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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54강 27: 1-14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2019년 06월 05일 (수) 12:47:21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어제 무엇하셨어요. 어제 일은 기억 안 나고 내일 무엇을 할 것이지요. 제가 자꾸 어제 무엇했느냐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 물었는데 인생이라는 게 사실은 어떻게 흘러가지요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순차적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은 우리 인생은 그렇게 가지 않지요
 
미래로 오는 시간이 현재로부터 과거로 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내게 없는 시간이 내게 오는 것 아니어요. 그 시간을 타고 사는 것이고 지난 시간을 가고라고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장래는 미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시간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시간은 다 알아요 시간이 무엇이지하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돼 내가 뚫고 가야 되는 것 화살도 아니고 결국은 이런 은유적인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은데 시간이 무엇이지 묻는 순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생은 신비입니다. 오늘 시간 이야기가 다수 나와요
 
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아것 많이아 둗던 이야기입나더,
재미 있는 것이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수 없으니라
이것 직역하면 어떤 의미가 되느냐 하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시마 전제가 됩니다. 뒤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요 하루가 무엇을 낳을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굉장히 역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내일 여러분 재미 있지 않아요 우리말로 이틀 전을 무엇이라고 하지요 그제 그 다음에 그 다음날은 어제 그리고 오늘 그래 내일(來日) 그리고 모레 그 다음에 글피 그 정도만 합시다 눈치쳈어요 무엇을 눈치 쳈느냐고 묻느냐 하면 그게 어제 오늘 또 모래 글피 다 한글이야 그런데 내일(來日)은 한자입니다. 올래 자 날일 자 그렇지 않아요
 
왜 그렇지 사실 옛 문헌에 보면 내일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 있었어요 하제입니다. 하제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이제 쓰자 사라진 이 말을 쓰는 게 좋겠다 하기도 해요 인간은 어쩼던 시간을 경험하며 살게되어 있는데 그래서 오늘 내가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이 우리의 일평생을 닮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게 오늘 충실하게 내게 주어져 있는 그 시간을 살아내면 나의 인생도 충실해 질 것이야 오늘 하루를 아주 헤프게 의미 없이 사용해 버리고 말면 우리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프렉탈 이론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 프렉탈 이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분은 전체를 닮고 전체는 부분을 닮는다 그런 것이어요. 인간의 인체도 그렇고 눈 결정 구조 같은 것도 보면 그렇고 해안선 같은 것도 전체의 모양과 부분의 모양이 일치되는 것이 많고 파도의 모습도 그러니까 어떤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을 잘 봐야합니다. 부분을 잘 보아야 전체가 보입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 하면 나라고 하는 개인은 작은 데 나를 깊이 보다 보면 누가 보이느냐 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밖으로 나가지 말라 네 속으로 들어가라 나를 잘 보는 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야 이것이 신학적 프렉탈 이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을 사는 그 사람을 보면 그의 인생이 보일 수 있어요 오늘 참되고 진실되고 따뜻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인생이 흘러갈 것입니다. 오늘 거짓되고 냉냉하고 대충 대충 살고 그 사람은 그렇게 살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이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한지 40년이 지난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40 몇년전에 그 친구들의 모습이 오늘까지 반영이 됩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홍안의 시대에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모습은 달라지지만 삶의 태도는 비슷해 이것이 무서워요 젊은 시대를 잘 살 필요가 있다 삶의 습성을 잘하는 것이 필요해 그런 생각이 드닌데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마라 왜 자랑하지 말라고 하느냐 하면 내일은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측으로는 내일이 올 것이야 이게 삶의 추세이니까 그러나 내일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어요 내일을 갖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분이 허락하실 때문 내가 내일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그것이 창조의 새로운 새벽입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선물로 받은 것이야 그 시간을 그래서 시간은 언제나 선물이지요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이 마냥 주어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내가 임의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생각을 해요 자기 인생의 계획을 세웁니다. 내가 몇 년 후에는 무엇하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 계획 없이 사는 것은 무책임해요 내일을 충실하게 살고 1년후 2년후 내 삶을 정해가는 것은 중요하나 모든 태도속에 무엇이냐 하면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 마음이 늘 있어야 해
 
야고보 4장 13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하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모르니라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까 시간이 내게 속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마 그러면 내게 주어져 있는 시간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는 과제야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 비유가 나오지요 농사가 잘 되었어요 그러자 행복해요 와 그래서 그가 무엇을 합니까? 일군들을 사 가지고 거두어 들여요 그리고 창고를 새로 짓고 가득 채우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19절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지요.
20절 그런데 무엇이라고 하지요 어리석어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오늘 데려가시면 여기 쌓아 놓은 것을 자랑할 것이 없어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내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보면 안 되어요
 
그것들이 다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그 삶이 허망하다
그래서 이화여대에서 가르치셨던 김홍호 목사님이 계신데요 그 분은 하루를 영원처럼 살자 무슨 일이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이나 오늘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면 그 일이 참 큰일이요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어요
 
상훈씨가 이야기한 대로 아이들 돌보는 일 이게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런지 몰라 그 목사님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이 큰일이고 귀중한 일로 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 잘 사는 길이어요 오늘이 충실해지면 오늘이라는 점을 충실하게 찍으면 그 점들이 이어내는 우리의 삶도 충실해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중요한 같아요.
 
그래서 항상 내일 일 자랑하지 말고 지금 포부만 키우느나고 오늘을 소홀히 보내지 말고 오늘을 영원처럼 살아내라 그 이야기네요
 
2절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자화자찬의 위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그 자기를 피알하는 시대이지요 스펙도 쌓아야 되고 내가 이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는 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보면 허망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 구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타인이 나를 칭찬하도록 나 어떼 나 어떼 자꾸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어요 그런 경우 있지 않아요 나 어떼 그러면 우리는 그러지요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 것이야 그래서 고민에 빠지는 것이야 칭찬을 구하고 있구나 좋아 보이네 좋은 일이 있어 이렇게 그것도 대접하는 것이니까 중요하기는 하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그들의 입에서 저절로 칭찬이 나오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냥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아 참 저분 좋아 이런 말이 나와야지 눈을 반짝 반짝 하면서 나 어떼 이렇게 칭찬을 구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린도 후서 10장 12절을 보면 새 번역으로 읽으면 와 닿아요 우리는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지요 자기를 내 세우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되려고 하거나 그들과 견주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척도로 하여 자기를 재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자기를 척도로 해서 자기를 제 나는 정말 대단해 나는 멋져 이렇게 그것이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겠으나 이것이 병적인 상황이 되면 남들은 곤란해지지요 나르시즘에 빠지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은 이게 누가복음에서 이야기 하거든요 6장 26절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 이야기는 공자님 이야기에도 나와요 논어에 나와요 어느 날 자공이라는 제자가 묻습니다. 마을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습니까? 그러면 좋은 사람이지 그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런데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마을에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해요
 
그리고 공자님이 말합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선하지 않는 사람이 선하게 사는 사람 의롭게 사는 사람을 미워하거든요.
요한복음 3장 19절 빛이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어두움인고로 어두움이 미워한다.
빛의 사람은 어두움을 미워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 듣는다는 것은 나쁜 사람에게 좋은 소리 듣는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어 구합하거나 실속이 없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삶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구하는 삶이 되지 말고 자기를 스스로 내 보내면서 떠벌리는 삶도 살지 말고 그냥 살았더니 사람들이 참 좋아 이런 말을 한다면 다행이지요
 
안소니 드멜도라고 하는 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느 날 하나님이 가브엘 천사를 보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답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합니다.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선물을 전달하래 아니요 저는 충분합니다. 충분히 행복합니다. 제게 복을 안 주셔도 됩니다.
 
가브엘이 당황합니다. 선물을 꼭 전하고 오라고 했는데 그래서 하나는 구해야 돼 부자가 되게 해 줄까 아니요 제가 누리고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또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게할까 아니요 제가 교만해질까 무섭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기도하면 사람들이 다 낫게 해 줄까 아니요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님께서 직접 해 주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천사가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는 구해야지 무엇인가는 청하는 것이어요. 그러자 그분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를 통해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돼 제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마치 이런 것 비슷한대요 사도행전이 보면 사도행전 5장 15절에 보면 베드로 일행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는데 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의 있음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지요 그와 함께 있다는 자체가 우리를 맑아지게 만들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들이 그러겠어요 내가 어떼 내가 말이야 떠벌릴 일도 없지요
 
이것이 참 귀한 일인 것 같아요 정말 숲속에 살고 있는 난초는 누구에게 알아달라고 피는 것이 아니지요 그냥 향네를 내고 피어나면 사람들이 다가오지요 아 참 좋다 그렇지요 숲속에 있는 옹달샘도 자기를 피알하지 않지요 그러나 목마른 사람들이 와서 마시고 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면 좀 어떨까 그 생각이 들어요
 
3절 4절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자의 분노는 이 돌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앞에야 누가 서리요.
 
무거운 것을 나르는 것은 정말 어렵지요 돌도 모래도 그것 나르는 것 어려워요 그러나 미련한 자의 분노앞에 서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아 이게 그 이야기이지요 미련한 자의 분노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고통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턱없이 화를 내고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인생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 같아 혹시 내가 그런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 다음에 재미나는 것이 이것입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말합니다. 진노하는 것이지요 분노하는 것 파괴적이어요 그래서 분노나 진노는 잔인하고 창수는 무엇이어요 엉청나게 많은 물이지요 창일하고 있는 물이어요 그것은 압도적이어요. 그러나 차라리 그 분노앞에 서는 게 낫지 투기 앞에 서는 것 감당키 어렵다.
 
투기(妬忌)는 무엇이지요 질투하는 것이지요 강셈하고 우리를 꺼리는 이런 것들이 투기인데 왜 그러느냐 하면 투기(妬忌)하는 마음과 만났을 때 우리의 내면에 상처를 입어요 투기(妬忌)하는 마음은 여러분 무엇인지 아세요 투기(妬忌)하는 마음 항상 질투하고 강셈하고 그러는 것은 게집녀가 들어가는데 기분이 안 좋은 데 투기(妬忌)하는 마음의 특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색한 마음이어요 그게 투기(妬忌)하는 마음이어요 예를 들면 미연씨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사회적 체면 때문에 참 좋아 보여요 그러는데 돌아서서 왜 저에게 그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그것은 미연씨에게 알려지게 되어있어요
 
투기(妬忌)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내적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투기(妬忌)하는 마음이 내 속에 일어날 때 내 속에 있는 부정적인 어둠들이 발화되기 시작해 그래서 정말 살다보면 어떤 사람을 보면 내가 기뻐지느냐 하면 그냥 전혀 시샘하는 마음 없이 누군가를 경축할 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헤 맑아요. 그런 사람 만나고 나면 그렇지요.
 
5절 6절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느니라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면책은 무엇이냐 하면 얼굴 앞에서 책망하는 것이야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책망하는 것이야 그것이 숨은 사람보다 낫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이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땅 덩어리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 자 내가 내 자식도 사랑하고 또 주위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요
 
벧전 4장 8절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 덮어야 돼 그러나 잘못하고 있는 것을 덮어주기만 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가 영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지요 때때로 사랑의 단면에는 이것을 잘랐을 때 정의가 나타납니다. 정의(正義)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이냐 하면 때때로 면책(面責) 해야 돼 야단쳐야 됩니다.
 
여러분 아이들에게 야단칠 때도 잘못된 것을 분명히 이야기 해 주어야 해요 이것이 잘못된 것이야 그런데 무엇이냐 하면 잔소리 하듯하지 마라 계속 아이들이 알아듣거든요 그러니까 탁 짧게하고 끝내 그 다음에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짧게해 애들 다 알아요
 
이게 중요해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못하는 사람은 책망을 해 주어야합니다. 그래야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는 절실히 느껴요 나를 꾸짖어 줄 사람이 없는 것 이게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도 이제 어느 정도 지위가 생기고 이것 별것 아니지만 나이도 제법 들고 그러니까 나를 꾸짖어 줄 부모님도 안 계시고 스승도 안 계시고 누군가가 내가 잘못하시는 모습을 보면 밖에서는 저것 아니지 그러나 직접 이야기하기는 참 어렵지 않아요 이것 처럼 쓸쓸한 일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꾸짖어서 질정해 주는 것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냐 나의 무감각이나 나태함을 깨트려 줄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우리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게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이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6절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친구란 때때로 책망해 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 그것은 거짓이지요 원수의 잦은 입맞춤 그것은 입을 맞추어 배신하는 것입니다. 입 맞추는 이유가 나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가 나를 해고지 하기 위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책망하는 사람과 우정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넉넉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7절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전에도 이야기 했는데요 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가치를 다 상칭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한다하고 말해요 내 속에 결핍이 없어 그러면 감사가 없어요 그래서 기억 나세요 당연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 그 이야기 늘 해 왔지요.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깨어주는 것이 당연해 감사가 없어요 그렇지요 아내가 일어나 가지고 나 출근하는 것 도와주는데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가 없지요 물론 날마다 감사해 감사해 이러면 그것도 피곤한데 존재 그 자체로는 그냥 말하지 않더라도 정말 감사히 여기고 그러면 그것은 누구든지 느낄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모든 것이 충족된 삶은 권태롭기 이를데 없습니다. 정말로 그래요 그래서 아이들에게서 결핍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어요. 삶이 권태로와 져요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름다운 것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줄어들고 그러니까 결핍을 통하지 않고는 감사를 배우기 어려워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 키울 때 넉넉하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나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너그러운 사람 다른 이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때때로 가난했던지 그래서 온 가족들이 함께 돕고 살아야 했던 그래서 빵 한 조각 먹는 것도 축제처럼 여겨졌던 집 이런 집들에서 사는 사람들이 타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이 많을 가능성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가난의 기억이 너무 너무 싫어서 오히려 왜곡된 사람들은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있지만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넉넉하게 해 주고 싶은 그 마음은 알겠으나 그것이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해 보면 좋겠어요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하고 말합니다. 정당한 결핍이 우리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8절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참 기가 막힌 이야기거든요 여러분 유대인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규정합니다. 정착 생활을 할 때도 그랬어요. 그래서 농사를 지어서 햇곡식이 나면 그 첫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사장에게 바치면 그 제사장은 광주리를 제단 앞에 놓습니다.
신26장 5절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사람이었습니다. 방랑하는 사람이었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거시서 소수로 거주하였더니 어떤 이야기인가 타국에 가 가지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거주민으로 사는 게 얼마나 권고했겠어요 그러나 거기에서 크고 강성한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매년 무엇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떠도는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방랑하는 그게 무엇이지요? 내 삶이 정착생확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방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무정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닻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합니다.
 
정말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들이 그래서 여러분 구원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맨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떠나라 했습니다. 익숙하고 안락한 세계를 떠나서 방랑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공동체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것도 무엇이냐 하면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 너희들이 나그네 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돼 왜냐하면 너희도 나그네였느니라 그 시절 잊지 마라 그런데 여러분 나그네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냐 하면 취약해진 상황입니다.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외국에 여행을 가요 외국에 갑니다. 내국 여행 할 때도 지방 도시에 가면 쭈볏 쭈볏하지요. 외국에 가면 말이 달라요 그러면 얼마나 내가 취약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위험에 노출 될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지 않아요 이게 나그네들의 마음이어요
 
우리 곁에 나그네를 머물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들은 취약계층이어요 여러분 안식을 계명을 보면 모두가 쉬어야 하는 데 출 20장 10절 너나 네 아들이나 딸 그리고 가축들도 남종 여종 가축들도 쉬어야 됩니다. 맨 끝엔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와 함께 거주하는 나그네들 그들도 쉬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진리를 이야기 합니다.
 
여기 가장이 있어요 아내가 있고 아들 딸이 있고 남종 여종 가축이 있어 그 다음에 나그네야 나그네 된 사람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지 모릅니다. 이들 그러니까 8절 이렇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그들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속에 담기는 것은 그들의 아프고 시린 마음을 헤아리고 살아라 그런 이야기일것입니다.
 
폭력과 난민으로 사는 것 오늘날 많은 난민이 발생합니다. 사하라 이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 하루에 1.25달라이하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살길을 찾아 나서다가 무엇인가 바다를 넘다가 죽기도 하고 유럽 대륙을 꿈의 대륙으로 알고 오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시리아 전쟁 때문에 난민으로 떠돌고 있는 사람들의 그들의 시리고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에게 품이 되어 줄줄 아는 삶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요
 
9절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여러분 기름은 얼굴과 몸에 바르는 것이고 향은 옷에 뿌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요 그것처럼 우정에 찬 권고 우리를 그렇게 상쾌하게 만든다 하는 이야기
 
10절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친구와 아버지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 여러 세대에 걸친 우정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네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사실은 피붇히 보다 더 가까운 게 늘 만나면서 희망과 절망을 공유해 온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환난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형제의 집에 가지 말고 함께 하고 있는 가까운 이웃에게 도움 구하는 것이 낫겠다 생활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네요
 
11절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네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비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지혜를 둔 부모의 든든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아들 이야기 하면서 내 아들이 이렇게 떳떳하게 살고 있어 저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해야 하는 가장 큰 효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향한 애닯음이 있기에 내 자식 고생 안하는 게 부모에게는 가장 귀한 일이지요 부모에게는 그래서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이 떳떳한 삶을 사는 것 자식들 좋은 대학 가고 부모들이 기뻐하지만 타인의 능력에 공감할 능력이 없다든지 저만 알고 산다든지 그러면 그 부모는 자랑스러워하기 어려워 정말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러운 사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앞에서 어렵더라도 바로서는 사람이 되는 것이어요.
 
12절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여러분 이것은 가족의 명예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자중 자애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경거망동하다 보면 섣부르게 화가 난다고 함부로 나서다 보면 가족의 미래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으니 스스로 자중 자애해야 한다
 
옛날에 우리가 편지를 쓸 때면 부모님이 자식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그것이지요. 아들아 객지에서 자중 자애(自重自愛)하거라 그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아끼기도 하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가야 한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그러나 우리는 늘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해서 위험이 예기되는 곳으로 안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변곡점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 떨며 회피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서 역사를 바꾸어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별것 아닐 때 뚝 떨처 나가서 자기를 망가트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역사가 우리를 부를 때는 응답할 줄 아는 사람도 되어야 합니다.
 
13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새 번역은 남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옷을 잡혀야 하고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몸을 잡혀야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의 보증을 서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이야 그 이야기 거듭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14절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재미있는 말이지요 좋은 말도 시의 적절해야지 여러분 아침에 사람들 다 잠들어 있는데 누군가를 축복하는 말을 하면 저주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말은 적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욥기를 공부할 때 욥의 세 친구의 말이 다 그른 것이 아니었어요 거기에는 정말 우리가 밑줄 긋고 명심해야 하는 말들이 많았지요 그러나 그 말들이 욥의 죄를 확증하기 위해 동원된 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은 오류 가능성이 많아요 똑 같은 말이라고 액면 따라 적용되는 말이기에 다른 뉴앙스를 가질 수 있어요
 
축복하는 말처럼 들리는데 시의 적절한 말이 아니므로 저주하는 말로 들릴 수 있어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순간적인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생각하시고 선물답게 하는 것은 의미로 충만하게 채무는 것 의미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만 있지 않고 타자의 관계속에서 빚어집니다. 누군가가 나를 요구할 때 내가 그에에 응답하고 누군가에게 나를 선물로 줄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알차진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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