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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고 계심”
2019년 05월 22일 (수) 09:13:52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출 8:1-15)
[출]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8: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출]8:3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출]8: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출]8: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출]8:6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출]8:7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출]8: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출]8:9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출]8: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출]8:11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출]8:12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출]8: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출]8:14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출]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1.
    오래 전에 태백의 탄광 막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에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십여 명의 광부가 갇혔다는 보고를 받고는 직원 한 사람을 대동하고 방독면을 쓰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갱도 안에서 광물질에서 분출되는 유독 가스와 지열(地熱)을 참으며 매몰 지점을 찾느라고 정신이 없던 두 사람은 문득 방독면의 유효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짙은 어둠 속, 가스 냄새로 인해 죽음을 직감하며 그 순간, 자신이 방독면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절감했습니다. 일찍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젊은 나이에 공사 사장이 되었지만 그 상황에서 그가 살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동행한 직원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두려움 속에 어찌할 바 몰라 하는데, 그 직원은 간절히 간구하는데, 그런 위기 속에서 간구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몰랐습니다. 그 후 다행스럽게 이들은 구조되었고, 이 사람은 얼마 후 예수를 영접하였고, 지금은 안양의 어느 교회 장로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위급할 때에,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십니까?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2.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애굽의 통치자 바로를 치는 장면입니다. 끝까지 고집 부리고 교만하여 불순종하는 바로를 꺾기 위해 하나님께선 이른바 10가지 재앙을 쏟아 붓는데, 그 중에 두 번째 재앙이 오늘 본문입니다.
 
    당대 살아 있는 신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교만한 애굽 왕 바로! 이 바로를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치시는데, 그 내용을 보니, 하찮은 것들입니다. 이걸 재앙이라고까지 해야 하나 하는 정도로 엉뚱한 것입니다. 개구리들이 떼를 지어 나일 강에서 육지로 올라오는데, 궁전에, 침실에, 침상 위에, 신하의 집에, 백성의 집에, 화덕 위에, 떡반죽 그릇에, ... 애굽 온 땅이 개구리들로 덮여 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까지 기어오릅니다.
 
    그러자 애굽의 요술사들도 이것을 따라합니다. 그 정도는 자기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없애지를 못합니다. 개구리 수만 더하여 괴로움만 더했지 해결을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역사, 사람이 해결해 본다고 하지만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묶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있겠습니까? 괴로움만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는 하나님께서 푸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십시오. 나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면 내가 정신 차리면 되겠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깊은 뜻이 있어서 어려움을 주시고, 고난을 주실 때 기도하십시오.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동분서주 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그 때는 아무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할지라도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일을 벌려봐야 괴로움만 더해 질 뿐입니다.
 
    이에 바로는 손을 듭니다. 그러자 모세가 바로에게 묻습니다. 9절,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그리곤 일시에 개구리들을 정한 시일에 나일 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쯤 되면 바로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와, 여호와는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해야 하는데, 바로는 개구리가 일시에 다 없어지자, 마음이 변합니다. 15절,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숨통이 트이니까 마음이 변합니다. 은혜 생활도 이렇게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토록 간구하며 기도해 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더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꺼지니, 아쉬운 상황이 변하니, 바라던 것을 얻게 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변합니다.
 
    신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실하심 같이 자신도 하나님 앞에 신실하십시오. 하나님께 서원한 것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아쉬움 속에, 두려움 속에 하나님 앞에서 중얼거린 것들을 잊지 마십시오. 문제는, 고난은 지금의 것이 다가 아닙니다. 산넘어 산입니다. 우리는 계속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니 내 평생의 길을 살피고 돕고 이끄시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십시오!
 
    3.
    그런데 왜 개구리들이 식탁에 올라오는가요? 어째서 개구리가 침대로 올라오는가요? 개구리는 물가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개구리가 인간의 집으로 들어오는가요?
 
    미국 복음성가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붙잡고 계신다는 노래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손을 놓으신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순식간에 이 자연은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물가에 있어야 할 개구리가 사람의 집으로, 산에 있어야할 것이 바다 속으로!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연(自然), 말 그대로 가만 놔두면 스스로 잘 되어 간다고.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제하십니다. 환경이 파괴되어 개구리가 집단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우리의 삶의 환경을 놓기만 하시면 일순간에 우리의 삶의 터전은, 삶의 환경은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감사합시다.
 
    성경에서 가장 신나면서도 가장 겁나는 장면, 뭘까요? 제일 감동적이면서도 두려운 현장, 어딜까요?
 
    난 그게 홍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뒤에는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애굽의 전차 부대, 앞에는 시퍼런 바다! 도망갈 수 없는 외길에 들어서 있는 처지! 이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에 빠져 죽던지, 뒤 돌아서서 살기 위해 애굽의 막강한 군대 전차 부대와 결사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이런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이젠 죽었구나 싶은데 지도자 모세가 기도하고 나더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며 홍해 위로 지팡이를 내미니까, 그 시퍼런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바닥이 드러나고, 마침내 길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기 막혔을까요! 얼마나 신났을까요! 죽었구나 싶었는데 길이 떠억 하니 생겼습니다. 이거야 말로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그거 타고 구원받는 감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마냥 즐거웠다? 아닐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눈물 나게 신나면서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왜? 그 현장을 보겠습니까?
 
    출 14:21-22,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그들은 물이 다 물러가서 평지가 되어 홍해를 건넌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모세의 기적이라고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 여럿 있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썰물로 물이 밀려나가 뭍이 드러난 게 아닙니다. 바다가 칼로 베어낸 것 같이 갈라진 것입니다. 움푹 파인 것입니다.
 
    그래서 양쪽에 거대한 물 벽이 생겼고, 그 가운데 길이 나서 건너간 것입니다. 이 길을 걸으며 기막히다고,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다고 그들은 노래했습니까? 잔치를 벌였습니까? 할렐루야 춤을 췄습니까?
 
    아닙니다. 하루 밤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넜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이들은 적어도 2백만 명이 넘습니다. 가축들도 많습니다. 남녀노소입니다. 그 많은 이들이 하루 밤에 다 건넜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요? 굉장히 빨리 건넜다는 것입니다. 여유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왜?
 
    물론 뒤에 애굽 군대가 쫓아와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 벽에 무슨 안전장치가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투명막이, 마치 수족관처럼 무슨 막이 있겠습니까? 거대한 콘크리트 담벼락이 있었을까요? 그 시퍼런 바닷물을 벽으로 가로막고 있는 눈에 띄는 그 무엇이 있는가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빨리 건널 수밖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기하면서도 불안합니다. 그러기에 빨리 건너갔습니다.
 
    결코 믿지 못했으면 건널 수 없는 길, 믿음 없이 들어설 수 없는 길이 홍해 길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길이라고 무척 흥분하고 신나 하는데, 사실 그 길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지 못하면 들어설 수 없는 길입니다. 쫘악 갈라주시고 들어가라 들어가라 등 떼밀어도 선뜻 나서기 힘든 길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손이 그 흉흉한 바다 물을 가로막고 있다는 믿음 없이, 결코 지나갈 수 없는 길, 그게 홍해 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2-3a)
 
    홍해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몰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함께 할 것이라!” 요단강을 건널 때 물이 나를 침몰시키지 못한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않는 이유는? 풀무 불에 떨어졌음에도 불꽃이 나를 사르지도 못하는 이유는?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를 붙들지 않으신다면 난 단번에 무너집니다. 내 인생은 단번에 끝장납니다. 내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이 있음을 나는 굳게 믿습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모든 악함으로부터, 모든 죄악과 절망으로부터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놀라운 하나님의 권세로 홍해를 마당 같이 걸어서 건너고, 그 이후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놀라운 경험하고, 엘림의 오아시스를 경험하며, 므리바의 갈증까지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는 기막힌 경험을 한 그 직후, 출 17장에 보면 갑자기 아말렉 족이 쳐들어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생각지 못한 갑작스런 일입니다. 예고도 없었습니다. 아직까진 아말렉과 원수지간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말렉이 냅다 쳐들어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뭔가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때까지 이스라엘의 걱정거리가 뭔가요? 뭘 먹지, 뭘 마시지, 어떻게 살지? .... 온통 의식주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길, 10가지 재앙, 불기둥 구름기둥, 홍해의 갈라짐,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엘림의 축복, 므리바의 기적, ...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이들이, 자기들은 단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이들, 마치 신생아처럼 엄마의 보호 손길에 전적으로 의지해 살던 이들이,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평, 불만, 원망한! 그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만 충분히 있으면 잘 살 수 있을 것같이 여기며 오로지 그것의 부족에 불평불만!
 
    그러자 보다 못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해서 잠시 그들을 지키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말렉 족이 쳐들어 왔습니다. 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족속들에게는 밥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들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한 몫 잡고 나왔을 것이니 재물이 많을 것이요, 노예로 살다 나왔으니 자기 방어력도 없고, 군대도 없을 것이 뻔했습니다. 혹시 애굽 군대가 뒤를 봐주나 했는데, 그 애굽 군대는 홍해에 다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니 광야 토착족속들이 볼 때 이거야 말로 털 뽑을 것도 없이 홀랑 먹어버릴 수 있는 것, 횡재거리입니다. 먼저 먹는 자가 임자! 약육강식(弱肉强食) 시대에 그것은 그야말로 이게 웬 떡이냐입니다.
 
    그런데 뭔가 자꾸 막혀서 치질 못했는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순간적으로 안 보입니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멜렉 족이 냅다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존폐의 위기, 생존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뭘 말씀하고 있는 걸까요? ‘너희가 의식주가 부족하다고 불평하느냐? 그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나를 의심하느냐? 장사가 안 되고 사업이 부진하다고, 잘 풀려가지 않는다고 그러느냐? 그렇다면 봐라, 내가 너희를 붙들고 있는 손을 놓을 테니 ... ’
 
    의식주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생존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환경을 붙들고, 우리 삶의 모든 지경을 붙들기에 우리는 그나마 먹을 게 있다 없다, 옷이 있다 없다, 돈을 번다 못 번다하며 투덜대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둘러 진치고, 지키시기에 그들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심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권세로부터 내 삶의 지경을 지키고 계심을 감사하십시오.
 
    5.
    이스라엘은 아말렉 족을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남자 장정들이 나가 싸우긴 했지만, 전투해 본 경험도 없는 전직 노예들이 무슨 재주로 이기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세가 산 위에서 두 팔을 들고 있으면 승리하고, 내리면 패하였습니다.
 
    두 팔을 든다? 무슨 의미인가요? 이건 유대인의 전형적인 기도자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일반적인, 세계에서 통하는 것, 곧 항복의 자세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하나님께 항복하니 사람에게 이기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리니 사람에게 패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더 이상 종알댐이 없으면 살고, 계속 종알거리면 패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키시고, 붙드심을 믿으면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항복하면 행복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십시오!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뜻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내 삶을 붙들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기에, 내 삶을 붙드시기에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도 나는 멀쩡히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시 91:7) 왜?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장중(掌中)에 붙들고 계시기에!
 
    우리에게 이 믿음이 없다면, 이 믿음의 눈길이 없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에 의해 우린 요동칠 것이요, 평강을 모를 것이요, 기다릴 줄도 모를 것이요, 불안과 초조감 속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반경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 분이 그것을 놓는 순간, 내 인생은 무너지겠지만,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 내 인생, 내 삶의 지경을 붙들고 계십니다. 나를 해하려고 하는 그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나를 굳게 지키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사 41:13)
 
    하나님께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우리 삶을 붙들고 계십니다. 견고한 믿음으로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평강에 평강이 넘쳐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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