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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라를 위한 기도가 ...
2019년 08월 14일 (수) 09:17:55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다니엘 6:10)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
    4,50년 전만 해도 서울 근방에는 기도원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불광동의 한 산에 있는 기도원엘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서 헐떡이며 올라갔습니다. 기도원을 지으려면 누구나 다 쉽게 찾아올 수 있게 산 밑이나 중턱에 짓지 왜 이리 힘든 곳에 기도원을 지었을까 투덜대며 올라갔는데, 그 기도원 이름을 혹시 아는 분이 계십니까? 우국(憂國) 기도원!
 
    나라를 염려하며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자기 일신상의 편안함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나라를 염려하여 기도하는 기도원이었습니다. 헐떡이며 올라가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내려오는 곳이었습니다. 뜻 밖에 참 많은 이들이 그 기도원에서 기도하더라구요.
 
    요즘 어떤가요? 이젠 나라를 위한 염려, 나라를 위한 기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본이 저렇게 못 되게 굴어도,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 대도, 중국과 러시아가 위협을 해도, 미국이 돈 갖고 장난을 쳐도 별 거 아니라고, 잘 되고 있다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모든 걸 다 극복하고 잘 될 거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나라가 곧 절단날 것 같이 걱정에 걱정을 합니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는 “나라 말아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요”라는 글이 실렸더라구요.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분명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2.
    며칠 전, 교단의 중진 목사님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우리 교단의 증경 총회장이시며 시내의 큰 교회 원로 목사님, 미래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십니다. 요즘 나라에 대한 염려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당신은 두 가지만 잘 해 주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상관이 없답니다.
 
    하나는, 나와 내 자녀손이 이 상태 만으로라도 그냥 계속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답니다. 더 잘 사는 것도 좋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계속 살 수 있다면, 내 자녀손이 헐벗지 않고,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게만 해준다면 좌든 우든 상관이 없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나와 내 자녀손이 지금처럼 마음껏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선교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기만 한다면 누가 나라를 주도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공감이 가는 면이 있습니다. 좌든 우든 지금처럼만 살게 해 주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내 자녀손이 이 자유를 계속 누릴 수만 있다면 좌든 우든 돌아가면서 정치를 하더라도, 아니 누가 계속 집권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정치라는 것은 사람마다 감각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점잖은 목사님들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어색해지는데, 내가 가만 보니 이건 정의의 문제라기보다 취향과 성향의 문제인 듯 하다. 저 사람은 늘 저런 성향이 있기에 저런 정치와 정책을 선호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언제나 그런 의식 속에 살았기에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정치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정치를 벗어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유와 안전, 안보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경제정책의 실책으로 조금 못 살게 되고 어렵게 되는 것, 참아 줄 수 있습니다. 정책을 잘못 펴서 조금 혼란스러운 것, 국민들에게 잘못했다고 할 때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잘 하려다가 그런 거니 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안보, 안전을 위협하고 지키지 못하는 정부, 군 통수권자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대문은 지켜줘야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담장 안에서 사는 가족들은 떨지 않고 살게끔 가장은 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안전을 담보로 하여 흥정을 하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나라이기에 대문도 담도 필요 없다고 그것들을 다 헐어버린다면 어찌 그 안에서 맘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 까짓것 나까지는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들까지 그런 불안함 속에 살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솔직히 아들, 딸 자식들까지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와 함께 고생한 세대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손자가 생기고 나니, 내 손자들까지 그런 불안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더라구요.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쳐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칼을 뽑아든 이유가 뭐라고요? 손자가 아니기에! 손자를 바쳐라 했다면 못 바쳤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전에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렸는데 손자가 막상 생기고 키우다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았습니다. 내 손자들까지 그런 불안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구요? 안됩니다!
 
    아무리 함께 해야 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 믿음도 지키지 못하고, 숨어서 찬송을 부르고, 아닌 듯 뒤돌아서서 은밀하게 기도해야 하고, 맘대로 예배도 못 드리는 사회, 그런 나라가 된다면 내 어찌 그것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그러기에 교회와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극에서 극으로 치달려가는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광복의 두 주역이었던 김 구 선생과 이 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 단체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먼저 김 구 선생님의 연설입니다.
 
    “내가 서대문 감옥에서 15년간의 징역을 살 때 나의 어머님은 면회를 오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성경을 의지해라. 설령 이 에미가 너를 버린다 해도 예수님은 너를 버리지 않으신다.’ 이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요? 곧 성경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단체에서 한 연설이기에 자신의 신앙 위에 진하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이 승만 전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곧 신(新) 국가를 건설해야 할 터인데 기초 없는 집을 세우지 말고 곧 만세 반석 되신 그리스도 위에 이 나라를 세웁시다. 그래야 이 나라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됩니다.”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 조선, 이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 대한민국은 그 형성 시기부터 알게 모르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눈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린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현재의 국가가 이루어질 때 그 주역들이 눈물로 기도하던 그리스도인들 이었습니다. 제헌국회 첫 날, 개원식 때 우리 국회는 기도로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나라, 대한민국은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기도, 하나님께 대한 열망에서 시작하였고, 기초가 다져졌습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를 다시 강하게 세우는 길은 기도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고, 이 일은 끊임없이 나라를 위한 기도에서 가능해 질 것입니다.
 
    3.
    오늘, 우리는 우국(憂國), 나라를 염려하며 기도하는 다니엘을 만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이스라엘 1차 침략 때, 주전 605년경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온 이방 땅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메데 사람 다리오가 정권을 잡았을 때 전국을 다스리는 관리 120명 중, 3명의 총리로 발탁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셔서 3명의 총리 중 으뜸 되는 수석 총리, 우리 식으로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는 정적(政敵)들이 여럿 나타났는데 이들은 다니엘을 무너뜨리고자 계략을 꾸몄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집어넣어 처형하자는 법안을 만들어 왕의 허락을 받아내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찌 하였을까요? 생명이 위험하니 기도를 한 달 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으로 몰래 기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오늘 성경에 보니 언제나 정한 시간에 모든 일을 중지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왜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을까요?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했을까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침략국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잘 살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와 고통 받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사람 다니엘의 관심은 당연히 국가에 있습니다. 자나 깨나 바벨론의 침략에 망한 조국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관심은 조국 이스라엘과 동족들이었습니다. 진정한 우국지사였습니다.
 
    이런 우국지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을 선동하고 길거리로 나가고, 무리를 짓고 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 다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굳게 믿고 사는 성도들, 그러면서도 나라가 염려되어 노심초사하는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보든 안 보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합니다!
 
    4.
    구체적으로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루에 몇 번? 3번씩! 다니엘은 할 일 없는 실업자인가요? 그렇게도 시간이 남아돌았는가요? 그는 바쁜 공직자였습니다. 그것도 국무총리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다니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을 드려 민족을 위해 하루 3번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루에 3번 드리는 이 기도는 유대인의 전통으로 볼 때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입니다. 이 세 번의 기도 시간은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은 시간대입니다. 그러나 민족을 향한 기도를 쉴 수 없기에 다니엘은 정해진 그 시간에 기도합니다.
 
    특별히, 정해진 그 시간은,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모두들 기도할 것이기에, 그 시간을 지켜 기도합니다. 비록 혼자 기도하지만 공간을 초월하여 그 시간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모두 함께 기도할 것이기에 다니엘은 신앙의 선조들이 정해 놓은 시간에 변함없이 엎드렸습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루에 한 번, 그것도 시간을 바꿔서 한밤중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다니엘의 기도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찌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다니엘은 나라를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도록 열린 창 앞에서 기도하는 다니엘, 뭘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다니엘의 주인이시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왕의 명령에 의해 그 누구에게도 왕 외의 대상에게 기도하면 사형을 당합니다. 그게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에겐 그런 세상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이 더 두렵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주인은 다리오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에 의해서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국을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왜 하필 예루살렘으로 향해 열린 창일까요?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조국, 조국 하니까 오해할까 싶은데 이 조국은 그 조국이 아닙니다.
 
    지금은 비록 남의 땅이 되어 있고 돌아갈 수 없으나 다니엘은 고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나라,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셔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하소서’ 이렇게 한 가지 염원으로 살고 있는 그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이 승만 대통령은 몰리고 몰린 한반도의 코너인 부산의 한 교회에서 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승만 대통령은 ‘목사님들,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눈물로 요청했고 많은 목사님들은 모여서 철야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얼마 후 유엔군이 파견되었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국가를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들은 설령 예수님을 모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어려움에 처한 이 나라를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 쉬지 않는 기도였습니다.
 
    본문의 중간에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인 기도였음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국가를 위한 기도회’라는 타이틀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기도는 교회마다 개인마다 기도할 때마다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소원의 항구’로 불리는 태백 기도원이 있습니다. 이 기도원 본당 위에 뾰족한 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집은 나라를 위한 기도의 집이랍니다. 그 집에서는 오직 나라를 위해서만 기도해야 하는데, 매번 그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한답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힘은 군대나 경제가 아니라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구나’했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라가 염려된다면 성도여, 기도합시다. 꾸준히 기도합시다.
 
    5.
    몇 해 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자카르타 시에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었습니다. 자카르타 시내 한 복판에 28층의 빌딩, ‘City Loft’ 빌딩인데, 맨 위층에 두 개의 사무실을 어느 기독인 사업가가 사서는 기도실로 내놓았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이들은 찾아와 기도할 수 있답니다. 다만 개인기도는 그곳에서 하지 않는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 대형유리로 탁 트인 전망이 자카르다 시내가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방에는 인도네시아 지도와 지구본, 그리고 신문과 잡지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유리 창에서 손을 들고 자카르타 시내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그 후, 인도네시아 지도와 지구본을 보며 인도네시아와 세계를 위해, 그것도 정치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기도 탑이 인도네시아에는 총 78개나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도시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놀라운 일은 기도의 응답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기도탑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 토니 물리야(Rev. Tony Mulia) 목사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기들이 이런 기도의 열심을 어디서 배웠는지 아느냐고. 어디냐 했더니 그럽니다. ‘한국교회에서 배웠습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구역예배 등등을 통해 그 기도 열정을 배웠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한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왜?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도 열정은 다 사그라졌습니다. 예전엔 교회마다 철야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하나님의 전에서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자녀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이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가 되어 새벽 기도하지 않으면 부끄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회 가는 이들로 새벽길이 채워졌습니다. 철야기도엔 교회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교회는 밤중, 깜깜합니다. 기도의 불길이 사그라졌습니다.
 
    기도의 불을 다시 지펴야 합니다. 특별히 나라를 위한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기도해야 이 나라는 삽니다. 기도해야 이 나라는 안전에 거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꿈과 축복을 이룰 수 있을까요?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의 불길이 치솟아 올라갈 때 내 축복의 역사도 함께 치솟아 올라갑니다. 기도의 힘을 얻을 때 세상사는 힘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 기도든, 남의 기도든 어쨌거나 기도를 통해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이 나라를, 난처함에 빠진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은 기도에 있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다시 이 땅에서 불일 듯 일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건지시고, 굳세게 붙들어 주시기를, 그리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손이 이 땅에서 번영과 신앙의 축복을 누리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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