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1.15 목 17:1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오래 참으시지만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
2018년 11월 06일 (화) 11:23:20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나흠1:1-8)
 
우리는 요즘 이사야서를 통해 은혜와 진리를 나누고 있는데, 이사야서는 제1이사야서와 제2이사야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이사야서는 1장부터 39장까지이고, 제2이사야는 40장부터 66장까지입니다. 제1이사야서는 이사야 당시에 선포된 말씀이고, 제2이사야서는 이사야 당시로부터 약 200년 후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남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죽을 고생하다가 70년 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 때 선포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순서로 보면, 이사야40장부터 66장까지는 다니엘서 에스겔서보다 늦은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40장 할 차례이지만, 이사야40장부터 66장까지는 다니엘서 에스겔서 이후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인 오바댜서는 몇 번 했기 때문에 지나가고, 오늘은 나훔서를 통해 은혜와 진리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봉독한 나훔서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평생 설교하지 않는 성경 중의 하나입니다. 심지어 전 세계교회가 사용하는 교회력에도 들어있지 않을 정도로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나훔서도 역시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훔서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겠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무한정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 사랑은 끝없는 사랑이요, 엔드리스 러브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조건없이 무조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러므로 우리를 한없이 끝없이 용서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 것처럼 가르칩니다.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같은 하나님으로, 달콤한 솜사탕 같은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 나훔 선지자가 소개하는 하나님을 만나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시라면 천국만 있고 지옥은 없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무한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누구는 천국 보내고 누구는 지옥 보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언급하셨습니다. 누구는 천국가고, 누구는 지옥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엉터리 이야기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었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기 전의 삶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구별된 삶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구원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고 아랫것을 생각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하시면서 전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임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고,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는 수준을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나훔서는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외친 사람이 나훔이었습니다. 나훔은 ‘위로자’, ‘동정자’라는 말입니다. 나훔은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습니다. ‘군사력을 가지고 남유다 백성들을 그토록 괴롭힌 니느웨를 하나님이 반드시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시 남유다 백성들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나1:1을 보겠습니다.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했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이 니느웨 백성들이 걸핏하면 남유다에 쳐들어가서 약탈하고 강탈하고 수탈했습니다. 이런 니느웨 백성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외쳤던 것입니다.
 
2절에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했습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34장14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랑하면 질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만큼 질투하시고, 질투하시는 만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기대하시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질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의 사랑을 기대하시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만이 우리가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근심하시다가 급기야는 분노하시고 보복하십니다.
 
그래서 2절에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고 했습니다. 여러분! 놀라셨지요?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알았습니까?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잘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롬12장에서도 말씀하기를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했습니다.(롬12:19) 우리 하나님은 보복하시되 그 크신 능력을 동원해서 순식간에 보복하십니다. 3절에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했습니다. 시적으로 얼마나 멋진 표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회오리바람과 광풍을 불러오고 구름을 불러와서 분노와 저주를 쏟아 부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다를 말리시고, 모든 강을 말려 버리십니다. 하나님이 한 번 분노하시면 산들이 진동하고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분노를 함부로 발하지 않습니다. 3절에서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노하실 때, 얼마나 더디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관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을성이 많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자라 할지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반드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고하신 후에 분노를 발하십니다. 그 전에는 결코 분노를 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고하신 후에도 형을 선고할 때까지 또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또 형을 선고한 후에도 실제 집행하기까지 또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그 형을 선고하시기 굉장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즉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도 아담과 하와는 오래오래 살다가 마침내 죽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을 55년 동안이나 분노케 했지만, 하나님은 55년 동안이나 꾹 참으시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어떤 죄라할지라도, 어떤 악한 자라도 용서하십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자는, 그래서 회개의 진정성이 있으면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회개할 생각하지 않고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분노가 더디기 때문에 답답해합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에게 지금 당장 복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실패의 원인 중 하나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저렇게 악한 놈들을 심판하지 않고 하나님은 뭐하시나!” 불평합니다. 지금 당장 복수해 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이미 끝난 일로 치부해 버리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500년 1000년이 흘러도 그 죄악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내가 효과가 없게 될 때, 끝내 회개와 순종이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멸시하고 무시하면, 하나님이 더 이상 묵과하시지 않으시고 일어나 분노를 발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간만 벗어나고, 그 상황만 벗어나면 괜찮은 줄 압니다. 또 사람들은 잠시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반드시 일어나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만큼 참고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도 주시지 못하고 저주도 못하는 분이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깔보고 조롱합니다. 로마서2장4절 이하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나 분노하실 때까지 어지간히도 참으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을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을 색욕거리로 전락시키고, 자신의 뱃속을 챙기는데 사용해 버립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한 번 일어나시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갑자기 분노의 불길이 되어 그를 순식간에 살라버립니다. 5절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여호와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날에는 그 진노를 감당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인내를 멸시하고 조롱하던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인내를 더욱 두려워하면서, 그럴수록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그 분노의 날이 이제 승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7절에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에게 ‘환난 날의 산성’이 되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파멸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허락하십니다. 이 우주만물을 심판하시는 날에도 그런 자들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7절에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자들을 알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어설픈 지식이나 부분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앎’은 부모가 자녀를 아는 것 같은 앎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혀의 말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숨겨두신 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오래참으시는 사랑을 멸시하고 조롱하던 자들을 무섭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8절에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하나님이 일어나 분노하는 날은,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저주의 날이요, 죽음의 날이요 패망의 날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올바로 믿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승리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 날이 홀연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이제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없게 되었음이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분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참고 참아도 돌아올 기미가 없으니까 이제 니느웨를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했습니다. 지금 나훔이 남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에게 드린 서원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유다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나님! 앗수르 군대만 물리쳐 주시면, 저 니느웨성만 무너뜨려 주시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나이다. 헌신하겠나이다.’ 이렇게 서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서원대로 니느웨 성을 무너뜨려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앗수르 군대가 유다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께 한 서원을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훔의 예언대로 그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앗수르의 니느웨는 BC612년에 바벨론군대에 침략을 받고 무너졌습니다.
 
2장1절을 보겠습니다.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했습니다. 여기에서 ‘파괴하는 자’는 바벨론군대를 말하고, ‘너’는 니느웨성읍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군대를 니느웨성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니느웨를 무너뜨리는 모습이 2장 전체에 기록되어 있는데, 8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서 미친 듯이 니느웨 성읍을 약탈하고 강탈하고 진멸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어째서 니느웨에 이렇게 분노를 발하셨습니까? 그들이 행했던 죄악들을 나훔은 3장1절 이하에 이렇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했습니다. 니느웨가 피로 세워진 성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요나서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 성으로 보냈을 때, 요나는 불성실하게 하나님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니느웨성읍사람들이 요나의 선포를 달게 듣고 전부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의 죄악을 다 용서하시고, 그들을 번창케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군대 힘을 믿고 이웃에게 쳐들어가 온갖 폭력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여기 보면, 나훔이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을 한 마디로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했다고 했습니다. 앗수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부강하게 해 줬더니, 그 강한 군대힘을 가지고 주변나라들에게 쳐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강탈하고 늑탈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한 번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니느웨였기에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5절입니다.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용서해 주었더니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하심의 풍성함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 힘을 믿고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 온갖 폭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로 전락시키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8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여기 “노아몬”에서 ‘노’는 성읍을 말하고 ‘아몬’은 애굽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을 망합니다. 그러니까 ‘노아몬’은 아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성읍이라는 뜻이었고, 이 성읍은 이집트의 18왕조의 수도였던 더베라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더베라는 성읍의 성루가 바다요, 방어벽이 바다라니, 얼마나 견고한 성읍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견고한 성읍도 무너졌으니 니느웨성읍 쯤은 간단히 무너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9절에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이런 강력한 나라였던 구스와 애굽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느웨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이제 장차 바벨론 군대에게 니느웨 성읍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15절 하반절에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그러니까 한 때 니느웨성이 번창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성읍을 하나님이 훅 불어 버리시면 메뚜기 떼가 날아가는 것처럼 모든 화려함이 날아가고 니느웨성읍이 죽은 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8절입니다.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니느웨성읍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마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워낙 니느웨 성읍사람들에게 행패를 당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행패를 당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면서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에 종종 가는데, 거기 가보면, 금방 이 사람이 일생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냥 드러납니다. 한평생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헌신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 가보면 슬픔과 애통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그저 행패를 부리면서 이웃을 못살게 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보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아 그 놈 잘 죽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다” 이러면서 속으로 좋아합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다들 그런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니느웨성읍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마다 이렇게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무시하고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대던 나라치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 대영제국, 독일의 나치, 일본제국이 전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개인으로는 사울왕이 하나님께 택함받았지만 교만해져서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남유다 왕이었던 웃시야도 교만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도 “이 큰 성을 내가 건설했다!” 이렇게 교만하다가 정신이 나가서 들짐승처럼 7년 동안 왕위에서 쫓겨나 이슬 맞으며 풀을 뜯어 먹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는 12사도에 선택되었지만 결국 자기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의 집사 니골라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결국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경도 모르고 이단 따라 다니다가 결국 니골라 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씻지 못할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나훔서의 경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과 자비와 인내를 무시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자는 결국 파멸로 끝날 것임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나훔서는 우리를 회개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면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맺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하면 하나님의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제대로 응답하고 부응하고 있는지, 내가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신앙을 색욕거리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는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제대로 맺고 있는지, 혹시 교만한 자가 되어 있지는 않는지’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예외가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 일을 게을리 하다가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을 잃고 자신은 목뼈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애기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히브리서11장28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시내산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도 이런 무서운 심판이 임했거늘, 하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전락시키고 성령의 역사를 변질시키는 자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섭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성경을 통해 거울처럼 여기 우리 앞에 놓아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낮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종국에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의 악습에서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하늘나라의 영원한 상속을 받을 때까지 지켜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기도를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렘9:23이하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했습니다(렘9:23-24).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참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참 용맹한 자는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참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무엇을 자랑합니까?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랑하고, 이런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이런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닮아가려는 자신을 자랑합니다.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이런 성숙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단코 신앙을 색욕거리로 전락시키는 자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면서,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에 순종하면서 참 평안과 기쁨과 참 자유를 만끽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들꽃푸른샤론교회 담임목사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극심해지는 中 기독교 탄압
서울동남노회 사실상 ‘분열’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한국교회와 청소년 교육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
환난과 핍박 중에도
최근 올라온 기사
영화(부활)
필립핀 파이오이 성당
사도신경 해설-7 (“몸의 부활을 믿...
잠25강 12:15-28 공의로운 길...
위로하시는 하나님
마음 속에 가득 담고 있는 것과
어느 병실에 걸린 시(작시 미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통치자들
대법원 판결에 우려
"교단 소속목사 성추문 사건 깊은 유...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