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7.17 수 16:13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잠47강 23: 19-35 술 취하지 말라
2019년 04월 10일 (수) 18:00:17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살다보면 때때로 현실을 잊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그런 때가 있어요 없어요 어떻든 피할 수가 없을 때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요 살다보면 정말 괴롭고 힘겹고 현실에서 피라고 싶고 그런 때가 있지요 저 같은 경우가 있지요 그 상황에 골동하다 보면 그 속애 사로 잡혀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산책을 합니다. 걸어요. 몸에 동작을 바꾸어 주고 나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자기도 합니다. 잠을 자고 나면 간밤에 나를 괴롭혔던 것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무엇인가에 도취되는 대 있습니다. 자기를 망각하기 위해서 도취되는 것이지요. 도취되는 것 가운데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술을 마시는 것 술을 마심으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 버릇은 끝까지 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자기 망각에 대한 욕구가 무의식속에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 보는데 이것이 분석이 필요한데 성경에는 술에 대한 교훈이 더러 나옵니다.
 
19절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이것은 잠언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데 네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는 말은 길 위에서 너희 마음을 똑 바로 하여라 이렇게도 번역이 됩니다.
 
길 위에서 너희 마음을 똑 바로 하여라 이것은 네 마음을 바름길로 하라는 내면의 문제처럼 보이지요 나의 내면의 문제로 그러나 이것을 네 마음을 길위에서 너희 마음을 똑 바로 하여라 하는 순간 삶의 문제로 바뀔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내면만이 아니고 인생은 길 위에 인생이거든요 길이라는 것은 나를 어디로 데려 가지요
 
그 길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들이 내용인데 이 이야기를 길 위에 네 마음을 똑 바로하라 읽는 다면 이것은 인생길 걸어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지혜자로서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삶의 문제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길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자칫 잘못 이해하면 내가 길에서 태어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황석영 선생님의 소설 가운데 장길산의 소설이 있는데길에서 태어나서 소설이 있는데 길에서 낳아서 길산인데 인생이라는 개 어디를 향해 끝없이 떠나는 삶이지요 어머니 뱃속에서 떠나야 하고 점점 부모에게 분리되면서 다른 관계 속에 나를 투신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
 
그리고 보면 여기 서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 많은 인생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남겨 놓은 흔적들이 내 속에 있지요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사람은 나인 동시에 너이기도 합니다. 나를 스쳐 갔던 사람들이 나를 만들어 내거든요 사람뿐인가요 어떤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어도 그 바람도 나를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봄날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던 꽃향기도 나를 만들 수 있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게 인생이다고 우리들이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내가 누군가의 곁을 스쳐 지나갔을 때 나의 어떤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흔적으로 남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어 바른 길을 인도한다고 할 때 한가지 경계가 등장합니다.
20절 술을 즐겨하는 자들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체 왜 이럴까 생각을 좀 해 봅시다.
자 고대 세계에서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또 고기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그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 파레스타인에 사회 경제 사회를 연구한 책을 보니까 달걀 하나를 먹기 위해서는 어마 어마한 노력을 해야만 덜결 하나를 먹을 수 있어요. 담백질 섭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야 몇 데나리온에 해당이 되어요 그러니까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일 데나리온인데 달걀 하나를 먹으려면 하루 품 삯 보다 더 많이 내었어요 담백질 섭취가 그렇게 어려웠어요
 
고대 세계에서 술을 즐길 수 있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탐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인 것이어요 그러니까 나 어렸을 때만해도 고기 먹는 일은 년중행사입니다. 제사 때나 먹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일반 때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야
 
술 그 자체가 악이야 고기 먹는 것이 악이냐가 아니고 그들의 현실과 관계없이 술을 탐하고 고기를 탐하고 그런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이 아니다
 
그런데 육류를 과다하게 섭취하다 보니까 풍요의 질병이 만연하고 있지요 심장 발작이라든지 암이라든지 당뇨병이라든지 이런 병들 이것이 육식 문화가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요
 
조금씩 먹을 수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쩼던 고기를 소비한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이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내가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지요
 
피해야 할 사람들을 지금 이야기 하는데 술 취하는 사람들 술을 탐하는 사람들 육식을 탐하는 사람들 잠자기를 즐겨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말이지요 무엇인가 취해 있으면 무력해 지고 그런 사람은 조름이 오지요
 
21절 그런 사람은 헤어진 옷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결과까지 이야기 하고 있네요
22절 너를 낳은 아비에게 경종하게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절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여기에서 부모의 뜻을 거스리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과 또 진리를 대하는 자세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관계 없이 보이는 두 구절이 나란히 놓여 있지요 이것이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 말하고 있어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늙은 어미 경히 여기지 말지어다 이렇게 말하는데 늙었다고 낡았다고 없이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의 근본을 보여 줍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년세드신 분들을 보면 주름살도 많고 머리도 희어지고 때때로 허리도 굽어지고 그런 분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듭니다 그분이 견디어 온 그 세월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저 자리까지 왔을까
 
우리가 보기에는 무능해 보입니다. 어떤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으셨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을 낡았다고 늙었다고 무가치한 존재로 치부한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또한 늙을 것이어요 우리 또한 허리가 굽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효용성 가지고 사회를 세상을 바라본 사람들에게는 그분들의 존재가 무가치한 것첨 보이지만 그분들의 존재가 자체가 나를 있게 해 주었다는 망각하는 순간 영혼의 전락이 시작된다 지혜도 똑 같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어요
 
이게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뿌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 자기의 뿌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마세요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보일런지 몰라도 안 좋은 사람들이어요 자기의 뿌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 까뮈라는 문학가를 아시지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작가입니다. 그래서 알제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요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힙하기 위해서 독립 전쟁을 보내거든요 테레리스트들이 등장하고 그래요 수많은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알제리가 독립해야 한다고 그들을 지원합니다.
 
까뮈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 않는 것이어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지식인인데 어찌 그럴 수 있어 그 때 유명한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알제리의 전차 선로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가 그 선로 가운데 한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정의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내 어머니를 택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혁명이라고 한다면 나는 지지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알제리 까뮈의 입장인데요 그래서 갸뮈가 샤르트르하고 결별을 하지요 샤르트라고 하는 위대한 사상가와 결별을 하게 되어요 이게 슬픈 사실이기도합니다마는 그러나 이 까뮈의 경우에는 자기 어머니로 상징되고 있는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이 혁명보다 소중하게 느껴진 것이지요
 
우리가 누가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입장도 있다 하는 것이지요 그는 자기 어머니로 상징되고 있는 연약하고 때때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있는 그 분들의 눈길을 주고 있다는 견지에서 저는 소중하게 생각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낡아 버린 아버지 어머니 기운이 빠진 그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그분들을 경히여기지 않는 것과 진리를 열심히 추구하는 것 이것이 대비되고 있는 것 진리를 열심히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을 값싸게 팔아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3절 마치 어머니를 값싸게 넘기는 처럼 진리를 값싸게 팔아 넘겨서는 안 된다 그 말이지요
곡학아세(曲學阿世) 그런 말 아시지요. 학문을 구부러지게 해서 세상에 아부한다 그런 뜻이지요 여러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책임이 있습니다. 역사가 바른 길로 가지 못할 때 지식인들은 그 역사가 바를 길로 가도록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식인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편안함을 구하는 지식인들은 자기들의 학문을 가지고 세상에 아부함으로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되지요 이게 무엇이냐 진리를 팔아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 버린 것이나 마찬 가지요 이 맥락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다고 볼 수 있습니다.
24절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절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가쁘게 하라.
 
앞에 나온 이야기와 대비되지요 어미를 경히여기지 말라는 말과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하는 적극적 명령이 여기에 주어져 있습니다. 의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 지혜로운 자식을 둔 부모 행복하겠지요 행복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인이어요 의인은 어떤 사람이 의인이지요.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는 의로와 정의로와 이런 사람이 아니고 불의 앞에 부르르 떠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내기 위해 늘 마음을 그곳에 집중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삶으로 수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어요 그러니까 늘 성공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살다 보면 그렇지요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지요 그러나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끝없이 자기의 삶의 지향을 하나님의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을 성경은 온전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완전하지는 못해도 온전해 지는 해 져야 하는 것이어요
 
내 속에 있는 상처 내 속에 있는 실수 그것조차도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삼을 줄 아는 게 온전한 믿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 말로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 하는 지혜는 이런 것이지요 이렇게 사는 자식을 둔 부모는 기쁘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즐거워 진다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일이 언제나 누군가에서 성공과 행복을 보장합니까? 아니지요 왜 그렇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국의 문학가인 라오서라고 하는 분의 루어투어 시앙셔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번역어가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라우서지음 도울 김용욱 선생님이 번역한 책인데 그 책에 보면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하늘은 세상에 해와 비를 의인에게나 악인에게 골고루 내려 준다고 성경에서 이야기 하지요
 
그 라우서가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해도 비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비가 내리는 날 시인들은 연잎에 맺히는 그 물에 아름다움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공평함이 없는 세상 속에 내리는 비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굉장히 현실적인 시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의롭게 지혜롭게 살다보면 세상에 알아주고 이러면 좋을 것인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요 의인의 길은 그런 것이어요 그래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의 부모는 이 성경 이야기와는 거꾸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쩼던 인간적 측면에서 보자면 저런 면에서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마음 아픔을 드립니까? 못된 짓해서 마음을 아파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고 살려다 보니 그 길의 그 귀착점이 십자가였는데 그 십자가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을 드렸어요
 
그러면 예수님은 불효자입니까? 대답할 말이 없지요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불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이 효자였습니다. 하고 말해요. 왜냐하면 그 자식이 어머니의 영혼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효자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는 지난 어려운 시기를 참 어려운 시기를 건너왔지 않아요 우리가 그 시기에 그 좋은 세상 만들기를 위해 애를 쓰면서 영어의 몸이 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불끼 없는 겨울에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불기 없는 감옥에서 겨울을 낫던 수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지요 이것이 기가 막힌 현실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분들의 희생과 눈물을 통해서 이만큼 세워졌단 말이지요 그 느낌 아시겠지요
자식이 불기 없는 방에서 자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까 그 자식을 낳은 어미 따뜻한 방에 잘 수 없는 것이어요 차마 그 마음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을 통해서 부모도 함께 컸지요 정신적으로 그런 것
 
여러분 부모님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맛있는 음식 사 드리고 여행 보내 드리고 이것만이 아니라 진자 깊숙한 즐거운 그것은 내가 어긋날 길로 가지 않고 욕망의 길만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되는 것 이런 것이 아닐까
 
2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지니라.
27절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절 참으로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하고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하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지요 스쳐가는 바람 하나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데 나의 있음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영향이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평온하고 그리고 맑고 향기롭기를 원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밝고 향기로움 세계 속에 바치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흙 한 덩어리를 얻었답니다. 그런데 그 흙에서 향기가 나요 냄세를 맡아 보니까 향긋한 향이 그래서 흙에게 묻습니다. 흙아 너는 어쩌면 이렇게 향기로운 냄세가 나니 그러자 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백합화를 품고 있었거든 그렇게 대답해요.
 
여러분 내가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내 속에서 나오는 향기를 규정한 것이어요 나를 누구에게 바치느냐가 참 중요하지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음을 누구에게 바치고 있냐 이것이 참 중요해요
 
찬송가 575장 1절에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진리의 싸움을 할 때 열심을 다하여라 모법을 보이신 예수 굽히지 않으셨네 너희는 충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라 주님께 힘 다하여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우라
 
나를 누구에게 바치느냐 이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요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바치라고 하는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이 대목이 정말 소중해요
 
그런데 내 마음을 주님께 바치지 못하도록 지혜에 바치지 못하도록 등장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음녀(淫女) 음녀이기 때문에 항상 성 차별적인 언어인 것 같아서 음란도 있는데 차별적인 언어인데 어젰던 이것이 이 당시의 문화권 속에서 나온 것이니까 쓰기는 합니다마는 결국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마음이 더 높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잡아끌고 있는 있는 인력 이런 것들이 음녀로 상징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 바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7절 그래서 음녀 이방 여인들은 그 깊은 구덩이요 좁은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말 속에 담겨 있는 말들은 성적인 어떤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달콤한 미끼를 보고 접근했다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짐승들 물고기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칫 잘못하는 순간 어긋난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소급하고 소급해서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안 돼 그 다음에
29절 재앙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기는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는 자에게 있나니라
 
29절 재앙이 뉘게 있느뇨 이렇게 시작하지 않아요 그런데 원문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 아 누구에게 아이쿠 굉장히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아이쿠 그러니까 감정이 확 되지요 번역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결국 무엇이냐 하면 재난을 당할 사람 근심하게 될 사람 다투게 될 사람 탄식하게 될 사람 까닭 모를 상처를 입을 사람 눈에 충혈될 사람이 누구일까 이런 대목입니다.
 
30절 결국 어떤 사람이다는 것이어요 술에 잠긴 사람 술에 잠긴다는 것이 무엇이지요? 술에 취한 자 그런 것이지요 어느 분이 쓴 시를 보니까 술을 꾀나 좋아했던가 봐요 평생 술을 먹었데 세상 떠날 때가 되었는데 소원이 있데그게 무엇이냐 하면 술통밑에 자기를 묻어달래 술통에서 혹시라도 세 나오는 술을 먹을 수 있을까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술에 잠긴 자라고 하는 것은 술자리에서 지체하는 자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술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컷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 이 사람들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큐 아 이런 인생의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어요
 
30절 혼합한 술이라는 것은 무엇이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술에 풍미를 더하려고 향신료를 추가한 술인데 도 향신료 비싸거든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특권을 누리는 이들의 일탈이야 그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술에 탐익하는 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여기에는 안 등장하고 있는데
이사야 5장에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어요
이사야 5장 12절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를 취하는 자는 화를 있을지언정 그들의 연회에는 소고와 비파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연회에 있어야 할 것이 다 있어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 도다.
 
그러니까 술에 탐익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뭐 진창으로 먹고 마시고 이 속에 탐익하는 자의 특색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어 하나님이 지금 역사속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도 관심이 없어 다시 이야기 하면 탐익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술 취한다는 말에 그런데 있구나 것을 알 수 있지요.
 
탐익이라는 말 탐 기쁨을 누린다는 말이고 익이라는 말이 빠진다는 말인데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에 폭 빠지는 것이어요 물질에 대한 생물학적 특징도 탐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마는 대게 우리가 어딕션(addiction)이라고하는 것 중독 탐닉 하고 있는 우리가 온통 빠져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중독입니다.
 
어떤 중독이 떠올라요 게임 중독 아이를 죽여놓고 게임하는 부모도 있어요 자기 아이를 학대해서 죽이고 게임한 부모도 있지 않아요 게임 중도 쇼핑 중독 도박 또 섹스 중독도 있고 그렇지요 그런데 권력 중독 참 심각해요 권력에 중독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종교 중독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깨서 각성하게 해서 제 정신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데 종교에 푹 취하도록 만듬으로 일상의 삶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자기는 굉장히 잘 믿은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보면 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일종의 중독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런 중독 술 취하지 말라는 말과 해당이 됩니다. 결국 그런 중독이 만들어 내는 삶이 분쟁 근심 원망 상처 그런 것들이어요 붉은 눈 무엇인가 탐익하기에 붉은 눈이어요.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서 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31절부터 죽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술 취한 사람들의 증상을 보여 주고 있는데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아 이게 기가 막혀요 술 술 내려가서 술이다면요 술군들은 포도주는 붉고 붉은 것은 아름답지 않아요 잔속에 이렇게 비추어진 햇빛이나 비추어 보면 예뻐요. 포도주는 붉고 번쩍이며 순하게 넘어간다하고 말합니다.
 
이 말 속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하고 말하는데요 여러분 뱀이 하아에게 선악과를 가리켜 보일 때 선악과를 눈으로 바라보자 어떻다고 하였어요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봄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요 유심히
 
창3장 8절 여기에서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이것은 매혹적인 것이어요 시선을 끄는 것이어요 그런데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아라 그것이 유혹인 것이어요. 사실 유혹이라고 하는 게 오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거든요 청각 시각 미각 청각 후각 다섯가지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오도록 되어 있는데 그 오감을 통해 다가오고 있는 유혹은 우리를 매혹시킵니다.
 
매혹(魅惑)이라고 하는 글자가 도깨비 매자이거든든요 그러니까 도깨비에 홀리는 것이지요 사람들을 도깨비에 홀리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붉은 색 잔에서 번쩍이고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 음녀의 유혹처럼 담콤합니다.
 
31절 순하게 넘어간다고 이야기 했는데 순하게 넘어감에 대비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중에 나온 뱀처럼 물고 독사처럼 쏠 것이다 처음에는 순하게 넘어가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무엇입니까? 뱀이 쏘는 것처럼 너를 아프게 할 것이다 기가 막힌 대조가 되고 있지요 이것이 놀라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뱀같이 물것이고 기이한 것을 볼 것이고 마음이 구부러진 것을 말라고 마음에 돛 대 위에 놓은 것 처럼 될 것이고 몸 가눌 수 없다고 그것이지요 무 감각하고 또 다른 욕망으로 이어지지요 술 취한 사람들 보면 술 먹은 이유도 가지 가지입니다. 날 좋으니 한잔 날 궂으니 한잔 기분 좋으니 한잔 이렇게 가는 것
 
우리나라 술군의 역사 가운데 20세기에 가장 대단한 술군 수주 변영로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의 책 가운데 명정 40년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술 먹다가 실수한 이야기 담은 책이어요 거리낌 없는 자유 천진 무후 자제 뭐 소극 술 취한 사람들의 광태를 보여 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엄숙한 위선과 허위를 깨트리는 그런 통쾌함을 때때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광태지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술이 아니고 권력이 아니고 도박이 아니고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이 신명난 삶 지혜로운 삶 의로운 삶이 되겠지요
여러분 고기를 탐한다 또 술을 즐긴다 이런 말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를 했지묘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것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일하게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이 있다면 새 술에 취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맑아지고 그래서 나라고 스쳐가는 곳에 아름다운 향기가 베지않을까 그런 소망 가지고 한번 살아 보지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기독교계 원로들, 한기총 전광훈 작심
전세계 난민 7천만, 경계 넘어 삶
남북미정상 판문점서 만났다
서구가 모색하는 21세기형 교회
필립핀 선교편지
미안합니다, 본회퍼 목사님
잠55강 27:15-27 칭찬으로 사
잠56강 28: 1-11 주권자가 많
바람, 바람, 바람
신간(성, 하나님, 결혼)
최근 올라온 기사
잠58강 29: 1-14 건강한 사회...
외숙모님
이해 못할 세상
누구와 함께?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내 삶을 움직이는 것
여름 수련기간입니다
명성교회 부자 세습 재심 선고 '연기...
'명성교회 부자세습' 재심 결론 못 ...
신간(성, 하나님, 결혼)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