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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강 아모스 5: 14-27 선을 사랑하라
2019년 11월 28일 (목) 15:55:58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문득 다시 시작할 용기 이런 말이 떠올랐어요 무엇인가 하다 망가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늘 시간을 새롭게 하시니까 그래서 시간 속을 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나이 존재를 바꾸는 것 이런 것들이 시간을 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우리가 지난주에 이야기한 거의 마지막 지점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는 하나님께 돌아가라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지요 성소를 찾아간다든지 이런 것들 아니지요
 
이사야가 이야기 한 것처럼 성전에 마당만 밟는 자들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요즈음 이야기 하면 교회를 평생 드너들어도 핵심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어떤 핵심과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찾는다고 길갈이라든지 베델이라든지 브엘세바라든지 사람들이 성소로 여기는 어떤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결국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성문 앞에서 공의를 행하라 사람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해 주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지향이 될 때 우리는 비로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된다 그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종교적인 행위로 돌아감으로 자신이 마치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으로 아는 사람 그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겠지요 정말 돌아갈 줄 알아야 하겠다
 
오늘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하고 있는 말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일까 이것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5: 14-27
지난 시간에 여호와께 돌아오라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돌아오라 혹은 찾으라 찾으면 살 것이다
4절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14절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면 여러분 14절에 하반에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언자가 말입니다 예언자가 권고하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선을 구한다 바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께 돌아감이고 여기에서는 4절에 대응되어 가지고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것이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오늘 이 4절과 14절이 서로 대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구하라고 하는 말은 잠간 남겨 두고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돌아오라고 말할 때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향한 순례이어야합니다
 
제가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로에 대한 이야기 인데 미로 찾기 알지요 미로에 보면 밖에서부터 하나의 중심을 향해 가는 것이어요 갈 때 처음에는 쉽지 길이 열려 있으니까 순조롭게 갑니다 중심에 가까이 갔어 어김없이 미로는 어떻게 되어 있지요 막혀있고 그래서 우회해야 하고 미로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내가 중심에 가까이 갔다고 하는 순간 밖으로 가야 되고 밖에 있는 순간 안으로 지향해야 되고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미로입니다 삶의 진실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중심에 가장 가까이 갔다고 하는 순간 나는 중심에서 멀 어질 수 있습니다 거꾸로 중심에서 멀어졌다고 하는 순간 나는 안을 향한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 인생에 대입해 보면 가장 순조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고 어려웁다고 생각하는 순간 안을 향하여 열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인생은 순례로 이해해야 합니다
 
순례 필그림 우리가 순례자를 필그림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순례자들을 필그림이라고 합니다 중세에 격언 가운데 여행자는 요구하지만 순례자는 감사한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격언중에 하나입니다
 
여행자는 자기의 비용을 지불하고 어디인가 가기 때문에 비용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싶어합니다 거기에 맞는 대접을 해 주지 않으면 불편합니다 그래서 요구해요 요구하는 그 마음에는 만족이 없는 것이지요
 
순례자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중심을 향해가는 일종의 나그네이기 때문에 그는 순례길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안내하는 안내인으로 여깁니다 그것이 고난이든 역경이든 내가 원하지 않는 바라고 해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당도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물론 어려운 일을 겪으면 나는 기뻐요 할 수 없어요
 
한번 숨을 고르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어려운 일이 나로 하여금 중심에 가까이 가도록 해 주기 때문에 순례자는 감사하는 것인데 순례자는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어딘가가 어디일까요?
 
거기인데 거기는 어디이지요 거기는 주님과 함께 하는 곳 상훈씨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어요 언제나 정답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제가 그것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순례는 거기를 향해 가는 데 예를 들어서 성지 순례간다 하면 사람들은 이스라엘 가는 것을 성지 순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그렇게 붙일 뿐이지 진자 순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변화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순례여요 자기를 발견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내가 내 힘으로 사는 것 같았는데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내 인생이 너무 시시해서 나를 긍정할 수 없었는데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하나님의 선물로서 내 삶을 절실히 깨닫고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순례의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순례의 목표는 자기 변화에 있어요 나를 변화시키는 그러니까 자기 변화이지 자기 강화하기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여러분 순례를 갖다 와 가지고 증서를 가지고 나 이런 사람이야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어요
 
인생이 순례니까 끝없이 그렇게 가야 하는데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 이제 결국은 순례의 목적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나 자신의 변화는 두 가지를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15절 하나은 악을 미워하는 것 그 반대는 선을 사랑하라 내가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인데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자연 인간으로서 우리는 선을 사랑하기 보다는 악을 행하는 일이 더 솜씨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묘하게 악에 끌리는 요소가 있어요 인간은 어쩼던 선을 지향하는 것도 분명히 사람속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사람들이 당겨 가는 것은 악한 일이어요 그러기에 여호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그런 본능을 거슬려서 악을 거슬리고 악을 미워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선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이어요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한마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 초월의 능력입니다 자기 초월이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자기를 선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지요
 
그러니까 이 사랑에는 자기 초월이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희생다 따라야 해요 이 희생은 불쾌한 희생이 아닙니다 기쁜 희생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선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선한 일이 우리 삶속에서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그 일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잇을 때 선을 행하는 것이어요
 
그 행위의 이면은 무엇이냐 하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을 미워해야 하는데 여기 적극적인 단어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어거스틴은 악을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선의 결핍 그렇게 말합니다 어거스틴이 그렇게 이야기한 까닭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악이라고 하는 실체가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요
 
실체로 이야기하면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어거스틴은 마니교도들에게 가서 배우기도 하고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이런 고민들을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거스틴이 마침네 깨달은 게 무엇이냐 하면 캄캄한 방에 어두움이 있습니다
 
거기에 불 하나를 밝히면 어두움이 물려갑니다 어두움은 빛의 결핍이구나 이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세상의 악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선의 결핍이구나 이것을 우리의 실천적 삶으로 이야기 하지만 무엇이냐 하면 세상에 악이 가득찬 것처럼 보이는 데 우리가 빛어럼 못 살아서 선으로 못 살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 악을 미워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의 질문이기도 해요 왜 세상에는 악인들이 있어요 도무지 마음속에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가 흔히 악은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러는데 그것도 어려운 이야기여요 궁극적으로는 그 말이 맞는지 몰라도 우리 감정적으로는 안 됩니다 세상에 분명이 있어요 악의 구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악을 미워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 악 때문에 선을 행하는 자들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악을 미워하라는 말 속에는 악에 대한 분노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여러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보고도 악한 것을 보고도 세상이 다 그렇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어요 저항할 수 있어야해 악에 대해서 이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악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악에 저항함을 통해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없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게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적극적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악한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가 악한 일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사랑 법입니다
 
14절 악을 미워하고 선을 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미워하라 그렇게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면 혹시 하나님이 너희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실는지 몰라 예언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잘 변화가 안 되어요 인간의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는 고통을 당해야 조금은 깨닫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돌이키기 참 어렵고 이것이 사람의 버릇입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이야기 했지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배워서 아는 사람도 있는데 곤란함을 겪어야 아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요 그것을 곤이지지라고 말하는 데 곤란한 일을 겪어야 조금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가깝다는 사실을
16절과 17절에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너희 가운데 지나갈 것이라
 
16절과 17절에 울음소리가 낭자하지요 애곡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왜 애곡하는 소리가 그 땅에 넘치는 가 했더니17절 마지막에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시는데 왜 애곡해야 할 일이지요 이상하지요 출애굽기에서 보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이 내리지 않아요 마지막 재앙이 무엇이었습니까? 장자의 죽음 재앙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출 12장 12절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라고 말합니다
오늘 아모스의 말씀은 그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 구절을 연상 시키는 말씀이지요 심판을 위해 그들 가운데 들어가시는 것이지요
 
내가 슬픈 일을 당하면 울게 되는 데 여기에 보면 한 두사람이 우는 게 아니어요
아모스 5장 16절 광장 거리에서 울고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고 다시 말하면 울음 군을 청해다가 울게 하는 것이어요
 
그리스 같은데도 보면 그리스의 변방 같은 곳에서는 울음군들을 장례에서 초대해서 울게 합니다 그렇게 슬퍼서 아이고 아이고 울고 울고 하는 데 사람 올 때마다 울고 울고 하는데 그러다가 부침게 탄 냄세 난다 뒤집어라
 
그러고 왜 사람을 불러다가 애곡하게 할까요? 요즈음 우리로서는 장례식에서 그렇게 우는 사람 많이 많이 못 봅니다 어떻게 보면 젊잖은 장례식이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대게 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이나 다른 곳 장례식장 깜끔하게 되어 있는 곳에서 장례들을 치루지요
 
상주들도 크게 울거나 애곡하지 않고 낮은 소리로 조문객들 맞이하고 또 자기 절제하고 침착한 것이 교양 있는 곳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좋은 장례 풍습인지 잘 모르겠어요
 
울음군을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슬픔에 수문을 열어 줌으로 사람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슬픔의 수문을 열어주어야지 슬픔이란 감정을 가두어 두게 되면 이것이 둑이 되어 터져나올 수 있으니까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울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애도 의식을 치루지 않으면 내가 회복이 안돼 어떤 사람이 슬픔을 당하고 있을 때 그래서 세상에 아무것도 안 보여 지금 오로지 그 속에 내가 빠져 있는데 너무 울면 안 돼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울음 그쳐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만하면 되었어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누리지 못할 때 억압되면 그것은 굉장히 큰 고통이 될 수 있어요
 
어쩼던 우리가 애곡하는 풍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결국 그 땅이 무엇이어요 슬픔과 죽음이 가득찬 곳애 될 것이다는 것이어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릇된 희망에 대한 염려가 나옵니다
18절 화 있을진저 어떤 사람들에게 화가 있습니까?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여호와의 날이 오면 우리의 모든 어려운 일들이 사라질 것이야 좋은 날이 올 것이야 사람들이 기대를 합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어요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애쓰는 삶이어야합니다 악을 청산할 생각이 없으면서 그 날이 오면 좋은 날이 올 것이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언자가 지금 하는 이야기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사모하는 사람들 하나님께로 힘써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인 것이지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어요
 
그러면서 아주 무서운 비유를 합니다
19절 사자를 피하려다고 곰을 만나고
사자 피했다고 생각하는 데 곰을 만나 이게 어렸을 때는 사자와 곰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이야 차라리 곰 만나는 게 낫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누가 센가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집에 들어가서 벽을 짚었는데 뱀을 만나고 그러니까 좋은 날이 오기를 소망하는데 그 날이 고통이 될 것이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날이 오면 모든 게 해결 될 것 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심판날을 예비하고 있는 그런 제물과 같은 사람들이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1절 그들이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까닭이 무엇이냐?
예배의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자의 메시지가 강력합니다
21절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1절부터는 다시금 아모스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칭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정의가 무너진 시대의 예배를 하나님은 예배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며라고 말하는 데 이 절기는 삼대 순례 명절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지요 유월절이 있고 그리고 칠칠절 초막절 그 세가지 절기를 이야기한다고 볼수 있는 데 하나님이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는 그 절기를 미워하고 멸시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그 절기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져요 나는 이 절기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첫째로 절기를 지킨다고 하는 것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일상을 중단해 나는 해야 할 일 이 많아요 이것이 안 되어요
 
그러니까 나에게 시급하고 그런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일단 중지하고 결국 일을 중지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리듬 속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어요 하나님의 리듬 안식일도 그런 것이거든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생산의 주체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창조의 리듬속에 너 자신을 맡기는 것 이것이 회복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절기를 지킴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이어요 뿌리 찾기 왜냐하면 절기라는 것이 기억이지 않아요 유월절 때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승해 줍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떠돌고 있다가 애굽에 들어가서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기적적 개입으로 우리가 살아 났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요
 
칠칠절 명절 같은 것들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초막절 때는 광야에서 어떻게 돌봐 주셨는지 그렇게 함으로 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어요
 
세 번째는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내가 어떤 공동체를 속해 있는 가를 절기를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 확인하게 괴는 것이어요 나는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런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구나 느끼게 해요 절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런 절기조차 하나님과 찾는 일과 무관한 것이 되어 버리는 현상 행위로 끝나고 마는 것 이런 절기를 내가 미워한다
 
21절 또 축제의 모임인 성회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성껏 드리는 번제와 소제도 안 받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번제와 소제를 하나님께 바쳤어요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바쳤어 그리고 며칠 후에 하나님 만나서 받으셨지요 그랬더니 나 받은 적이 없다 자기는 분명히 보냈다고 하나님이 받은 적이 없는 것이어요 이런 행위가 많아요
 
세상에는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했다고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은 아니 너는 너를 위해 했지 나를 생각하고 한 적이 없어 우리가 드리는 예배 찬양 그렇다 그것이어요 자칫하면 하나님 영광 받으세요 했는데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사실 그 마음속에 나는 잘했지 이런 마음이 있다면 너희가 경건하다고 하는 종교행위 어떤 것도 내가 받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요? 그게 그 유명한 5장 24절입니다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요
아모스 5장 24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니라
이것이 굉장한 이야기인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형식을 갖춘 예배나 영웅적인 실천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일이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의와 공의를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정의라고 하는 것은 사법적 정의입니다 법에 의해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자나 권력 없는 사람이나 법이 똑 같은 잣대를 가지고 판단을 해
 
요즈음 사람들이 속 상해하는 것이 법이 똑 같이 시행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져 힘 있는 사람에게는 법이 너무 약하게 적용이 되고 한 만원어치 어김없이 처벌을 하고 이게 문제인 것이지요 정의가 시행이 안 된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법이라고 하는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法(법)이라는 글자가 물 수자에 갈거자인데 물이 흘러간 것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중간에 복잡한 글자가 있는 대 빠졌다고 합니다
 
해치라는 전설의 동물의 있는데 영험한 동물이 있는데 마음에서 불의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귀신 같이 알아 가지고 뿔로 받아 물에 빠지게 만든데 이게 법이야 법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
 
그런 짐승하나 기를 수 없을까 전설상의 동물인데 그런 동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리스에서는 동물로 안 하고 머리를 풀어 해치고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디케의 여신 정의의 여신입니다 디케의 여신 그래서 사람들을 기어코 벌하지요 그런 정의가 살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법적 정의를 이야기 한다면
공의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또 부모가 병약하기도 하고 돈도 없고 해서 어려운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신체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정신적인 멘탈이 강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같은 시대에는 외모 자본이 날 때부터 차이가 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쁘고 잘 생기고 그러면 그것이 자본이 되고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살다 보니까 나는 경쟁에서 도저히 이겨낼 수 가없어 내 삶을 살아갈 수가 없어 그러면 이 냉혹한 세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게 네 팔자니 네 능력이지 우리 능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사는 것인데 하고 이야기하지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어요 그 생명들 모두가 다 소중한 생명인 것이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세상이 불공정하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저들도 안심하고 사는 세상 말들고 싶어 그 이야기여요
 
그래서 무엇을 해아 하는가?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무엇인가 만들어 주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어요 그리스 사람들이 아주 이상적인 사회 체계로 생각했던 것을 이소노미아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을 무지배 이렇게 번역하기도 하는 데 사실은 이소라는 게 같다 평등하고 그런 뜻이어요 노미가 법이야 법 안에서 평등한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서로 수직적 위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법이라고 하는 체제 내에서 우리들이 상호 소통하며 사는 것이지요 금방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분명히 그런 차이가 있어요 자연적 차이가 이 자연적인 차이를 인간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대로 버려두면 안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해 이것이 공동체여요 그게 공동체를 구성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공의야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하고 이런 사람까지도 살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공의이고 이것을 성서에서 이야기하기를 회복적 정의 그 사람이 조금 무능하다 해도 그래도 공동체로 그를 부등켜 안고 가야 되는 것이 공의다는 것이어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는 바로 그것이고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을 알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 지어다
 
마르지l 않는 강 무엇일까? 하나님의 은혜의 강입니다 속에서 솟아나는 물 줄기에도 솟아나올 때 인생의 마음에도 그런 마음이 줄어들지 않을 때 세상은 살만 한 곳이 된다 정의와 공의를 이것을 왜곡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위선입니다 이것이 강렬한 메시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의가 무너진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25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내가 너희를 동봐준 게 너희가 네게 제물을 바쳤다고 해 가지고 흐뭇해서 도와준 것이냐 아니지 그것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도와 준 것이다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물을 바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호의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너희가 내게 드렸느냐 묻습니다
 
26절과 27절이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식굿과 기윤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앗시리아의 천체 신이어요 우상입니다 우상 그러니까 앗시리아가 강대국이기에 때문에 그 강대국의 신들을 자기의 신들로 모시면 나도 조금 세 질까 그것을 섬기게 되는 그런 상황인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이런 천체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음을 뜻하는 것이어요
 
결국은 그러한 결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27절에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결국은 그들이 선택한 그 삶 때문에 고국 땅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속에 가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침표를 찍듯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 등장할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마다 앞에서 하는 이야기를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5장 24절이 핵심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의와 공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지요
정의와 공의 그러니까 법은 옳게 집행이 되어야 하고 그러나 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공의가 세워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어마 어마한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말 쥐꼬리만큼 버는 데 이것이 능력이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어요
 
이 사람들도 안심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야 이것이 현대적 의미로 이야기하면 무엇이냐 하면 복지입니다 복지이겠지요 누군가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그 사람이 살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북 돋아 주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공의 이지요
 
그것이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상이지요 공의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정의는 저희의 삶속에서 삶에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불의 남이 누려야 할 몫을 내가 차지 않는 것 이런것이 정의의 삶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 사회가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책임입니다 그 책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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