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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52강 26:1-12 미련한 사람은 누구
2019년 05월 22일 (수) 09:37:43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나는 배우기 위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참 좋아요 어떤 표정이 좋지요 목마름 어쩼던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내가 늘 이야기하지요. 어떤 것이지요? 배울 생각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가르칠 것만 있고 배울 것은 없는 사람 그는 굉장히 지혜로운 줄 알아요 그러나 사실은 무지한 자들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자기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무엇처럼 된다고 했느냐 하면 자기는 소에 등에 붙은 사람 같다고 소는 등에다 붙은 사람은 쉴 수가 없어요 소가 꼬리를 치면서 등에도 지혜가 있는 지라 꼬리에 안 맞는 장소에 가서 이렇게 아테네에서 자기가 그러는 것은 아테네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 이 자부심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앎이 아니다는 것을 일깨어 줌으로 참된 지혜의 자리에 나가도록 돕겠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지혜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 그 말은 다 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러나 정말 모르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 모르지요 세상에서 제일 알지 못하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타자에 에 대해서는 아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좀처럼 자기는 살피는 것은 없지요
 
사람들이 어느 소설가가 옛날인데 아주 오래 전인에 오랫간만에 동창들이 모여서 제주도에 갔데요 반가운 김에 술을 많이 먹었어요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끼고 있던 콘텍트 렌즈가 뒤로 돌아갔데요 가능한지 아닌지는 나는 모르겠어 그러자 친구들이 웃으면서 그 심각한 상황인데 웃으면서 네 시커면 속을 좀 보라고 그런다고 렌즈가 돌아간 게 그렇지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참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는 늘 타자의 거울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해요 그것을 성찰 반성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자기를 아는 게 참 어려워요 자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련한 자가 되어 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하게 될 잠언 말씀은 미련한 자에 대한 완결편입니다.
정말 미련한 자가 많이 등장하지요 여러분 이 글을 읽고 나서 그래 미련자는 그렇지 그러면 자기 미련한 자이어요 사실 이 이야기가 우리의 삶이지요 미련한 자가 맺는 관계의 양상 혹은 그들이 빚어내고 있는 다양한 문제 이런 것들이 오늘 본문속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지혜의 수원지에 잇대어 있지 않는 자 여러분 우리가 우물을 파는 까닭은 땅을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온 것이 아니지요 어디를 파야 돼 수맥이 있는 곳을 파야 되지 않아요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수맥에 잇대어 있기 때문에 가물어도 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지요 겨우 비가 와서 조금 채워지면 그 물 가지고 쓰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할 말이 없어져요 지혜의 수원지에 잇대어 있는 자들이 그들이 미련한 자들입니다. 배울 생각이 없는 자도 미련한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련한가요? 자기의 주체로서의 주견이 없는 자 항상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흔들리는 사람 속된 말로 귀가 팔랑귀 귀가 팔랑 팔랑하는 자 이런 사람들이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 그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합당하지 않다
영예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카보드라고 하는 단어인데 그 원래의 뜻은 무겁다는 뜻이어요 영예는 무게입니다. 그러니까 금관을 쓰려고 하는 자는 금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돼 이게 중요한 것이지요 그것처럼 영예라고 하는 것은 무게입니다. 삶의 무게와 관련이 되지요
 
미련한 자에게 중책에 맡겨질 때에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지요.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엄청난 위기이지요 배울 생각도 없지 지혜의 수원지에 닿아 있지도 않지 자기의 주견도 없지 고집만 있어 그러면 이것은 끝장이지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미련한 자가 무거운 중책을 맡게될 때 그 상황을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1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과 같으니라
여름에 눈 오면 안 되지요 추수 때에 비가 오면 안 되지요 이 이야기는 무엇이냐 자연의 순환이 깨진 것이지요 자연의 순환이 깨진 상태여요 이게
창 9장 11절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절 시키지 않겠다고 하면서
13절 하나님이 무지게를 하늘에 두시므로 그 약속의 증표로 삼으셨지요
그리고 하신 말씀이 창 8장 22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낯과 밤이 쉬지 않으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리듬이지요
 
심음과 거둠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이것이 질서 있게 순환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 기자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어요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세상은 신비한 것이지요 자연의 순환이어요 순환이 깨지고 나면 이런 순환이 깨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뜻해요 순환이 깨지면 예측 불가능 속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어요 지금은 여름이니까 내가 시원하게 입고 가야지 시원하게 입고 갔는데 갑자기 추위가 찾아온다든지 또 겨울이니까 따뜻하게 입고 갔는데 갑자기 너머 더워진다든지 이것이 순환이 깨진 세상의 모습이다 인간들이 빚어내고 있는 모습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나오는 말씀 가운데 이 순환이 깨져서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이 순환이 다시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되었을 때 모습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호세야 선지자가 한 말씀이 가슴이 와 닿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거든요.
호세아 2장 21절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하고 말합니다.
개역에서든 그 날에 내가 응하리가 말하는데 내가 응답하리라고 말합니다. 느낌은 응하리라가 느낌이 있게 다가옵니다.
 
그 날에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순환이 멋있지 않아요 하나님이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이스르엘이라고 하는 평원에 응하리라
 
다시 이야기 하면 인간의 죄가 특별히 이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배신이지요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 비참한 것이 이것이 깨진 것이야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냐 하면 이 죄를 사해 주심으로 순환을 다시 한번 회복시켜 주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았던 1절과 2절은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 추수 때에 비 오는 것은 이것은 순환이 깨진 상태여요 그 깨짐의 까닭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절 미련한 자에게 영예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 영예는 무거움입니다. 그 무거움이 세상은 혼돈으로 돌아간다
2절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재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이루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까닭 없는 저주 그것은 대게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 그것은 힘 있는 사람도 저주할 수 있고 힘없는 사람도 저주할 수 있는데 까닭 없는 저주라고 하는 말속에 담겨 있는 것은 어떤 것이지요. 무죄한 자들을 해고지 하려는 것이야 그런데 그 저주는 응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의 근거는 무엇이냐 말에는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시지요 그 말씀을 (하)다바르라고 하는 데 다바르에 뜻을 구지 풀자고 한다면 에너지로 가득찬 말씀입니다.
 
다바르 그런데 이 다바르가 에너지로 가득찬 말씀이라고 이야기 하는 데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힘이지요 힘은 작동하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일으켜요 말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만 에너지로 가득찬 말씀은 아닙니다. 인간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서 미란씨가 참 괜찮은데 지금 괜히 내가 그러는 것이어요 미란씨 어디 아파요 그러면 사실은 안 아픈 데 갑자기 걱정이 생겨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거들어 가지고 아니야 정말 안색이 안 좋아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하면 영향을 미쳐요 말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로 자기가 사는 세상을 창조합니다 그러니까 짜증내는 사람 남을 험담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자라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나는 젊은 사람들이 가끔 짜증 나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납니다.
 
좋은 말만 하고 살기는 좀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내가 내 뱉는 말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요 많이 미쳐요 이게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급적이면 말 안하는 것이 좋아 한다고 하면 왜냐하면 살리는 말 이런 말들이 더 좋고 그렇지요
 
2절 그렇게 까닭 없는 저주 정말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하는 말 이런 말들은 새들이 날아간 자치가 없는 것처럼 이것은 허무하게 날아간다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청준이라고 하는 소설가 그 분이 1970년대에 쓰셨던 글들을 읽다보면 말들에 타락에 대한 고민을 이분이 치열하게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집을 떠난 말들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예를들면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이라고 하는 말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포근하고 따뜻하고 이런 것들이 있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남용 되므로 그 사랑의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 이것을 언어학적으로 이야기 하면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기호로서의 말과 어떤 말이 말은 다 기호이지 않아요 그 말이 의미 하고 있는 내용과 이 표현이 분리된 것이야
 
예를 들면 아주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자가 자기의 통치를 정의사회 구현 그런다든지 정의라는 하는 말이 무엇이지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집을 잃고 떠도는 말들이야 그런데 집을 잃고 떠도는 말들이 이청준 선생님의 표현입니다. 음란하게 교미를 즐긴다 그 말들이 뒤 엉켜 그렇지요
 
그러니까 말들이 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지 못하는 것이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게 돼 그러니까 그런 세상은 정말 어지러운 세상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말들에게 제집 찾아주는 일들입니다.
 
정의라고 하면 우리가 정의하면 떠 오르는 현실이 합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 결국은 무엇이냐 까닭 없는 저주를 하는 게 누구이냐 하면 미련한 자이어요 미련한 자의 이야기니까 항상 미련한 자들은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으로 자기를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하나님은 그런 말에 응하지 않으신다
 
3절 말에게는 채직이요 나귀에게는 제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말을 다스리려면 채찍도 쓰고 나귀를 다스리려면 재갈 물려야 하고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미련한 자는 얻어 맞아야 깨닫는다 그 말을 하고 있지요
 
여러분 재미나는 것 무엇이냐 하면 말이라는 것은 전쟁을 연상시키지요 나귀 일상적 삶을 연상 시킵니다. 그것처럼 미련한 자는 때때로 말처럼 사람들 사이에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일상 속을 교란할 수 있어요 그런 이들은 매를 맞아야 된다는데 한번 생각해 본 것이지요
 
요즈음은 소가지고 밭가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소로 밭 갈지 않아요 그런데 한 마리 소에 쟁기를 지어서 말을 갈 때 그 소를 호릿소라고 이야기 하고 두 마리 소에 쟁기를 지어가지고 끄는 말을 겨릿소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강원도 같은 비탈 밭 같은데 돌짝밭 같은데 소 한 마리가 끌기 힘들기 때문에 겨릿소라고 하거든요
 
겨릿소를 소 한 마리를 안소하고 이야기 하고 또 한 마리를 마랏소라고 해요 안소는 일 잘하는 소입니다. 아주 일 잘하는 오랫동안 훈련된 여기 짝을 메는 여석은 일 좀 배워야 하는 서툰 소를 마랏소라고 해요 둘을 같이 메어서 가는 것이어요
 
그런데 주인은 회초리를 항상 누구에게 향하고 있느냐 하면 안소에게 향합니다. 안소와 마랏소가 있는 데 그러니까 안소를 치므로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거든요 살다보면 때때로 누군가가 나를 툭툭 쳐 주어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어요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문제인 경우는 별로 없어요 부모의 문제가 많지요 교인들의 문제보다 목사의 문제가 많지요
미련한 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매질이다 이런 이야기는
집회서에도 등장하는데 33장 25절 당나귀에는 여물과 채찍과 짐이 필요하고 종에게는 빵과 훈육과 일이 필요하다 26절 종을 훈육하며 일울 시키면 내가 휴식을 얻고 종을 느슨하게 풀어 주면 그가 자유를 요구하게 되리라 이런 말이 집회서에도 등장합니다.
4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데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절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여러분 미련한 자에게 어떻게 응답하여야 합니까?
4절과 5절은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절은 대답하지 말라 5절은 대답하라 그런데 이런 상반된 말을 통해서 지금 교훈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이냐 하면 모든 경우에 드러나는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다른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아주 직정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우회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직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늘 옳아 이렇게 말할 수도 없어요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 늘 옳아 이렇게 말할 수도 없어 그 경우를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 대답할 말 가치가 없는 말에 일일이 대구하지 말라 대구를 해주면 그가 스스로 지혜로운지 안다 거기에 응답해 주다 보면 그래서 자기 말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응답하지 않는 게 그를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5절은 정 반대입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말하라
이것은 어떤 이야기입니까?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말을 하라
어리석음을 지혜임을 지니지 말하도록 말을 하라
 
여러분 바울 사도가 말하지요 고린도 교회가 여러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은사 가운데 어느 것이 크지 내가 받은 은사가 더 커 네가 받은 은사도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것은 자랑하라고 주신 것은 아니지요 서로 풍요롭게 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은 엉뚱한 자랑들을 하고 있어
 
바울 사도가 나도 어리석은 자처럼 말해볼게 스스로 나는 자랑할 것이 있는데 스스로 어리석은 자를 자처합니다.
고후 12장 9절 나는 자랑할 것이 있는데 나의 약함만을 자랑한다 나는 대단해 이렇게 안 합니다. 나의 약한 것만 자랑한다
 
10절 왜 내가 약할 때 주님의 강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리석음에 어리석음을 이야기 했지만 그 어리석음이 지혜임을 보여 주어요
 
5절이 이야기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지요
6절 미련한 자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절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에 잠언도 그러하니라
 
여러분 미련한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하다 보면 스스로 어리석은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가 가지고 엉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답답하지요 이런 경우가 아주 정말 있습니다.
 
결국은 미련한 자들을 메신저로 삼는 것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13장 16절 예수님은 자신을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보냄을 받은 분으로서 적절하지요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니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리석음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을 당신의 메신저로 삼으신 것이지요 이 잠언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세상앞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모험입니다.
 
하나님이 모험하신 것이야 모험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사랑하고 신뢰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수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는 실수할 것이니까 안돼 그러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그 분의 꿈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지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이 이야기 하지 않아요.
고전 1장 25절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어리석음만 못하다 우리가 제 아무리 무엇을 해 보아도 하나님의 어리석어 보이는 그 일을 우리가 당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십자가이지요 십자가
 
그런데 그 어리석음처럼 보이는 것이 진자 지혜였지요 그러니까 보냄을 받은 자로서 우리는 미련한 자임을 인정 합시다 그러나 자꾸만 은혜 가운데서 그분의 바른 메신저가 되기 위해서 애 써야 하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여요
 
7절 미련한 자가 하는 지혜로운 척 하는 말은 절림 걸림 이의 다리와 같다 어리석은 자의 말이 허황하기 이를 데 없다
 
8절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메는 것과 같으니라 아까 물메라고 하는 것이 카보드라고 하는데 그에게 적절치 않은 역할을 주는 게 돌을 물매에 메는 것과 같다 미련한 자가 중책을 맡으면 사회가 위험한데 돌을 물메에 멘다고 하는 것은 이중적 의미가 있어요
 
미련한 자가 막 휘두르면 다치지요 그것은 누군가를 상처를 주도록 되어 있어요
다른 번역은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물매에 제서 던져야 하는데 물매에 돌을 붙들어 메 둠으로 날리지 못한 것이야 진자 미련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두 가지로 번역을 해 냅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던지 간에 미련한 사람 배울 생각이 없는 부도덕한 사람 또 초월적 비젼을 통해서 역사를 앞으로 끌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직책이 주어질 때 그 사회가 혼돈과 그리고 아주 어려움 속에 처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작동 되지 않음으로 역사가 퇴행한다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 우리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항상 수직이신 초월이신 하나님의 눈을 통해서 역사를 내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인가 앞을 가로 막고 있으면 안 보여요 앞이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보면 가야할 길이 보여요.
 
그러니까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늘 하늘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어요 그래서 예언자를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늘의 눈으로 역사를 주석할 줄 아는 사람 항상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전체의 뜻으로 수정된 마음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전체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정 교정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마치 그 수분 활동들 그러니까 벌이나 나비가 날아다니면서 암술과 수술 사이에 이렇게 뭍여줌으로 꽃이 피어나게 하는 것처럼 그것이 수정이지요
 
전체의 뜻으로 수정이 된 불임이 되지 않는 것이야 수정이라는 것이 이것이 믿음의 삶이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미련한 자들은 이것을 못하는 것이어요 눈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니까 그 상황을 물메에 돌을 제어서 날리는 것과 같은 것이어요 아니면 물메에다가 돌을 묶어서 날아가지 못하게 이것이 미련한자입니다.
 
9절 술 취한 자가 손에 들린 가시나무. 이것이 무엇을 해칠 런지 알지 못해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미련자의 입에 담긴 잠언 이라는 것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와 같다
여러분 문자를 꾀나 쓰는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의 지혜 혹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함부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 무엇과 같아요 그의 지식은 그의 손에 들린 가시나무와 같다 술취한 자의 손에 들린 가시나무와 같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라는 분 아시지요. 그 샤르트르는 지식인을 둘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는 지식인이 있고 또 하나는 지식 기술자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식인이란 누구냐 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 자기의 배움 이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어내는 그런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지식인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지식인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 지식 가지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어요
 
지식인은 자기 지식 가지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공 세계를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많이 배워서 박사학위 있는 사람이 지식인인이 아닙니다. 여기 지식 기술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 이익에만 복무하는 사람들 그것이 지식 기술자입니다.
 
과학주의라는 것이 위험해요 과학이라는 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데 때때로 과학적 발명이 인류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는 과학 그 자체만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은 지식 기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과학적 지식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인지 늘 고민하는 사람들은 지식인이라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세요 술 취한 사람의 손에 핵무기를 날릴 수 있는 무기가 주어진다고 한다면 그런데 술 취한 사람만이 문제가 아니지요 권력에 중독되어 있던지 무엇인가 자기에게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중책을 맡게 될 때 세상이 얼마나 위기에 빠질 수 있는지 바로 이것이
 
9절 미련한 자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말 속에 담겨있는 현실적 의미입니다.
10절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하는 것과 같으니라
새 번역은 미련한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궁수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쏘아대는 것과 같다
 
치명적인 살상 무기를 테러리스트에게 맡기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위험하다 그런 이야기인데요 이 대목에서 미련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봤더니 일의 전모를 알지 못하고 부분만 아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다. 전체를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조화를 그런데 전체를 알지 못하고 부분만 알게 될 때 사람들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1절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개는 늘 대게 부정적으로 묘사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유대인에게는 이방인을 개 이방인을 가르키는 말이기도 해요 결국 개로 상징하는 것은 그 짐승이라고 보기보다는 그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자들 은유적으로 했다 결국 실패를 통해 배우지 못한 자들이 어리석은 것이지요
 
베드로 후서 2장 2절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씼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여기에서 미련한 자다는 말이 실패를 통해 교훈을 받지 못하는 실패하면 교훈을 받아야 하지요 실패란 참 좋은 것입니다 아프기는 하지만 옛날에 공부할 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특색이 무엇이냐 하면 시험 봐서 틀린 것은 절대로 안 틀려 오히려 왜냐하면 내가 왜 틀렸을까 생각하고 이제는 그것을 귀 담아 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에 담아 두어요 적당히 찍어서 맞은 것은 다음에 또 틀릴 수 있어 틀린게 도움이 돼 늘 반성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미련한 사람은 그 미련함을 거듭 거듭 행한다 반복적으로
 
12절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어리석은 자의 위험을 가르치는 맥락의 결론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입니다. 그들은 미련한 자 보다 더 문제가 많아요 그들이 더 위험하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여깁니까? 늘 나 자신을 지혜롭게 여길 때 마다 아직 갈길이 멀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바울 사도가 은혜를 받은 다음에
딤전 1장 15절 죄인중에 내가 괴수라 그 말은 자기의 죄를 다 실토하는 말이라고 보면 안 되어요
다시 이야기 하면 내가 비교하여 볼 때 내가 큰 죄인이야 말하는 사람보고 저 놈이 큰 죄인이야 그러면 안 됩니다.
 
빛에 근원에 가까이 갈 수롤 내 몸에 얼룩들이 잘 보여요 빛에 광원으로 멀어질수록 내가 깨끗한 것 처럼 보여요 내가 죄인이야 하는 것은 가장 은혜에 가까이 간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의 고백이어요 그 사람들이 미련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련함에 다양한 모습들을 보았는데 여러분 늘 자기를 개방하고 베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이것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빛을 향해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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