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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강 미가서 7:7-20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2020년 05월 13일 (수) 09:20:47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데요 몇 달 전에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지요 옛날에도 프랑스가 우승한 적이 있는데 그 무렵에 그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이렇게 설문을 하였는데 2등을 한 사람이 지단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1998년 월드컵 우승을 이끈 프랑스의 축구 선수이자 에알 마드리드 감독을 역임
 
이제 그런 국민적 영웅이 된 지단보다도 사람들이 정말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분은 아베 피에르라는 신부님이었습니다
 
아베 피에르(Abbe Pierre 1912-2007) 빈민과 노숙자를 위한 엠마우슨 운동을 전개한 가톨릭 교회 사제 여러 차레 프랑스인이 가장 선호하는 인물로 선정 되었다
 
그 분이 했던 일이 엠마우스 운동이라고 하는 것인데 집이 없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머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애를 쓰신 신부님입니다
 
에베스 신부님이 엠마우스 운동을 할 때 이런 에피쇼드가 있어요 한번은 어떤 아이가 달려 오더니 신부님 신부님 가 보세요 어떤 사람이 자살 하려고 합니다 막 달려 갑니다 정말 자살하려고하는데 말릴 수 없는 것이어요
 
왜 자살하려고 합니까? 묻자 이 사람이 나는 어릴 적부터 고아로부터 자랐고 이런 저런 범죄로 감옥에도 갖다 왔는데 감옥에 갔다 온 다음에 결론을 했는데 애도 낳았는데 아내도 도망을 가고 살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아베 신부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듣고 보니까 죽는 수 밖에 없겠다고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기왕 죽기로 한 것 죽기전에 나를 도와 줄 수 없겠냐고 내가 집 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싶은데 나를 도와 줄 수 없느냐고 그 사람이 자살하지 않고 아베 신부님을 돕는 초 창기 멤바가 됩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그 때 신부님께서 살아야지 왜 죽어 설교를 했다든지 돈 몇 푼 주었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도와 달라고 하는게 자기를 일으켜 세웠데요
 
사람은 삶의 의미가 있으면 살거든요 그런 에피쇼드가 있는 분이고요 이 분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분을 할 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자들의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어요
 
내가 교회 다니느냐 안 다니냐 이게 하나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며 사는 것인데 경건하다고 하는 것 믿음이 깊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외면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경건하다고 하는 종교인들은 모른체 하고 지나가거든요 사마리아 사람은 다가 가 가거든요 예수님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아니지요
 
이웃에 다가가고 멈추어 서고 그를 위해 손을 대고 그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그 사람이 이웃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사마리아 사람이냐 유대인이냐 혈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요
 
미가서가 들려워 주는 것은 그런 것이어요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가 하면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대게 누구들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들려 올려진 사람들이어요 땅에 인력에 속절 없이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먼 끝에 시선을 획득해 가지고 더 높은 세계에 자기의 삶을 조망하고 거기에 따라서 자기의 삶을 조율해 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름다운 인격들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의 대단원 마지막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가서 7장 10절부터 20절까지 공부 하겠습니다
 
예언자의 두가지 직무가 있는데 하나는 고발 아주 맹렬하게 고발하지요 먼저 지도자들의 죄 고발하고 그렇다고 백성들이 죄도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역시 부하뇌동하니까
 
예언자의 두 번째 직무는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1절 위로 하라 위로 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거든요
지쳐 쓰러지는 사람에게 희망은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오는 것이야 힘 내 이 두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어요 이 둘이 균형을 이루는 예언자가 있고
 
대게 예언자하면 야단치는데 예언자는 인간의 양심을 습격하는 자 굳어진 인간의 마음을 마치 망치처럼 두드리는 자 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예언자는 무섭지요 그러나 그 무서움이 생명에 대한 존중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의 꿈 하나님의 꿈 그 꿈이 홰손되는 대한 분노 이런 것들로 표현되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예언자들의 음성에 깊이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가 보니까 헤피엔딩으로 가지요
하나님이 그 대적들을 다 물리치시고 심판 받아야 할 사람들을 이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 다음에
 
10절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결국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보이는 그 날이 올 것이다는 이야기이지요
 
그 대적이 했던 말이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자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 하지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앗수르의 임금인 산헤린의 신하인 랍사게가 이야기 하거든요
이 이야기는 왕하 18장 이사야 36장에도 등장하는데
 
히스기야 왕 시대여요 산헤립이 이스라엘에 성을 다 무찌려요 마침 예루살렘 근방까지 옵니다 큰일 났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었던 랍사게에 나갑니다 화친 조약을 하기 위해서이지요 그 때 랍사게가 아주 오만한 점령군의 태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왕하 18장 29절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솢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구해 줄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 그가 도울 능력이 없어 히스기야가 야훼 하나님이 구원을 해 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천만의 말씀 세상에 어떤 임금들이 산헤립 힘으로부터 구할 자가 있느냐
 
32절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야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33절 민족의 신들 중에서 어떤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질자가 있느냐
산헤립 임금으로부터
 
열왕기 하에도 등장하고 이사야서에도 등장하는 데 그런 말을 하게 될 때에 큰 일 났지요 그런 상황인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부터 너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자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자가 그들입니다
 
10절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네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말하는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네가 보겠다고 말합니다
 
11절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춘추 전국 시대에 노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는데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고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다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습니다 죽으면 뻣뻣해 지거든요
 
굉장히 슬프지요 뻣뻣해 지는 것이 그래서 스트레칭도 많이 하고 부드럽게 하고 몸의 뻣뻣함 이것도 문제지만 제일 문제는 마음의 경직 무엇이 마음을 경직 시키느냐 하면 자기가 대단한 존재가된 것처럼 느낄 때 제가 적절한 이야기를 그 사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데
 
어깨에 힘주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요즈음으로 이야기 하면 스펙이 좋다든지 잘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보고 웃으셔요 그것을 보면서 그런 것이지요
 
여기 산헤립이나 랍사게 같은 사람은 기고만장 세상에 자기보다 힘이 있는 존재는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요 결국은 그런 오만함이 딱딱함이어요 죽음의 징조입니다 오만함은 죽음의 징조라고 말 할 수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절 결국 그가 거리의 진흙처럼 밟힐 것이다 그들에 의해 짓밟히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성벽울 건축하게 함으로 그들을 회복 시켜주신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전이지요 짓밟히고 있는 사람들이 성벽을 건축하고 오히려 참담하게 짓 밟히게 되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미가가 내다 보고 있는 것은 희망의 미래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철회된 것 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는 철회된 것이 아니고 유보되었어요
 
유보된 그 시간은 유예된 시간이지요 어떤 유예 돌아오라는 것이어요
초대 교회에서 초대 교인들은 무엇을 기다렸느냐 하면 주님이 재림하시기를 기다렸거든요 주님이 빨리 오시면 좋겠어 안 오시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질문이 생겼어요 아니 왜 오신다고 해 가지고 안 오셔 이것이 심각한 질문이어요 그 때 베드로가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재림을 빨리 안 하시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어요
 
부끄러운 삶에서 돌이켜서 사람들이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유예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유예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이 내리시기 전에 유예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야 하거든요
12절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그 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지요
 
13절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그러니까 앗수르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이산되고 분산되어 있던 사람들이 다시 모아져서 돌아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는 지중해에서 페르시아 만까지를 이르는 말이고 이 산에서 저 산까지는 레바논 산맥에서 시내산까지 이르는 말이고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 들어요 이렇게 흩어진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합니다
 
그 날이 미가서 4장에서 보았던 비젼이기도 합니다
4장 1절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가장 연약한 것처럼게 보였던 산들 위에 여호와의 산이 우뚝 서는 그 날을 내다 보고 있는데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12장을 기점으로 해서 13장부터 조금 달라집니다
요 13장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줄을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 세상에 남겨져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런 말로 12장과 13장이 연결이 되어요 주님이 하신 게 발 닦아 주는 일이지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알았다
그 때의 징조가 요 12장 20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이방 나라사람들이 모여 올 것이라고 했지 않아요 그 징조로 보는 것이어요 예수님을 이방 사람들이 찾아 와서 만나 뵙기 원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 보고를 받은 다음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 때가 이른 것을 보여 주거든요
 
요 12장 23절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 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의 때는 언제일까요? 우리는 영광 그러면 어떤 것이 영광이어요 아 참 영광스러워 그러면 남들 위에 우뚝 서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지요 예수님에게 영광은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어요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자라고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냥 보내시던 안했겠지요 무엇을 하라고 보내셨지요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요한복음 6장 39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나의 일이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자 중에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일 일상적으로 만난 하나 하나를 아버지께서 내게 이끌어 주신 사람으로 대한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그 일을 완수했어요 완수 했을 때 돌아가서 보고하는 것이지요 내게 맡기신 일을 수행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영광의 때입니다 그 때는 죽음의 때이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방인들이 하나님앞에 나오는 그 때가 하나님의 심판의 완성으로 보고 있는데 미가도 똑 같은 이야기를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침략자들에 의해 짓 밟힌 자들은 살아나고 침략자들은 낮은 대로 처하게 되고 역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이지요
 
7장 14절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떼룰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심 같이 먹시시옵소서
 
주의 지팡이라는 것은 늘 권능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옛날에 돼지 몰고가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논 두렁에서 돼지가 좌로나 우로 가면 안 되니까 이쪽으로 가면 치고 데리고 가는 것인데 주의 지팡이가 우리를 인도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여러분 주님은 손이 많아요 도울 수 있는 손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아주 황폐한 곳이라고 해도 그 옆에는 또 비옥한 곳을 마련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이 황폐한 지경에 있을 때라도 하나님은 비옥한 지경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마치 아브라함의 후처였던 하갈이 쫓겨나지 않아요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하나님이 그 눈을 열어 주시거든요 광야에서 우물을 발견해요 우물이 옆에 있는데 발견 못하거든요 슬픔 속에 있을 때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내가 유난히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안 보여 내 삶에 풍요로운 것들이 바로 그것이 14절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4절에 갈렐 속 살림에 홀로 거주하는 그 이야기 그들을 엣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말 합니다
 
하나님이 양떼를 돌보는 그 때를 이사야도 내다 보고 있거든요
이사야 40장 소위 우리가 이사야서는 1장에서 39장까지를 이사야 주전 8세기의 예언자인 이사야의 예언이라고도 하고 40장에서 66장까지를 주전 6세기 제 2 이사야 세분해 가지고 제 3 이사야 세대 구분하기도 하는데 접어두고 여기 까지가 주전 8세기라고 한다면 이것은 주전 6세기 이사야 이름을 빌려서 하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장면이 위로하라는 말이 나오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지 그 때 나왔던 것이
 
이사야 40장 10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이사야 40장 11절 그는 목자 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미가서의 이미지하고 같지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이미지들이 있는데 카타콤베시대 카타콤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로마의 공동묘지입니다 공동 묘지인데 묘지가 연결되어 있어서 복잡했고 초대 교회 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무덤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려요
 
그래서 무던 구조가 복잡하니까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교창이라는 음악 형식도 발전합니다 여기에서 누가 부르면 응답하는 찬송들이 발달하는데 카타콤베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형용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보면 대게 어떤 그림이 많으냐 하면 어린 양을 찾아 가지고 목에 메고 오는 예수님은 그렇게 다정한 것이지요 수염도 안 나요 젊은 미소년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친밀해 수염이라는 게 권위와 위엄을 이야기 하거든요 권위 있는 분 위엄 있는 분이기 보다는 나의 고통 속에 함께하고 도와 주신 그런 분으로 등장합니다 콘스탄틴 대왕부터 예수님이 비잔틴 시대에 위로 올라오지 않아요
 
예수님이 조금더 위로 올라오십니다 비잔틴 시대의 그려진 예수님의 초상을 보면 한 가지가 얼굴에 균형을 잃을 정도로 커요 눈이 커 그 분을 죄를 꽤 둟어 보시는 분 약간 무서워졌어요 그렇게 그립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나중에 어디로 가느냐 하면 여러분 서양의 예배당들 보면 돔이 있지 않아요 반원형으로 된 것 이것은 우주으 상징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겨요 모자이크로 금빛 모자이크로 세겨 여기에 반원형 속에 들어가시는 주님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판토크라토르라고 하는데 만유의 주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제일 높은 곳에서 다 보시는 것이야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심판하실 것 같아
 
그래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아드님에게 말씀을 잘해 주세요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아베 마리아 마리아에게 인사 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굉장히 중요하게 된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약간 모성적 상황이 필요해요 무서우니까
 
카타콤베 시대에 모습은 어린 양을 그런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어요 고통을 너무 겪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미지를 이야기 할 때에 이사야 40장에서도 이제 양떼를 모으는 목자의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고 미가도 똑 같은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절 이르시되 내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내었던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창조적인 이적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라는 언제나 놀랍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는 일로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로 하늘 군대를 일으키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활로 바뀌는 여러분 하나님은 상상력이 풍부하셔요 하나님은 정말로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방법이 많은 분이시더든요
미가는 내다 보는 것이어요 이렇게 이적을 베풀게 될 것이다
16절 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요
 
17절 그들이 뱀처럼 띠끌을 핧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 하리로다
 
그동안 큰 소리친 이방 나라들이 부끄러워 손으로 입을 막고 귀는 막힐 것이고 그들이 티끌 속에 짓 밟고 그랬는데 오히려 그들이 티끌을 핧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미리암의 노래처럼
출애굽기 15장 21절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오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여러분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말과 그 탄자 말이 굉장히 높아요 말을 타고 보면 다 아랫 것 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정지영인가 다락같은 말아 그런 표현이 나와요 시 가운데 어린 아이에게 나락이 굉장히 높아요 말을 타고 있는 것을 보면 다락 같이 보여요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데
 
출 15장 21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지칭에 속하는 미리암의 노래이거든요 힘있다고 하는 자들을 그것을 보여 주고 있는데 미가서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7절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핧으며 땅에 기는 벌래처럼 떨며
그들의 좁은 구멍이라는 것 자기들의 자부심 그런 것들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자부심이 다 무너지는 그 때가 온다
 
와 정말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여호와임이 알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이다 합니다
그 다음에 18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와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아 강력하지요 아무도 눈치 못챘어요 주와 같은 신이 누구 오리이까 아무도 눈치 못 쳈지요 미가의 이름 중 그 뜻이 주와 같은 뜻이 어디 있습니까 7장 18절 그 다음 미가가 하나님 이야기를 해 왔어 거의 결론 부분에 와 가지고 자기 이름을 넣어가지고 마칩니다
 
미가의 듯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습니까 미가라는 이름의 뜻입나다 주님은 사람들이 짓는 죄 허블 이런 것을 용서하십니다 물론 처벌하지 않고 그냥 용서하지 않지요 잘못은 하나님에 의해서 처벌해야 합니다
 
처벌은 미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처벌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처벌 이후에는 회복시켜 주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진노 보다는 인애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때리기도 하지만 싸메기도 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정화해서 우리의 죄를 바다에 던진다고 말하는데
 
19절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깊은 죄를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바다라는 것은 다시 되 돌아 올 수 없는 곳을 상징해요 너희 죄를 말끔히 하나님이 치어 주실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미가는 그런 꿈을 꿉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20절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서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서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무엇이었어요?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헷세드 헷세드 언약을 지켜 언약의 다른 당사자인 그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의 성실하심을 철회하지 않으신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소망의 근거입니다
 
소망인 것은 좋은 데 죄송하지요 우리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한 국가에 중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지도자라든지 왕이라든지 재판관 그 다음에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 예언자 이들이 다 무너졌어 미가 시대에 그러니까 중추가 무너진 것이어요
 
역사의 토대가 다 허물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참담한 현실이 그 땅에서 벌어 집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이 민족이 와 가지고 심판을 하게 되는 데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죄악을 없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 없이 하나님에게로 우리의 마음을 갖다 놓아야 해요
 
우리의 마음과 삶을 갖다 놓아야 되어요 우리가 보았지요 미가서 6장에서 하나니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천천의 만만에 바치는 것이 아니었지요 인애를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어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인애 하나님과의 맺은 약속을 지켜 가려고 하는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혼에도 근육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운동 어떤 때 귀찮지 않아요
 
안 하기 시작하면 근육이 약화돼 영혼의 근육도 똑 같아 어떨 때 영혼의 근육이 생기느냐 하면 나 좋을 대로 안 살고 남 좋을 대로 살기 시작할 때 영혼의 근육이 생겨요 이게 인애를 사랑하는 것이고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어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것은 내가 하나님을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게 될 대 절망의 구덩이에서도 종말론적인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은총의 통로가 되고 있다
 
여러분 미가 선지자의 말씀을 가슴속에 세기고 우리의 삶이 제 아무리 힘들다 할 지라도 인애와 공의와 하나님과의 동행 이것을 우리의 삶에 원리로 삼아서 세상 앞에 소망을 가지고 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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