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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
2018년 10월 17일 (수) 17:00:14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세상에 제일 먼저 창조된 사람이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이었다 바로 그 이야기지요. 세상에 빛이 없으면 어두움도 없는 것이고 세상에 모든 반대 짝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러니까 길다라는 것을 이야기 하려면 짧다라는 반대개념이 있어야 길다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되지요
 
  세상은 다 그래요 세상에 최초로 태어난 것이  남자라고 하는 성이 아니라 사람이지요 그런데 여자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됨으로서 남성과 여성으로 이제 나뉘어지게 된 것으로 봐야되겠지요
 
  그러니까 남자들이 남자가 먼저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래서 남녀간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기 시작한 것이 창세기의 이야기인데 세상을 보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애뜻한 사랑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그런데 그 갈등과 분열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세상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어쩼던 우리가 늘 이야기하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말속에 담겨있는 사이 관자 관계 맺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될까 늘 관심거리입니다.
 
  세상에 나 혼자 산다고 한다면 윤리와 도덕도 별 관계가 없겠지요. 우리가 사람 사이에 살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나타난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잠언을 공부하는 것도 똑 같은 상황 때문입니다.
  아름다은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이 고민이어요
  오늘은 잠언서 11장 16절부터 공부하겠습니다.
  각절마다 하나 하나의 절마다 두 가지의 삶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삶 다른 하나는 아름답지 못한 삶 이것을 시편 1편으로 나누의 보자만 복 있는 사람고 복 없는 삶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짤막한 구절 가운데 대조를 해 놓고 있는 것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러니 어떻게 살래 이런 삶과 저런 삶의 가능성이 내 앞에 있는데 삶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인데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했어 그 말은 다른 것들을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선택은 배제를 합니다. 한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되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모든 사람이 내 아내가 될 가능성을 나는 배제한 것이어요 이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아쉽기도 하지요 가능성이 닫힌 것이지요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통해서 내 삶을 구성해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주어진 두 갈레 길 앞에서 인생은 언제나 두 갈래길인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내가 택하는 삶의 방식이 누적이 될 때 그것은 나의 인격이 되기도 하고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하고 습성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16절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존영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존경이라고 그냥 생각을 해 보세요 유덕한 여자는 덕 스러운 여자 품위 있는 여자 그런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재물은 여성이 안 되나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금방 이야기 한 대로 덕 있는 여자 품위있는 여자는 존경을 받는다 좋은 말 같아요 덕스러운 여성을 일컷는 덕스러운 여성을 일컷는 말이 있지요. 賢母良妻 어머니로서서 현명해야 되고 좋은 아내여야 하고 여성이 꼭 아내 역할만 해야 하나요
 
  사실은  여성다움이라는 말이 듣기에는 좋은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거기에는 남녀 사이에 권력의 차이가 빚어 내고 있는 제한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런 이야기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어요
 
  왜냐하면 항상 약자 여성들은 우리 사회송으로나 고대로부터 쓰여적기 때문에 그대들에 씌어져 있는 이런 역할 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기의 주체성을 가지고 기가 센 여자 기가 세다고 이야기 하고 그리고 인기 별로 없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선생님의 말씀은 공감하는 게 저도 그런 인식이 있었네요.
 
  이제 유덕한 여자라는 것을 보면서 사실은 이 유덕한 여자가 존영을 얻는다고 하는 말 속에는 그런 여성이 신분적으로 남성에 비해서 열등하게 취급받고 있는 사회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요
 
  어쩼던  덕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런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고정해 놓으면 안되어요 비 대칭적인 발생하는 언어들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어떻던 유덕하다고 이야기 하는 데 덕이 있다라고 하는 말 여러분 저는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교회에 처음 오면 아기를 안고 축복기도를 하는 데 여러가지 기도를 하지만 제가 늘 아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이 아이가 덕 있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 데 덕스럽다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저는 덕스럽다고 하는 것을 품이라고 이야기해요
 
  품이 있는 사람 덕스럽다 덕이 있어야 품거든요 나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책 미국의 어떤 도시인데 일단의 선교자들이 그 도심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예수 믿으십니까? 구원 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묻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건성으로 대꾸하지요 예 믿어요 구원 받았습니다. 관심 없습니다 이러고 가요 한 농부를 붙들고 예수 믿으십니까?  예 구원 받으셨습니까?  가만히 있더니 글쎄요 그리고는 메모지에다가 한 10사람 정도의 전화를 적어 주는 것이어요
 
 
  이분들이 누구입니까?  이중에는 친구도 있고 갈등 관계도 있고 이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보세요 내가 구원 받았는지 우리는 내가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 하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 소박한 농부는 내가 구원 받았는지는 나 스스로가 증언할 수 없어 그 분들이 내가 구원 받은 자다고 증언해야 되지요 정말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여기에서 덕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 그런 것이어요
 
  자기와의 관계나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말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사랑과 공의를 추구할 때 그 사람을 보고 덕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타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덕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그것이 존영이어요 사회적 존경이 그에게 주어져요 여기 존영이라는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보드인데 존영 영광이기도 하지만 어떤 뜻이냐 하면 무게감입니다.  삶이 무게감 있는 삶이어요 그러니까 덕스러운 여성이 존경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존경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귀엽네 예쁘네 이런 말 말고 그렇지요 어쩌면 저렇게 예뻐 이런 말 보다 보면 마음이 푸근해 지고 보면 그 앞에서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이러한 삶이 유덕한 삶일 것이어요 만나면 행복해 지고 어떤 분을 보면서 저분들처럼 나이 들면서 덕스럽게 나도 살아야지 나이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도 제가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에 가까운 공원을 산책할 때가 있는 데 어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을 마주쳐요. 걷다가 그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저는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존재에 품겨 나오고 있는 따뜻함과 너그러움과 이런 것이 있는 것이지요 확 느껴져요 그 분은 유명한 분이어요 유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분이기 때문에 제가 의도치 않게 인사를 하는 것이어요
 
  그 분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이 나이 들면 저런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모습 속에서 따뜻하고 하나님을 반영하고 목표 그런데 여러분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16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다 하고 말합니다. 근면하다고 하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지요 사실은 여기에서 근면한 남자라고 하는 것은 억척스러운 남자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히브리어로 보면 강력한 남자여요
 
  그러니까 삶을 강력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난폭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삶에 대해서 굉장히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사람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취적이고 자신감에 넘치고 이런 사람을 세상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남자답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남자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거침 이런 것으로 규정해 놓거든요. 남자도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남자는 우는 게 아니야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남자가 그까짓 것 가지고 말이야 이런 것 그러니까 이제 남자도 어떤 성역에 갖다 놀 필요는 없어요
 
  어쩼던 여기에서는 가부장적 사회속에서 남자가 늘 자기 돌이키고 수동적이고 폐쇄적이고 이러면 가정 건사하기 어렵다 진취적으로 씩씩하게 가야 재물을 얻는다 가족들 먹여 살리고 이런 교훈이지요
 
  17절 인자한 사람은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자한 사람은 인자하다고 하는 것은 대게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발현되는 가치이지요 그것은 내가 인자하다고 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덕입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그 인자함에 사회적 의미가 있지요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들을 복되게 만드는 것이어요 그래서 그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타자들에게 더 영향을 주지요
 
  그러나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한다고 말합니다. 잔인하다 저는  잔인한 사람들은 어떻게 보느냐 하면 상처난 사람의 마음이지요 제가 비유로 이약합니다마는 유리컵이 깨지면 깨지기 전에도 유리컵 만지는 것은 문제가 없지요.
 
  이것 깨지면 조심해야 하지요 왜냐하면 모든 깨잔 것들은 날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내 마음이 깨져 있으면 날카로와져요 누군가를 찌르고 비어요 그것은 누군가를 벨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치지요
 
  이게 잔인한 자들이 불행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남에게도 못할 일을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못할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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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19절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을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여기 문장구조는 에이 비 비다시 에이다시 이렇게 되어 있지요 바로 공의로 받아요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을 따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른다고 말함으로 악인이라고 하는 두 이야기가 괄호처럼 되어 있고 그 안에 공의를 따르는 삶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에이 비다시 에이 다시 비 이렇게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의인도 부지런해 악인도 부지런해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자기 일에 열심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열심이 좋은 것이 아니어요
 
 
  사실은 분별력이 없는 열심 이것이 진자 문제입니다 저희가 군 생활할 때 위에 지휘관이 바뀔 때며는 밑에 있는 사람들은 오신 분이 어떤 분이냐 굉장히 관심들을 가져요
 
  군인들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분이 있고 부지런한 분이 있어요 머리가 나쁜 분 게으른 분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제일 좋은 것 머리가 좋고 게으른 사람이 제일 좋다 참모들 입장에서는
 
그 다음에 머리가 좋은데 부지런한 분 부대가 잘 돌아가요 그렇게 하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제일 나쁜 것 무엇이겠어요 머리가 나쁜데 부지런한 것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요 벌려 놓은 일마다 다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런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이야기로 바꾸었느냐 하면 다산 선생은 그래요 그것을 의를 추구하면 이로움을 취하는 방법이 있고 이로움을 추구하면서 의를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제일 좋은 것이  의롭게 살면서 이를 얻는 것이지요 제일 나쁜 것은 불의한 일을 하면 불행을 만나는 것 이게 제일 바보같은 짓이지요.
 
  여러분 여기 공의 이야기 하면서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고 이야기에서 뿌린다고 하는 말 때문에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삶을 파종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으로 그러니까 부지런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도 열심히 씨를 뿌리지만 악한 사람도 그의 삶을 통해서 씨를 뿌려요 말에 씨를 뿌리기도 하고 행위에 씨를 뿌리기도 하고 나의 모습이 누군가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오늘 하고 하는 말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씨앗에 떨어지기도 하겠지요 나의 눈빛도 그렇습니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도 그렇습니다 어떻던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악인이 거두는 삯은 허무한 것입니다. 공허함입니다.
 
  악인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허 밖에 없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얻게 되는 상은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확실함이 무엇인지 잘 안 나타나요. 이 확실하다는 말은 허무하다는 말과 비교되고 있어요 허무하다고 하는 것은 텅 비었다 확실하다는 이야기는 꽉 찼다 그런 의미로 보면되겠습니다.
 
  19절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그 확실한 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생명이었어요 그런데 악을 따른 자는 사망에 이른다하고 말하므로 그 허무함이 결국은 사망이어요 그것이 몸의 죽음이든 영의 죽음이든  악을 뿌리고 사는 사람은 영의 죽음이든 몸의 죽음이든 죽음을 추수할 수 밖에 없다
 
  20절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마음이 굽은 자 어떤 사람이 굽은 자여요 여러분 재미나는 게 이슬을 먹었어 똑 같은 이슬을 그런데 양이 먹으면 무엇이 되지요 이슬과 풀이 젓이 됩니다. 그런데 독사는 풀을 먹을 일이 없지요 어쩼던 독사가 이슬을 먹으로 그것이 무엇으로 변해요 독으로 변해요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여러분 여기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마음이 굽었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어떤 일이든 그 사람속에 들어가면 삐닥하게 나오지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불행해요 처음부터 그 사람의 마음이 그랬으리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마음에 습관이 그 쪽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조금씩 조금씩 그래서 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습관이 되면 마음이 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입니다.
 
  쎙떼쥐 베리 어린 왕자를 보면 어린 왕자가 자기 별에 살면서 날마다 했던 일이 있어요 외부에서 날아온 씨앗이 떨어져서 싹이 틀 때 그게 장미꽃이면 괜찮은데 별이 원체 적은데 바우밤 나무가 씨앗이 발아를 하고 자라면 큰일 나거든요
 
  너무 크니까 잘 보고 바우밤 나무 삯을 뽑아야 되어요 그렇지요  분화구 화산재 있지 않아요 분화구 청소 해 주어야 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바우밤 나무 싻을 뽑아야 하는 것 처럼 우리 마음속에 타자들에게 공격적이거나 무엇인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씨앗이 심겨질 때 자꾸 뽑아야 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속적 회개입니다. 우리 마음을 닦고 또 닦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데 20절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는다
  결국 여러분 마음이 굽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그만 해 치는지 알았더니 하나님의 마음을 속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삐닥이가 늘 좋은 것이 아니어요.
 
  그러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위가 온전하다고 하는 것은 흠 없다는 것이 아니고 늘  우리 위에 하나님의 질서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행위의 온전함인 것이야 우리도 인간이기에 실수합니다.
 
  그러나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생래적인 지향점 처럼 하나님을 향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보려고 할 때 때때로 실수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여기신다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 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의인의 자손을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악인에게 벌이 내린다고 이야기 하는 데 피차 손을 잡는다는 이야기는 악인들이 공모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손을 이렇게 쳐 가지고 무엇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고대 관습에서 나온 말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의 연대 그것은 결국은 무엇으로 귀착이 됩니까? 그렇게 해 봐야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의롭게 사는 사람의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게도 하지요 그러면 이 말은 현실보니까 안 그러네요 하고 하나님에게 항의할 일이 아니라 의로웁게 산 사람들의 자녀들이 복 받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만들어 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친일파 자제들은 잘 살고 독립 운동했던 자녀들은 교육 받을 기회도 없고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것이 그대로 방침되면 안 된다는 말이어요 아름다운 세상이 될려면 그렇게 살았던 자제들이 안심하게 살게 되고 국가가 그들위에 세워주고 이 때 하나님의 공의가 서게 되지요 이것 우리들이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라고 말합니다. 돼지 코에 금 고리 걸면 어떨까요 어울리지 않겠지요
 
  그러니까 그 여인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삼가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먹는 것과 관련이 되어요 기본적으로는 아름다운 여인이 삼갈지 모르고 절제할지 모르고 막 먹는 데 여러분 먹는 것과 관련이 되지만 종의적 의미가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자기의 몸을 삼갈 줄 모르면 그런 뜻도 이 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중의적으로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지혜나 분별력이 없는 자기 절제가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조화스러운 일인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이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멋진 남자가 삼가지 않는 것은 나와야 하는 데 안 나오네요
 
  23절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니라
  24절 흩어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되느니라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
  26 곡식을 내 놓지 않는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을 받으리라
  27절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요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니라
 
 
  이것은 다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쳐 읽었는데 여러분  의인의 소원과 악인의 소원이 24절부터 27절까지 펼쳐지고 있어요
 
  의인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내가 잘 되는 것만이 아니어요 이것은 초보적 신앙이어요 남을 잘 되게 하는 것 의로운 사람은 언제나 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은 늘 흩어 구제합니다. 자기 것으로 끌어 드리지만 않고 의로운 사람은 구제하는 것을 기뻐해요 여러분 구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네페쉬 베리카라고 그렇게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데 축복의 사람이어요
 
  그게 축복의 사람이어요 남을 복되게 만드는 것 스스로가 복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남을 복되게 하는 사람 이것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구제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지요 여기 윤택하게 하는 것은 꽃밭에 물을 주는 것과 같아요
 
  언제나 목마른 사람들 속에 다가가서 물 한잔 대접하고 메마른 대지에 물 뿌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이어요 언제나 척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문제를 풀어 주기에 애를 씀으로서 그로 하여금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어요 이것이 윤택하게 하는 것이어요.
 
  의인은 곡식을 내다 판데 어떤 이야기냐 하면 기근이 다가오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내가 붙들고 있다가 값이 오른다음에 내 놓는 것이 아니고 곡식 내다 팔아서 사람이 살아가게 해 준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비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산다 과도히 아낀다  그렇지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인색한 마음 때문에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된다고 오히려 가난하게 된다  자기를 위해서 소유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가난하게 된다.
 
  또 이 악인들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곡식을 내놓지 않습니다. 투기하는 것이지요. 더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남의 아픔이 안 보여요 자기가 추구해야할 이익만 보여요. 그는 결국 저주 받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저 인간 그런데 바로 사람들이 누군가를 향해서 저주하는 그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지요
 
  유대인의 속담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는 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어요
 
  27절 악을 더듬어 찾는 사람에게 악이 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2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하고 말합니다.
  재물만 의지하는 것 여러분 사실 오늘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재물을 의지 많이 하지요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에 불안을 재물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불안의 대용물이어요
 
 
  그런데 여기 이야기 합니다. 그것만 의지하면 패망할 수 밖에 없다 재물을 얻었는데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내 인생에 가장 큰 재산이 있다고 한다면 재물만이 아닙니다. 나의 아름이 있을 때 아파 할 수 있는 사람이 재물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패망합니다.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고 말합니다.  여기 의인은 나누어 주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하고 같다고 이야기해요 잎사귀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할 것이라고 히브리인들은 의로운 사람들의 삶을 생장 하는 나무에 빗대어 좋아했어요
 
  시편 1편 3절 그는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시 92편 12- 14절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론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총총 하리니 기가 막히지요
 
  기가 막히지요 늙어도 진액이 풍족하고 진액이 총총하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결국은 돈을 얻을 것인가 사람을 얻을 것인가 하나님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재물에만 끌려 살 것인가 이런 결단 앞에 서 있습니다.
 
  29절 자기 집을 해홉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다 하고 말합니다. 바람은 결국 공허함이어요 텅  빈 것그것을 거둘 수 밖에 없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31절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어떤 말입니까? 의인이라고 해도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은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어요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용서는 그 다음이어요 그러니까 의롭게 사는 사람도 잘못하면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악하게 사는 사람을 더 많은 벌을 받게 된다 오늘 그런 결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 전서 4장 18절에 인용을 해요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의인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겨우 구원을 받는 데 그런데 경건하지 아니한 자 죄인이다고 한다면 그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물을 의지하는 까닭이 재물이라고 하는 게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왜 의지할까요 의지하는 까닭이 무엇이어요 내 발로 설 수 어렵기 때문에 내 발로 설수 없는 것이 불안감이지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든든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의지하는 것이지요 인생은 불안이라는 숙명을 타고 났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을 의지하느냐 하면 재물을 의지하거나 재물 뿐 아니라 세상의 것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의지해 믿을 것 나 밖에 없어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해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모르 데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런데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 공허라고 이야기 했어요 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애에 사로잡힌 사람이어요 자기애에 사로 잡혔다는 것은 결국 타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어요 나를 선물로 줄 수 없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가 거두는 것은 공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와 하나님의 마음에 이르렀음을 뜻해요.
 
  그 때에 내가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과 누군가에게 그 삶을 구원 받은 삶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될 대상 내가 불안한데 의지해야 될 대상을 하나님의 마음을 굳게 붙들면 우리의 삶이 든든해져요
 
  오늘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유덕한 사람이 되어서 열사람이 우리를 들여다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합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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