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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50강 25:1-15 충성된 사자
2019년 05월 08일 (수) 09:09:18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사람을 계절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봄과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여름과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가을과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겨울과 같은 사람도 있지요
 
그래서 계절처럼 사람이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어떤 사람 만나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미세 먼지가 가득한 하늘처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그를 만나고 나면 내 마음이 청명해 지고 정규씨 그래요 상훈씨도 그런지 알지요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얼음 냉수 같은 사람 그렇지요 아마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도 세상을 보며 답답해 하실 터인데 내가 만든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되었지 그런데 그가 하나 있으니 이 미운 하나 있으니 정나운 하나 있으니 이렇게 하나님이 시워해 하실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인데 우리 인생의 목표가 무엇을 이루고 어떤 것을 얻고 어떤 자리에 서고 이런 것 보다 우리를 보내신 그 분의 마음을 시원케 해 주는 이게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면 남과 구지 싸우고 안해도 나 자신이 성실하게 가면 되는 것이지요
 
오늘은 그런 얼음 냉수 같은 사자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잠언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도 잠언 찌르는 말씀 찔러서 우리의 마음의 굳어진 지각들을 깨트리고 그 속에 보드라운 속 살속에 아프지 않는 그런 충격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는 말씀과 만나고 있는데
 
1절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하고 말하지요
계속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새로운 단락이 시작이 될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변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장 1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그래서 다윗의 아들이 등장합니다.
10장 1절 솔로몬의 잠언이라
22장 17절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라.
24장 23절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이렇게 말해요
 
어디로부터 이 말씀이 유래 되어있는지 이야기를 하여 주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하고 있는 데 한정된 것이 무엇이냐 유다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문자 시대에 살고 있지요 글로 써요 그래서 구술 문화와 문자문화는 전혀 다릅니다.
구술 문화는 무엇이지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어렸을 때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 달라고 하면 제 기억에도 재미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거든요 내 삶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저자야 자기 삶의 저자야 사람들은 저마다 그러니까 요즈음 글 쓰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요 표절하면 안 돼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럽니다. 누구를 표절하며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귀해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되어야지요
 
그런데 구술문화로 오랫동안 구술되어 오던 것들이 나중에 문자로 정착이 되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는 대게 문자로 어떤 텍스트들이 만들어 진 것을 주전 8세기경으로 보아요 그래서 그리스의 호메로스 시대로 보고 있어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같은 것들 서양의 중요한 문헌들의 시작으로 보고 있어요
 
그 전에도 물론 문헌이 있었지만 정착된 것은 그 때이거든요 그런데 오랫동안 구전되고 있던 것들을 누군가는 수집을 해야 하고 보세요 구전되는 내용이 있어요 누군가가 수집해야 되고 그 다음에 해야 되는 작업이 무엇이냐 하면 수집되어 있는 것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함으로 배치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요 배치함으로 무엇하느냐 하면 편집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구전되어 있었던 잠언들을 수집을 했는데 그 잠언들이 누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솔로몬 이것을 어느 시대에 수집을 했느냐 하면 히스기야 시대에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수집을 했고 편집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과정을 여전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라고 하는 임금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가지고 주전 722년에 망합니다.
그리고 나서 북왕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나라를 잃어 버렸으니까 그 땅에 살기도 했지만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는 북 왕국이 멸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니까 한 핏줄이지요 이 사람들이 많이 내려 왔습니다. 남 왕국 유다 쪽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하는 중심성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그들은 하나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다소 떨어져서 지내왔었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통성은 무엇이냐 하면 출애굽 정신이어요 출애굽 정신이 우리 민족의 핵심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어요 그러니까 성전 중심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남 왕국 사람들과 출애굽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북 왕국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야 합니다.
 
약간 혼란스러웠겠지요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는 무엇이냐 이 두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치를 이루도록 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했어요 역사적 책무여요 그들이 다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는데 그들의 핵심 원리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 핵심 원리 무엇이라고 어떤 정책 경제개발 이런 것이 아니고 야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 이것이 히스기야가 꽉 붙들었던 요소입니다.
 
원래 종교라고 하는 것이 렐리가레(lerligare)라는 말에서 나오는데 렐리젼이라고 하는 말이지요 이게 리 가레 (le-gare) 다시 묶는다(통합의 역할로서의 종료)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면 통합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 사회를 통합시키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의 흩드려졌던 마음을 묶는 역할을 한단 말이지요 히스기야가 야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했던 일이 돈을 들여서 수집가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옛 전통들을 모으고 그것을 편집함으로 그것을 통해서 백성들을 가르키려고 했던 것이어요.
 
이것이 25장 1절에 나오고 있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어요 우리나라도 남북 관계나 통일에 인 싸이트가 있는 그렇지요. 그러니까 서로 이념 가지고 싸우고 정치적인 체제 경제적인 문화적인 이것 가지고 싸우면 이것은 하나 되기가 어려워요 언제나 통합이라는 것은 하나되는 초월적 비젼없이는 통일이 되기 어렵다 그렇게 느껴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2절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화와 왕의 영화가 대비되고 있는데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영광스러움 그것은 무엇이냐 일을 숨기는 데 있데 무슨 이야기여요 일을 숨기는 게 하나님의 영화데 얼핏 안 들어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통해 파악 가능한 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언어로 파악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은 데우스 레브라투스(라틴어 Deusrevelatus)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데우스 아브스 콘티투스(Deusabsconditus)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숨기시는 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캄캄한데 계신 분 이것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분입니다.
 
저는 이야기하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사이비여요 누구도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어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말이어요 일을 숨기는 것 세상을 어떻게 운행하시는지 이것을 사람들 앞에 명명 백백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영화로움이어요
 
2절 그러나 왕의 영화는 무엇이냐 일을 살피는 것이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늘 여쭈어 가면서 자기의 판단을 하나님과 연결 짓는 것 이것이 왕이 해야할 가장 소중한 직무라는 것이어요 이렇게 때문에 약간 납득이 될 것이어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눈치를 못 체었는지 모르겠는데 보통 잠언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잘 안 나오지만 잠언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 대게는 여호와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이라고 했어요 하나님 그런데 여기 하나님은 엘로힘이어요 보통 여호와로 번역되는 단어는 야훼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고통 받는 그 백성 찾아와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엘로힘 하나님은 창조주와 관련이 되어서 자주 표현이 되어요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일을 숨긴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사람들 앞에 일목요연하게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숨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온 피조물 속에 온 역사 속에 두루 스며들여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어떤 사람이 참 사람이냐 내가 일상적으로 대하고 있는 자연 피조세계 내가 만나는 사람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읽어내는 사람 바로 그것이 누구냐 하면 신비가여요
 
저는 신비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비가냐 하면 어떤 놀라운 일 기도했더니 앞 못 보는 사람이 눈 뜨고 그런 신비가가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의 숨결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행복해요 그런 의미의 신비가인데 그것을 모르면 우리 삶이 빈곤해져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하는 1757년에 태어난 1827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시인이 있어요 그 분의 순수의 전조의라고 하는 시를 보면 첫 대목이 강렬합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이렇게 시작된 시입니다. 이게 어마 어마한 시이지요
그러니까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라 모래라고 하는 것은 작지만 이것이 어떻게 이 세상에 없지 않고 있을까 거슬러 거슬러 가다 보면 너무 신비한 세계 알 수 있어요 꽃 한 송이 그 속에서 무엇을 보아요 천국을 본다 이 꽃이 피어나는 자체가 천국이야 그래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해요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그것이 모래 한 알일 수 있고 꽃 한 송이 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공기일 수도 있어 이 손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내가 존재하는 이 속에서 영원을 보라 이게 신비가라
 
일을 숨기시는 분은 엘로힘 하나님 그리고 일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이는 왕 왕이 해야하는 일은 늘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기에서도 그런 말이지요.
욥 11장 7절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알겠느냐 소발이 욥을 책망하며 하는 말인데 이 말은 그른 말이 아니어요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떻게 인간이 능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겸허해야 돼 그래서 왕은 하나님의 신비를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이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 지도자도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책략을 잘 쓰고 사람들을 대중 동원하는 능력이 있고 시대 판세를 잘 읽고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어 어떠해야 하면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늘의 뜻이 어떤 지점으로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지 늘 소급할 줄 아는 겸손하는 사람들이 욕망의 이전 투구장이 된 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비젼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이제 정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본문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내용이겠지요
 
4- 5절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에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용광로 속에 은을 집어넣고 녹이지요 녹여서 불순물 걸러내지요 여러분 쇳물 녹인 것 보신 적이 있나요 쇳물 녹인 것 정말 아름답습니다. 색깔이 그 홍시 색깔인데 만지고 싶어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하는 과정을 통해서 순도 높은 은들이 나오지요
 
이제 일상적으로 있는 일인데 그런데 지금 잠언 저자는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왕 앞에서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한 것처럼 악한 자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왕위가 견고히 선다는 것입니다. 악인을 자꾸 없에야 돼 그래야 왕위가 정의로 굳게 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16장 5절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인자함 충실함 정의 공의 이것이 왕이 시행해야 할 인자함 충실함 그 다음에 정의 공의 이 반대는 무엇일까요? 사적 이익 이것만 추구하면 안 돼 사익을 추구하면 안 돼 이것을 해야 왕위가 굳게 서요 이러기 위해서는 악한 자들을 제거해야 돼 주변에 그 악한자는 대게 어떤 사람들일까요? 아첨하는 사람들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둘려 쌓여 있으면 바름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잠언이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고 있어요 사람과 사회를 정화해 나가야 합니다. 제일 위험한 사람은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 자기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눈치나 보는 사람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공적인 일을 다 잊어 버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제일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절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내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 보다 나음이니라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레 어떻게 하는 것이 높은 체 하는 것이어요 자기가 왕인 줄 알고 그것을 호가호위(虎假弧爲)한다고 그러지요 왕 앞에서 높은체 하지 말라 다시 이야기하면 한 마디로 제 분수를 알고 살아라 그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강의할 때 그 이야기를 했어요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태(知止不殆)라 족한 줄 아는 것이어요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태(知止不殆)라 지족 족한줄 알면 욕된 일 당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지 멈출 줄 알면 불태라 위태롭지 않다
 
그러니까 내 자리를 족한줄 알면 내가 누리고 사는 것이 족한 줄 알고 이제 됐습니다 하고 이야기 하면 욕된 일 당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 가 가지고 넘지 않고 멈출 줄알면 위태롭지 않다 그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언제나 대게 무엇이냐 하면 족한 줄 모르고 멈출 줄 몰라요
 
그래서 악인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까닭은 항상 과도함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참 공평해요 세상이 보면 그들이 과도하도록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을 잡아끄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욕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회서 13장 9-10절
권력자가 너를 초대하면 사양하여라 그러면 너를 더 자주 초대하리라
거절당하지 않도록 서두르지도 말고 잊히지 않도록 떨어지지도 마라
권력자가 부른다고 해 가지고 자기가 무엇이라도 된 것 처럼 사람 앞에서 내가 말이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그것 바보 된 것이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래서 누가 복음에서 주님도 이야기 하셨어요
눅 14장 10절 청함을 받았을 때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리라 하리니 그 때에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네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 모를까 두려워 우니라. 보았다 하여 경거 망동 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눈도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경험이 많아요 내가 본대로 이것은 확실해 나의 감각을 믿는 것이지요 나중에 보면 아니야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가끔은 확실히 보여도 판단을 유보하고 그리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신중하게 처신할 때도 있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따라 세상은 정말 다르게 보이거든요 그런 것을 우리가 경험해요 사람은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심리학에서는 가용성 편향 그래 어려운 말인데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있는 지금까지 자기가 경험해서 익숙해진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어요 있는 그대로 안 봐요 나의 눈이 나의 귀가 있는 그대로 듣거나 보지 않는다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게 되어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나를 속일 수도 있어 항상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9절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절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움이라.
 
어떤 이야기냐 하면 남과 송사를 벌이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팽팽합니다. 논리가 이럴 때 상대를 일거에 쓰러 트려야 내가 이익을 확보해 무엇이냐 하면 당신 사생활을 다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이게 그 이야기여요 지금 이웃과 다투거든 논점 그것만 가지고 다투어야 하지 남의 은밀한 일까지 누설함으로 그가 무너지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게 싸움에도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우리는 논쟁을 하다 보면 여러분 논쟁말고 토론을 하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미연씨가 내 놓은 견해에 대해서 정규씨는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생각이 달라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아요 성숙한 미연씨는 네 생각도 나는 이쪽이 낫다고 생각해 이것은 성숙한 대화처럼
 
정규씨가 내 생각은 다른데요 미운씨가 화를 냅니다. 네가 나를 무엇으로 보고 나를 무시하는 것이야 이렇게 하지요 아 인정하기 싫지만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토론이 그런 식으로 갑니다. 견해에 대한 차이를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 드릴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싸워 그래서 논점은 사라지고 나중에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너 몇 살이야 말하는 태도가 그게 무엇이냐 그러니까 늘 감정적 대립만 일어나요 이게 법정 송사의 경우에는 내가 저 사람에게 이기기 위해서 뒤를 케는 것이야 너 어떠 어떠한 사생활을 보았는데 이런 것 이것 하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여요
 
결국 그렇게 해서 이겼다 해도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야 그의 행태를 보고 사람들이 아 저 인간은 가까이 할만한 사람이 못돼 이렇게 되지요 그래서 너에 대한 악평이 떠나지 않을까 두렵다 단기간에 싸움에서 이길는지 몰라도 그는 신의 없는 비겁한 사람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11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세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때와 장소에 맞는 말 적절한 말 이런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 다음에 슬기로운 사람의 책망 여러분 슬기로운 사람의 책망은 어떠할까요 누군가를 때때로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책망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질정해 주어야 할 때도 있지요 꾸짖을 질자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많지요 저 분이 하는 행위가 다 맞는데 저분의 말하는 태도 때문에 굉장히 싫어지는 것이야 있지요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 있지요. 다 맞는 말인데 그런데 왠지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받아 드리고 싶지 않아 그런 것 인간 속에는 청개구리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런 것이 있어요 그래서 설교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아요 너 지금 나에게 설교해 그런 것 그런 것 있지 않아요 내가 모처럼 청소를 좀 할까 걸레를 찾고 있는데 아내가 청소 좀 해 맨날 티브이 앞에 앉아 있으면 그러면 갑자기 하기 싫어져
 
그런데 슬기로운 책망은 꾸중이라기보다는 바른 말씀 정의를 세우는 말씀인데 듣는 이를 모독하거나 정죄하는 말은 바른 말이라도 해도 그에게 변화를 가져 올 수 없어요. 나로 하여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방어 기재를 작동하는 순간 그 말은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거짓말이 폭로가 되어요 그러면 싸늘하게 할 때에 나는 나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해요 뼈저리고 아프지만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나의 그 아픔 부족함 때문에 아파하는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말은 우리 가슴속에 깊이 들어오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이것이 스토리의 힘이기도 한데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합니다.
다윗의 인생의 가장 큰 오점가운데 하나이지요
밧세바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삼하 11장 5절 그러자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가지고 전황이 어떻게 되었느냐 신하들 잘 있냐 물어본 다음에
11장 7절 집에가서 쉬어 하지요 우리아가 이야기 합니다.
11장 11절 하나님의 법궤도 전선애 있고 장군과 부하들이 거친 들에 있는데 내가 어찌 집에 들어가 지냅니까 그리고 안 갑니다.
 
12절 그러자 오늘은 전선으로 가지마 불러 들여요 술을 거나하게 대접합니다. 술 취한 김에 집에 들어가게
13절 그러나 우리아는 안 들어갑니다. 집에 자기 범죄행위가 드러날 것 같으니까 다윗이 어떻게 했지요
14절 다윗이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하나 씁니다.
15절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냅니다. 전쟁이 가장 심한 곳에 우리아를 보내서 죽게하라 우리아를 죽여요
 
누군가를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수단으로 취했다고 하는 것도 죄이고 그 죄를 덥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음에 내 몬 것도 더 큰 죄입니다.
 
다윗에게는 누가 있었느냐 하면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있었지요
12장 1절 나단이 와서 이야기 합니다. 어느 마을에 부자와 가난 자가 살았습니다. 부자는 양떼와 소가 심히 많았습니다.
 
2절 그런데 가난한 자는 너무 가난해서 어린 암양 하나를 사다가 식구처럼 살았습니다.
3절 한 식탁에서 먹고 애들도 잘 때도 양을 안고 함께 자고 그랬어요
4절 어느 날 나그네가 이 집에 찾아옵니다.
부잣집에 그 부자는 자기 짐승의 잡을 생각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의 양을 잡아서 대접했습니다.
나그네를 환대해 준다고하는 좋은 사회적 평판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겠지요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5절 다윗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다스린 땅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이 사람을 징계하리라 4배나 갑배 하겠다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나단이 당신이 그랬지요 나단이 처음부터 간음했지요 죽였지요 이랬더라면 다윗이 방어 기재를 발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이 슬그머니 가 가지고 스토리를 들려준 것이지요 이야기를 그러자 그 스토리에 녹아 들었어요 자기 죄를 보게했어 아프지만 예리하게 찔렀지만 그러나 그 말을 받아 드릴 수밖에 없도록 했지요 이것이 슬기로운 말입니다. 슬기로운 말 이것이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5장 12절 예수님도 그러셨어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보고 돌을 들었던 사람들 다 떠나간 다음에
요한복음 8장 11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이게 정말 슬기로운 사람들 같아요.
 
13절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모든 충성된 사자 그들은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지요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보내신 분의 뜻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명확하게 자기식으로 왜곡해서 전달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보내놨더니 엉뚱한 말을 하고 왔어 그러면 보낸 사람은 참 화가 나겠지요 속이 터지는 것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 이야기는 무엇이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추수하는 날 추수할 때는 더울 때이거든요 얼마나 덥겠어요 땀 흘리고 그 때 얼음 냉수 같아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충성된 사자 말고 누가 있느냐 하면 거짓 예언자들이 있지 않아요 주님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보냄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고 평화가 없는대도 평화가 있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을 빙자해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자기 이익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을 보면 속이 터지실 것이야
 
오늘 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과연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와 같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14절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같으니라.
15절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누구와 대비되느냐 하면 충성된 사자와 대비되는 사람이어요 여기에서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주겠다고 입으로 떠벌리고 주지 않은 사람을 일컷는 사람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말이 앞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보면 신뢰하기가 어렵지요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 있어요. 항상 시원하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할 것이고요 이렇게 할 것이고요 늘 안해 말만 그렇게 하고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은 행동보다 말이 빠르지를 않습니다.
 
14절 주겠다고 입으로만 떠벌리는 사람들은 마치 비 없는 구름과 같아서 사람을 답답하게만 할 뿐 시원한 빗줄기 하나 내려 주지 못한다
 
15절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껶느니라 그렇게 말합니다.
오래 참는 것 온유한 마음으로 말한 것 그것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뼈를 껶는다는 말은 어떤 말이냐 하면 고통을 준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집스러운 마음을 녹여 내는 것이어요 온유한 말 또 그의 존재에 대한 부정에 바탕을 두는 말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받아 드리고 수용하고 인정하는 바탕에서 나오는 온화한 말은 그 사람의 고집스러운 것들을 녹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집회서 28장 17절 이것과 대비된 말이 나옵니다. 매에 맞으면 자국이 남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말에 대한 교훈이어요 그러니까 매 한 대 맞으면 아프기는 하지만 지나가면 사라지는데 혀로 맞은 매는 아 정말 깊이 깊이 남지요
 
집회서 28장 18절 많은 이들이 칼날에 쓰러졌지만 혀 때문에 쓰러진 이들보다는 적다.
기가 막힌 말이여요 전쟁에서 죽는 사람 많은데 우리의 폭력적인 언어 때문에 그 상처 입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말들 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하고 살 수 밖에 없는데 우리의 말이 너무 과하면 안 됩니다.
과하면 안 되어요 너무 말 안하는 것도 문제이기도 하지요
저는 오늘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일이겠다 네게 주어져 있는 내 분량의 삶을 족한 줄 알고 살면 욕된 일 보지 않고 또 멈추어야 할 자리에서 내 삶이 위태해 지지 않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해 항상 과도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과도함은 어디에서 발생합니까? 욕심 그 이야기인데 과도함의 발생은 자기의 삶을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 마음에 있어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과도하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부족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항상 다른 사람들을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읽어내는 신비가 되어서 살기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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