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2.20 목 21:59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아모스11강 9: 1-15 이스라엘의 회복
2019년 12월 31일 (화) 16:49:12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오늘 아모스 마지막 시간입니다 독일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어요 엔데 굳 알레스 굳 (Ende gut, Alles gut) 알레느는 올이야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우리들이 아모스서를 마지막으로 공부하는데 제대로 공부하면 아주 좋은 것이지요
 
그 동안 듣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독서 행위의 끝이 무엇일까요? 뭔가 책을 읽었어 책을 읽은 보람이 무엇이냐 그 이야기지요 어떤 것일까요? 내가 책을 읽는 까딹이 무엇이냐 하면 그냥 뭐 취미로 읽는 것이 아니고 문자 중독해서 읽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들이 그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깨지고 내가 확장되는 기쁨을 맛 보는 것이 것이 책을 읽는 결과이지요
 
독서 행위의 끝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아모스서를 우리 책걸이 해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우리의 삶이 변화 되어야 하지요 우리가 시작해서 끝낸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대게 시작은 잘 하는데 끝을 잘 맺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 가운데 그런 문장이 있어요 物有本末(물유본말)하고 事有終始(시유종시)하니 知所先後(지소선후)하면 則近道矣(즉근도의)라
 
세상에 모든 것은 본이 있고 말이 있다 또 세상의 모든 것은 마침이 있고 시작이 있다 무엇이 앞이고 우엇 뒤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도에 가까울 것이다 도에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시작이 무엇인지 마침이 무엇인지 이것을 분별할 수 있다면 이것이 도에 가깝다
 
시작은 거창하게 했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 작심삼일 흐지브지 흐지부지 하면 안 되고 마무리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모스서 9장은 마무리하기에 대단히 좋은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희망으로 끝나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남왕국 유다 출신의 아모스 드고아의 목자 돌 무화나를 기르기도 하고 양떼를 치기도 하는 그런 존재였는데 북 왕국으로 올라가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 당시 북 왕국은 민족적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제 사회에 지정학 때문에 강대국끼리 자기들끼리 갈등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강대국들이 눌려 있다가 기를 펴고 그렇게 해서 무역도 많이 하고 이러다 보니까 부유해졌어요
 
부유함이라 하는 게 우리는 복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은 절대적인 가난 속에 있으면 내가 아름다운 삶을 살기 어려워요 인간은 적절하게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과한 부가 집중 되었을 때 복이 아니고 화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북 왕국 이스라엘은 외적으로 보면 요즈음으로 보면 지디피가 아주 높아졌어요 높아진 지디피의 혜택을 누리는 소수이고 다수의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 져요 가난하다 보니까 빚에 몰리고 그 빚 때문에 자기의 땅도 부자들에게 넘겨야 하고 자기도 또 종살이하듯 해야 하고 이런 일 들이 비일 비재하게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경제 지표는 좋아졌을지 모르나 백성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핍절하게 어렵게 그렇게 변화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 속에서 아모스가 등장해 가지고 너희들 이러다가는 망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이지요
 
그것은 정말 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지욘 다 같이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 가지고 너는 망할 것이다 보면 아모스가 예언하고 있던 그 시대에 사람들이 부유하기 때문에 종교 활동을 안 했느냐 하면 아니요 부유하기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 제물도 잘 바치고 음악도 풍요롭게 연주하고 그러니까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데 아모스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너희들 성소 찾아 간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 뜻 수행한다고 생각 하면 안 되어
아모스 5장 5절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 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이라 하였나니.
 
벧엘로도 가지 말고 길갈로도 가지 말고 너희가 찾아야 할 것은 장소가 아니고 여호와를 찾아야 돼 여호와 본질을 택해야 돼 우리 동양의 가르침 가운데 개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따라가요 자기를 맞춘 돌을 따라가요 이 애가 나를 때렸어 쫓아가요
 
그런데 사장에게 돌을 던지면 사자는 돌을 안 따라가고 던진 사람을 따라가요 우리가 사태의 본질을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본다고 하는 종교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할 줄 생각하지만 아니다는 것이어요
 
하나님은 여호와를 찾으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여호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행위는 여호와를 찾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를 등지는 행위였어요 아모스가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나님 어디 계셔요
 
아모스 5장 24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이 두가지가 옳게 시행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 것이어요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안 들어 왜냐하면 부유함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의 잠들어 있음을 깨쳐야 돼 그것은 고통이어요 어차피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데 그 징계의 내용이 무엇으로 등장하느냐 하면 아모스가 보았던 환상으로 등장합니다
 
메뚜기 떼가 몰려 와 가지고 모든 것 다 다 삼켜 버리고 바다에서 불이 올라와 가지고 모든 것 다 태워 버리는 환상을 보게 되지요 그 유명한 다림줄의 환상 재 보니까 수직의 중심에 맞지 않아 무너질 것이야 합니다
 
여름 과일 한 광주리 현상 여름 과일이라는 것이 끝을 뜻한다고 했지요 너희들이 끝에 당도했어 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환상입니다 아모스는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명령을 합니다
1절 주님이 제단 곁에 서 계십니다
제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바치기 위한 장소이지요 가장 신령하고 거룩한 장소이지요
 
그러니까 가장 신령하고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여기는 거룩한 곳이야 하지 아니하고
 
1절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을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하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그 장소 가장 거룩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 제단을 하나님이 쳐서 무너지게 하라는 것이어요 종교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잘 드리니까 우리는 잘 하고 할 수 있어 하고 생각 할지 몰라도 하나님 판단이 다를 수 있어요 무서운 것이지요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가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 기둥머리를 쳐서 문턱이 흔들리게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이사야 6장 4절 웃시아 왕 시절에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 환상을 보거든요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에서 구름이 가득하고 연기가 가득하고 성전문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 때는 무엇이냐 하면 그 거룩의 현존이 너무나 놀랐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것을 치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사야가 보았던 정 반대 뒤집힘 이것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부수어 지는 기둥 속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칼이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을 죽이고 말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막 피합니다 땅 속으로도 피하고 하늘로도 피하고 갈멜산 꼭데기로 피하고 바다 밑바닥으로 피하고 하늘로다 피하고 심지어 포로로 잡혀가 있다고 해도 기어코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철저한 파괴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대목은 9장 2절부터 4절까지 나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본듯해요 어디서 보았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경에서 보기는 보았는데 이 이미지와 정 반대의 이미지를 보았어요
 
시편 139편 7절부터 10절까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게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 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정 반대의 이미지인 것이지요 시편 기자의 상황은 어떠했느냐 하면 지금 굉장히 어려움 처지속에 빠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해 주시고 함께 하는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무엇이지요 임마누엘 갓 이스 우이스 어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어요 임마누엘의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함께 하시는 분이셔요
 
이것이 참 중요한데요 고대 종교의 성서의 종교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대 종교의 신들은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야돼 그래서 공간과 관련이 되어요
 
고대의 신들은 그리고 그 신들에게 주특기가 있어요 대개 할 수 있는 일들이 비를 관장한다든지 출산을 관장한다든지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특정한 공간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백성들이 있는 곳에 함께 하셔요
 
이것이 그 유명한 야곱이 고향을 떠나서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다가 베델에서 돌 베게를 베고 잘 때 창세기 28장 12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데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하나님이 돌계단으로 오르 내리는 천사들을 보여 주지요 메시지를 주시지요 너 어느 곳에 있든지 함께 할게 임마누엘이지요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에 동행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아주 오래전입니다마는 한 신문의 만평에 보니까 한 아이가 달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달님 그 동안 참 고마왔어요 그런데 저 이사가요 저 광주로 가니까 못 뵙겠어요 너무 멀어서 이것이어요 그러니까 공간으로 생각할 때는 그런 것이어요
 
하나님은 무엇이냐 하면 그 백성이 있는 곳에 늘 함께 하시는 분이셔요
시편 139편은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에도 시편 139편은 하나님은 늘 함께 계신다 내가 고통 스러운 상황에서도 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요
 
오늘 아모스가 본 비젼에는 그 비젼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어요 그들이 어디로 피하여 갈지라도 죽음의 기다리고 있어요 무엇 때문입니까? 공의와 정의를 훼손하고 살았던 그 삶의 결과가 그렇다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무엇이냐 재앙의 출발점이 어디이냐하면 가장 거룩해야 할 제단이어요 그러니까 종교가 바로 서야하는 까닭이 그래서 종교가 바로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가장 극렬한 심판앞에 서 있음을 두렵고 떨림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5절부터 6절까지는 엄위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5절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온 땅이 하나님 안에서만 막 일렁 일렁한것 처럼 보입니다
6절 그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고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고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그러니까 앞에서 이야기 했던 하나님의 그 엄중한 환상 심판의 환상 그것은 그냥 빈 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두려우신 하나님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계셨기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크신과 위대하심을 알아차리는 것이어요 그분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 그분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의 버릇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살려고 해요 우주의 중심이어요 모든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맞기는 맞는데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별이 태양계에 속해 있지 않아요
 
태양계는 우주 가운데서 아주 작은 별들의 집합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에 태양계 같은 게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 우주가 지구가 얼마나 작은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태양계를 100억분의 일로 축소시키면 축구장 300개의 크기가 된대요
상상을 해 보세요 100억분의 일로 줄였어요 그 가운데 태양은 크기가 얼마이냐 하면 지름 14센치 정도 되는 배 하나 먹는 배 하나의 크기여요 축구장 300개 가운데 태양은 배 하나입니다 그 태양계에 유리 구슬 두 개 정도 있어요 그 구술 정도의 크기 콩알 두 개가 있어 그레 무엇이냐 하면 목성과 토성입니다
 
이게 괘 큰 거리여요 콩알 두 개가 있어 그게 천왕성과 해왕성이야 지구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볼펜 쓸 때 볼펜심 볼펜심의 구술이 있지 않아요 그게 지구입니다 축구장 300개의 크기에서 지구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작아요 지금 태양계만 이야기 한 것이어요
 
우주 전체로 이야기하면 이게 비교가 안 되지요
우리의 고백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질서 있게 운영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 크신 하나님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사는게 마땅한 도리데 너 잘났니 못 났느니하고 아웅자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대한 이야기 더 할 수 있지만 너무 광대한 이야기인데 그 정도로 하고 이 속에서 인간이 자기의 한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냥 자기 욕망의 길을 걷다 보니까 하나님을 등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말 엄위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이 신비중에 신비이지요 300개 축구장에서 볼펜 심 그게 지구라니까요 우리가 아니라 그렇게 크신 하나님 그러니까 경외감을 느낄 때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회복해야 할 베더린이라는 시인이 그 시대를 궁핍의 시대라고 이야기 했는데 궁핍의 시대인데 왜 궁핍하냐 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궁핍한 것이 아니어요 입을 것이 없어서 궁핍한 것이 아니어요 사물 속에 깃들려 있는 신비함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볼 수 있는 숨결이 열려 있을 때 풍부해요
 
자기 욕망에 따라서 그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 사물속에 그 속에 있는 생명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해 이것이 빈곤함이어요 우리가 자꾸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엄위하신 하나님이신대
7절부터 10절까지 이야기는 오만에 빠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야 우리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셨어 하는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가 구스 자손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우리만 선택 받았다고 이야기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어질 때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느냐 하면
 
출애굽기 19장 6절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해
세상의 모슨과 아픔 같은 것을 정화하는 존재가 되어야 돼 내 뜻을 거룩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 몸으로 보여 주라고 너를 택했어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어요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죄 지은 백성은 하나님이 징계하신 분이셔요 왜 정화하기 위해서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특별돼우를 해 주시기는 합니다
어떤 대우이어요 치시지만 완전히 멸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이라는 일들을 역사 속에서 고통을 통해서 키질 하지만 옛날에 우리 키질한다는 것 알지요
 
여기 체질이라고 했지먄 체도 있지만 체하고 키하고 다른 것인데 어떻든 걸러내는 것은 같은데 걸레고 걸러내고 그래서 순도 높은 것들을 남겨 놓은 것인데 하나님은 무엇이냐 죄 지은 백성들을 심판하시지만 체질하고 그래도 남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신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지요
 
9절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채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하나님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그릇된 선민 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택한 백성이니까 우리는 별일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10절 내 백성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안심하면 안 돼 내가 교회 다니는데 십일조 잘하는 데 어쩼던 선민이라고 하는 의식을 제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모스가 심판으로만 끝난다고 우리 우울해 질 것 같은데
 
에언자의 두가지 직무가 있어요
하나는 죄를 고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위로하는 것입니다
11절부터 회복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11절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 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절 그들이 에돔의 남은자와 내 이름으로 일컷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말하므로 다윗의 통치가 회복되는 꿈을 이야기 해 주고 있어요
여러분 다윗의 통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라고 하는 인물을 가장 위대한 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리고 다윗의 통치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약속한 것이 있지요
 
삼하 7장 12절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게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너를 통해서 다스리는 자가 대대에 나오도록 하겠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사람들이 다시금 일어서게 될 것이다 무너진 것 처럼 보이지만 신약에 오면 우리가 누구를 다윗의 뿌리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어떤 통치여요 이방인의 집권자는 너희가 함부로 대해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통치는 어떤 통치입니까? 지배하지 않습니다 남을 압도하려고 않습니다 그 통치가 영원한 통치입니다
 
신약에 오면 다윗의 통치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고 그 통치는 내 힘과 위력을 가지고 내 의사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살아내도록 섬겨주고
 
마 20장 27절 너희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통치하셨어요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게 이런 통치의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물론 아모스가 내다본다는 것은 먼 미래가 그런 통치를 아모스가 이런 이미지를 갖지 못했다 해도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주었던 다윗의 통치가 회복된다는 것이 그렇게 성취되도록 하셨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인 것이지요
 
13절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인데 날이 이를진데 그 때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건강한 노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향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상향을 뜻하는 용어들을 아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 해 보세요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무릉도원 낙원 엘도라도 샹그리아
 
유토피아라고 하는 말이 이제 토마스 모어라고 하는 분의 책이름이기도 한데 유토피아는 원래 우라는 없다는 뜻이고요 토피아는 토포스 장소라는 뜻에서 나옵니다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 사람들이 삶을 고달프기에 그런 이상향을 꿈 꾸거든요
 
그런데 이상향에서는 노동 안해도 되고 저절로 먹을 것이 생기고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한 노동을 하는 것이어요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부터 땅을 다스리라 경작하라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노동이 소외된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저주 인데 여기 포도원도 가꾸고 여러 가지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 어진 일들을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밥을 지을 때도 아유 이 인간들이 왜 이리 많이 먹어 이러면서 밥 짓지 말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아니 그릇을 이렇게 많이 써야 돼 알그락 달그락 하지 말고 음식 만드는 것도 그렇고 옷 재단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일들을 주께서 나를 보내주신 생의 자리라고 여기고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것이어요
 
이 이야기 아모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나라는 회복된 나라는 노동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노동이 기쁘게 생각하는 나라 무너진 것들을 회복하는 즐거움이 있는 나라
 
15절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리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무엇을 통해서 오냐 하면 철저한 심판을 통해서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공의와 정의를 무너뜨리던 사람들 제 배만 불리며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배고픈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 그 모든 사람들에 철저한 심판이 수행된 다음에 비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체질하고 남은 알갱이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그 삶은 무엇이냐 일상의 삶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그 일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여기는 삶 그런 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입니다
예레미야 1장 10절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레미야 45장 4절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네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는 큰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내 생명을 노략물 주듯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뽑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뽑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ㄴ l다 그러나 하나님은 뽑기만 하고 허무시는 분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시는 분 세우시는 분이셔요
 
아모스가 그렇게 준엄하게 꾸짖은 제 욕심에 찬 삶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채질를 당하고 나니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서 내가 하는 그 일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에 우리의 인생은 오히려 활기차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어요 아모스는 이렇게 희망의 예언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 한 대로 엔데스 굿 아네스 굿인데
 
잘 사는 것은 무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무너져요 자꾸만 넘어진 자리르 딛고 일어나서 기어코 하나님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갈 수 있는 것 참 삶인 것 같아요 여러분 공의로운 세상 정의로운 세상 그 세상이 우리로부터 시작되기 바라고 그 세상이 우리로부터 시작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세사우 타자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일 것이어요 이 마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올 부활절엔 ‘연합예배’와 함께 ‘퍼
“1890년대 콜레라가 창궐할 때,
지난해 교회 이슈, 신천지·전광훈·목
국민 63.9% “한국교회 신뢰 안한
갈멜산의 영광
선교보고서
제 2강 요나 1: 4-10 네가 어
제 3강 요나 1: 11-16 바다에
제 3강 오바댜 1:10-21 에돔의
세치 혀의 위력
최근 올라온 기사
제 4강 요나서 1:17-2:10 스...
성지(聖地)에서 보낸 편지
의인 리원량(1986~2020)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
4·15 총선서거를 위한 기도
대형교회들 "광화문 보수집회 참석 안...
제 3강 요나 1: 11-16 바다에...
술 취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일 돌아보기
이런 부자가 되라.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