 역사 국가를 보더라도 정점을 찍은 국가들은 그 다음에 쇠망의 길로 접어들고 합니다 역사 속에 형성된 모든 제국은 다 무너졌어요 가장 화려한 문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다 무너집니다
 
이것이 역사의 엄중함이기도한데요 우리는 늘 겸허하게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섭리하고 지배하고 계신 분이 계심을 인정해야 하는데 내 힘이 커지면 그것을 인정하기 어려워요
 
이것은 종교인들도 똑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많아지고 나의 영향력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전능자가 된 것 같은 느낌 속에 들어가기가 쉬어요
 
제가 가끔하는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러분 마르린 몬노 사진 가운데 유명한 사진이 있지요 지하철을 타는데 거기에서 바람이 올라오니까 치마를 내리지 않아요 부풀려고 하는 마음을 자꾸 내려야 돼 자꾸 부프려 오르려는 내 마음을 이렇게 누르지 않으면 수치를 겪도록 되어 있어요 역사가 그럽니다
 
우리가 지금 나훔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나훔서는 니느웨에 대한 심판 이야기이지요 앗수르의 소도인 니으웨에 대한 심판 이야기인데 주전 7세기 8세기 가장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 내었던 앗수르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보여주는 게 나훔서이거든요
오늘 공부할 내용은 나훔서 2장 1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지금 니느웨의 멸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니느웨에게 파괴하는 자가 임할 것이다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파괴하는 자를 영어로는 스케더라고 말하는데 전쟁을 통해서 그들을 침으로서 그들을 깨트려서 이산되게 하는 파괴하는 자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파괴하는 자는 바벨론과 메데 연합군을 뜻합니다
 
1절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 지어다
 
파괴하는 자가 와 이렇게 허리를 굳게하고 해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서 그 침입해 오는 사람에게 힘 있게 맞서봐 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요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을 해 놓고 있습니다
 
해 보려므나 너는 산성을 지켜 보려무나 너희 길을 파수하여 보려므로 네 허리를 견고하게 해 보려무나 이렇게 번역을 해 놓고 있습니다 그 말속에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렇지요 그런 뉘앙스입니다
 
개역 성경 번역을 보면 누군가를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뉘앙스는 격려가 아니라 해 봐야 소용이 없어 그런 이야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렇게 제 아무리 힘을 써 봐도 이 심판을 하나님으로부터 수행되는 물론 하나님은 바벨론이나 메데 연합군을 들어서 앗수르를 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군사력으로 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도구로 치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아무리 존귀하다 해도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말을 하고 있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 영광 같게 하시리니
뜸금 없는 이야기인데요 야곱 혹은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앗시리아라는 나라에 의해서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억압자 이들이 억압자인데 이들을 치러 지금 군대가 와요 여기 바벨론 메데 연합군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여기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파괴하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야 말로 파괴하는 자였어요 파괴하는 자가 파괴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 앗시리아가 파괴를 당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억압과 관련이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야곱과 이스라엘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과 같게 하시나니 이스라엘의 영광과 야곱의 영광이 서로 꾸며 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의 영광을 회복시킨다 중요한 것은 회복이라는 단어이지요
 
구지 구별을 해 보자면 우리가 얍복강 사건을 잘 알고 있는데 외삼촌 라반과 불편하게 헤어졌다가 나중에 화해를 합니다 야곱이 돌아옵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인간적 방책을 세웁니다
창세기 32장 7절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자기 재산을 반을 나누어 앞서 보내고 뒤로 보내고 자기는 얍복강 나루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존재가 나타나서 그를 붙잡고 씨름합니다 성경은 그 사람과 씨름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32장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과 씨름을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25절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집니다 대 퇴골이 됩니다 축복하기 전에 놓아 주지 않습니다
26절 그라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겟나이다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27절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야곱의 뜻은 발 뒤굼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지요 지금부터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28절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야곱의 삶은 얍복강 가에서 무너졌지요 야곱은 더 이상 자기의 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야곱의 복이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회복되게 될 것이다 이야기 해서 이전 상황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가장 불행했던 시기가 오히려 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어요 회복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절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하였음이라
절망의 심연입니다 약탈자들에 의해 약탈 당합니다 포도나무로 상징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절하게 괴멸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어쩼던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슬그머니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보면 이후에 멸망의 날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3-4절 나오는 이야기는 강렬한 전사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슨 색깔을 제일 좋아해요? 저는 보라색이어요 어렸을 때 사람들이 정신이 안 좋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좋아하면 안 된다고 보니까 보라색이 좋더라고요
 
좋게 해석하자면 하늘과 땅의 색깔이 붉은 색과 푸른색이거든요 동양 식으로 이야기하면 하늘이 붉은 것이어요 땅이 푸른 것이고 이 음양 이치로 보자면 그렇게 본단말이어요 하늘과 땅이 합쳐진 색깔이 보라색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사순절이나 대림절이 되면 목사님들 보라색이 스올을 하지요 보라색이라는 것이 참회의 색깔이기도 하지만 나를 정결하게 합니다 하는 정결한 색깔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그러니까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괜찮은 것 같아요
 
보면 붉은 색 좋아하는 분들이 있지요 붉은 색이 가장 강렬하게 내게 다가온 것 중에 하나는 엣날에 영화 가운데 붉은 수수밭 밭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붉은 게 막 넘쳐요 그런 느낌들 그리고 홍위병들 중국의 문화 혁명 시절에 홍위병들이 붉은 색깔 사람을 흥분 시키는 색깔이지 않어요
 
그래서 전투에서도 붉은 색을 사용한 것 같아요
3절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 도다
 
이 앗시리아를 치기 위해 오는 군대 그 군대의 모습을 이렇게 형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붉은 빛으로 마치 쇠로 만든 병거의 쇠가 반짝인다 노송 나무로 만든 창이 번쩍 번쩍하고 햇빛에 항오를 벌여서 군대가 탁 진을 형성해 가지고 지금 오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병거가 달리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미친듯이 달리며
4절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이 느낌이 무엇이냐 하면 압도적인 앞에서 거칠 것이 없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앗수르 군대의 모습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들을 치기 위해 나선 하나님의 심판을 나훔은 이렇게 형상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앗수르가 멸망하게 된것이 주전 612년이거든요 그 때 이 전투의 광경이 등장했음이 분명합니다
 
5절에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나옵니다
5절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려 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더라
 
그가 누구 인지 알기 어려워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앗시리아의 수비군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고 바벨론의 공격군을 이야기 할 것이다 서로 헷갈립니다
 
정확하게 무엇이다고 하는 것이 어렵기는 한데 여기에서 존귀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정예군을 뜻해요 정예 군병들 그들을 파견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대게 이렇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정예군들으로 하여금 앗시리아의 도성을 치기 위해 달려가게 만드는 것이어요 그리고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성에서 공격해 오는 화살을 막기 위한 방어벽을 치고 바로 그 이야기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공격하는 이들이 성으로 달려가서 성으로부터 날라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서 방어진지를 탁 구축해 놓은 그 모양을 5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6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앗시리아라고 하는 나라는 티그리스 강 가에 있는데 강물이 흘러가지요 모든 도시들이 그렇습니다마는 강도 있고 성이 있으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여기에 성이야 여기는 곽이야 성과 곽 사이에 무엇을 하느냐 하면 해자
 
해자는 웅덩이 쳐럼 파 가지고 채워 넣은 곳 물이 있으면 즉각 성에 들어가기 어려워 이 성에 들어갈 때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 들었다 났다 그 생각나지요 그러니까 이 니느웨를 거쳐가고 있는 강들이 있고 그 다음에 해자도 있고 그런데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라고 합니까?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그리스 역사가인 디오도스라는 사람은 니느웨가 성읍 양족으로 강물이 불어나서 성벽이 무너졌다고 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1세기 후반의 역사가이기 때문에 몇 백년전에 일어난 일을 눈으로 보듯 서술했을 이는 없고 누군가의 자료에 의지했을 터인데 니느웨의 멸망을 물이 불어나고 있어서 성이 무너진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기에 이 나훔서의 이야기하고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무엇이냐 하면 성곽이 있고 성이 있고 해자까지 있지만 인간으로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할 때는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이 그들을 멸망 시키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7절 정한 대로 왕후가벌거벗은 몸으로 끌러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 도다
 
여기서 왕후가 끌려간다고 하는 것은 니느웨의 왕의 왕비가 끌려가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 왕후는 앗시리아 사람들이 섬기던 있었던 여신 아스다롯을 상징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고대 세계의 전쟁은 신들의 싸움인데 신들이 탈취당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 신들을 숭배하고 있던 사람들이 슬피 우는 이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왕후가 끌려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들이 적나나하게 벌겨 벗기는 그 날이 온다 온다
 
니느웨의 참상을 8절부터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8절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하나 돌아 보는 자가 없도다
 
모든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물가에서 이루어지지요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인간의 몸의 70% 이상이 물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물 없이는 사람이 살수가 없었는데 물가에 있었는데 니느웨가 물이 모인 옷 같더니 물이 모여드는 것처럼 니느웨에게 부가 집중 되었음을 나타내는 세상에 중심이 되는 것 처럼 보였다
 
주변 세계가 풍요로움이 있는 것 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 물이 오히려 니느웨를 치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흩어지는 것이어요 그래 서라 서라 하고 외쳐 보지만 돌아서는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노략군이 이릅니다
 
9절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그 나라가 성이 무너지고 노략군이 당도해 가지고 집집마다 뒤지면서 고귀한 것을 빼앗아가고 이 상황을 이야기한 다음에
 
10절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픞이 서로 부딪치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이 10절은 히브리어 원어로 보자고 한다면 단어가 반복되고 있어요 황량 황폐 폐허 그렇게 여러 서술어를 붙이지 않고 단어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량 황폐 폐허 이야기 하는 데 부카 머부카 머불라카 바임이 있어요 무엇인가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풍부했던 파괴됨으로서 파괴가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이런 언어 놀이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어요 굉장히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니느웨가 서술적으로 말했지만 황량 황폐 폐허 니느웨 상황이어요
완전히 다 된 것이어요 그렇게 되자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치며 무엇인지 알겠지요 무릎이 웨 부딪쳐요 덜덜 떠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허리가 아프게 되며 허리가 어떤 때 아프지요 긴장하고 허리가 아프고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이 가득 고인 물처럼 풍요롭게 이를데 없던 니느웨게 마치 마게가 빠져나가지고 물이 빠져 나간 것 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되고 노략군들이 이르러 다 빼앗아 가고 그래서 황량 황폐 폐허가 그 속에 있고 거기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낙담하고 서 있을 힘 조차 사라지고 그 상활이 여기에 언급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11절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의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왜 갑자기 사자를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앗시리아는 자기들이 사자라고 했어요 숫 사자로 세상의 것을 다 움켜쥐는 사자의 용맹함을 자기 민족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어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 합니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황량 황폐 폐허로 변하고 나니까 사자의 굴이 무너진 것이어요
그리고 젊은 사자가 먹을 것이 어디 있느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거기서 두려워 할 것이 없었으며
 
이 사자는 두려울 것이 없지요 그런데 그러니까 활보하는 것이지요 마치 포식 동물들을 언제나 귀를 쫓긋하고 포식자가 다가온 것을 보아야 하는데 이 사자들은 아주 눈치 안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물가에 배 깔고 엎드려 가지고 쉬기도 하고 그러면 초식 동물들은 주츰 주츰하면 다가가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요
 
마치 무엇인가 하면 요즈음 이제 여성들의 권익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마는 남성들이 알지 못하는 공포가 있어요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공포가 있습니다 전에 밤에 어디를 갈 때 부득히 어두운 길을 가는데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앞에 가는 저 여성은 뒤에 들리는 발자국은 정말 공포스럽겠다
 
남자들은 의식 안하고 지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성들은 공포스러워요
그러니까 부득히 나도 그 길로 가야돼 두 가지를 취해요 저는 무엇이냐 하면 한참 기다려서 그 분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 가던지 하나는 실례합니다 앞서 가겠습니다 말을 하고 앞서 갑니다
 
정말 남성들이 느낄 수 없는 공포 같은 것들이 여성들에게 있어요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남성들이 예민하게 느껴야 해요 사자가 제 마음대로 처신을 했어요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고 지금은 그런 상황이었어요
 
12절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두렵게 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해요 아까 파괴하던 자들이 파괴를 당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이 축적했던 것들이 누구 차지가 됩니까?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된 것이지요
 
이것이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고 내려 올지 몰랐던 오만하고 포악했던 문명이다고 합니다
13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력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나이다
 
여러분 이게 경정적인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만군의 여호와라고 이야기 할 때 이 만군의 여호와는 항상 이 단어는 법궤와 관련이 됩니다
 
전쟁에 나갈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모시고 간다는 의미에서 법궤를 모시고 가지요 그것이 만군의 여호와여요 하나님 살아 계심을 알지 못하고 오만한 세력에 대해서 하나님은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합니다
 
병거를 자랑하던 그들 젊은 사자처럼 찢던 그 용사들 거두어 드린 모든 노략물들이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식민지에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무엇이어요 파견자들 사신들을 보내어서 공포를 뿌리고 다녔어 다시는 그렇게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망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시편 27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 이야기는 무엇이지요 두려워하지 않는다 데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나는 무서워 하지 않는다
 
2절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을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든든함이 이런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우리 집에 액자가 하나 있는데 그 액자는 그 분이 진자 쓰신 것 진품이면 좋겠지만 진품이 아닌 복제품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것이어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살해당하기 얼마 전에 쓰신 것이어요 그 분이 성경 구절을 쓰셨어요 로마서 8장 31절입니다 백범 선생님이 당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말씀입니다
 
그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때 성경을 가지고 써요 만일 하나님이 아등을 위하시면 아등은 우리를 뜻한 것이어요 수가 능히 아등을 대적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수가 능히 아들을 대적하리요 수는 무리수입니다 이 말속에 나는 하나님이 내 편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8장에서 이 세상에서 어떤 것 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다 이런 든든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나라로 보이지만 그 나라들이 오만에 빠져 있을 때 그 오만함은 하나님은 무엇을 당신의 맞서는 것으로 보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맞서는 모든 문명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고 그들이 자랑하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오히려 자랑거리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그들을 치시는 것이지요
 
물이 모이는 것 같은 니느웨 자기를 완전하게 지켜 준다고 생각했던 강과 해자 같은 것들이 그들의 문명의 토대를 허물고 그들을 망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니이 하시는 일이라고 나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 고대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어요
누가 나를 치겠어 누가 나를 맞설 수 있겠더 내가 이만큼 섰는데 든든하게 섰다고 하는 그 때가 무너지는 때입니다
 
나훔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만해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내가 내려올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올라가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라 내가 주어진 모든 때는 하나님의 현존의 경험하는 때로 바꾸어 갈 줄 아는 것이 인생이 가장 곤고한 때에 지속되는 것을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라 우리들이 잘 사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잘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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