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7.17 수 16:13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잠51강 25:16-28 배고픈 원수를 먹이라
2019년 05월 15일 (수) 09:15:12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약간 아껴 두는 것도 괜찮아요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할 것은 아니요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 그 말은 말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소리는 하라 그 말이 아니고
 
마 5장 37절 말은 간결하게 과장 속에는 거짓이 섞이기 쉽거든요 우리말에는 인프레이션이 되어 있어요 참 좋아요 그렇게 하면 좋은 것인데 너무 너무 좋아요 그렇게 안 해 주면 서운한 것 같고 나는 우리 때때로 느끼는 게 한국 사람들이 카페나 이런대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약간 조증에 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과(過)해요 음성도 그렇고 반응도 그렇고 게그멘들이 오락에서 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반응을 해 주어야 해요 그것 잘 하는 사람이 잘 나가지요. 그러다 보니까 국민들 모두가 너무 과하게 반응들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데 그렇다고 오늘 아무 반응도 없으면 안 되어요
 
오늘 잠언 25장16절을 읽으면서 아주 헤피했어요
족한만큼 먹는 것은 괜찮은데 과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꿀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이 되곤 했어요
 
꿀 이야기가 등장을 하지요 성경에서 누구 이야기에서 나오지요
삼손 이야기에도 보면 사사기 14장 삼손이 길을 가다가 죽은 사자를 보고 죽은 사자의 벌집이 있어서 꿀을 먹지요 이것이 삼손 이야기에 등장을 하지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요나단이 꿀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 왕이 엄명을 하거든요
삼상 14장 27절 전쟁 끝날 때 까지는 아무도 먹어서는 안 돼 요나단이 전쟁을 하다가 숲에 들어가 보니까 꿀이 있는 것이어요 그것을 찍어 먹었더니 눈이 밝아져 사울이 맹세를 한 적이 있어요
 
28절 먹는 사람들은 죽어야 된다고 했는데 요나단이 죽어야할 형편이 되지요 요나단이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존재이기에 절대 그겋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서 모면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꿀 먹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관련이 되어요 나 어렸을 때만 해도 꿀이 정말 귀해서 꿀단지를 아버지가 시렁 위에 올려놓으면 아슬 아슬하게 어른들이 나간 다음에 아이가 꿀을 먹고 싶은 것이어요 어떻게 합니까? 엄마 재봉틀 의자 갖다 놓고 막 할려는데 키가 안 돼 그러면 무엇해야 됩니까? 베게 갖다 놓고 올라서서 내리려고 하다가 깨트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작전 가지고 안 되겠다 하니까 애들이 주로 하는 게 무엇이냐 배가 아프다고 그러면 꿀 한 숫갈을 주지요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꿀을 적절해 먹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제 과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제가 이 꿀벌들이 일하는 것을 보니까 꿀 벌 한 마리의 보통 활동 반경이 몇 키로 정도 되느냐 하면 5키로 가까이 된데요 자기 벌집에서부터 5키로 정도를 날아가는 데 하루에 한참 때 벌들이 방문하는 꽃의 수가 만송이 정도가 된데요
 
하루에 만송이 정도를 방문을 해 만송이 정도를 방문을 하게 되는데 그리고 1초에 날개짓을 200번 정도 한 대요 꿀벌이 1초에 언청 부지런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꿀벌들은 동료들에게 저 곳에 가면 좋은 꿀이 있어 알려 주기 위해서 벌통 앞에서 춤을 쳐요
 
그 다음에 벌통 하나에 꿀벌들이 5만마리 정도 산대요 벌통 하나에 어마 어마합니다. 그런데 일벌들은 꿀을 따는 꿀벌들은 5주 정도 일하고 나면 지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 꿀벌들이 평생 모으는 꿀의 양이 얼만큼 되느냐 하면 차 숫가락에 절반 정도 모은대요 꿀벌의 일생동안 한 마리가 우리가 꿀을 한 숫갈을 먹지 않아요 그것은 꿀벌 두 마리의 일생을 먹는 것이야 어마 어마하지요 꿀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정말 경건하게 임해야 하겠는데요
 
쌀도 지난 번에 이야기하기를 쌀 미자라는 것이 여 팔자 두 개 겹쳐지고 열 십자가 있다고 했지요 농부의 손길이 88번 가야 쌀 한 톨이 나오는 데 꿀 산 숟가락 먹는 것이 기가 막히지요 얼마나 우주적 사건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보여주지요.
 
어쩼던 꿀을 먹을 때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심함으로 토할까 두려움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꿀을 많이 먹지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17절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아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 까 두려우니라.
우리가 꿀을 먹는 게 참 행복한 일이기는 한데 너무 많이 먹으면 탈나는 것 처럼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허물없이 드나드는 것은 과합니다. 이웃들이 불편해 질 수 있어요
 
이웃간에도 지켜야 할 사생활 같은 게 있는데 너무 허물 없이 드나들면 불편해 그런 일이 있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 사이좋다고 이야기 할 때 사이가 있고 좋다가 있어요 사이 간격이지요 그러니까 적절한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다 그래요 그리고 인간관계를 이야기 할 때 관계(關係) 관(關)은 빗장이어요 성문을 가로 질러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요 열기도 하지요 계(係)는 잇는다는 뜻이어요 관계는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것이어요 관계를 맺는 것은 그것이어요 너하고 나하고 좋은 관계야 이야기 하는 것은 때때로 잠구어 놓아야 할 때도 있는 것이어요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는 허물없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열려야 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그 사람의 홀로 있어야 함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관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꿀을 많이 먹는 것이 탈이 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이웃관계도 너무 해퍼지면 불편할 수 있으니 삼갈 줄 알아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18절 자기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뽀족한 화살이니라
이웃을 쳐서 거짓증거한다는 이야기는 위증하는 것이지요 사람들 앞에서 거짓 증거한 것입니다. 위증의 치명적임을 세 가지의 전쟁 무기를 동원하고 있어요 방망이 칼 화살 셋 방망이라는 것은 초 근접점에 사용하는 것이니다. 칼이라는 것은 양간 근접점이 있을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활을 멀리서 사용하는 것 전쟁에 동원되고 있는 무기를 다 갖다 썼어요 위증의 심각함 나는 나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편들기 위해 위증을 했는데 그 결과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진실을 무너뜨리는 거짓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전쟁무기를 통해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찾아내려는 자의 싸움이 치열한데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한다면 팩트 사실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증언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내가 누군가를 편들기 위해 누군가를 폄하한다든지 해고지 하는 증언을 하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절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그러니까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누군가가 증인이 되어 주기를 원했는데 그가 진실함이 없어 그 상황은 어떻다고 말합니까? 부러진 이 위골된 발 어떤 것이어요. 먹을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치명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그렇지요 배신자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배신할 수 없습니다.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이 내게 등 돌리고 내게 험한 소리 하는 것은 큰 상처가 안 되어요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아주 해가 되는 말을 하고 사실도 아닌 말을 왜곡해서 전달한다면 큰 상처가 되지요 배신은 언제나 친밀한 사이만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성만찬을 하면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마 26장 23절 나와 함께 이 대접에 손을 넣는 자가나를 넘겨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나를 배반할 수 있다 결국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부러진 이 이가 부러지면 신경이 나와서 얼마나 시어요 부러진 다리로 걸을 수도 없지요 그런 상황속에 처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을 아주 구체적인 언어로 지금 보여주고 있어요
20절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어 그런데 그 앞에서 노래 불러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요.
 
우리는 말도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소다위에 붇는 식초는 그러기도 하지만 소다로 이야기 되는 것은 상처입니다. 내가 입은 상처인데 그 위에 식초를 붇는 것 그러니까 마음이 상한 사람 앞에서 즐거운 노래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옷을 추운 겨울에 벌거벗김과 같고 상처위에 식초를 붇는 것과 같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만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답다고 하는 것은 내 자유인데 뭐 그러고 살면 안 되어요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여러분 인간하고 이야기할 때 사이 간(間)자가 있지 않아요 사이 간자가 있어 사이 간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 좋을 대로만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단 말이어요
나하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친밀함을 유지하여 가야 되지요 인간이 인간 답다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서 나운씨가 어려운 일이 있어요 나에게 목사님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내게 무엇을 요구해 주었어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든지 요구 받았어 요구받음 여기에 대해서 내가 인간다운 것은 요구 받은 것을 응답하는 것이야 기도해 주세요 그런데 무엇을 기도를 해 잘 살아 이러면 안 되지요
 
응답을 해 주어야 해 요구받은 것에 응답을 하는 것을 일러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책임성이라고 이야기해요 책임 영어로 응답하다는 리스판스(Response)입니다. 책임은 리스판스빌리티( Responsbility )리스판스에서 나온 말이어요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질줄 알 때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은 응답하는 것이어요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책임적 존재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은 자기에게 요구 된 바에 응답한 바에 의해서 응답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인간이라는 말을 마틴 부버라고하는 유대인 철학자는 영어로 무엇이라고 썼느냐 하면 비투인 멘 엔 멘(Between Man and Man)그랬어요 인간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야 인간 존재는 여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불행한 것은 그 사람 불행이고 나는 행복해 하고 행복의 노래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어요
 
예컨대 우리 사회에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홍수가 나 가지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쓰러 갔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나와서 물고기 잡는 것이야 떠 밀려온 물고기 잡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망연자실해 있는데 그들은 그들이고 옆에서 골프 칩니다. 이런 사회는 망가진 사회이지요. 이런 일이 많아요
 
오늘 살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요 그러면 인간이다고 한다면 차마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고통에 뛰어 들어가서 그들을 돌봐주지 못한다 해도 내가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고 기회도 안 되어서 그러지 못한다 해도 차마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어요
 
20절 마음이 상한 자 앞에 노래 부르는 일은 하지 않아야 돼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그렇게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심리학의 용어 가운데 하나가 있는데 동정피로라는 말이 있어요 동정이라고 번역된 말은 사실은 자비인데요 컴페션펄티(Compassion Faligue)라고 이야기 하는데 처음에 불행한 사람을 보면 사람은 누구나 안 되었다 얼마나 아플까 하지요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은체 오래 지속되어요 그들의 아픔은 지속됩니다.
 
그들의 아름을 아파하던 나는 피곤해 지는 것이야 저 상황에 너무 오랫동안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그만하지 있지요. 그런 일이 있지요. 이것을 동정피로라고 이야기한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 동정 피로가 나를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 마음을 누르고 그들 곁에 설 줄 아는 것이 인간이어요
 
상처 받은 사람이 동정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느낀다면 두 번 죽이는 것이지요 그만하면 되었다 라든지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 이런 말들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입니다.
 
21절과 22절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 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말합니다.
 
그 동안 18절부터 20절까지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피해야할 부정적인 행동을 이야기 했다면
21절부터 22절까지는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적극적인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여라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이게 잘 되어요 안 되어요 원수인데 잘 안 되어요 이게 정말로 그런데 이 원수는 대게 어떤 사람이냐 하면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힘들게 하거나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하자면 거짓 증인으로 나를 위기에 빠트렸거나 나에게 신의를 배신하거나 그런 사람이어요
 
우리의 정서는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원수가 배고픈 상황에 처하거나 목마른 상황에 처하면 속이 시원하지요 여기에서 속 시원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마음속에는 네가 천벌을 받았지 그런 생각이 들지요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더니 이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잠언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출애굽기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원수의 짐승이 짐을 싣고 가다가 너무 무거워서 넘어졌어요
출 23장 5절 그 때 어떻게 하라고 하면 잘 되었다 하지 말고 원수를 도와서 짐승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합니다.
 
굉장히 지혜로운 것인데 정규씨와 나하고 관계가 안 좋아 서로 등 돌리고 살고 있는데 이웃으로 살기 위해서는 등만 돌리고는 살 수 없어 화해를 해야 하는데 자존심 상해서 서로가 악수를 안해 어느 날 보니까 정규씨의 말에다가 짐을 싣고 가고 있는데 말이 너무 무거워 가지고 넘어졌어
 
그러면 나는 정규씨 돕는게 아니라 말을 돕는 것이야 세워져요. 그러면 내 자존심도 덜 상해 정규씨도 고마워 이게 화해를 이루는 비결이어요 중간에 무엇을 통해서 이게 불쌍한 짐승을 도와야지 그런데 그렇게 돕다 보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열리지요 굉장한 지혜입니다.
 
이 말은 무엇과 관련이 되느냐 하면 원수가 취약해 졌을 때 앙갚은 하지 말라는 말인데 이것은 유목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유목민의 특색은 무엇이지요? 이동하는 것이어요 이동합니다. 그러니까 물을 찾아가고 초지를 찾아 이동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내 짐승을 끌고 어디로 가야될까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먹을 것이 없어서 기진했고 추위에 지쳤어 그런데 저 사람과 나는 원수야 그러면 원수 갚을 절호의 기회이지 않아요 길을 잃어버린 그 사람 유목민의 윤리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길을 잃거나 기진한 원수는 반드시 집으로 모셔 들여서 회복할 수 있도록 한 다음에 돌려보내야 합니다.
 
다음에 싸우더라도 이게 유목민의 환대의 원리입니다.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그이지만 다음 순간에 나 또한 길을 잃어버릴 수 있어 서로 환대를 통하여 건강한 문화가 유지되도록 해 주는 것이어요
 
결국 그렇게 이제 내가 원수였던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보이면 화해에 훨씬 더 가까워지지요 여러분 측은지심이라고 하는 것은 맹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단 가운데 하나인데 예를 달면 어떤 사람 아이가 아장 아장 걷다가 샘에 빠질 위기에 닥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닙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달려가서 아이를 품어 안지 않아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측은지심이어요
 
내가 아이를 구해줌으로 그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어요 그리고 내가 사회적 평판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위기에 처하니까 나도 모르게 건져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게 사람 속에 있는 기본적 마음이다는 것이지요 이게 중요해요
 
결국 그런 우정 어린 사랑의 어떤 행위를 경험한 사람은 무엇이지요 내가 그를 미워하고 거짓 증언하고 배신했던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지요 나는 그렇게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어요 이마위에 핀 숯을 올리는 것과 같아요 그렇지요 그의 속에 있는 부끄러움을 깨어나게 함으로 그를 인간이 되게 만들어 나오는 것이지요 이것이 잠언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고 로마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핀 숯을 올려 놓으라는 것은 그에게 치명상을 가하라 인간적인 도덕성을 회복함으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만들라 하는 그 말로 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핀 숯을 올려놓으라는 이야기는 그에게 위해를 가하라든지 상처를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데 내가 사랑을 받으면 부끄러워지지요 나의 마음씀이 그것이 핀 숯을 올린 것이지요
 
23절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절 다투는 여인과 큰 집에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참 힘들었나봐 어쩼던 그 이야기는 반복됩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킨다 하고 말하는데 사실은 파레스타인에서의 북풍은 비를 몰아오지를 않고 오히려 청명한 날씨에 가져옵니다. 오히려 비를 몰아오는 것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이어요 여기 북풍이 비를 일으킨다는 것은 은유적 언어임을 알 수 있어요
 
북쪽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언제나 불길한 상징이어요 왜냐하면 제국들이 북쪽에서부터 쳐 내려오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북풍은 정말 예기치 않았는데 찾아오고 있는 그런 기후현상 혹은 불행 이런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풍은 그런 예기치 않은 사건을 뜻하는 데 북풍이 비를 일으키는 것처럼 참소하는 혀 있지도 않은 말을 해서 나를 모함에 빠트려고 하는 그런 말들이 우리의 내 얼굴에 분을 일으킨다하고 말합니다. 내 얼굴에 분을 일으키는 것 이기도 하고요 어떤 말인가 하면 그가 회복할 수 없도록 치명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참소하는 혀는 우리가 언어에 대한 이야기 계속 하고 있는데 거짓말 하거나 이게 잠언에 계속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5절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그렇지요 기다림이라는 게 지금 정규씨 무엇을 기다려요 그냥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참 좋았고 감사하고 덕분에 살아났다 그런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려요
 
여러분 학생들이 기다린 것은 방학이지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이지요 아주 통일의 열망이 깊은 사람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림은 다양하지 않아요.
 
기다림이라는 것이 설렘인 동시에 설레요 무언가 오기를 기다려요 그런데 기다림이라는 것은 참 우리를 조바심 나게 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체코의 대통령이었던 바츠라 파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의 연설 속에서 기다림은 두 종류의 기다림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어떤 기다림이 있느냐 하면 고도의 기다림이 있어요
여기에 고도는 사무엘 베케트라는 작가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 작품에 등장하는 브라지스와 에스트라 공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인물 고도를 기다립니다. 권태롭게 이 삶은 어떻게 보면 파괴적 삶입니다.
 
그런데 바츠라 파벨이 이야기 합니다. 공산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들은 막연히 이 체제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도의 기다림이다
 
두 번째 기다림은 인내하는 기다림인데 이것은 그냥 인내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기다림의 내용이 열리도록 끝끝내 인내하면서 그 세계를 살아내는 기다림이어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고 한다면 막연히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고도의 기다림이어요 무엇입니까? 내가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여기서 살기를 시작하면서 끝끝내 인내하는 것이어요 반체제적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저런 기다림을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먼데서 오는 좋은 기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그 소식은 얼마나 아름다운 소식일까 그래서 여러분 이사야 40장 1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단락이 시작되는 대목인데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외치라
 
2절 너희는 예루살렘에 닿도록 말하며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노역의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경험했던 그 고통스러운 노역의 때가 끝났어 이 소식이 들려와요 이런 소식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합니까? 목 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여러분들은 지금 사람들 앞에 어떤 소식입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는 누군가에게 어떤 소식인가 이 질문앞에 우리들이 서 있어요
 
그것을 늘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런지가 나와요 바울 사도가 그랬지요
고후 3장 3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나가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여요. 우리가할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다면 우리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은 편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런지가 나와요
 
26절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여러분 의인도 지속적인 고난 앞에서 때때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지요 이게 악인들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의인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 냅니다.
 
때때로 회유하기도 하고요 물질적인 것 가지고 타락시키려고 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이러한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인들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악인에게 굴복한다면 그 상황은 무엇과 같아요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다 그렇게 말합니다.
 
시편12편 8절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의로운 사람이 굳굳네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굳게 붙들고 가지 못하고 흐려져 버리면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열린다 이게 우리 인생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거꾸로 이야기 할 수 있어요 한 사회가 위태로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것은 끝끝내 때때로 의로움을 견지하는 때때로 외면당하기도 당하기도 하고 박해 당하기도 하지만 꿈을 간진한체 그 인내하는 기다림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다
 
27절 꿀 많이 먹는 것이 좋지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결론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꿀을 많이 먹는 것과 자기 영예를 구하는 것 이것이 동격으로 일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일까요? 어떤 것이 제일 불행일까요? 그러니까 내가 한 일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게 제일 불행한 일인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참 불행이어요. 칭찬 받기만 하는 것 그래서 제가 이제 우리 교인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 주면 그 칭찬이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칭찬받는 그 내용이 내가 나를 알지 않아요 내 속을 돌아서서 너 알지 네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자꾸만 연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가지기 쉬어요 존재 그 자체가 그렇지요 칭찬 받기를 원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적절할 때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그런 이야기여요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못해서 파멸의 덫에 빠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지요
오늘 이야기는 절제에 대한 이야기에서 절제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어요 그러니까 과하지 않는 것이 참 좋겠다 하는 이야기 그 다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샘물을 흐리게 하고 우물을 탁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지만 의인은 그 속에서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자기를 지켜간다 여러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할 것같아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기독교계 원로들, 한기총 전광훈 작심
전세계 난민 7천만, 경계 넘어 삶
남북미정상 판문점서 만났다
서구가 모색하는 21세기형 교회
필립핀 선교편지
미안합니다, 본회퍼 목사님
잠55강 27:15-27 칭찬으로 사
잠56강 28: 1-11 주권자가 많
바람, 바람, 바람
신간(성, 하나님, 결혼)
최근 올라온 기사
잠58강 29: 1-14 건강한 사회...
외숙모님
이해 못할 세상
누구와 함께?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내 삶을 움직이는 것
여름 수련기간입니다
명성교회 부자 세습 재심 선고 '연기...
'명성교회 부자세습' 재심 결론 못 ...
신간(성, 하나님, 결혼)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