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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이갸기
2019년 03월 13일 (수) 18:50:25 양의섭 목사 webmaster@cry,or.kr

신학생 때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기성세대 목회자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나는 결코 그런 길을 가지 않으리라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가리라 결심을 하며
신학교 문을 나섰다.

전도사 부목 시절
신학생 때의 패기는 가라앉히고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하는 자세로 열심을 냈고
때로는 창의적인 것을
시키지 않아도 뿌듯하게 감당해내면서
유능한 목사란 말에 흐뭇해했다.
잘 길들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사실 내 목회 현장을 구하는 것조차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믿음 몇 대째의 부모 잘 만난 황태자 친구들은
그 헌신적(?)인 어버이의 사랑으로
여기저기 좋은(?) 교회 자리를 쉽게 찾아갔다.

그러나
비록 초조하고 마음을 졸였으나
어디 하나님께서 일꾼을 훈련시키시고
그냥 놀게 하신 분이신가!
나름대로 일 할 수 있는
작으나마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현장을 주셨다.

그래서
부목의 환상이라고 하는
'개척만 하면 교인들은 구름 떼같이 몰려올 것'이란
그 평범한 환상이 깨어지며
나는 각종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런 곳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의 무능함에 상처받곤 했다.

그 기라성같은 목사님들이 나오셔서
'교회가 왜 부흥이 안 됩니까?
목사가 비전이 없고, 열정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
도대체 주님의 은혜는 왜 그런 탤런트 같은 이들에게만
쏠려있는지 ... 슬픈 자괴감

몇 해를 그렇게 슬피 보내다가
'그래, 나도 간구하는 거다.'
결심을 하고는 기도원을 찾아다녔다.
'주님, 저에게도 능력을 주시옵소서.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옵소서.
교회가 부흥함으로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하옵소서!'

그런데 비극(?)은
어느 해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기도할 때에 찾아들었다.
부흥, 부흥, 부흥, .....
오로지 주님 나라 위해, 주님의 영광 위해
교회를 부흥시켜 주옵소서
내 욕망의 성취가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 하옵소서
이렇게 몸부림 칠 때
저 깊은 곳에서 주님께서 말씀해 오셨다.

"양 목사,
나는 왜 너를 반드시 큰 교회 목사로 세워야 하냐?
나는 왜 네가 목회하는 교회를 크게 만들어 주어야 하냐?
너는 나의 종이 아니더냐?"

잔잔하지만 뜨거움이 솟아올라왔다.
"너는 말끝마다 성공, 부흥, 주님의 영광을 말하는데
그게 다 누구를 위한 것이냐?
양 목사,
나는 너를 저 시궁창 밑에 내려가 있으라고 하면 안 돼냐?
네가 종이냐 내가 종이냐?"

종으로써 주인이
저 시궁창에 내려가 있으라 하면
그곳에 내려가 있는 이가 충실한 이가 아닐까?
싫소이다, 나를 어찌 보고 그런 곳에 .... 라고 한다면
그가 아무리 명문 목사, 명문 장로 집안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가 아닐까?

주님의 분명한 뜻을 알고는
나는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내려가 있으라면 내려가 있겠는데
왜 하필이면 나 입니까?'
작은 교회라고 사람들이 나를 경시하는 것이 싫었고
또한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해 보여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동문회지나 기독 신문 지상에는
능력있고, 성공한 목회자로 큰 교회 친구들만 소개되는데
그들과 비교해 볼 때 나는 너무 무능했다.
어느 교회 성장 세미나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목회 질을 따지는 목사들은 평생 질질 끌려 다니다가 끝난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홀로 여행을 하며 주님을 묵상하는 때에
저 땅 끝 마을에 이르렀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
철이 지났기에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사납고 매서운 바닷바람을 피해
포근해 보이는 바닷가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 한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 거센 바람 속에 흔들리는
바닷가의 한 그루 해송(海松)이 눈이 들어온다
최후의 땅 끝에서 처절하게 바다의 바람을 홀로 맞고 있는 해송
그 나무, 해송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홀로 서 있다.
그러나 서럽지 않다
경복궁 뜰이나 남산 위에 서 있었더라면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겠지
그러나 나는 땅 끝에 홀로 서 있다
모진 바람을 맞고 있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바로 해송(海松)이 아닌가!'

장소가 문제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의 자부심, 자존감이 문제였다.
작든 크든 정말 주님께서 있으라고 한 장소라고 확신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정말 주님의 종이라면,
그 주님께서 저 시궁창에 내려가 있으라고 하면 내려가는 거다.

그게 위대한 종이다.
좋은 자리,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자리만 연연하여
사업계획서를 들고 자리 찾아다니는
준 사업가 같은 목회자보다는
'제가 어디에 서 있기를 원하시나이까, 주님?'
그 해답을 얻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이가 성공한 목회자이다.

나는 그 목회를 하고 싶고
내 삶을 그것에 다 쏟아버리고 싶다.
그래서 세상 떠날 때
탈진해 버린 나를 보시고 빙그레 웃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혼자 그려보며 내 삶의 의미를 채워간다.
이런 곳에 이런 목자가 다 있었구나 하는 감격을
세상에 주고프다.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 문집 로고스 36집(2004년)에 실린 글)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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