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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31강 15:18-33 생명길, 스올길
2018년 12월 18일 (화) 11:34:33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어디를 가든지 누군가가 환대해 주는 그런 사람들 만나면 참 인생이 살만하지요 내가 갔는데 본척만척한다든지 혹은 내가 들어갔는데 표정이 싹 굳으면서 그 사람이 나가버린다든지 굉장히 인생이 서러워지지요.
 
그런데 어느 공간에 갔더니 내가 전폭적으로 받아지고 있다 이런 느낌이면 내 마음도 열리고 그런 세상 만들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세상에는 적대감이 가득차 있는데 그 적대감이 가득차 있는 세상을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어 가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신앙적 과제라고 생각을 해요
 
생각해 보면 내가 저 사람하고 이 세상에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저분하고 지내는 것이 어려워 이런 느낌이 달라지지요.
 
어떤 사람들이 함께 살고 싶어요?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마음이 편한 것 있는 사람 무엇인가 막 밀어부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수용해 주고 말 많이 안 해도 불편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짜증내거나 화를 안 내는 사람
 
옛말에 진정한 우정한 이야기이겠지요 친구가 그리웠어요 어떤 분이 배를 타고 친구를 찾아간 것이야 찾아 갔는데 친구의 집 앞에 사릿문 앞에 서는 순간 그 친구를 만난듯해 그래서 돌아서서와 이상한 우정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우정 친구란 그런 것이기도 해요
 
때때로 만나서 얼굴을 대면한 것도 우정이지만 그냥 그리움에 이끌려서 갔다가 그 친구 생각하니까 내 마음이 푸근해져서 돌아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아직 그 차원에 못 가 봤지요 굉장한 일이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까닭은 화 잘 내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화 잘 내는 사람과 지내는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잠언도 우리에게 화 잘 내는 사람과 살기 어렵다고 가르쳐 줍니다.
 
18절에서는 분을 쉽게 내는 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성격이 불같아서 말하면서 내 성격 알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지요
 
세상에는 화 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만 있어도 불같이 화를 내고 그리고 그것은 타고난 자기의 성격이다고 하면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쏙 빠지고 이런 사람들이 있지요.
 
요즈음 한의원 가지 않아요 한의원 가면 부인과 내과 이렇게 있는데 항목이 생겼어요 화병 화병을 다스리더라고요 지금 어떻게 보면 화병이 넘치는 세대 같아요 묻지마 범죄 같은 것도 어떻게 보면 자기 속에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세상에 분노 이런 것을 풀길이 없으니까 분노는 늘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자기 스스로를 향할 때는 자학으로 나타나지요 그것이 타자를 향할 때 그것이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둘다 폭력이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의미 심장한 이야기여요
 
화병이라고 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화를 내기 쉬운 시대인것 보여 주지요.
 
18절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것은 보면 화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요 누군가 때문에 대상이 있겠지요 내가 이제 화를 내요 내가 여기에 있고 어떤 대상이 있는데 대상이 내 속에 있는 것이 화라고 생각하지요
 
이 사람이 없으면 화가 안 나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대상이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도 많지만 내 속에 먼저 화가 있지 않으면 내 속에서 쉽게 화를 일으킬 수 없어요 화라고 하는 것은 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있는 것이 많아요.
 
내 속에 이미 화가 내재되어 있어 내 속에 화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내 속에 강렬한 분노의 씨앗이 있어요 그것은 화 잘 내는 사람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 속에는 화가 있습니다.
 
그 화는 피해 의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입혔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이 화는 스스로에 대한 못 마땅함 나 자신을 용납하기 어려움 이런 것도 화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괴감 같은 것 이것이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그 대상이 나로 하여금 피해의식을 자극합니다. 내 속에 있는 스스로 열등감이나 자괴감 같은 것들을 자극합니다. 터져 나오지요
 
그러니까 화 잘 내는 사람은 유난히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를 다스리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문제는 그 분노에 물을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데 분노에 물을 열심히 주지요
 
모든 사람들이 내 속에 화를 격동하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우리가 내 속에 있는 화로부터 자꾸만 벗어나야 하는 데 화가 나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마음에 훈련이 필요해요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누군가에 대해서 그 때 알아차려야 해 아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지금 내 말이 지금 거칠어지고 있어 내 말이 빨라지고 있어 내 호흡이 지금 거칠어지고 있어 이것을 지금 알아 차려야 해 이것을 객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화에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길이어요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내가 화가 나오고 있어 이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해야 되어요 화가 나면 우리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돌려주고 싶어요 내가 받았던 모욕이나 상처를 누군가에 돌려주고 싶은데 그 첫 번째 방식은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 상처가 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화를 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어요 상처를 주고 싶어요
 
또 그 말이 극단화 되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너를 용납할 없이 이러면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화에서 놓임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기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려야 하고 그 다음에 훈련해야 하는데 내 속에 화를 격발한 사람에게 나쁜 말로 응대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기 시작을 해야 해요 이게 중요해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감정을 억압하면 안 돼
너 지금 화를 내고 있지 그러면서 눌러야 돼 눌러야 돼 그러면 화는 축적이 되고 있어요 미란씨의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가 화가 나 이렇게 말하는 순간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가 나 이렇게 이야기 할 때에 미란씨에도 여유를 좀 주는 것이지요 자기의 감정을 속이지 않으면서 자기의 화를 내고 있는 자기를 알아차리는 것이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객관화해서 말하는 순간 화가 우리를 장악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어
 
어쩼던 화부터 내고 나면 화 받이가 되는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 또 화가 나 언제나 분쟁을 일으키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든 노하기를 더디한 자가 시비를 그치게 한다하고 말하는데
19절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하고 말하고 있는데요
 
게으른 사람의 특생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냥 게을러 게으른 사람의 내면 속에있는 가장 중요한 특색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하고 싶으나 방해거리가 너무 많아 이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발견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원인들이 많아 이것이 게으른 사람의 특색입니다.
 
부지런 한 사람은 무엇이냐 하면 못할 이유를 먼저 찾지 않고 해야 될 일은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게으른 사람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가시 울타리 벗어나기 어렵지 않아요 늘 못할 이유가 있어
 
여러분 생각을 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래요 자기 앞에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여러분 사람이 진정한 재능이라고 하는 것이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느냐 하면 남보다 잘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지속의 열정이 진자 재능이야 지속성 이게 참 중요해요
 
여기 계신 분들은 자기들의 어떤 열정의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여 끝없이 이런 일을 게으른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포부만 키우다가 죽습니다. 언제나 나 하고 싶어 정말 하고 싶어 하지만 할 수 없어 왜냐 하면 방해 거리가 많거든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이게 게으른 자의 특색이어요
 
그러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이야기 합니다. 대로 그러면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떠오릅니다. 골목길로 가지 않고 큰 길로 간다는 이야기일까요 자기의 욕심을 따르는 길은 소인입니다. 욕심을 따르는 것은 소인입니다.
 
대로라고 하는 것은 큰 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는 길이지요 나 좋은 길을 택하지 않고 남보다 더불어 좋은 길을 택하는 것이 옛말이 하고 있는 군자대로행이라고 할 때 대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길도 똑 같지요 거꾸로 이야기 해요
마 7장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길은 죽음을 의미한다 좁은 문은 좁은 길로 이어지지요 이것은 소로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추구하는 그 길은 세상에서 좁은 길 처럼 보여 넓은 길은 무엇입니까? 욕심을 추구하는 길 이런 게 넓은 길처럼 보입니다.
 
성경과 동양의 가르침은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표현을 바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없이 여기니라
여러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여기 나오는데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자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로움과 미련함의 차이는 다른 대 있지 않아요 무엇에 있느냐 어머니와 아버지로 상징되고 있는 정신적인 권위를 받아드리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 드릴 생각이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성숙해 지면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의 경우에 사춘기가 되면 엄마 아빠가 하는 말에 사사 건건 토를 달거나 아니요 그러고 이게 사춘기지요 왜 그럴까요? 지금까지는 엄마 아빠가 절대였어요 그 전까지는 그렇지요.
 
그런데 이 애가 눈이 떠지기 시작한 것이야 엄마 아빠가 절대가 아니구나 자기가 충성해야 될 다른 대상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또레 그룹들 친구들 그렇지요 그 세계를 보니까 엄마 아빠는 나를 간섭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해 이게 사춘기지요
 
그러니까 이 사춘기라는 것이 인생에 없었으며 좋겠어요 있어야 되어요 있어야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세계를 거쳐야 진자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어요 바로 그런 이야기여요 여러분
 
탕자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아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아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지요 떠났기에 돌아올 수 있었어 떠나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었어 큰 아들은 떠나지 않았는데 돌아오지 않은 것이야 그 집에 있지 않는 것이야 아버지가 하는 말이지요
 
눅 15장 31 너는 내 집에 있지 않아 다 네 것인데 그것을 못 누리고 살지 않아
그래서 사춘기에 여자 아이들은 어머니와 전투를 거쳐야 하고 아들들은 아버지하고 전투를 거쳐야 제 몫의 삶을 사는 사람이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저항을 하거든 아 저 애가 왜 그래 화내지 말고 아 우리 애가 크고 있구나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로 상징되는 정신적 권위를 따르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니까 스승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우리의 발전 과제이지요
 
21절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하느니라
미련한 사람의 특색은 무엇이냐 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미련한 사람의 특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마땅히 해야 될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의 특색은 다른 사람들을 없이 여기다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귀이히 여기지 않아요 남을 낮추어 보는 것이어요 미련함을 즐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내 신학적 주제이기도 한데요 일상(日常) 날마다 그러한 것이지요 날 일자에 늘 상자를 쓰니까 날마다 그러한 삶이지요 날마다 그러한 것은 때때로 반복이 되지요 반복은 때때로 우리에게 무엇을 일으키느냐 하면 권태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권태로운 생각이 드는 것이야 인생이 권태로운 것이야 아침에 일어나고 요즈음은 남녀 구별이 없으니까 먹고 설거지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일상의 삶들 남자나 여자나 직장 생활하고 돌아와서 가정적으로 일을 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 권태로 시작하고 권태라는 말은 독일말로 라바이레(Langweille)라고 이야기 하는데 순간이 긴 것이야 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이야
 
그래서 여러분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것이야 나 자신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어 이게 지옥이야 그렇겠지요 이 권태를 느낀단 말이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반복을 특생으로 하고 있지만 권태로운 것이 아니야 늘 새로울 수 있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순간 순간의 삶이 그러니까 내가 밥을 먹는다는 사실도 기적적이고 내가 누군가와 더불어서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는 것도 기적이고 내가 오늘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기적이고 이렇게 여러분 라틴어로는 눈크 스탄스(Nunc stans)라고 이야기 합니다.
 
영원한 지금 지금을 영원처럼 사는 것이야이 일상이 가장 중요해 일상을 소홀히 하고 비일상적인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어요.
 
그래서 내게 주어져 있는 반복되어 있는 일상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 진자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우리가 밥을 늘 먹을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밥이 자극적이지 아니기 때문에 날마다 먹을수 있어요
 
물도 우리들이 마시는 것은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물이 베이스지 않아요 어쩼던 일상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기 시작해요 내가 주어져 있는 순간이야 말로 기적이라는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미련한 것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21절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머리가 빈 사람은 인생을 장난으로 여기지만 지각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잘 살아간다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인생을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이 미련한 사람이어요 직설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있지요 여러분 잘 산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어요 내게 주어진 순간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살아내지요 영원한 지금으로
 
22절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락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여러분 간단히 말하면 신뢰할 수 있는 지혜자에게 자꾸만 묻고 그의 견해를 경청할 때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자꾸 묻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다는 것이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진다 이야기 했어요 내가 하는 바가 무너진다 그러나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인문학에서 다중지성(多衆知性)이란 말이 있는대요 특정한 분야에 전문가는 자기 분야 밖에 알지 못합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함께 나무면 더 좋은 견해가 나옵니다. 나 혼자의 견해 보다는 나눈 견해가 보편적으로 나을 가능성이 있어 이것을 다중지성이라다고 하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다중지성이 작동되는 사회는 다소 부족해 보이는 이렇게 살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롭게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23절 사람은 그 입에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누구와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면 기쁘지요 때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좋은 말인데 때를 맞는 말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좋은 말인데 때를 못 맞추면 나쁜 말이 될 수 있어
 
욥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욥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그른 말이 아니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떤 때에 보면 문제도 있지만 욥의 친구들의 말이 그른 말이 아니다고 볼 수 없어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때에 맞지 않는 말을 자꾸 하는 것이지요
욥 22장 5절 네가 이렇게 고통 받는 까닭은 네 죄 때문이야 이런 말들
욥의 상황이 괜찮을 때면 그런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얼마든지 그렇지요. 그런데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 사람에게 그들이 가지고 인식적인 관념을 드리대면서 그것은 이것 때문이야 말할 때 그것은 때에 맞는 말이 아니지요
 
불행을 격고 있는 사람의 불행을 해석해 주려고 하는 강박 관념 여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답을 주려고 하면 안 돼 지금 내 눈에 답이 보이는 것 처럼 보여도 그 사람에게 제시하면 안 돼
 
왜 그가 그 고통으로부터 자기를 그 고통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내적 준비가 될 때에는 어떤 말도 안 해도 좋아요. 단지 그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습니까? 그 곁에 있어 주는 것이지요
 
네가 어떤 어려움 숙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겠다 그런 신뢰가 그 사람을 오히려 든든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경우가 많지요 이것을 우리들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24절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아 그 아래에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
 
여러분 지혜로은 자는 오르막길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이것은 힘겨운 길이라고 해서 오르막 길이 아니라 영혼의 상승과정 지혜로운 사람은 영혼이 늘 위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리막길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전락 점점 전락 해 가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우리의 영혼이 전락하는 것은 여러분 물 위를 걷는 방법 아세요. 여러분 추락이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중력 때문이지요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무게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추락은 언제나 중력과 무게가 작동을 하는데 중력과 무게가 없으면 안 떨어지지요
인간에게 있어서 중력과 무게는 무엇이냐 하면 욕망입니다. 결국 과도한 욕심 욕심이 빚어내고 있는 죄 이런 것들이 우리를 무엇이냐 하면 무겁게 만들어요 그래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추락은 언제나 이렇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욕심 털고 내 속에 가득 차 있는 욕심을 털고 갈 때 어떻게 되느냐 하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 나 하늘도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세상에 있는 것 모든 것 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욕심과 죄라는 무게를 점점 덜어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나를 추락하고 만들고 있는 중력을 벗어 버리는 것 그러니까 욕심을 자꾸 비어내야 돼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어떤 욕심이 벗어나게 되는 죄를 벗어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상승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추락은 면하고 상승하기 시작할 때 이것이 바로 자유여요 진정한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져요 영적 자유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추락을 막을 수 있는 내적 힘이 없기 때문이어요
 
25절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니라
여러분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폭력 사기 억압 착취 이런 것을 통해서 세운 집 이런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요 허무신다하고 이야기 합니다. 역사적 심판도 있고 내부적 모순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어요 억압 착취 이런 것을 통해서 자기 집을 세운 사람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잠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과부의 지계를 정하신다 지계라는 것은 과부의 땅의 경계 다시 이야기 하면 과부의 정하신다는 말은 과부로 상징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의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하나님
 
26절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절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여러분 뇌물이라고 하는게 뇌물이 영어로는 드라이브라고 이야기 하지만 속어로는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팜 오일(Palm oil) 야자 기름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그리스 (Gruase)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윤활유 뇌물을 주며는 메끄럽게 해결이 되어요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옛날부터 뇌물은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더 곤든 키(The Golden key) 황금 열쇠 뇌물이 얼마나 유용한지 영어에서도 보여 주고 있는데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의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지요 전관예우 현관 예우 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바침으로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내 이익을 극대화 하려고 하는 사람 이것이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마음들이지요
 
그런데 그 이익을 탐하는 자 그들은 자기 집을 해롭게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2장을 보면 사무엘의 고별사가 나오거든요 사무엘이 이제 물러나요 공적 자리에서 사람들 다 모아놓고 묻습니다.
 
3절 내가 누구의 소나 나귀나 빼앗은 일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4절 내가 누군가를 속인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뇌물을 받고 누군가의 죄를 눈 감아 준 일이 있습니까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내가 뇌물을 받았습니까 그게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옛날부터 뇌물의 문제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법을 다루는 사람들 공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뇌물이 들어가는 순간 식용유가 들어가는 순간 공의가 무너지는 것이야 이게 슬픈 일입니다.
 
여러분 뇌물과 선물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기는 해요 그렇지요. 뇌물과 선물의 경계 정확히 하기가 어려워요 내가 선의를 가지고 누군가에 주는 그것을 선물로 볼 것인지 뇌물로 볼 것인지 여러분 뇌물은 다른 것이 아니지요. 내가 누군가에게 줌으로서 나의 이익이 확보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다면 뇌물이어요
 
28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당연한 이야기 의인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해서 길어오는 말을 하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악을 쏟는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이야기이지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극이 오는 대로 쏟아내는 것이지요 마치 여러분 사람들이 토할 때 자기가 통제가 안 되지요 왈콱하는 것이지요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요
 
29절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다
30절 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말하는 대요
 
눈이 밝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생기가 충만한 것이어요 여러분 눈이 흐리멍텅한 사람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가요 어떤 사람은 보면 눈이 총총한 사람이 있어요
 
성경에서 부러워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모세인데 모세가 비스가 봉우리 올라가서 느고산 비스가 봉우리에서 후손들이 살 땅을 둘러보는 데 신명기 34장 7절 그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인데 그의 눈빛이 형형했다 그의 눈빛이 맑고 여러분 그 눈빛 만나면 내가 맑아 지는 것이어요 그 눈빛 만나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눈이 맑아질까요? 다른 것 없습니다. 욕심 욕망으로 더럽혀진 마음 닦아야 되어요 그것만 없어도 눈이 맑아져요 그렇지 않은 눈은 번들 번들 이글 이글이글 번들 번들이 욕망에 불 타는 이글은 분노에 사로잡혀 반짝 반짝 맑은 눈이어요
 
31절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앞 절이 보는 눈과 관련이 된다면 잘 듣는다고 하는 것은
31절은 듣는 귀와 관련이 있습니다. 잘 듣는 다는 것은 유익한 책망 생명을 살리는 훈계를 듣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특생이라고 합니다.
 
32절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경히여긴다
3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수도원 운동을 시작했던 베네디토 성인이 자기의 수도사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써둔 수도 규칙이 잇는데 거기에 보면 겸손에 대하여 말이 나옵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겸손할 수 있는가 12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5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눈앞에 두고 잊지 않는가
두 번째 자신의 뜻 자기 욕망 채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
세 번째 비위에 거스리는 일 조차 묵묵히 인내로 받아드릴 것
네 번째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는 악한 생각까지 윗사람에게 말하는 것
그래야 윗 사람이 권고해 줄 수 있어
다섯 번째 질문을 받기 전에 말하지 말것
이게 수도사들이 겸손해 지기 위한 비결입니다.
 
12가지 가운데 5개만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것들 정말 우리는 겸손한 것 겸손은 존귀의 길 잡이니라 겸손하게 살게 될 때 비로서 우리들이 비로서 존귀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지요.
 
오늘 공부하는 것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어떤 말들이 기억나는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첫 시간에 이야기 했던 분노 화병 그 이야기 나는 사람들 속에 분노를 일으킨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들 속에 화평을 가져간 사람인가 이런 반성들 하면 좋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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