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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2019년 09월 27일 (금) 05:38:05 양의섭 목사 www.cry.or.kr

(고린도전서 1:1-10)
[고전]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전]1: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고전]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
    예전에 어느 교회를 처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 예배당 출입 유리문에 이런 표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그걸 보는 순간, 처음 간 교회임에도 왠지 내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오만가지 마음이 있고, 형형색색의 뜻들이 있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모이는 곳일지라도 그 말과 마음과 뜻이 얼마나 다 다른지 모릅니다. 언제나 동상이몽(同床異夢)이요, 오월동선(吳越同船)입니다.
 
    그런데 ‘같은’ 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으면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취미가 같아’ ‘같은 동네사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하면 얼마나 맘이 편해지는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갖고, 같은 뜻으로 주님을 섬깁시다. 그야말로 우리는 같은 편입니다.
 
    2.
    이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이 성경에 기록된 곳이 오늘 본문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편지에 나오는 말입니다.
 
    고린도는 로마 시대에 상당히 규모가 큰 도시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최대 인구로 60만 명이 달한 때도 있었답니다. 상업과 교통은 물론이요, 철학이 발달한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성지순례 때 가보았더니 시지프스의 신화, 바위를 밀어 정상에 올려놓으면 굴러 내려오고 다시 밀어 올려놓으면 또 다시 굴러 내려오고 하는 그 끊임없는 반복의 형벌의 배경인 시지프스의 산이 거기에 있더라구요.
 
    이곳에 주후 50년경, 사도 바울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인들은 대부분 이방인으로 서민층이었고, 그 성격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사변적이요 지식적이요, 패거리를 쉽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 교회는 말 잘 하는 이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말 못하는 이는 명함도 못 내미는 교회였습니다. 도시 전체가 철학적 분위기가 가득하여 교회도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젖어있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은 얼마나 말들을 잘 했겠습니까. 그러기에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고전1:5)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했답니다. 즉 말들을 기막히게 잘 했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엄청 많았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제대로 공부한 철학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도리어 이런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고전1:26이하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6-28)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습니다.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그리고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별로 없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고린도 교회에는 자유인보다 종들이 더 많았습니다. 고린도 도시민 60만 명 중에 40만 명이 종, 노예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 대다수가 이런 종들이었습니다. 이 종들이 교회에 나오더니 제 주인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제 잘난 체 하며 말장난을 하고, 고집을 부리고, 패거리를 이루었습니다.
 
    3.
    어떤 패? 고린도 교회에는 4 패거리가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바울파는 고린도 교회의 개척자인 바울을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토박이, 개척 교인들입니다. 언제나 주인 행세 하려는 이들입니다.
 
    교회가 안정되는 데에는 이런 그룹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룹의 성격이 강한 교회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새 교우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들이 먼저 대접받고, 직분을 얻으려고 합니다. 늘 자기들이 주인이라는 의식에 아주 폐쇄적인 교회를 이룹니다.
 
    아볼로파는, 신학자요 철학자인 아볼로를 추종하는 이들입니다. 이 파는 소수이면서도 진보적이며, 이성적 당파로 감성적인 신자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지적 요소를 자랑하는 일종의 엘리트 그룹이었습니다. 성령의 감동, 감격 보다는 지적인 말씀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감격의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그런 그룹이었습니다.
 
    게바파는 베드로를 추종하는 이들입니다. 굳이 이들이 헬라 문화권 내의 고린도에서 헬라식 이름인 베드로파라고 하지 않고, 히브리 이름과 비슷한 아람식 이름인 게바파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봐서 아주 아주 보수적인 그룹입니다.
 
    이들은 경건 운동과 금욕 운동에 열심이었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기도원 파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금식하고 철야하고 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 인 것 같이 여기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그룹이었습니다.
 
    그리스도파가 있습니다. 이 파는 가장 나중에 생긴 파로 이미 있던 당파들을 탓하며 생긴 파로 보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교회에 파가 많지? 에이 난 아무 파에도 속하기 싫어.”하며 자기는 인간의 패거리에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다 하여 생긴 파입니다.
 
    사실 제일 무서운 패거리는 바로 이런 파입니다. 자기들만이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그래서 남들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독선적인 당파가 제일 무서운 패거리입니다.
 
    이들이 제각각 자기 소리를 냅니다. 자기주장을 고집 부립니다. 한 교회 안에서 자기편만 지지합니다. 자기 사람만 중시합니다.
 
    그런 교회에서 복음의 하나 된 소리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4.
    조금 곁길로 샌다. 서울대 역사학자 박지향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 1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민주공화국’인데, ‘민주(民主)’는 확실한데 ‘공화국(共和國)’인지는 확실하지 않답니다. 즉 우리나라는 민주는 됐는데 공화는 안 되었답니다. 공화는 개인의 사적 이익을 양보하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게 공화인데, 우리 사회, 정치의 현실을 보면 민주만 가득하지 공화, 성숙한 공동체 의식은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 잘났고, 옳다고 고집 부리는 이들 때문에 민주는 됐을지 모르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협력할 줄 아는 공화는 안 되었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지도자만 지도자고, 자기가 지지하는 당은 무조건이고, 자기네 편은 무조건 정의롭다고 고집 부립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 큰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런 이들이 중요한 거 아닙니다. 대한민국 자유 민주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백성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말 잘하고 카리스마 있고 그럴 듯 하게 처신하여 인기있는 정치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국민에게 있고, 이들도 다수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패거리를 짓고, 지역을 선동하며 미움과 분열을 부추기는 이들을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우(右)든 좌(左)든 그럴 듯한 논리와 선동, 쇼에 혹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공화국입니다. 서로 다른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며, 서로를 존중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며 소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민주 공화국입니다.
 
    교회도 이와 비슷합니다. 자기 부서만 중요하고, 자기네 모임부터만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자세입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말 잘하고, 지식이 풍성하고, 열성도 좋고, 은사도 엄청났는데, 늘 서로 갈등을 빚고 다툽니다.
 
    5.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지도자인 사도 바울이 아주 분명하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겠습니까? 제발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합니다!
 
    같은 말이 뭘까요? 말이란 것은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해야 하는 말, 그것도 ‘같은 말’은 뭘까요?
 
    세상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어느 지방 교회 김 장로님, 성지 순례 간다고 비행기를 처음 탔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한 김 장로님, 이것저것 뒤적이며 구경하다가 스튜어디스에게 커피를 달라고 하는데, 2잔을 갖다 달랍니다. 그러더니 한 잔만 받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한 잔은 김양 마셔.’ 이게 어디서 배운 건가요? 어디서 하던 버릇인가요? 시골 동네 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놀던 가락입니다.
 
    교회, 주님의 신앙공동체에서 세상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배운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놀던 가락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고, 예수님의 마음을 터치하고 싶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장로요 권사요 집사가 권세 있더라도 태연히 교회에서 세상 이야기, 자기 경험, 자기 직업에 근거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성도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을 하십시오. 성도가 할 수 있는 말만 하십시오.
 
    그러면 같은 마음은 뭔가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사도 바울은 이것을 “예수님의 심장, 그리스도의 심장”이라고도 표현합니다.(빌1:8)
 
    우리의 마음, 얼마나 다양한가요? 내 안에 있는 마음 참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설교하는 있는 이 순간에도 내 마음은 복잡합니다. ‘김 집사는 왜 안 보이는 걸까? 이 집사는 왜 눈을 감고 설교를 들을까? 최 집사는 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혹시 박 집사가 이 말씀에 시험 들면 어떡하지 ...’
 
    우리들 마음처럼 복잡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같은 마음을 품으랍니다. 어떤 마음? 예수님의 마음!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봉사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자신의 인심 좋은 마음으로 덤벼들지 마십시오. 실망합니다. 자신의 열정에 근거한 마음으로 일하지 마십시오. 싸움 납니다. 주의 일은 주님의 마음으로 하십시오. 예수님은 어떠실까? 예수님은 분명 그러실 거야, ....
 
    우리 안에 마음이 다른 이들이 있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같은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 사랑합시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서로의 언행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은 뜻, 이 ‘뜻’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을 보니 ‘judgment’, ‘판단’이라고 번역했더라구요. 의지가 아닙니다.
 
    이 판단은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바로 그 앞의 단어,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뜻’은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Word of Jesus! Mind of Jesus! Judgement of Jesus!
 
    어느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장로님은 회사 장부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경리를 맡은 자매가 몇 년 동안 회사 공금을 조금씩 빼돌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장로님은 고민하였습니다. 같은 믿음의 식구라 믿고 왔는데, 이를 어쩌나 ... 한편으론 괘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토록 믿어줬는데 그런 부정을 저질렀다니 배신을 당한 것 같아 그냥 가차 없이 자르고,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픈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시간에 감동이 옵니다. “네 마음이 아닌 내 마음으로 그 아이를 봐라” 하는 주님의 감동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새벽에 결심을 하였습니다. 뜻을 정했습니다.
 
    그 자매를 불러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번 달부터 너의 월급을 올려줄게. 그것으로 그 동안 네가 빼돌린 회사 돈을 갚아 가라.”
 
    같은 뜻은 주님의 마음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자기 기분, 자기 감정, 자기 생각에서 결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에서 결단합시다. 결정을 내릴 때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 그 사랑 한 가운데서 결정을 하고 결단을 합시다.
 
    6.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예수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마음도, 말씀도, 판단도 다 물 건너갑니다. 예수님과 교제하지 않는 이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요즘 예수님과의 교제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요? 변함이 없기 바랍니다. 늘 예수님과 동행하기 바랍니다. 늘 예수님께 기도하며 살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 더 가까워지고 견고해 질 것이며 마침내 안 통하던 성도들과도 다 통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 눈치 보려고 하지 말고, 누구 맘에 들려고 기를 쓰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어느 사회학자의 말에 의하면 내가 하는 말에 주위 사람들 90%는 귀담아 듣지 않는답니다. 그렇게 내가 신경 쓰는 주위 사람들 대다수는 내 이야기에 실은 관심조차 없답니다. 듣는 척 하지만 생각은 딴 거 한답니다. 오로지 10%만이 듣는답니다.
 
    그러니 그런 무의미한 사람들과 교제하기 위해 온 신경쓰지 말고 예수님과 교제하는 데 전력하십시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도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 주님과 더욱 교제하십시오! 그러면 다 통합니다!
 
    7.
    지금은 영어를 유치원 때부터 배워 익숙하지만, 우리 때는 중학교에 들어가야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간다는 것이 뿌듯하던 시절입니다. 그 중 1 초기 시절, ‘I am a boy, you are a girl.’ 하던 시절에 우리 반 어떤 아이가 그랬습니다. ‘Same same go!’ 아주 자신있게 그러는데 ‘우와, 얘는 영어 잘 하는 구나!’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same same, 같이 같이, go, 가자! 무슨 뜻? ‘같이 가자!’ 쌤쌤고!
 
    same word, same mind, same judgment,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같이 가자, 하나가 되자! 늘 예수님과 교제하며,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된 성도가 됩시다. 이런 이들이 모인 교회를 향해 오늘 말씀은 이렇게 축복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2-3)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왕중의 교우들에게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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