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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이야기
2020년 05월 31일 (일) 17:38:01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은퇴한 후 12년 동안 우리 부부는 두 아들 때문에 기쁜 날도 많았지만 가슴 아픈 날도 많았다. 큰아들 용민은 PD로서 근무하던 극동방송과 기독교TV에서 강제로 퇴직을 당한 후에 2008년 CBS 라디오에서 주말 프로 ‘시사자키’에서 앵커로서 자리 잡기 시작할 때는 앞길이 열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급서(急逝) 사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일정한 직장 없이 프리랜서로서 여러 방송국을 다니면서 ‘뉴스 팔이’로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시작한 ‘나꼼수’가 8월에는 미국 팟캐스트 전체 에피소드에서 1위를 차지하고 방송 회당 200만 다운로드 되었다. 그러므로 실내 집회 장소마다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고 야외집회 수가 여러 번 수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가 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2011년 말 정봉주 전의원이 체포 수감됨으로 와해될 위기에서 ‘나꼼수’는 2012년 4월 총선에서 정봉주 전의원의 지역구에 김용민 pd를 출마케 하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그 결과 낙선됨으로 아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여당과 정보기관은 8년 전인 30세 나이에 성인방송에서 작가가 써준 대사대로 말했던 막말을 찾아내어 집중적으로 폭로함으로 여론조사에서 단연코 앞서있던 아들이 막판에 낙선된 것이다. 심지어 야당의 실패도 막말 김용민 때문인 양 방송이나 신문들이 연일 보도했다. 한마디로 보수측이나 진보측으로부터도 동시에 매도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로 인해 아들이 너무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아들은 강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신앙 동지들을 규합하여 벙커원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12년 12월 대선을 계기로 재기하려고 총력을 기울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됨으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은 이번에는 대안방송으로 2013년 ‘국민TV’를 설립하는데 앞장을 섰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4년 후반부터 2015년까지 국민TV 내에서 지도부 세력 간에 주도권 싸움이 일기 시작함으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 갈등 때문에 김용민 pd는 2015년 4월에 라디오국장으로 근무하던 방송국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곤고한 때에 아들은 열심히 설교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아들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루고 있었던 박사논문에 전념함으로 2015년 8월 19일에 국민대학교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6년 3월에는 한신대학교 신대원에 입학하고 졸업함으로 2년 후에는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40세가 넘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하니 흐뭇한 마음이었으나 한편으로 적지 않은 학비와 생활비가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 ‘조간 브리핑과 뉴스매거진’이 팟빵에서 매일 1-5위 정도의 상위권을 점유함으로 광고 요청이 쇄도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넉넉히 충당하게 되었고 벙커원교회에서 매주 하는 설교가 팟캐스트를 통해서 10만 명 이상이 청취함으로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나 2016년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되고 촛불집회가 강하게 일면서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시 국민TV에서 ‘맘마이스’ ‘관훈나이트클럽’ 등의 프로를 진행함으로 그 광고비로 국민TV의 2억 4천의 부채를 청산할 수 있는 쾌거를 이룩함으로 2년 전에 국민TV에서 당했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더욱이나 보수 정권에 의해 10년 동안 방송 분야의 변방에 밀려있던 큰아들이 지상파 방송에 진출함으로 KBS 라디오 앵커가 되어 청취율 1위가 되기도 했다.
 
또한 ‘김용민 TV’라는 유튜브 방송을 만들었는데 구독자 40만이 넘어섬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사단법인 평화나무’를 만들어 한국교회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아들을 ‘천하잡놈’으로 만들었던 두 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포승줄에 묶이어 교도소에 수감되는 모습과 아울러 아들이 앵커 자리에 앉아 그런 뉴스를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몇 년 동안 큰아들로 받은 내면 속에 깊은 상처들이 하나둘씩 치유되고 있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는 큰아들 문제가 잘 마무리되어 집안이 평안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둘째 아들 용범 PD가 ‘프로듀스’ 시리즈 유료 문자 투표 조작 사건과 관련해 관리 책임자로 고소되어 수감된 채 재판을 받게 됨으로 큰 충격을 받게된 것이다. 둘째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모범생이었다. 학업도 뛰어나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였는데 난데없이 유치장과 구치소에 수감됨으로 매주 서너 차례 면회를 가야 하는 부모의 입장애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용범 PD는 2002년 엠넷 방송국에 입사한 이후 창의력과 편집능력이 탁월함으로 그가 3년째 총연출을 맡은 ‘슈퍼스타K’는 지원자가 2009년 71만, 2010년에 135만이더니 2011년에는 국내외 13개 지역(서울, 부산, 원주, 인천, 대전, 대구, 광주, 제주, 미국 뉴욕,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센다이, 오사카)에서 무려 197만 명이 지원할 정도로 전국을 오디션 열기로 달구었다. 그리고 결선에 오른 11팀의 녹음된 곡들이 매주 모든 음원 차트에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가히 그 위세가 어떠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스타 PD’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결혼도 잊은 채 수많은 프로를 제작하고 인정받음으로 고속승진하여 부장이라는 고위직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부하직원이 부정한 일을 저질러 상관으로서 연대책임을 지게 되었다. 알고 보았더니 그 부하직원은 여러 소속사로부터 고급요정에서 40여 차례나 대접을 받는 등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들어났다. 그 뉴스를 접하는 순간, 우리 부부는 마음의 충격과 아울러 한편으로 감사했다. 그런 엄청난 유혹이 엄습하는 가운데서도 둘째는 일절 접대나 금품수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유혹에 넘어갔다면 나의 목회 40년은 하루아침에 무너졌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까지 비난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의 할 일은 큰아들 때처럼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한 곳으로 인도하실 줄 믿고 열심히 기도할 뿐이다. 사실, 처음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면회 갔을 때는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왔나?’라는 비참한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을 변화시켜 가시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사실 둘째는 그동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유명한 피디가 되어 인기가 오른 탓인지 엄마가 신앙적으로 충고해도 듣지 않음으로 속을 태우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단번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치소에서 매일 Q.T를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같은 방에 다섯 수감자들에게 영어로 요한복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앞으로는 경쟁을 중심한 오디션보다도 선교 방송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결심이 매주 보내고 있는 손편지에 녹아 있다.
 
“정말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정말 방송선교를 위해 투신할 용기가 생겼을까 싶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부터 쓰고 있는 일기장에 매년 1월 1일에 그해 기도 제목을 한 장 분량으로 정리를 해왔는데요, 지난 5년간 빠지지 않고 올라온 기도 제목이 바로 ‘방송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돈도 벌고, 회사 후배도 양성한다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시작할 염두도 못내고 있었던 거죠. 비록 뼈아픈 방식으로 기도 제목이 2020년에야 이뤄질 상황이 되긴 했지만 낮은 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둘째는 예전 모범생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용민 PD는 ‘라디오 제작’의 천재요, 용범 PD는 ‘TV 제작’의 천재이므로 두 형제가 합력하여 ‘방송 선교’를 한다면 그 위력이 엄청날 것이라고 격려해 주고 있다. 우리 부부의 꿈은 둘째가 청소년들을 위해 제작한 찬양 집회에서 큰아들이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 불만을 품고 떠나고 있는 청년들과 청소년 물결이 다시금 교회로 회귀하는 놀라는 역사를 한껏 기대하고 있다.
 
담당 변호사는 5월 말쯤 집행유예로 출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5월 29일 1심에서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서 "총괄 프로듀서로 지휘, 감독의 책임이 있음에도 휘하 PD를 데리고 모의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중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낭독하고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부장으로 그 관리책임에 대한 범과(犯科)가 적지 않다는 선고였다. 집행유예를 기대했던 우리 식구들의 낙망은 너무나 컸다. 다시 항소하여 감형과 집행유예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 줄 알고 다시금 기도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둘째가 앞으로 긴 여름 동안 폭염 속에서 어떻게 고난을 감당할지 염려가 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앞으로 출소 후에 구치소에서 결심한 ‘선교사역’을 잘 이룩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부모로서 더 기도할 뿐 아니라 말씀이나 격려의 글을 보내고 지도해야겠다는 마음이다. 그것이 남은 노년의 생애에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해 본다. ”주여, 둘째가 지금까지 45년 동안 세상 문화를 위해 일해 왔지만 앞으로 후반기 인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방송선교에 진력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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