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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기에 살겠느냐?”
2020년 06월 05일 (금) 08:29:16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에스겔 37:1-14) 

 
 1.
  오늘은 한국교회가 예배 회복의 날로 정하고 준비해 오던 주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진정될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가 이태원 클럽 건으로 다시 확산되어 곳곳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동구는 직격탄을 맞은 것 같이 집중적으로 성수동, 금호동, 옥수동, 행당동, 하왕십리동에 확산세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학교도 개학을 연기했고, 정부에서도 간곡히 부탁을 하고, 동네 주민들도 매우 불안해하여, 우리 교회는 예배 회복의 날을 연기했습니다.

 실은 믿음으로 강행하려고 현수막까지 준비 완료하여 금요일 오전에 교회 외부에 부착을 했더니 동네 주민들이 불안한지 몇 분들이 이게 뭐냐고 물어오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당회 의논을 통해 연기를 결정하였습니다. 우리야 뭐 믿음이 있으니 별 일 없겠지만, 동네 주민들은 실상 얼마나 두렵고 염려되겠는가? 그들을 위해 교회가 양보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주일 예배가 제대로 회복이 안 되면 장차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 신앙은 함께 만나 손을 잡고 한 마음, 한 영으로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것, 즉 성령의 교통하심과 성도의 교제 속에 그 건강함을 유지하는데, 계속 모이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심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선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령과 성도의 교제로 힘을 얻고 흩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코로나 이전으로의 회복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목회자인 나부터도 새벽기도, 금요밤기도회, 주일 오후 찬양예배 안 드리고, 심방도 못하고, 더욱이 병원 심방은 생각도 못하고, 각종 회의와 만남도 ‘아, 코로나 때문에 안 됩니다’하면 다 통하고, ‘코로나가 잠잠해진 다음에 만납시다’하면 만사 오케이 이다 보니 점점 몸이 편안함 속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러니 일반 교우들이야 오죽 더하겠습니까?

 교회들은 큰 위기 상황 속에 들어갈 것이며, 더 나아가 나라와 직장의 형편도 마찬가지,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져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경제 불황을 넘어서 공황 상태가 올 것이라고 까지 합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2.
  이런 착잡한 마음속에 오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에스겔,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여 강하게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해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이었는데 신흥강대국 바벨론의 2차 유다 침공 때 1만 여명의 인질 속에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간 지 5년 뒤, 그발 강가의 델아빕에서 선지자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지만,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고국의 동포들에게 회개하라고, 그래야 산다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고 목이 쉬도록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도 결코 그들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고, 회개 하면 산다고 목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33:11)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지만, 끝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고집대로 살다가 마침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겔33:21)

  조국이 완전 무너진 것입니다.
  그나마 아직은 예루살렘 성전이 남아 있다고 그거 의지하고 소망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예루살렘 성전마저 파괴된 것입니다. 이에 모두들 이젠 끝났다고 절망합니다. 그 상실감이 어느 정도인지 오늘 37장이 이렇게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 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겔37:1-2)

  하나님께서 그를 어느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는데, 보니 그 골짜기에 뼈가 가득했단다. 널려진 뼈들 사이를 지나가게 하시는데, 자세히 보니 뼈들이 아주 말랐습니다.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백골’(白骨)이 된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자기들의 처지, 자기 조국의 처지, 자기 민족의 처지가 지금 그런 형편이란 것입니다.
  희망은 무슨 놈의 희망, 이제 다 끝났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절대절망의 형편이었습니다.
 
  3.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물으십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3)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왜 묻는 걸까요? ‘네가 보기에 이 뼈들이 살겠느냐?’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뭐 하러 물으시겠는가? 척 보아도 살기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틀린 것입니다.

  전주에 사는 어떤 사업가가 교회에 나와 등록을 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 인사하는 중, 어떻게 교회 나오게 됐느냐 물었더니 자기의 사연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는 작은 회사의 사장으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무진 고생하며 달려와 회사는 나름대로 안정되었답니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했는데, 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이제 살만 하니 암이라니...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부터 주위의 가족, 친구, 아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며 ‘암 이래, 에구 불쌍해라. 얼마 못 살겠네...’하는 것 같더랍니다.
어딜 가도 다 그런 시선이 느껴지더랍니다. 모두 자기를 향해 ‘곧 죽을 놈 죽을 놈’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더니 ‘살 놈!’이라고 하더랍니다.
갑자기 그 말이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아, 이 사람은 뭘 보고 나에게 죽을 놈이 아닌 살 놈이라 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겨서 따라갔더니 이 교회로 들어가더랍니다. 즉 그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고, 목사님이 자기 보고 ‘살 놈’이라고 했으니 자신은 살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 뒤로 놀랍게도 자기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여 등록했답니다.

  목사님이 정말 그를 보고 ‘살 놈’이라고 했을까요?
목사님은 ‘샬롬!’이라고 인사 한 것뿐인데 그가 그렇게 성령의 감동 속에 ‘살 놈’이라고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뭔가요? 사람이 보는 눈이 있고, 하나님께서 보는 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묻습니다.
  ‘네가 보기에 말이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 다시 말해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하나님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절망하고 울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에스겔은 뭐라고 대답을 하는가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맞다! 내가 보기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주님이 왜 이렇게 물어보실까...?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보기에는 죽을 놈이지만, 아니 죽어 백골이 된 상태이지만, 그렇게 묻는 분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하고자 하실 때는 그 어떠한 것도 다 이루시는 분이시니 ... 그 분이 물으실 때, 사실 내 의견은, 내 감정은, 내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뻔한 상식이요, 미천한 과학지식이요, 좁고 좁은 세상의 한계일 뿐이다.

  어떤 분이 암이 전신에 퍼졌습니다. 병원에선 이미 말기, 준비하랍니다. 그러나 그 분을 너무 존경했기에 작심을 하고 하나님께 매어달린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온통 절망의 암흑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새벽에 기도하는데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께서 바늘 구멍만한 가녀린 빛을 보여주시며 물으십니다.

  ‘전신에 암이 퍼졌다. 그런데 말이다, 그 몸에 건강한 세포 하나만 남았다고 치자. 자, 네가 보기에 이 사람이 살겠냐, 죽겠냐?’
창조주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보기에 살겠느냐?’ 왜 이 질문에 자기 스스로 함정을 파는가? 왜 자기 스스로 울타리를 치는가? 왜 자기가 안 된다고, 안 될 거라고 아는 체 하는가?

  신앙은 말이죠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내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4.
  이 믿음을 에스겔이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4-6)

  이게 될까요?
  말은 이렇게 하는데, 이게 상식일까? 미친 거 아닐까? 선지자의 힘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의 상식, 자기의 지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그 골짜기, 백골이 널려있는 그 골짜기를 향해 외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어떤 사람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요?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37:7-8)

  뼈들이 움직입니다. 서로 이어지더니 힘줄이 생기고, 그것을 감싸주는 살이 오르고, 그 모든 것을 보호해주는 피부가 덮인다! 형태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태가 이루어졌습니다! 아쉬운 것은 생기가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9-10)

  생기가 불어오자 마침내 완성됩니다. 마치 화룡점정(畵龍點睛)입니다. 이 생기는 과연 뭘까요?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겔37:14a)

  하나님의 영, 성령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1-2),

  바로 그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영, 창조의 영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영이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루십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우리나라가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워도, 우리 회사가 힘들고 침체되어도, 우리교회가 전 같지 않고 어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영, 성령이 불기 시작하면 ‘네가 보기에 살겠느냐?’하실 정도로 내가 보기에 힘들어 보여도 하나님의 역사는 창조와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 납니다.

  비결은요?
  하나님은 내게 믿음을 요구하셨고, 나는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했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선포하라 하셨고, 나는 미친 사람 같지만, 무식한 사람 같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에 대고 하나님의 희망을 선포했고, 그러자 하나님의 영,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영이 불어오더니 강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의 영, 성령에 충만하라! 역사와 권세가 충만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어림도 없어 하는 것들이 놀랍게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렇게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포만 해 준다면, 주의 사자들이 내 삶에 축복만 해 준다면 그리 될 것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면,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위를 축복하고 대언을 하면 이 사회가, 내 가정이 살 것입니다. 내 직장이 더욱 든든히 서가고 번영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대언하는 사람들, 여러분들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백골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고 합니다. 백골이 되더라도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 백골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선포합시다. 희망을 선포합시다. 이것저것 계산해 보고 잘난 체 하며 안 돼 안 돼, 못해 못해 하지 말고, 샬롬을 선포합시다. 그러면 살 놈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5.
  우리의 상황, 뭐 새삼스레 이것저것 따지며 많이 안다는 듯이 사회의 문제, 정치의 문제, 경제의 문제, 교육과 국방의 문제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총체적으로 어렵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네가 보기엔 어떠냐? 네 나라가 살겠느냐? 네 회사가, 네 가게가 살겠느냐? 네가 보기에 말이다, 네 가정이 살겠냐? 교회가 일어나겠느냐, 그 상태인데?’ 물으실 때, ‘내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다면 그리 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합시다.

  그러면 주의 성령께서 불어대기 시작할 것이며, 그 성령의 힘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각각 따로 놀던 것들이 여기저기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며, 힘 못 쓰던 것들에 에너지가 흐르게 될 것이며,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 생기, 성령의 역사가 더욱 충만해 지며 하나님의 군대가 드디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런 역사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임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신 주일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를 믿음으로 확신하며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 믿음대로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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