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7.8 수 10:09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국민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목사
2020년 06월 05일 (금) 08:22:50 최재석 목사 www.cry.or.kr
(출처:당당뉴스)
 
2020년 06월 04일 (목) 20:21:24 최재석 jschoi4111@gmail.com
 

오늘 아침 YTN에서는 ‘등불교회’의 간판을 계속 보여주었다. 이 교회는 개척교회 목사들이 모여서 집회를 가졌던 곳인데, 그 집회의 여파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날로 늘고 있다. 이 교회의 이름은 마태복음 5장 15절에 나오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에서 따온 것이다.

바로 이어서 16절에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요량으로 ‘등불교회’라는 이름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4)는 구절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등불교회’라는 교회 이름 오른편에는 작은 글자로 ‘예수 능력 치유센터’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그 교회의 목사는 자신이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예수님이 하셨듯이 자기에게도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고 질병의 치유에 힘써 왔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 교회에서는 질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질병을 확산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그 교회는 세상의 등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오히려 사회를 어둡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담임목사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으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이번에 코로나19의 확산을 조장한 교회는 ‘등불교회’ 하나만이 아니다. 소규모 모임을 가진 6개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다수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2차 감염을 일으켜서 최소한 30개 교회로 이 역병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코로나19에 대한 뉴스특보가 교회의 소모임에 집중하고 있다.

분별없는 목회자들이 사회에 끼친 폐해에 관한 예를 든다면, 확진자가 나온 교회에 조사하러 갔던 부평구청의 직원이 감염되자 부평구청이 어제까지 출입이 통제되었었고 1천 3백 여명의 구청 직원들과 그 직원과 접촉한 사람들이 감염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교회로 인해서 이런 힘든 일이 벌어졌으니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고울 리가 없다.

한때 이태원 클럽이 감염의 진원지가 되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쿠팡 물류센터가 온 국민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더니, 이번에는 교회가 코로나19 발병의 근원지가 되어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이태원 클럽이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도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코로나19에 대량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목사들이 왜 이태원 클럽이나 쿠팡 물류센터의 사태를 보고도 배우지 못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의학적 상식을 외면하는 그들의 신앙적 확신 때문이다. 그것은 ‘등불교회’에서 내세우고 있는 질병의 치유에서 나타난다. 그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치유 사역에 힘써 왔다.

아마도 이번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삥 둘러서서 안수기도를 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때 그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안수기도를 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 혹은 두세 사람이 무증상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모임을 가진 뒤에 그렇게 많은 확진자가 나왔겠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현대의학을 외면하고 기도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이다. 이 치유센터에 모인 목회자들은 믿는 자에게는 병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병에 걸렸다 해도 기도로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손 소독을 하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서 바짝 붙어 서서 기도했을 것이다. 직접 보지 않았어도 이런 치유센터에서 하는 일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방대본에서 현대의학에 기초해서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들을 모두 외면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간다. 그들은 현대의학으로 그들의 병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인들 역시 아프면 병원으로 간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지만, 아마도 기도만으로는 병을 고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 교회에서 기도 열심히 하기로 이름난 장로도 이석증으로 방에서 딩굴게 되자 119를 불러서 응급실로 갔다. 목사들도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내가 고향 교회의 노인학교에 가서 아프게 되면 서둘러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보통 시골 노인들은 아파도 참고 견디다가 병을 키우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치통을 예로 들면서 많은 사람이 이가 아프면 백반을 물고 견디지만, 그것은 치료가 아니고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치통은 오래 둘수록 심해져서 서두르면 아말감으로 때울 수 있는 이를 참고 기다리다가 빼게 된다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오려고 하는데, 한 노인이 나를 가로막고 서서 병원에 가라는 것은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지금 80세인데,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았더니 평생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나에게 말을 걸자 많은 사람이 삥 둘러서서 내가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크게 당황했다. 모처럼 고향에 와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래요. 할아버지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라고 말하고는 얼른 빠져나왔다.

둘러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 노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플 때는 기도하면 낫는다고 믿는 그 노인을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설득하려고 해보았자 그가 자기의 확신을 굽히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병원에 가야 한다고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면, 그는 나를 믿음 없는 사람,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세웠을 것이다.

그 노인이 현대인의 의학 상식을 외면한 것은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과학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황청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파문한 사건을 통해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갈릴레오를 파문한 교황청의 처사가 옳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을 경솔하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과학이 발달하면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변할 수 있다. 옛날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벼락을 맞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레가 요란하고 번개가 번뜩이면, 흔히 사람들은 벼락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교인들은 방바닥에 엎드려서 제발 자기 죄를 용서하시고 벼락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번개는 구름에 있는 양전기와 음전기의 작용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금, 아무도 벼락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피뢰침을 세우면 되니까. 그리고 기상학이 발달한 지금 내일 비를 오게 해달라고 혹은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보다는 일기예보를 듣는다.

의학의 발달 역시 우리의 기도에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 당시에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지 못했고 치료할 약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병에 걸리면 온전히 치유의 은사에 의지하면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생명을 걸고 기도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프면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기도한다.

과학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감추인 법칙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학문이다. 의학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습득한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술의 혜택을 입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그 의술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치료과정에서 하나님이 선히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앞에서 예를 든 노인처럼 의학을 외면하고 기도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등불교회’에 모여서 기도한 목회자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의학의 혜택으로 인해서 옛날에는 알지 못하던 고혈압, 당뇨, 혹은 암을 치료하는 때에, 일부 목사들은 환자들을 병원에 보내지 않고 기도로 그들을 고치려고 든다. 그들은 신앙이 투철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그들은 현대인의 의학상식을 외면하는 별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노인들이 IT 기술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빨리 변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해마다 더 편리한 삶을 제공해준다. 그래서 지금 너도나도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학기술을 외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데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온 것을 보면, ‘등불교회’에 모였던 목회자들 외에도 중대본의 조언을, 다시 말하면, 의학지식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확진자가 나온 소모임 여섯 군데 외에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수많은 소모임이 있었을 것이다. 중대본의 권고를 무시하고 그런 소모임을 지도한 목회자들 가운데도 현대 과학을 외면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현대 과학의 혜택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현대인의 과학적 상식에 맞는 언어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그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 메시지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우선 예수님의 복음을 직접 들었던 청중들의 상황이 어떠했었는지 파악하고 그들의 상황과 우리의 것이 어떻게 다른지 간파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그 복음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예수님의 시대에만 몰두하면서 현대를 외면하는 목회자들이 다수 있는 것 같다. 보수 교단의 신학대학에서는 현대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수가 많다. 현대의 상황을 무시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은 신학대학에서의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초기의 선교사들이 보수적인 신앙을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에, 노인들 가운데에는 보수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 진보적인 신학대학에서도 신학생들이 공부는 진보적으로 목회는 보수적으로라고 말하고 있어서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에서는 보수적 신앙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교회는 현대의 상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목회자들이 현대를 외면하면서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설득력이 있을까? 그들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을 인도해 나갈 수 있을까? 지금 중대본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소모임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조장하는 목회자들처럼, 그들은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만들지 않을까?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이 노하실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중국, 코로나 와중에 수많은 지하교회
"어떤 상황에도 평화로 가는 대로를
한교총,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으로
유튜브, 목회를 위한 도구가 되다
함께 뛰쳐나와야 산다,
필립핀 선교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한국인은 왜 불행한가?
치유 기도회
제 5강 나훔 3: 8-19 강함을
최근 올라온 기사
창조의 신비(1)
제 2강 하박국 1:12-2: 3 악...
모든 것 감사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왜’라고 묻지 말고 ‘어떻게’를 물...
“비홀드(Behold)!”
세상이 변했다.
예장통합 제105회 총회 1박2일 확...
제 1강 하박국 1: 1-11 율법이...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