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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살려면"
2020년 01월 16일 (목) 14:53:43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요한복음 15:1-12)
[요]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
    한 기독교 월간지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적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아닙니다. 다른 종교를 믿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중적이고 비인격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그들에게서 상처 받고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에서 나쁜 것을 가르쳐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주장이 잘못되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심하게 거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상처 받은 경험이, 즉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싫어지고, 교회 다니기가 싫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친 적도 없는데, 예수님은 그런 분도 아니신데, 왜 예수님을 자기 삶의 기본으로 여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올 해 우리 왕중 가족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살라’ 는 말씀대로 모두들 그리 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꼭 경청해야 할 말씀이 있는 게 아닐까요?
 
    2.
    오늘 말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그러면서 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관계들을 정리하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그 포도나무를 관리하는 농부는 하나님이시고, 그에 붙어 있는 가지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우릴 보고 가지라 하셨을까요? 그냥 1절 말씀처럼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만 하셔도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왜 굳이 우릴 보고 가지라고 밝히셨을까요? 가지가 왜 필요한가요?
 
    가지에 열매가 맺힙니다! 가지는 가녀리지만 그러나 그 가지에 열매가 맺힙니다. 가지는 약해보이지만 그러나 그 끝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뿌리가 뻗어나가고, 줄기가 우람한 모양으로 있지만 그러나 나무는 대개가 열매를 가지에 맺습니다. 줄기에 열매가 달리지 않습니다. 뿌리에 열매가 달리지 않습니다. 그건 뿌리 식물입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해 보입니다.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립니다. 신자 구실 제대로 할 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끝에 열매가 맺힙니다.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는가요? 우리가 예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수님은 아무런 열매를 보여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약해 보이고 약해보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하면 우리가 예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성령님의 모습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열매를 맺어야 예수님도 성령님도 이 세상에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연스레 맺는 열매는 무슨 열매? 예수 열매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혔는데 무화과가 열릴 일이 있겠습니까? 포도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예수 나무의 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맺는 것은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가 예수 열매를 맺지 않고 혈기를 부리고, 불의를 행하고, 악을 행한다면, 사탄의 열매를 맺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늘 패배감과 부정과 어둠의 열매를 맺는다면 이건 아니지 않은가요?
 
    3.
    왜 우리는 그 합당한 예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건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가서 그같이 살아야 하는데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무슨 뜻인가요?
 
    ‘거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살고 있다, 머물러 있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내 안에서 살고 있으라,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 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의 삶의 터전은 예수님 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생활 근거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주 안에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도의 바른 삶의 터전은 주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교회 아기 중에 ‘홍 주안’이가 있는데, 바로 그 뜻, 주안에서 크고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거하다는 의미를 예수님은 좀 더 의미심장하게 쓰시고 있습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이 사용하신 ‘거하란’ 뜻은 단순히 머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기위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가지! 가지가 살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가지가 아무리 잘 났어도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죽습니다. 가지가 아무리 멋이 있어도, 나무에 붙어 있을 때, 가지입니다. 길가의 장미꽃이 아무리 예뻐도 나무에 붙어 있어야지, 떨어져 나가면 영영 꽃을 다시 피우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그러기에 거하라는 의미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거하라는 의미는 아주 단호한 뜻이 있습니다. 거기에 거하지 아니하면 결국 죽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주안에 거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가끔 예수 안에 거하라는 말을, 바쁘면 할 수 없고, 조금 여유가 생기거나 은혜를 받았을 때만 해당되는 말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결국 메말라 죽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불필요한 가지들, 메마른 가지들은 어떻게 되는가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2)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6)
 
    자신의 삶의 터전을 살펴보십시오. 자신이 예수 안에 있는지, 그 생명줄로 이어 있는지. 물고기는 물을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난다는 것은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입니다. 물고기가 뭍에 거한다는 것은 불편의 차원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차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힘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생의 양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 영이 죽어 가고 있는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주여~~~’하고 내뱉는 탄식 한 마디에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한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4.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내 영적 생명의 파이프를 어떻게 예수님께 연결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주(主)로부터 힘을 얻고, 생명의 양분을 얻고,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 그 안에 거하는 길은 무엇인가요?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님으로부터 힘과 능력과 생의 의욕을, 적극적이요 긍정적인 자세를 얻는 길은 무엇인가요? 주의 말씀을 지켜 나갈 때입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진실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진실할 때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미워하지 않을 때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거짓말하지 말라 하신 말씀에 순종할 때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에 용서할 수 없는 이를 눈 딱 감고 용서할 때 예수 안에 거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에 까탈스러움을 거두고 사랑으로 서로를 꼬옥 안아 줄 때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지 그렇게 순종하여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순종하여 살지 않을 때 그가 아무리 속으로 자신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의 생명이 곧 끝날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는 대부분이 관광지입니다. 교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공식적으로 그들은 기독교 국가라고 법으로도 명시되어 있고, 수백 년 동안 기독교 국가로 성경을 가르치고, 헌금으로 종교세를 내왔는데, 왜 교회는 비었으며,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찾아볼 수 없는가요?
 
    그들은 신앙 몇 대 째 내려오면서 스스로 자기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한데 구태여 바쁜 세상에 시간을 내어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교회에 안 나가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한데 무엇 때문에 교회를 나갈 필요가 있는가 했습니다. 예배와 기도는 산에서도,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드릴 수 있고, 더욱이 하나님은 어디에나 다 계신데 구태여 시간 들여 교회까지 찾아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자신은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한데, 예배드리지 않아도 자기는 모태 신앙자로 누가 보아도 신자임이 확실한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바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신자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출석, 교회 예배는 기본이 아닌가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명하신 것이 아닌가요?
 
    히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무슨 뜻인가요? 더욱 모이고,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선행을 격려하라는 뜻입니다. 어디서? 교회에서!
 
    그럼에도 자기 논리, 편리함으로 그리스도 안의 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의 생활을 당연한 것인 양 해 갑니다. 그 결과 이들은 주안에서의 생활을 잃었기에, 주님의 말씀이 더 이상 의미심장한 것으로, 꼭 지켜야 할 계명으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러기에 결국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는가요? 떨어져 나갔기에 그리스도인으론 죽어 버리고 맙니다. 예수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유럽은 점점 이슬람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5.
    교회도 나가지 않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도, 성경을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의 생명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면서도 위험한 일인가요?
 
    자신이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의식이 철저해도, 자신은 결국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도, 그의 삶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다면, 말씀 묵상, 기도 생활, 봉사, 진실함, 경건함, 예배가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없으며, 결국 생명줄에서 끊어져 그리스도인으로의 생명은 끝나고 맙니다. 그의 터전은 이미 예수가 아니라 자신이 되며,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져 나가 그 여력으로 살뿐이지 곧 메말라 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 안에, 예수님의 손길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내 생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 신앙이 온전할 때, 성도들이 누리는 권세들이 있습니다.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의 응답의 권세, 그리고 늘 기쁨 충만, 감사 충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려면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으십시오. 혹시 예수의 가지로써 많이 부족하고 부끄러운가요? 그러면 농부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십시오.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이가 농부 아닌가요?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내게 거름을 더해 주실 것이고, 물을 챙기실 것이고, 잎을 정리해 주시며 주변을 정화시켜 주실 것이고, 울타리를 치시며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현장에서 마침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 마음대로 그리 살 것입니다. ‘가서 그렇게 살려면’ 예수 안에 거하십시오. 가는 데 신경쓰다가 자기 맘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자기 성질대로 사는데 힘쓰지 말고, 주일에 받은 은혜대로 그리 한 주간을 살아가십시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주안에 여전한지, 순간순간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감동이 올 때 그에 순종하여 그리 사십시오.
 
    6.
    어떤 분이 몇 해 전, 친구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교회에 처음 왔답니다. 척 보니 인상이 좀 거시기 했습니다. 얼굴이 좀 어둡고 눈매가 매섭습니다. 쉽게 예수 믿기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를 오랜 만에 또 데리고 오셨습니다. 나에게 인사를 시키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아니 얼굴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온화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잠시 의아해 하자, 그럽니다. 며느리를 따라 교회에 잘 나가고 있다고.
 
    여러분, 예수님 안에 자신의 삶의 터전, 뿌리를 내리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온유하고 평안한 얼굴이 됩니다. 얼굴에 예수의 열매가 보입니다. 어째서? 확실한 예수의 가지이기에! 가지에 예수 열매가 맺힙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의 가지로 삽시다. 그러면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챙겨주실 것이고, 마침내 내 삶의 현장에 예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것입니다. ‘가서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늘 365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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