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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회 총회결의의 신학적 의미와 과제
2019년 12월 03일 (화) 19:48:54 임희국 교수 www.cry.or.kr
(참조: 아래의 글은 2019년 11월 26일 장로회신학대학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발표한 임희국 교수의 발제 논문이다.)
 
공교회의 빛으로 본 명성교회 세습
             임희국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이천 년을 이어온 그리스도교의 전통인 공(公)교회는 온 세계 모든 대륙의 기독교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도적(apostolic)·거룩한(holy)·하나(one, 일치)의 교회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의 교회는 매주일 예배마다 사도신경을 통해 ‘거룩한 공교회’임을 고백한다.
이 글은 공교회의 빛에서 명성교회(예장 통합)의 부자(父子) 세습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최근 약 2년 동안 해당 교단 내에서 파란을 일으켰고, 교계의 우려 섞인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 언론에서도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1.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공교회(요 2:13 이하, 고전 12:27)
 
공교회의 뿌리는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뿌리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공교회이다.(고전 12:27)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는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淨化)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너 희가 이 성전을 헐라”(19절)라는 말씀이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예수의 엄중한 질책이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성전이 한낱 시장으로 변질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래 예루살렘 성전 곁 시장은 먼 지방에서 온 순례자가 제사에 쓸 제물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냉장 시설이 없었던 그 시절, 더운 나라 유대의 성전 곁에 형성된 시장에서 제사용 제 물을 팔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물을 파는 시장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났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기울여서, 제사에 쓸 신성한 제물이 통상적으로 거래하는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된 것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 제물의 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제사장들이 생겼다.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이 이들을 지배하게 되었 다. 이렇게 변질된 시장의 현실을 예수가 보았다. 그래서 예수는 성전에서 소와 양을 파는 상인들을 내쫓았다.
먼 지방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순례자들은 성전에 바칠 돈 또한 시장에서 바꾸었다. 그 당시 20세 이상 유대인 남성에게는 반(半) 세겔의 성전세를 바쳐야 했으며, 이를 위해 순례자들은 환전소에서 로마의 화폐(드라크마)를 유대의 화폐(세겔)로 바꾸어야 했다. 환전소 운영을 통해 제사장들이 부당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이에 예수는 돈 바꾸는 상인들의 돈을 쏟고 상을 엎었다. 이 행위는 제사를 빙자하여 부당이익을 챙기는 자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장사꾼이 되어서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제사장들에 대한 엄중한 질책이었다.
예수의 과격한 행위에 당황하여 화가 난 유대인들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말하며 “내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선포하였다. 새로운 성전을 3일 동안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장차 십자가에 달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출현될 새로운 성전에 대한 암시였다. 그러나 이런 상징 언어를 유대인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들이 알고 경험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인 까닭에 “사십육 년 동안에 (성전을)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20, 마 26:61)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성전만 알고 있었다.
예수와 유대인들은 동문서답을 주고받았다.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있는 건물이 성전이었고, 예수는 자신의 부활로 세워지는 성전을 지칭했다. 유대인들은 종교행위가 이루어지는 성전을 이야기했고, 예수는 종교행 위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세워지는 부활의 성전을 말씀하셨다.
예수는 ‘자신의 육체가 성전’(요 2:21)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육체는 십자가를 지고 사흘 만에 부활한 몸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데, 공교회의 뿌리는 십자가에 달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몸에 붙어 있는 지체(=그리스도인)가 공교회이다. 이는 종교적 가르침이나 신학적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는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듯 터져 나오는 생명의 능력과 역사가 있다. 공교회의 뿌리가 예수의 부활이다. 부활의 예수가 공교회의 ‘겨자씨’이고, 그 씨앗이 싹트고 자라면서 하나님 나라가 땅에 임한다.
 
2. 교회 세습이 훼손시키는 공교회성
 
1)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교회 세습: 초대형 교회의 권력화
명성교회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104회 총회가 지난 9월 하순에 개최되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명성교회의 세습에 관한 사항이 총회의 난제였다. 전국 교회와 총대들의 관심이 이 문제에 쏠려 있었다. 총회를 준비하는 임원회가 매우 고심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로 말미암아 자칫 교단이 쪼개질까 봐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임원회는 심사숙고하여 총회의 권위로 공교회성을 지키고 명성교회도 바로잡으려는 방안을 마련했다. 총회 초반(9월 24일)의 가결(재적 1,142명 표결/1,011표 찬성)에 따라 ‘명성교회 수습 전권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총회는 이 위원회에 명칭 그대로 명성교회 수습을 위한 전권을 위임하여 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7개 조 항의 수습안을 발표했고(9월 26일), 총회는 이 안을 통과시켰다.
이 수습안으로 명성교회의 세습 문제가 원만하게 타결되기를 기대했으나, 이와 달리 교단 총회 이후에 후 폭풍이 아주 거세다. 전국 다수의 교회와 단체가 총회 수습 안 결의에 대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고 또 ‘무효 청원서’를 내고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기도회와 집회 또한 같은 맥락으로 개최되고 있다. 전국의 교회들이 나서고 있다. 목회자 가운데는 ‘공개회개 및 탄식문’을 발표했다. 비판 여론에 따르면, 이번 수습 안 결의는 “초대형교회인 명성교회가 장로교회 정치의 헌법질서와 대의제도를 교란시킨 초유의 사건이요 교단의 총체적 위기 를 드러낸” 것이다.2)
또한 이 수습 안에 대하여 “명성교회 측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29일 개최된 “서울동남노회 가을 정기노회 시 김수원 목사가 노회장으로 추대”됨으로써 수습안의 일부가 우여곡절 속에서 이행되었다. 나머지 수습 안의 이행은 과제로 남아 있다.
아쉬움을 남긴 총회였다. 만약에 이번 총회가 교단 헌법에 의거하여 원칙대로 진행되었더라면, 명성교회의 세습 문제는 보다 쉽게 해결의 길이 열렸을 것으로 본다. 이미 총회 재판국이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청빙결의가 무효”라고 판결(2019. 8. 5)했다. 이로써 “명성교회는 불법세습청빙을 강행하여 정의(공정)를 훼손하고 소속 교단과 한국 교회의 선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주체였음이 확인됐다.”3) 이 확인이 이번 총회에서 결 의된 수습 안에 ‘불법세습징계 내용’(“서울 동남노회가 명성교회에 임시당회장 파송, 해당 노회와 명성교회가 사 과, 명성교회 장로총대 상회 파송정지”)으로 담겨 있다.
그런데 총회 기간에 명성교회는 단상에 올라와서 주변의 과도한 행위에 의해 무참히 피해를 당한 당사자로 자신을 포장했다. “명성교회가 피해자로 둔갑된 굴절 현상”이 순식간에 총회의 장내를 잠식하자, 불법세습의 과오를 시정하여 바로잡으려는 총대들의 의지가 혼미케 되어 혼동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피해자 동정론을 유발 시킨 명성교회는 15개월 이후 세습청빙 예약을 받아냈다.” 그리하여 “이번 총회에서 결의된 명성교회 수습안은 양면성을 지닌다. 하나는 명성교회 ‘불법세습청빙허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법세습징계’이다.”4) 명성교회 불법세습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일순간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고 오랫동안 교단과 교계에서 누적 되어온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초대형 교회의 무소불위(無所不爲)한 권력이다. 그 권력은 대체로 돈의 힘에서 나온다. 하나의 개(個) 교회인데도, 그 교회의 권력이 노회를 통치하고 총회를 장악함으로써 장로교의 대의제도와 치리 질서를 멈추게 했다. 장로교회의 공교회성은 헌법주의 원리로 유지되는데, 초대형 교회의 힘과 권력이 이 원리를 훼손시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대형 교회인 명성교회 당회의 힘과 권 력이 장로교회 정치 원리인 헌법주의를 해치고 대의제도 질서를 훼손시키는 사태를 유발했다.
2) 서원모, “위임목사직 세습과 교단 개혁의 과제”, 명성세습 불법허용 철회를 요구하는 자료집(2019. 10. 28), 5. 3) 오총균, “실종된 교단정의 회복만이 살 길이다”, 「울림」 2019년 10월 18일 기고문.
 
2)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부인하는 교회 세습: 교회의 사유화
위에서 언급한 요한복음 2장에서 유대인들이 이해한 성전은 무려 46년 동안 지은 웅장한 건물이다. 예수께서 지칭한 성전은 십자가에 달리고 3일 만에 부활한 자신의 몸이다. 유대인들의 성전은 가시적이고, 반면 예수께서 이룬 성전은 불가시적이다. 이 두 성전 사이에는 공통점도 없고 접촉점조차 없다. 가시적 성전은 예수의 지적대로(요 2:19) 헐어버려야 할 건물이다.
유럽 중세 시대에-공교회성을 상실한-그리스도교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과 기구로 변질되었다. 초반에는 정치권력을 쥔 영주와 황제가 교회를 지배했고, 중반 이후에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을 함께 쥔 교황이 교회를 지배했다. 그 정점에 교황이 군림해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 구조였다. 중세 후반부에 교회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피라미드 구조의 제도 교회는 가시적 교회로서 참된 교회가 아니므로, 불가시적 신앙공동체(communiopraedestinatorum)의 참된 교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위클리프(John Wiclif)는 교황이 지배하는 교회를 암흑시대 “적(敵)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공격했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적(敵)이라는 뜻이다. 공교회를 회복하려 는 중세 시대 후반기 개혁운동이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세습을 감행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들은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중에서 어느 교회를 세습하려 하는가? 당연하게도 불가시적 교회는 세습이 불가능하다. 이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습할 수 있다는 희한한 발상은 불가능하다. 세습을 감행하는 이들은 가시적 교회를 세습하려 한다. 이 교회는 건물과 부동산으로 구성되었기에 세습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시적 교회의 세습은 주로 부동산 등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므로, 세습하는 가시적 교회는 예수께서 질타하신 예루살렘 성전처럼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성직자들과 이윤 추구에 눈이 먼 장사치들의 소굴로 변질될 것이다. 세습하는 가시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세습을 감행한 가시적 교회는 더 이상 참된 교회가 아닐뿐더러 공교회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세습에는 ‘교회의 사유화’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두렵기만 하다.
 
3) 교회를 시장으로 변질시킨 교회 세습: 교회의 기업화, 맘몬 지배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장로교회의 공교회성이 무너진 때는 1938년 총회(제27회)가 결의한 신사참배였다. 일 제의 전시(戰時) 군국주의/전체주의에 굴복한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로 인해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제1계명)이 무너졌다. 첫째로는 예배가 무너졌다. 신사참배 이후 장로교회 총회는 먼저 궁성요배와 황국신민서사를 제송한 이후, 그러고 나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였다. 이로써 교회와 총회는 유지되었으나, 그것은 형체만 남은 껍질뿐이었고 신앙은 무너졌다. 둘째로는 헌금이 무너졌다. 신사참배를 결의한 총회는 국방헌금을 걷 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500원을 걷었다.5) 그 헌금은 일제의 전쟁 비용으로 바쳐졌고, 이때부터 교회는 일제가 감행한 전쟁에 동원되었다. 교회는 일제의 전쟁 승리를 위해 기도회를 가졌다.
심지어는 장로교회 총회가 일제 해군에 전투기(‘조선 장로호’)를 헌납했다.(1942년 9월) 각 가정의 부엌살림 도구인 유기(놋그릇)도 교회가 거두어서 당국에 갖다 바쳤으며, 교회 종각의 종도 떼어서 당국에 갖다 바쳤다. 이처럼 신사참배 이후 교회는 전쟁의 시녀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일제의 전쟁물자 수급을 위해 전국의 교회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일제는 전국을 면 단위로 1개 교회씩만 남겨놓기로 하고 교회 합병을 강제로 추진했다. 교회 통폐합으로 비게 된 예배당 건물은 매각 처분되었고, 그 판매 대금은 국방헌금으로 바쳐졌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사라졌고, 또 통폐합된 노회들도 있었다. 교단 소속 교인의 수가 크게 줄었고 또 교세도 위축되었다.
이렇게 신사참배는 신사(神社)에 가서 허리 굽혀 절하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예배당까지 매각 처분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교회 총회는 살아남지 못했다. 1945년 7월 19일 장로교회와 개신교 교파들이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완전 통합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8월 15일에 해방과 더불어 한국 장로교회와 총회가 다시 살아났다. 신사참배에 끝까지 저항한 순교자들, 출옥 성도들, 그리고 여성들(여전도회) 덕택이었다.
현재 교회 세습에 연계된 새로운 형태의 신사참배가 한국교회의 신앙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지금 교회를 위협하는 ‘제2의 신사참배’는 맘몬 곧 돈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이다.6)
5) 1940년에 쌀100kg의 서울 도매가격이 28.35원(圓)이었다. 6) 유경재, “풀무불에 던져질지라도”(단 3:8-18), ‘명성세습 불법허용 철회를 위한 참회기도회’ 설교(2019. 10. 28).
맘몬의 지배는 번영신학, 성장제일주의, 세속적 성공을 기원하는 기복신앙, 물신주의, 그리고 돈의 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초대형 개교회 중심주의와 연계되어 있다.7)
제2의 신사참배, 즉 맘몬의 지배에 종속된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된 산업화 시대에 시선이 간다. 그 시대의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나갔다. 그때의 시대정신은 ‘성장’ 이었다. ‘경제성장’이 중심이었다. 국민 모두의 가슴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아로 새겨졌다. 교인들의 가슴에도 그 성장 이데올로기가 새겨졌다. 그래서 교회는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성장을 지향하고 추구했다. 이때의 교회 성장이란 대도시 교회의 교인 증가와 재정 확대를 뜻한다. 그런데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에 따라 농어촌 인구는 감소했고 이로 말미암아 농어촌의 교회는 나날이 쇠퇴하였다.
그러한 고도성장의 시대는 이제 지나간 옛일이 되었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시대의 경제 제일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경제 제일주의로 말미암아 신앙의 초심이 흐트러졌고, 풍요한 물질을 누리고 즐길수록 신앙 정신의 힘이 많은 경우에 약화되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보다 돈과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딤전 6:10), 돈의 힘 앞에 신앙 양심을 포기하기도 했다. 오늘,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는 목회자와 교인이 허다하다. 의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는 이중의 신앙을 가진 교인이 점점 더 늘어나는 실정이다.
또 일부 교회들은 경제 제일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기업화되었다. 재벌기업화 된 초대형 교회 당회 권력의 교단 장악이 대다수 교회에 제2의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현실이다. 이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는 예수의 말 씀이 우리 가슴에 절실하게 울린다.
 
3.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이 교회의 희망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는 예수의 말씀은 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선포라고 본다. 일부 한국교회가 다소간에 맘몬의 지배에 종속된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공교회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한국교회에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였다. 그때처럼, 오늘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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