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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42강 21: 1- 15 부르짖음에 응답하라
2019년 03월 13일 (수) 18:57:50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이제 보면 너무 기분에 따라서 처신하는 사람들 보면 불편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늘 명랑한 사람인데 어느 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저 사람 화가 났나 그 생각이 들지요 그런 사람도 있어요 항상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항상 기분이 좋은데 그 보다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감당이 안 되어요.
 
여기 부침이 심한 분들이 있는데 저는 생각해요 이것이 내가 잘못하는 생각할 수 있는데 내 기분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말자 좀 힘들더라도 짐짓 좀 명랑하게 대하고 물론 늘 명랑 소녀처럼 지내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 기분에 의해서 영향을 미치는데
 
옛날에 그런 말도 있지 않아요. 얼굴이 웃으면 마음도 따라 웃는다 맞아요 그 말도 있지 않아고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그 말도 있어요 웃으면 복이온다.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지난 시간에 기억나세요 왕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강제하거나 자기의 힘을 가지고 누구를 복속시키는 것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뜻을 대행하는 존재가 왕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그것을 달리 표현하고 있어요
 
봇물이 무엇인지 아세요. 봇물이 터지다 하는 말을 들어 보셨어요 보라고 하는게 보인데요 냇물이 흐르지 않아요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어 두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보여요 보라고 하는 것은 물을 통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洑) 보가 튼튼하여야 하는데 봇물이 터지면 어떻게 되지요 감당이 안 돼 물이라고 하는 것은 통제될 때는 건실한 도구가 됩니다. 그런데 통제되지 않은 물은 위험하지요 홍수 같은 것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지요
 
지금 지혜로운 왕의 이야기한데 지혜로운 왕의 마음은 보를 통제함 같이 여호와의 마음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왕이라는 것이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율법이나 그런 규정에 의해서 통제가 될 때는 그 왕은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이지요
 
그것이 무너지고 나면 보가 무너지고 나면 혼돈의 물이 되어서 백성들의 삶을 혼돈으로 고통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이라기보다는 왕이 자기의 한계를 분명히 받아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이사야 선지자는 공의로 통치하는 왕이 어떤 통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하거든요
사 32: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똑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하나님에 의해서 통제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 자기의 한계를 알고 사는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은 이런 존재 이런 존재들이 우리나라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니라.
우리는 내가 늘 바르다고 생각하지요 늘 다른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지요.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나 스스로를 믿기가 어려워요 죄 습관 편견 이런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구부러져 있어요 그렇게 때문에 늘 곧게 해 주시는 하나님에게 우리의 마음을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늘 내가 잘 알고 있다 하는 그것이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우리의 마음을 고쳐 주시는 분 앞에 가지고 가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러분 자기 보기에는 정직해도 여호와는 마음을 보신다 그러니까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 아세요 사무엘이 이세의 아들 가운데 기름 부어 세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세의 아들들을 만났어요 제일 처음에 장자인 엘리압을 봅니다 잘 생기고 커요 사무엘이 즉시 이 사람이구나
삼상 16: 6 하나님이 아니다고 이야기 하지지요 사람은 외모를 모거니와 하나님은 무엇을 보아야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 7
어떤 청년이 예배 시간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목사님 보시기에 불편 했어요 모자를 좀 벗으면 어떨까 이야기 했더니 목사님 안경은 왜 끼세요 나는 눈이 나쁘니까 안경을 끼지 저는 마리가 나빠서 썼어요. 정말 썰렁한 농담이어요. 목사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놀 때가 있어요 목사님들이 족구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어요 목사님이 그럴 때가 있어요 주여 실족케 하소서
 
3절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이것은 성경에 일관된 메시지지요.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제사 말고 우리로 이야기 하면 예배에 참석하는 그것을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하면 안 된다 그 말이어요 내 삶이 뒷받침 될 때 그 예배가 진실한 예배인 것이지요.
 
미가서 6장 8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춘추 전국시대에 현인이 노자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노자 도덕경67장 아유삼보(我有三寶) 나에게는 세가지 보물이 있어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지이보지(持而保之) 이렇게 이야기 하는 데 그것을 지키고 그것을 보존한다
 
그러니까 내게 세 가지의 보물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잘 지키고 그것을 내가 잘 보존하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일왈자(一曰慈) 첫 번째는 무엇이냐 자애로운 마음이야 이것이 내 인생에 보물입니다. 집에다가 꼭꼭 숨겨놓은 물방울 다이아가 아니라 자애로운 마음 이것이 내게 있어서 보물이다.
 
그런데 이왈검(二曰檢) 그럽니다. 검소한 것 그렇지요 그러니까 검소하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아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아끼는 것도 검소한 것이어요. 그렇지요 사람을 아낄 줄 알야야 해요 여러분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상훈씨를 아낀다고 하는 것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느껴질 수 있어요 누군가나 나를 아낀다고 생각할 때 내가 따르게 되지 않아요 이게 무엇이냐 하면 검입니다. 소박한 마음이 사람을 따르게 만듭니다.
 
세 번째는 굴감위천하서(不敢爲天下先)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감히 세상앞에 중뿔나게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다 세상 앞에 나 자신을 등불나게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를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자꾸만 들어내지요 자기를 광고 많이 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한 사람이네 말하지 않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하지 않고 아이고 피곤해 하지요
 
세가지 보화 노자가 이야기 했던 것 첫 번째는 자애로움 두 번째는 검소한 것이지요 세 번째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 중뿔나게 나서지 않는 것 이런 것이 보화이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똑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공의를 행하고 겸손한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4절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하는 것은 다 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신 것이 나와요 앞 구절과 관련이 되는 데 눈치 높다는 말은 내 눈이 높아 하는 말은 왠만한 사람은 아래로 본다는 이야기여요 깔보는 것이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신다
 
그 다음에 마음이 교만한 것은 무엇이지요 무절제한 것이어요. 자기 주제를 알지 못한 것이어요.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했지요 너 자신을 알라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어요 이것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악인이 형통한 것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악인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 악인의 형통함 혹 악인의 빛이라고 하는 것은 어둠입니다. 결국 파멸로 귀착할 수 밖에 없어요. 악한 일로 행하고 잘 되는 것은 화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잠언의 굫순입니다.
 
5절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여러분 부지런히 살아야 하지요 열심히 신명나게 살아야 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야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주신 복이 무엇이냐 하면 생육하고 번성하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육하며 번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많이 있지요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교훈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닐 때가 있어요 너무 열심히 일 해요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우리가 하는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물 우리가 피조물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피조물을 어떤 형태든지 변형 시키는 것이지요 노동을 통해서 변형시키거나 촉진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노동은 참 아름다운 것이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동할 수 있는 힘을 주셨어요 그러나 노동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내가 다루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알야야 해 이게 지하자원이든 혹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똑 같아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그러면 우리갸 해야 될 일은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크리스챤의 노동에 가장 중요한 논리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창조질서를 가급적이면 덜 홰손하는 방식이어요 창조질서 보전(保全) 온전히 지키는 것 이것이 크리스챤 노동의 첫 번째 윤리입니다.
두 번째 윤리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건강을 해할 정도로 하면 안 되어요. 크리스챤들은 정도를 지켜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건강을 해할 정도로 하면 안 되어요 이것이 여러분 하나님의 세계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어요 이것은 나의 건강을 유지한 것이어요.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자신의 건강 유지(維持)할 뿐 아니라 나하고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해할 정도로 일하면 안 되어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노동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요소가 또 있어요
그것은 지나친 부를 추구해서는 안 되어요 지나친 부 부의 경계(警戒) 항상 지나치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이것이 위에 있는 것들을 깨트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뭉뚤거려서 이야기 하자고 한다면 안식일 계명 속에서 노동하라 그 말이어요
안식일이라고 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리듬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창조의 리듬 속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건강을 해치면서 지나친 일을 하다 보면 지나친 부를 추구하다 보면 안식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병이된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저것을 지킬 수 있어야 해요
 
여러분 산업 시대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잘 쉴줄 알아야 쉼 자체를 비창의적인 어떤 일로 도외시 해서는 안 되어요 잘 놀줄 알아야 한다.
5절 조급한 자는 궁핍에 이를 따름이니라.
조금한 자는 일하는 기쁨 보다는 늘 결과에 연연하는 자가 조급하는 자이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우면 되는 대 그렇지요
 
그러니까 매사 자기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기뻐하면 되어요 여러분 오늘은 날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아요 그 좋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지요 해가 나고 맑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렇다면 안 좋은 날도 있지요. 좋음이라는 그 말 자체가 잘못 될 수 있어요.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날이 좋은 날일 수 있어요.
 
어느 목사님께서 기독교인들은 365일을 부활절처럼 살아야 된다 맞아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나 잘 안 되지요 그러나 늘 마음속에 명심할 것은 365일을 부활절처럼 살라는 이야기는 항상 종말론적 안에서 내 인생을 세워 봐라 그런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6절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남을 속여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으로 귀착이 되네요 다단계 피해 사례 같은 것이 떠오르네요 굉장히 부유하게 될 것처럼 해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게 되지요. 잘 하면 여기까지 올라갈 수 있어 이런 말에 사람들이 거의다 다 속았어 그렇게 말하지요.
 
벗어나기 어려운 덫 그런데 그렇게 재물을 모아봐야 그것을 바람에 날려가는 숨결같다 허망하게 흩어지고 만다 그런 이야기여요
 
7절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악인의 강포 악인들은 조급하지요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악한 일을 합니다. 조급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잘 안되면 폭력까지 사용합니다. 그래서 나쁜 의도는 나쁜 폭력으로 귀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의 강포 폭력에 까지 이른 그 마음 여러분 악은 처음에 씨의 형태여요 작은 씨가 우리 속에 심어져요
악은 대게 욕망과 더불어 심어져요 나를 크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 거기에 우리는 자꾸만 물을 줍니다. 싹이 터요 그러다가 점점 자라나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나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듭니다.
 
셍떼쥐 베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어린 왕자가 자기 별 소혹성 B612에서 별의 분화구가 있거든요 그 혹성에서 어린 왕자가 해 내는 일이 있지요. 분화구 터지지 않도록 분화구 청소를 해 주어야 해 꽃 씨가 떨어졌는 데 이것이 장미꽃 씨인데 바우밤 나무 씨인지 구분해야 돼 바우밤 나무가 조그만 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별이 깨지거든요 늘 분별해야 해
 
우리도 그래요 우리의 마음속에 씨들이 떨어져요 선한 씨도 떨어지고 나쁜 씨도 떨어져요 그런데 내가 물주고 있는 것이 어떤 씨인지 살펴야 한다 그 이야기여요 지금 하는 이야기가 결국 이런 일들을 통해서 악이 우리를 삼키게 됩니다. 결국 나를 나는 폭력을 행하게 되고 그 폭력이 나의 파멸로 귀착이 된다 이것이 잠언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8절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여러분 앞에서 보았던 5절부터 7절까지 악인의 대한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악인의 길은 곧은 듯하나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고지식한 듯 하지만 곧다 그 말입니다.
 
좋아하는 시편 시편 84편 5절 이런 말이 나와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그 마음에 시온에 대로가 있어 베베꼬인 스큐류 이런 마음이 아니라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알고 가는 삶이지요 이 삶이 아름다운 것이지요 죄를 행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점점 꼬이게 되어요 이게 불행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이것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쓰여진 교훈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요
성경에 나온 말이기에 우리가 읽습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그러니까 말이야 바가기 긁지마 이야기 한다든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면 곤란하지요.
 
그러니까 투털대는 여인 바가지 긁는 여인과 한 집에 사는 것 보다는 움막에 사는 것이 낫다 이 움막은 별도로 떨어진 독립된 가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집 위에 있는 옥상에 옥탑 방 같은 것을 생각해요 거기에 있는 것이 낫지 이 사람과 같이 사는 것 보다 낫다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보면 이게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집회서에 보면 이런 말도 나옵니다.
25장 13절 마음의 상처가 아니라면 어떤 상처도 좋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여자의 악함이 아니라면 어떤 악함도 좋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집회서25장 16절 내게는 사자와 용과 사는 것이 악한 아내와 사는 것보다 낫다.
이게 옛날에 여성들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어요 이런 대목들이 이런 편견을 가지고 남자들과 사는 여자들은 또 얼마나 어려웠겠어 여러분 이것을 탁 명심해 두었다가 써 먹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10절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악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타자가 불행해 지기를 원하는 마음이어요. 세상에 그런 나쁜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이야기 인데 가장 친한 친구의 불행 속에는 기분 나쁘지 않는 무엇인가 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아요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인간속에 있는 자기중심성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요
 
누군가가 행운을 입었을 때 축하해 하고 말하지만 그 행운이 나에게가 아니고 그 사람에게 주어진가 이런 질투가 있지요 그래서 여러분 기쁨이라는 게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기가 어려워요 슬픔이라는 것이 사람을 하나로 묶어줄 가능성이 있어요 왜냐 하면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울컥해 지고 그러지요
 
인간의 인간되게 하는 것은 기쁨 보다는 슬픔이지요 슬픔의 자리에 가면 하나가 되지요 우리 시대에는 남의 슬픔같은 것 보지 못하도록 차단막이 만들어 줍니다. 경주마들에게 앞만 보고 가지요 경주마의 운명이 현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좌고우면하지 말고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가라 옆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거기에 연루되면 곤란해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빼앗긴 것이 슬퍼할 줄 능력 연약한 사람을 보고 아파하는 마음이 사라져 그런데 노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고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다 그 말랑 말랑함이 생명에 가까운 것이지요 애기들 말랑 말랑하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을 구해요 그 말랑 말랑한 속에 가야 내 속에 딱딱함이 녹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 일 안해도 그 말랑 말랑한 속에
악의 소원 하나님이 가인에게 경고하셨지요
창 4장 7절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
사람의 불행을 원하는 마음이 내 속에 자랄 수 있어 그 뽑아내야 합니다. 아까 이야기 한 어린 왕자가 했던 이야기 처럼 뽑아 내야 돼 물주지 말아야 돼 빨리 뽑아야 돼 자라기 전에 그러기 위해서 내 마음을 고쳐 주실 분에게 가지고 가야 되어요
 
여러분 일렁이는 버릇이 있는 강물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냐 하면 바다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것처럼 일렁이는 우리의 마음들 루미라고 하는 시인의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어요 일렁이는 내 마음 겉잡을 수 없는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내 마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가야해요 이것이 중요한 것이어요
 
11절 거만한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여러분 이게 무엇이냐 하면 거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은 다리를 꼬는 사람인데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옛날에 노래 가운데 그런 것 있습니다.
 
회전의자 빙글 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그런 노래
그러니까 회전의자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공하는 사람의 상징이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앉으면 주인이지 그런 것이어요
 
회전의자로 상징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거만한 것 다리 꼬고 앉은 것 거만한 자가 벌을 받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거만한 자가 벌을 받고 자기를 고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공자님 말씀이지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데요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있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있고 고생을 해야 아는 사람이 있지요.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을 생이지지(生而知支)라고 이야기 하고
배워서 아는 사람을 학이지지(學而知支) 그렇게 말하고
어려움 겪고 아는 사람을 고이지지(困而知支)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곤란을 겪고도 알지 못해
 
거만한 사람은 고난을 겪어도 알지 못해 고난을 겪는 것을 어리석음은 거만한 마음이 아니어요
그런데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이것이 지혜입니다. 배움을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것
 
12절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니라.
여기서 의로우신 자가 누구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이셔요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악인을 늘 살펴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을 환난 가운데 던진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악인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환난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여기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될 것이 있어요 오늘 어려움을 겪은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악인일 것이야 그렇게 하면 안돼
 
그러니까 잘못된 예정론에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면 저 사람들이 술주정뱅이이고 가난하게 살고 남의 밑에 살고 그러면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셨기 때문일 것이야 이렇게 판단을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이 폭력적 삶이 돼 주의해야 되어요
 
13절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도 들을자가 없으리라.
아까 이야기한대로 우리들이 가림막이 쳐져 있는 것 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지요. 내 마음이 답답하게 굳어져 가지고 의와 공평과 은혜를 외면하는 자들은 귀를 막고 지냅니다.
 
우리가 알다싶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요 이스라엘 사람들 히브리인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끙끙 앓는 그 소리를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기도로 들으신 분이셨지요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들려오고 그 고통에 찬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마음 아파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이것이 참 사람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우리가 하지 않을 때 소홀히 할 때 우리가 부르짖는 인생의 때가 와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때가 올 것이다 그 이야기이지요.
 
14절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하고 노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지요 악인은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이지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지 그러니까 뇌물을 잘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15절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미쉬팟이라고 하는 단어이지요 그러니까 법에 따라 공정하게 행하는 것을 미쉬팟이라고 이야기 하는 대 그러니까 그 정의를 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야 돼 의인을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이어요 공의를 시행되는 것을 악인은 어떻느냐 하면 공의가 시행되는 것을 보면 슬퍼한다 자기의 패망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을 새 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어요 정의가 실현될 때에 의인은 기뻐하고 악인은 절망한다.
여러분 우리 사회에 정의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지요. 실지로 우리 현실 경험을 보면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아요
 
그런 현실을 많이 보다 보면 우울해져요 아무래도 안돼 세상은 달라질 것이 없어 그래서 여러분 트라스마 코스라고 하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정의는 강자의 편익(便益)이다는 이야기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의는 강자의 편익이다는 것이어요.
 
슬픈 이야기이지요 힘 있는 사람의 힘이 정의가 되어 버린 사회 나쁜 사회이지요 그래서 정의가 실현 되므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악인들은 절망하는 세상이 열였으면 참 좋겠어요 오늘 다른 이야기 다 기억해야 되지만 귀를 막고 가난 사람들의 부르짖음 듣지 않으면 우리가 부르짖을 때 우리의 말에 귀 기울어 주는 자가 없다 이 말을 생각하면서 내 말에 귀 기울릴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3절 가난한 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오늘도 내 귀를 고통 받는 사람을 향해 열어 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중심은 고통이다고 고통 받는 자가 언제나 중심입니다. 내 몸이 어디가 아프면 팔이 아프면 온통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여기만 건들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 느낌이 들지요 고통이 세상에 중심인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외면하고는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 이것이 그 구절 속에 들어있는 느낌입니다. 여러분 기쁨도 누리시고 누근가의 슬픔에 반응하는 일을 통해서 참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포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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