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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자락에서 부르는 노래
2019년 12월 30일 (월) 21:31:15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시편 138:1-8)
[시]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시]138: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138:4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시]138:5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시]138: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시]138: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시]138:8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1.
    2019년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이렇게 연말이 되어 뒤를 돌아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요? 많은 사람들은 후회부터 한답니다. 한 때 유행했던 ‘난 참 바보처럼 살았네요’하는 노래 가사가 입에 자주 올라간답니다.
 
    그럴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며 다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이때쯤 되면 ‘망년회’ 열풍이 분니다. 잊어버리고 싶은 게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가요? 우리도 그러한가요?
 
    우린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뒤를 돌아볼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은 그게 아닙니다. 아무리 그가 일 년 중 힘든 일을 많이 당했고, 괴로운 시간이 많았고, 아픈 일이 많았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부분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한다구요? ‘감사합니다!’
 
    2.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인데 지난 시간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전망의 내용입니다.
 
    회고부터 봅시다. 1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왜 감사하고, 왜 찬송한다? 2절,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뒤를 돌아볼 때 제일 먼저 나오는 것, ‘감사합니다.’ ‘찬송합니다’입니다. 왜 그런가요?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괴로워도 일 년 동안 늘 주의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었으며,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그 때마다 위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에 아주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학자들도 이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답니다.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나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높게 하신 것, 강조하신 것, 비중을 두신 것은 주의 이름 보다 주의 말씀이다! 여기서 ‘주의 모든 이름’은 주님의 속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성들보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에 더 비중을 두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귀하신 약속의 말씀들, 그 생명의 말씀들, 그 말씀들로 주일마다 주의 종을 통하여 은혜를 얻고 위로를 얻은 것, 그게 어찌 작은 일인가요?
 
    올 해를 돌아볼 때, 나 자신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나보다 더 힘든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 일들을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종을 통하여 꽤나 많은 말씀을 하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설교, 목사가 전하려고 하는 것이 있어서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묵상 중에 증거하려고 했던 것보다 내 뜻과는 아주 다른 말씀을 전해야 할 때가 꽤 있습니다. 고생고생 하여 말씀을 준비해 놓으면, 그 말씀이 내 맘과는 영 딴 판이라, 내 맘에 들지 않아, 이걸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감동, “이걸 들어야 할 이가 있단다. 너는 전하기만 해라.”
 
    전하고도 나 자신이 은혜가 안 되고, 맘에 들지 않아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몇 분들이 내게 찾아와 고백을 합니다. ‘사실 지난달에 나는 이러이러한 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가 그에게 말한 것인가요? 목사인 나는 아닙니다. 주의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정된 틀, 양식, 스타일이 없습니다. 설교를 듣는 이들의 삶의 사정, 환경, 스타일, 버릇이 다 다르기에 다 다르게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십니다. 서로 다 다른 이들이 서로 다 다른 통로, 스타일, 주제를 통하여 은혜를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 공동체에는 말씀의 권세가 서 갑니다. 장로, 집사, 권사가 할 일이 뭔가요? 신령한 공동체, 자신의 교회에 주어지고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드높이고 사탄의 무너뜨리는 전략에서 교회와 말씀을 지키고, 말씀이 온 교우들의 삶에 퍼져가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포되는 주의 말씀이 높여지도록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주셨던 것을 감사합시다. 그 말씀들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위로도 얻지 못했고, 상처와 절망 속에 우린 어두운 세월을 보내야했을 것입니다. 때마다 일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셨던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3.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위로와 격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3절을 봅시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얼마나 많은 간구를 드렸던가요!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곤 그 응답이 마침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녀린 내 영혼에 힘을 더하여 주었고, 그 응답의 역사를 따라 내 영혼은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무사태평을 원하죠? 좋다. 그런데 무사태평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가요? 어느 유명한 선장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항해 중 가장 위험한 때가 언제일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폭풍과 싸울 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닙니다. 폭풍과 싸울 때는 모두들 살아야겠다는 집념에 일치단결하여 힘들긴 하지만 잘 견딥니다. 그런데 폭풍도 사라지고, 바다가 잔잔해졌을 때, 선원들이 긴장이 풀리면, 갑판에서 졸다가 바다에 떨어져 죽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때때로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울게 하신 것, 마음 졸이게 하신 것, 아프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왜? 그것으로 인하여 나는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 간구에 우리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 영혼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내 영혼으로 이 세상에서 경쟁력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쟁력 없는 상태로 위태위태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시잠간 그런대로 잘 풀려나가고, 잘 되어 간다고 기도도 없이, 헌신도 없이, 봉사도 없이, 예배도 게으르게, 그렇게 그런 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요? 그 영혼이 매우 나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프게 하신 것조차 감사합시다. 괴롭게 하신 것조차 감사합시다. 밤잠 못 자게 하신 것조차 감사합시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간구하게 하시고, 응답해 주시고, 마침내 내 영혼을 그만큼 강하게 해 주신 것,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손가요?
 
    정말이지 나는 여러분의 세세한 생활, 고민거리들을 잘 모릅니다. 아니, 실제로 우리 교우들은 목사인 나에게 이야기 잘 안 합니다. 아닌 척 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아픈 것을 내가 아는데도 아닌 척 합니다. 어쩌다가 ‘아프지 않아요?’하면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도리어 어떤 이는 그러더라구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목사와 교인이 이런 정도의 사이라면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목회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은 어찌된 연유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주어지는 말씀을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거기에 여러분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감동을 주셨기에 목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사는 이입니다. 규칙과 법을 따라 사는 이가 아닙니다. 내재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사는 이가 성도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감동을 주시고, 그 감동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전할 때 누가 눈물을 글썽이는지 어렴풋 느낍니다. 올 한 해 동안, 예배 때마다, 설교 때마다, 찬송 때마다 여러분이 글썽였던 그 눈물들, 목사가 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와 격려, 따뜻한 감동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다가오는 세월 속에서는 방울방울 보석의 방울로 바뀌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4.
    자, 이젠 전망, 2020년을 바라봅시다. 다가오는 세월을 바라봅시다.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감을 갖기 전에 우리의 미래를 펼쳐주시고, 이끌어주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주목하고 나아갑시다. 6절,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자를 아심이니이다.”
 
    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 그 분이 나를 아실까요? 그렇게 멀리, 지고(至高) 지선(至善)한 곳에 계신 하나님이 이 구석에서 혼자 속앓이 하고, 울고 있는 나를 아실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은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신답니다. 그 분의 관심은 이 낮고 천한 곳,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멸시당하는 낮은 자를 굽어 살펴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나를 몰라주고, 나를 박대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너무 아파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나를 굽어 살펴주십니다. 살펴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굽어 살펴 주십니다. 나는 이 ‘굽어 살펴주신다’는 말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냥 살펴주셔도 되는데, ‘굽어’ 살펴 주신답니다. 하나님께서 고개를 숙여 굽어 나를 살펴 주신단다. 나의 이 낮고 천한 삶의 터전, 이 현실을 고개를 숙여 살펴보신답니다. 대충 보시고, ‘복 받아라’하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여 세세히 살펴보신답니다. 굽어 세세히 보셔야만 보일 정도로 내 아픔이 감추어져 있고, 내 슬픔이 숨기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세세히 보시려고 기꺼이 굽어 살피신답니다! 얼마나 좋은가요! 이 하나님의 사랑, 굽어 살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여러분에게!
 
    그런데 말이죠, 동시에 이것 하나 잊지 맙시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그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은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답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은 교만한 자를 모릅니다. 거룩한 체 하고, 겸손한 체 하고, 열심인 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겸손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교만함을 아십니다.
 
    왜 이리 충성하는데도, 왜 이리 겸손하게 행하는데도 되는 게 없을까요? 왜 이리 쉽게 풀리지 않을까요? 내가 내 자신을 보는 눈,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과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합니다. 약 4:6 “..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 5:5b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대적하는 자가 잘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개 돌리는 교만한 자가 잘 풀려나갈 수 있을까요?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겸손과 교만을 보는 기준, 시각은 누구의 시각인가 하면 우리 인간의 시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안목입니다. 이토록 충성하는 데도, 이토록 겸손한 데도 되는 일이 없고 힘이 드는 것은,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충성스럽게, 겸손하게 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안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아심이니이다”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너 참 교만하구나. 너 참 겁 없구나.’하신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 패망은 기정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를 속으로 무시하며, 겸손을 가장해 봐야 그에게 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낮고 낮은 자는 굽어 살피실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시고 사랑해 주시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교만하다고 여겨지는 이는 이미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며,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교만하게 행하지 말고 거만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하나님께서 고개를 숙여 굽어 살피실 정도로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5.
    자, 이제 2020년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봅시다.
 
    7절,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리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2020년에는 잘 되기를 바라나 힘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평탄한 길 가기를 원하나 계곡과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늘 웃고 살기를 원하나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라도 오늘 말씀처럼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아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큰 두려움이요 어려움이요 환난이라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살아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주님의 큰 손, 능력의 손을 펴시사 여러분을 향한 원수들의 분노를 막아주시고, 구원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어느 손이 나를 구원하신다고 하십니까? 오른 손!
 
    오른손은 능력과 권능의 상징, 힘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계략과 핍박, 분노에 쩔쩔매는 나를 힘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지켜주심의 은총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원수들에게서 핍박당하고 빼앗기고, 손해 본 그것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때에는 갑절로 주심을 믿습니다. 욥 같은 이도 나중에 갑절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 봉사, 순종엔 공수표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그것도 갑절로 갚아주시길 소망합니다.
 
    시 90: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나는 감히 이런 축복을 바라봅니다. 내가 괴로웠던 날수, 내가 눈물 흘렸던 연수보다 갑절로 나를 기쁘게 해 주옵소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이에게 그 믿음대로, 그 소망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6.
    2019년 마지막 주일 예배, 이 끝자락에서 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고 노래를 부르며 왔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조차 감사하며, 갖은 눈물로 극복하며 뒤를 돌아보는 나에게 우리 하나님, 굽어 살펴주시고, 살아나게 하시고,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욱 꼬옥 붙잡아 주시고, 다가오는 2020년 내내 동행하시며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풍성한 복으로 여러분을 채워주시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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