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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59강 29:15-27 채찍과 꾸지람의 유익
2019년 07월 24일 (수) 08:34:09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살다보면 가끔 야단 맞을 때가 잊지 않아요. 야단 맞을 때가 언제인가요? 살다보면 내가 스스로 정신을 잃고 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정문일침(頂門一鍼)이라고 하는 꼭대기에 침을 놓는 것처럼 정문일침을 줄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전환의 계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목사님이 젊을 때에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었어요 젊은 날이니까 놀고 싶지 않아 토요일 날 너무 열심히 놀다가 주일날 예배에 늦었데요 그래서 목사님에게 엄청 야단을 맞겠다 하고 긴장하고 갔는데 목사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셔요
 
그러면 지나갔구나 생각했는데 더 불안하지요 왜 야단 안치지 예배 다 마치고 나서 너 여기 앉아하고 준엄하게 야단을 치는 것이어요 네가 젊어서 토요일 날 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는데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본인이 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죄다. 예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소홀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너는 자격이 없어 신학교 그만 두어라
 
그 목사님의 단호한 꾸지람이 그 분으로 하여금 예배드리는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데 평생을 나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 분이 내가 아니고 나는 별로 노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그 분이 60대 중반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도 그 일을 철저하게 그러니까 20대 초반에 목사밍으로부터 준엄하게 한 들은 그 한 마디가 40년 넘게 예배드리는 태도를 결정지었던 것이지요 때때로 꾸지람이라고 하는 것은 불유쾌가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자리를 바르게 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종종 말한 것 처럼 매를 잘 밪아야 사람이 큰다는 이야기 매를 잘 맞는다는 이야기는 야단맞은 것을 불쾌함으로만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 야단 맞음을 통해서 자기를 발전시켜 나갈 때 매를 잘 맞는 것이지요
 
오늘 읽은 첫 구절은 채찍과 꾸지람 이야기인데 뭐 매 맞는 것 꾸지람 듣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채찍질을 당해야 되고 여기서 채찍이라는 것은 사실은 목자의 지팡이를 뜻합니다.
 
목자의 지팡이라고 하는 것은 때리는 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지요
시편 23편 4절 주의 지팡이와 목자의 지팡이입니다.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그리고 꾸지람이라는 것은 마치 짐승을 훈련하는데 막데기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을 훈련시키는 대도 그런 물리적인 꾸지람 혹은 징계가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요즈음에는 체벌에 대한 이야기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지만 옛날에는 엄격한 교육들을 했단 말이지요 체벌과 훈육이 따르지요 물리적으로도 야단치고 말로 야단치고 어떤 경우는 매맞는 것 보다 말의 폭력 때때로 꾸지람을 하는 사람이 감정을 섞어서 내게 말할 때 모독적인 이야기 하며는 그것이 마음에 큰 상처가 될 때가 있지요
 
그러기 때문 야단치는 사람은 꼭 명심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감정을 섞으면 안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꾸짖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마음속에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자기를 개방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을 모욕하는 언사를 쓸 때 나를 개방하지 않고 더 단단하게 자아를 둘러싸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자기의 감정을 섞으면 안 된다 하는 이야기
 
그 다음에 채찍과 꾸지람을 주지 않으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된다고요 임의로 행한다 임의로 행한다는 말은 규례와 법도 정해진 절차 이런 것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때로 살다 보면 규례와 법도가 중요하지요 또 상식도 중요합니다. 상식이라는 것이 영어로 커먼센스(Common Sense)라고 그렇게 말하는 데 커먼(Common)은 공동의 그런 뜻이지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이야 상식이라고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 가는 것이 우리 삶을 든든하게 해 주는 것이 상식이지요.
 
문제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아 상식적이지 않아요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아요 규례와 법도라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오랜 경험에 의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해서 정식화 해 놓은 것이 규례와 법도이지요
 
특별히 성서에서 규례와 법도라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만들어 놓은 삶의 지혜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드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규례와 법도 이지요 이것을 몸으로 익혀야 하지요 그래야 불편하지 않아 상훈씨와 함께 사는 데 나 좋을 대로 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여행을 같이 갔는데 한 방을 쓰게 되었어요 서로가 편하기 위해서는 룰을 좀 지켜야 되어 욕실에 들어가면 너무 오래 머물면 안 좋고 예를 들어서 나는 깜끔하게 정리되는 게 좋은데 사방 늘어놓고 말하기도 어려운데 힘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지켜가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임의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인간관계가 너무 규례와 법도에 의해서만 움직이다 보면 딱딱해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지켜가되 상황에 맞게 변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
 
예를 들어서 거짓말 하지 말아라 이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듣는 계명이지 않아요 거짓말 하면 안 되지요 때때로 거짓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얀 거짓 말 예를 들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보면 나치를 피해 가지고서 한 가족이 일단 탈출하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옵니다.
 
나치 군인들이 오지요 수녀원 문을 두드려요 여기 아무게가 숨지 않았나 수녀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거짓말을 했지요 그냥 거짓말 하는 것은 죄야 하면 그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어요 무엇이냐 하면 기꺼이 죄를 지어야 할 때도 기꺼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변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런 말입니다. 너무 규례와 법도를 규격화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적용하려고 할 때 그것은 오히려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않고 사람을 옥죄는 굴레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쩼던 임의로 행하기 위해서는 꾸지람도 필요하고 채찍도 필요한데 그것을 너무 아주 딱딱하게 굳은 체제로 가서는 안 되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매에 대한 이야기는
집회서 22장 6절 때에 맞지 않지 않는 말은 초상집의 풍악과 같지만 회초리와 훈육은 언제나 지혜로 통한다.
30장 1절 제 자식을 사랑하는 이는 그에게 종종 매를 댄다 그러면 말년에 기쁨을 얻으리라.
30장 3절 자녀의 응석을 받아 주기만 하면 그가 너를 선뜩하게 하고 그와 놀아 주기만 하면 그가 너를 슬프게 하리라.
 
선뜩하게 한다는 말이 자녀의 음성을 받아 주기만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16절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29장 2절에서는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이렇게 말했지요
그런데 이것은 반대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 하고 말합니다.
 
자 악인이 많아요. 악인이 많은 세상이어요 악인은 어떻든 죄 짓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악인이 많아지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악인이 많아지면 사회에 어떤 풍조가 생기느냐 하면 죄에 대한 무감각이 생겨요
 
자기가 사는 것이 죄라는 생각을 별로 안 하는 것이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왜냐하면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래서 이 나쁜 사회의 특색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는 사회 이것이 나쁜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이 바보스럽게 여겨지고 뭐 나만 그래 나만 손해야 내가 규칙 지키면 나만 손해야 이런 생각들이 만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죄에 대한 무감각이 발생하게 될 때 그 사회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욕망의 전장이 된다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 그러니까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이야기 했던 것처럼 내 속에 욕망이 발생하면 채울 때까지는 만족함이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먼저 채워야 하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기 때문에 타자에 대해서 늘 배타적입니다.
욕망은 타자 배제적이어요 죄로 말미암아 만들어 내는 세상이 욕망의 전장이라고 이야기 했고 이것은 디스토피여야 그러니까 악인이 많아지는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러니까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을 보면서 시인들도 많이 탄식을 했지요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뒤에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의인은 그 악인들이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의인은 보는 사람이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그가 망한 것 처럼 안 보여요 그러나 의인은 그가 망한 것을 보는 것이어요.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이 말을 쉽게 이야기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현해 가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세상을 그냥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을 통해 구현해 나가는 과정이어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지 못하는 것들 그것을 깨 뚫어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쾌뚫어 보는 것입니다. 인 사이트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악인의 번성함을 보고 그 외향적인 번성함말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몰락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게 의인이어요. 의인은 악인이 망하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망할 수밖에 없을까요? 악인들이 그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애를 쓰다보면 그들이 갑자기 왜 망하느냐 하면 보세요. 악인들의 특색은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연대합니다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힘을 합친단 말이지요 그런데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그들을 묶고 있었던 끈은 그들로 하여금 자멸의 길로 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 악한 일을 보면서 번성한 사람들을 보면서 탄식할 일이 아니라 그들의 종국을 내다보면서 가엽게 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엽게 보는 것만이 아니라 낙심하지 않는 일도 우리에게 필요하지요
 
17절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사랑과 신뢰가운데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징계가 필요하다 다시 이야기 하면 그 자식의 마음속에 질서를 심어주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이겠는데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옛날에 사극이나 보면 어른들에게 늘 아침이면 문안 인사를 여쭈었지요 일어나셨냐고 기침하셨습니까하고 가서 인사를 드리지 않아요 이게 아주 분주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힘겨운 일인는지 모르나는 그게 참 좋아 보입니다.
 
한 가족 대 가족이라고 한다면 어디 나간다든지 하면 요즈음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지만 사실은 인사를 하고 그래서 제가 한문 배울 때 우리 선생님하고 학생들이 늘 읖을 해요 손을 이렇게 모으고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위로 올려서 인사를 하고 이게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예의여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길에서 만나더라도 길에서는 절할 수가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숙여서 무릎을 조아리고 절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의이지요 텔레비전에서 본 것인데요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 교포 가정입니다. 그 가족들이 소위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잘 성공한 가정이어요 자식들이어요
 
그 집에 특색이 무엇이냐하면 아버지가 출장을 가셔요 새벽 3시에 떠나야 합니다. 자식들은 세벽 3시 전에 일어나서 아버지 잘 가세요 하고 배웅한 다음데 또 자 미국에서 그 훈련을 시킨 것이야 어떤 경우에라도 굉장히 불편한 일처럼 생각되지만 자식들의 마음속에 질서 의식이 생기지요 존중하는 마음이 어떤 질서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서 질서를 지켜 간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내면화 하는 교훈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18절 묵시기 없으면 뱅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1장 14절에서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고 했거든요 여기서는 묵시가 없으면 하고 말합니다. 묵시는 예언자들이 하는 말을 가르켜요 혹은 지혜자들이 하는 말을 가리키는 말 묵시라는 말은 비밀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자나 지혜자가 하는 말을 이야기 하고 하는데 그 말이 없으면 지혜자의 말 예언자의 말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정말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게 70년대인데 70년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어려운 시기이지요
 
그 때에는 우리가 늘 누군가를 바라보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 분이 무엇이라고 하실까 목마름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경청하고 위로받고 가야할 길을 찾고 했어요 우리에게 권위 있는 분들이셨어요 그 분들이 지금은 세상을 다 떠나셨습니다. 벌써 여러해가 되었지요.
 
그 이후 80년대 90년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귀를 기우릴 만한 분들이 별로 없어 이것이 슬픈 일이어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저는 그 대목과 연결이 된 것이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당장 현실을 풀어나가는 삶의 지혜를 보여주지 못한다 해도 초월적인 방향에서부터 우리 역사를 내다보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저곳이라고 가르켜 보여주는 선생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묵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묵시를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나의 내면속에 규칙을 지켜 가는 것인데 이것을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시대의 지도자라고 말하면 그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들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아요. 경제를 발전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와 하고 뽑아 주어요 여러분 경제 발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역사가 가야할 방향을 옳게 가르키는 그런 이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아끼고 따뜻한 그런 인간 공통점을 지향점을 가르킬 수 있는 지도자가 그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9절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잠언도 종들도 바로 양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정 반대의 상황이 제시됩니다. 주인이 종에게 호의를 가지고 대해 줍니다. 그러면 종이 고맙게 여겨야지요 자기 할 도리를 해야 하지요
 
그런데 주인의 호의를 오히려 자기에 대한 존중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어요 방자히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럴 때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에게 나누어 진 일이 있어요 그런 일들을 하는데 저 분이 하는 일이 과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도와주었어요 그러면 고맙지요 받은 사람은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다음 상황이 오면 그분이 그런 것이야 왜 안 도와주는 거야 그런 경우 있어요 없어요 그런 경우 많아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고마워요 그렇게 해 주는 게 그런데 당연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도와주지 않으면 왜 그런거야 하고 원망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살다보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입었을 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리면 안 돼 제가 했던 이야기 당연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 당연한 것은 감사가 없어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위해서 밥상 차리는 게 당연하면 감사가 없어 당연하지 않아요. 고마운 일이지요
 
20절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사람이 참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제 욕심을 차리기 위해서도 그렇고 힘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렇고요 그 다음에 급한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성미 급해가지고 막 말을 합니다. 말을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이지요 자기가 실천할 의지가 없는데 지금 당장 저 사람에게 나를 괜찮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 그런 경우들이지요
 
그게 말이 조급한 사람이다는 것이어요 실현에 가능성이 없는 말들을 인간 내 뱉어놓고 이래서 우리가 공약 그러지 않아요 공약을 내 세워요. 공적인 약속이지요 그 공약은 늘 무엇이 되지요 빌 공자가 되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현실이지요
 
그리고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표를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이야기 할 때도 있는 것이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지요 어쩼던 말이 조급한 사람보다는 미련한 사람 오히려 조금 지각이 떨어지고 약간 느린 사람이 더 낫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네요
 
여러분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부산에 계신 분인데 그 분이 스스로 별명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미련곰탱이 어릴 때부터 그 목사님은 미련 곰탱이 소리를 들었데요 남들은 그런 이야기 싫어하는 데 이 분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서 그래서 그 분의 삶의 모습은 무엇이냐 하면 급할 것 없어 느릿느릿 천천히 그러면서 아주 듬중하게 자신이 해 내야 할 일을 해 내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낫지요 말이 조급한 사람보다
 
21절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체 하리라.
이것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백한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종도 그렇지만 자식도 마찬가지인데요 응석받이로 기르면 망나니가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한계를 지켜 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자기를 자존 망대해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누군가가 목사님 참 좋아요 그렇게 이야기 하면 감사합니다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저는 스스로에게 이야기 합니다. 알지 너 아무것도 아닌 것 내가 뭐 칭찬 받을 만한 게 무엇이 있어 그 분이 좋게 봐 주신 것이지 그분의 칭찬 위에 내가 둥둥 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몰락의 아픔이 클 수 있어 자기 착각할 수도 있어 누가 칭찬하면 저 아닙니다 괜히 이러는 것도 그렇지만 겸손하게 감사합니다. 자기가 나는 대단해 하면 안 돼 나라고 하는 존재를 내가 아는데 누가 그렇게 자신이 있겠어요 모른 척 하지요. 그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지요
 
21절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 자식인체 하리라 말하고 있는 데 나의 자아라고 하는 게 똑 같습니다. 나의 자아라고 하는 것이 고집된 망아지 같거든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요
 
프한체스코가 성인이 하는 말인데 자아는 고집이 센 망아지 같다 그런데 그 자아라고 하는 게 육이거든 나의 육신 그래서 육신이 나를 함부로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해요 이것이 믿음의 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22절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이제 22절부터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아들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것이 누구나 하면 노하는 자 성내는 자가 등장하고 나오고 있는데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분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화를 내는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분노는 어떤 때 발생하느냐 하면 문제가 저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겨 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노가 생겨나
 
내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 까닭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내요 그런데 화내는 메카네즘을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화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자기 속에 있다 내 탓이요 그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지요 그게 내 탓이요 이 운동을 하면서 공적으로 잘못된 것들에 대한 비판을 약화 시키면 안되지만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할 때 나에게 문제가 있지 않는가 돌이켜 보는 것은 훌륭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지요
 
분노는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고 또 분노를 일으키는 순간 제일 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분노는 그 사태와 나 사이에 거리를 없에 버려 내가 거기에 푹 빠진다 그 이야기여요 이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분노는 그 사태와 나 사이의 성찰적 거리를 없엔다
 
조금 거리를 떨어뜨려 바라보아야 하거든 그래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분노에 사로잡히는 순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 요즈음은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데 오래전에 화를 낼 때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자식 키우다 보면 화가 나지요 막 야단을 치는데 스스로 생각해요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 이 정도까지 할 일이 아닌데 무엇이냐 하면 생각은 드는데 내친 김에 집어 넣을 수도 없고 이런 경우가 있어요
 
나만의 경험인가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 금방 이야기한 대로 내가 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야 내가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고 사로잡혔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 사로 잡히는 순간 성찰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화 잘 내는 사람은 결국 죄에 빠져요
 
23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교만한 사람이 나오고 있는데요 교만은 쉬어요 자기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높인다는 말은 무엇이지요. 다른 사람을 낮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거꾸로 이야기 하면 자기를 높인 사람들의 마음 구조가 심화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어 교만한 사람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은 자기를 높이는 마음은 낮아짐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겸손한 마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항상 타자들의 호의가 필요하지요 타자에 대해서 개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 가운데 가장 큰 대 타자인 하나님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게 될 때 오히려 영예가 온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방향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어요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 12절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4절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여기 도둑과 짝한다고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작물을 나눈다 그런 뜻이어요 훔친 것을 나누는 것이어요 내가 직접 훔치지 않아도 누군가에 죄에 동참함으로 자기 이익을 얻는 것이야 그렇게 사는 것은 자기 영혼을 미워하는 것이라 누군가가 나의 그런 생을 바라보고 저주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저항할 말이 없는 것이어요
 
결국은 부당한 이익을 확보하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저주를 받는 그런 인생이 되도록 만든다
25절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이어요 내가 왜 두려워합니까? 자기 속에 떳떳함이 없기 때문에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그들 가운데 하나이지요 아닙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성경 충만을 때 시나고그에 붙들려 갔을 때 행 4장 19절 베드라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당신의 말을 듣는 것이 옳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습니까 당당하게 말하지요
 
행 5장 41 매를 맞고 쫓겨 나면서 무엇이라고 하지요. 고난 받기에 기뻐했다 이것이 떳떳함입니다. 자기 속에 떳떳함이 있고 자기 속에 기둥 하나가 생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내 속에 기둥이 없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우리를 올무에 걸리게 만든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할 것이다
 
26절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라.
힘 있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지요 특별히 나의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힘 있는 사람 나의 인사권자가 잘 못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잘 못입니다 지적을 못하는 것이어요
 
왜 밉 보일까봐 밉보이며는 내가 진급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예스 멘이 되는 것이야
윗사람이 잘못하는대도 불구하고 예스하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사회에 제일 나쁜 말 가운데 무엇이지요? 누군가가 그 조직 속에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렇게 말하지요 그리고 암암리에 자기들끼리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조직의 쓴 맛을 보여 주겠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길들여요 사람들을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성실해요. 관료적 성실함이 있어요 사람들이 성실해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그런데 여러분 이 관료적 성실함이 전체주의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나치가 유대인들을 600만명을 학살하는데 관료들이 착실하게 일을 수행해서 죽인 것이어요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밑에 사람이 거부하기 시작했다면 런 참극이 일어날 수 없어요 그들은 윗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사유하지 않음 무사유라고 이야기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위험한 것이어요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한다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호의를 사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떻게 되느냐 하면 망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권자의 힘 있는 사람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은헤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법정에서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것이지요
 
27절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이 말은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불의한 자는 의인들의 역겨움이고 길이 올 곶은 이는 악인들의 역겨움이니라 이게 직역한 것이야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것도 문제이고 모든 사람에게 비난 받는 것도 문제입니다. 악인들에게 야단맞고 선인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어쩌면 좋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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