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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움직이는 것
2019년 07월 17일 (수) 10:24:1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롬 8:5-8)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
    어느 날, 여리고 성 안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집에 양식이 떨어졌다 하면 양식을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찾아갔고, 누군가 병들었다 하면 약을 사들고 찾아가 살펴주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시킨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 부모를 찾아가 학비를 전해주었고 길거리에 나 앉게 된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집세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본래부터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동네에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명한 구두쇠, 수전노였습니다. 돈이 안 되는 일엔 꿈쩍도 안 했지만 돈 되는 일이다 싶을 땐 아주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무소 직원이었는데 얼마나 독했는지 그에게 걸리면 몇 배의 세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가 세금을 징수했던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과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사과가 아닙니다. ‘김 사장님, 지난번에 내가 세금 계산을 부당하게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래서 내가 4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골목골목, 가게마다 다 찾아다니며 자기가 지난 세월 세금을 너무 많이 징수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저 영감탱이가 미쳤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속되는 꾸준한 변화된 삶을 보며, 뭔가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무엇이 저 노랭이 삭개오를 변하게 하였을까요? 도대체 그 어떤 것이 저 인색한 세무소장 삭개오로 하여금 저토록 180도 변하게 하였을까요? 뭐 땜시 찬바람 돌던, 쌀쌀맞은 정도가 아니라 칼바람 나던 저 냉혈인간이 변했을까요? 모두들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의 삶 중심에 예수님이 자리 잡고 계심을!
 
    2.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피땀 흘려 모아놓은 재물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퍼주고, 부당하게 계산했다며 4배씩이나 갚아 준다면 그에게 남는 재산은 뭐가 있을까요?
 
    육신의 눈으로 보는 사람에겐 이런 삭개오는 분명 비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그가 정말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증거임을 압니다. 우리 모두도 전에는 끌어 모으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한 선을 넘어가게 됩니다. 이 선을 넘어서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이 선을 넘어선 거듭난 자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 선 이전에는 오로지 물질, 육신의 일들이 자기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엔 꿈쩍도 안 했는데, 이젠 스스로 희생과 섬김, 나눔을 찾아다닙니다. 이제부터 그의 관심은 영의 것, 오로지 주님의 나라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삭개오를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여러분도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사실 이 선을 넘어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육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던 세계에서 주님의 나라를 우선시 하는 세계로 넘어선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느끼던 세계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존하는 영의 세계로 넘어선 것입니다. 이른바 영의 눈, 영적 감각이 생긴 것입니다!
 
    육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서 하루 종일 봉사하는 이들을 보면 ‘피곤하지도 않나, 대단한 체력이야’합니다. 그러나 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나 봐’합니다.
 
    주일 새벽 일찍 일어나 나오는 1부 예배 찬양대원들을 보고 육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는 ‘아침잠이 없나 봐’하지만, 영의 눈으로 보는 이들은 ‘나는 언제나 저 정도로 주님을 사랑 할 수 있을까’합니다.
 
    큰 헌금을 하는 사람을 보고 육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저 사람은 돈이 많은가 봐’하는데 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저 분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엄청 받았나 봐’합니다.
 
    기도하며 우는 사람을 보고 육의 사람은 ‘아유 짜증나! 왜 기도를 그렇게 해!’하지만 영의 사람은 그 눈물이 뭔지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일, 매사를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는가요? 정말 거듭난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가요?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따르는 자, 언제나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는 자, 늘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 단순히 육신을 지니고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신의 욕구를 삶의 동기와 목적으로 생각하여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자기’입니다.
 
    그러기에 늘 자기의 뜻이 관철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어야 하며, 자기의 권리와 자기의 감성, Feeling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피곤하지 않아야 봉사도 합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자기를 통해야 합니다. 자기가 패싱되면 그 어떠한 중요 결정도 무효입니다. 열심은 있으나 육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을 따르는 자는 생의 의미와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좇아 구합니다. 자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자기의 권리가 중하다고 평생 그리 살지만 결국 그에겐 사망이 열매로 맺힐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와 말씀을 추구하며 살던 이는, 영적 가치를 따라가는 이는 생명과 평안을 하나 가득 안게 됩니다.
 
    옛 149 성전 시절, 지역의 독거노인 10분에게 십여년 동안 생활비를 지원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독거노인 할머니가 어느 날 찾아오셔서 나에게 ‘십만 원’을 내닙니다. 교회와 교우들께 늘 받기만 하고 살아서 주님께 드리고 싶답니다. 그 분에게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할머니 성의를 보셨으니 받으신 것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웬만하면 가져가시지요’ 했더니 얼마나 섭섭해 하시는지 모릅니다.
 
    육신의 생각으론 마땅히 그 할머니께 돌려드리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론 이런 육의 생각을 뛰어넘는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고 진심으로 기도해 드렸습니다. 기도 후, 할머니는 일어서시며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내가 이런 기쁨과 축복을 어디 가서 십만 원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돈 십만 원 나를 위해 쓰는 것보다 지금 전 훨씬 더 행복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에겐 더욱 풍성한 생명과 샬롬의 축복, 평강에 평강이 넘칩니다. 그러나 끝끝내 육의 생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에겐 사망뿐입니다.
 
    왜 그런가요?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잘 살기를 바랄 수 있는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이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입니다.
 
    그 대표적인 이가 애굽의 통치자 바로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세속적 힘을 믿고 ‘하나님이 누구냐, 난 하나님 같은 존재는 모른다’ 큰소리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얻어맞은 인물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 고집대로 파멸의 길로 치달려 갈 뿐입니다.
 
    3.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선택, 말, 행동 중에 그냥 생각 없이 하는 게 있을까요?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요셉의 생애를 가르치며, 요셉의 죽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요셉의 장례는 누가 맡아서 했나요?” 누군가 해서 보았더니 장의사 집 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심, 말, 행동, 무의식적인 표현, ... 모두 뭔가 내 안에서 역사 하는 대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냥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 기독교 개론을 강의하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이 분이 강의하다 말고 ‘여성’의 존엄성과 인권을 강조하며 아들보다 딸이 백 배 더 낫다고 열변을 토하십니다. 당시로선 퍽 강한 여권주의자, 페미니스트(Feminist)였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며 하시는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내가 왜 여성을 이렇게 존중하느냐? 나는 딸만 다섯이 있습니다.’
 
    팔은 어디로 굽는다구요? 안으로. 왜 안으로 굽는가요? 공정하게 밖으로 펼쳐져야 하는 상황인데 왜 팔은 안으로 굽는가요?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란 말이 있습니다. 왜 얌전한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면 안 되는가요? 고양이가 아무리 덕성이 있고 책임감이 있어 보여도 결국은 어떻게 된다구요?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가요?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가요?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가요? 육인가요, 영인가요?
 
    가끔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참 기 막히다 는 생각이 듭니다. 돼지(베이브), 쥐(리틀 스튜어트), 바퀴벌레(조의 아파트), 개(베토벤, 달마시안), 고양이(Cats and Dogs), 돌고래, 물개, 사자, 늑대, ... 말도 안 통하는 동물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훈련시켜 마치 사람처럼 연기를 하게 할 수 있을까요?
 
    비결, 비법이 있습니다. ‘먹이!’ 먹이를 향한 본능적인 움직임을 이용하여 조건반사적으로 훈련시킨답니다. 먹이만 보면 눈이 뻘개져 달려드는 것을 이용하여 훈련시킵니다.
 
    내 삶은 뭐에 반응을 보이는가요? 나도 동물들처럼 오로지 먹이에, 돈에, 쾌감에 반응을 보이고 움직이는가요? 희생, 헌신, 섬김, 겸손, ... 이런 것엔 무감각한가요?
 
    물질, 돈, 명예, 권력만 보여주면 그것을 손에 잡으려고 그것의 정당성도 생각지 않고 본능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이, 그는 결코 오늘 말씀 결론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4.

    내 안에서 역사 하는 것은 뭔가요? 내 언어를 통제하는 것은 뭔가요? 내 감정과 행동을 유발시키는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뭔가요? 내 삶을 드디어 움직이는 그 동인(動因)은 뭔가요?
 
    모든 것을 본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정말 모든 것을 보는가요? 결코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지만, 관심 있는 것만 봅니다. 모든 것을 듣는다구요? 천만에. 관심 있는 것만 듣습니다. 그 관심을 일으킨 내 안의 동기, 그것은 무엇인가요?
 
    영을 따라가십시오! 영이 육신을 통제하는 삶을 사십시오!
 
    육신이 영을 통제하는 사람, 주일인 줄 알면서도,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 줄 알면서도 피곤하니까, 늦잠 잤으니까, 할 일이 많으니까, ... 하며 육의 상황이 영을 통제합니다. 본인 스스로 게름 찍해 하면서도 육이 영을 통제합니다. 이래선 안 되는 데 ... 하면서도 육이 영을 통제합니다. 그래서 그 영은 늘 죽습니다.
 
    그러나 영이 육을 통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 바쁨 속에서도 하나님께 드릴 시간, 예배와 기도는 분명합니다. 피곤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영이 육을 통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이 육을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면 죽습니다. 영이 육을 죽여야 비로소 성도의 순결한 힘이 생깁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라. 육신의 정욕과 욕망의 인도를 받지 말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받을 성도로 사시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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