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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
2018년 10월 09일 (화) 12:23:03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사13:1-8)
이사야서 13장 이하는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들로 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블레셋, 모압, 다메섹, 구스, 애굽 등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나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했는데, 대부분 잘못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런 나라들을 보시면서 분노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런 말씀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도 빼놓지 말고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하나님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저 잘된다 복준다는 말씀만 보려고 해서는 안되고, 과연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늘 살피려고 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13:1절을 보겠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제일 먼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바벨론은 사실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노아 홍수 후에 함의 손자였던 니므롯이 세웠던 바벨탑에서 시작됩니다. 바벨탑은 쌓다가 중단되어서 허물어지게 되었고, 그 다음에 고대 바벨론이 일어났다가 힛타이트족에게 무너집니다. 그 후 힛타이트족이 무너지고, 앗수르가 일어나서 중동 지역을 지배하게 되는데, 그 때 니느웨라는 지역에서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아버지인 나보폴라살이 BC 625년경에 앗수르에게 독립을 시도하였고, BC 612년에 앗수르의 니느웨가 무너지면서 본격적으로 바벨론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BC 539년에 바벨론이 무너지게 되는데,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때의 사건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이사야 이후 약 150년 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일어나서 바벨론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여기에서 ‘그들’은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군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존귀한 자의 문’은 바벨론의 성문을 말합니다. 바벨론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성벽의 둘레가 66km에 달했고, 성벽의 높이가 100m에, 성벽의 두께가 30m였는데 이중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벽 둘레는 유브라데 강물을 끌어들여 해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군대가 쳐들어와도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든,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런 바벨론성문으로 페르시아 군대를 들어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페르시아 군대를 보내 바벨론 성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3절에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여움을 전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는 바벨론 성을 무너뜨릴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말합니다.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왕인데, 하나님이 이 고레스 군대를 보내 바벨론에게 분노를 퍼붓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절,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페르시아의 고레스 군대를 검열하여 보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5절,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같으리로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여기에서 “먼 나라”는 페르시아 군대를 가리킵니다. 이제 장차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될터인데, 그 날은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분노하시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와서 바벨론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죄인들을 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바벨론에게 분노하시고 멸하려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바벨론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교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바벨론도 앗수르처럼 군대의 힘을 믿고 온갖 강포를 행하다가 결국 망했던 것입니다. 12절에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하나님이 바벨론 땅을 얼마나 초토화시키시는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죽음의 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이 구절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바벨론은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점령을 하면, 그 나라의 쓸만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부려먹었습니다. 일제가 우리 선조들을 잡아가서 총알받이로, 탄광촌으로 부려먹었던 것처럼, 바벨론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좀 쓸만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 먹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젊은 나이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가서 70년동안이나 죽을 고역을 치루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레스가 바벨론을 함락시켜서 세계 각국에서 잡혀온 사람들을 다시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 치게 하리니” 여기의 ‘메대 사람’은 페르시아 군대를 말합니다. 원래 메대나라가 크고 페르시아는 작은 나라였는데,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메대를 정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메데 페르시아라고 하는데, 사실은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페르시아 군대를 보내 바벨론을 치신다는 말씀입니다. 18절에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메대 페르시아 민족은 활에 능숙한 민족이었고 금이나 은을 갖다 바쳐도 통하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이런 페르시아 군대를 보내 하나님이 바벨론을 쓸어버리시겠다고 했습니다.
 
19절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라는 것은 바벨론 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바벨론 성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페르시아의 고레스 군대에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20절에 “그 곳에 거주할 자가 없겠고 거처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에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들의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그래서 화려했던 바벨론성이 사람들을 찾을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고, 거기에 들짐승들만 뛰노는 광야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날이 오래지 않아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장 전체가 하나님이 페르시아 군대를 보내셔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자랑하고, 강력한 군대를 자랑하던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이었는데, 결국 그 예언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분노하시면서 바벨론을 멸망케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까 바벨론이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바벨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거기에 대한 말씀이 14장의 말씀입니다. 14장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바벨론 왕이 군대의 힘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압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성이 강포한 성이 되었습니다. 그런 포악한 성을 하나님이 무너뜨리신다는 것입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이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힘이 있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한 짓을 저질렀던 것입니다.6절에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그들은 걸핏하면 군대의 힘을 믿고 여러 민족에게 쳐들어가서 강탈하고 약탈하고 수탈했습니다. 이렇게 열방을 억압했는데, 그 억압을 막을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교만과 오만과 거만은 자신들의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댔던 것입니다. 함부로 이웃 나라에 쳐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고, 약탈하고 강탈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군대의 힘을 이용해서 여러 나라에 침략해 들어가서 식민지를 삼는 나라를 우리가 제국주의라고 합니다. 바벨론이 제국주의를 만들어 놓고 교만을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교만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14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여기의‘계명성’은 히브리어로 ‘헬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찬란하게 빛나는’, ‘현저하게 빛나는’이라는 말입니다. 킹제임스 버전에는 ‘루시퍼’라고 의역을 해 놓았는데, 직역을 하면 ‘찬란하게 빛나는 자’라는 말이고,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자가 하늘에서 떨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자’는 구체적으로는 바벨론 왕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왕이 자신의 힘을 믿고 하늘까지 높아지는 교만을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열국을 엎고 호령하던 자가 하루 아침에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에 루시퍼라는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루시퍼는 그 지혜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루시퍼가 그만 교만해져서 하나님 자리를 넘보다가 하늘에서 내어쫓겨서 땅으로 쫓겨났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꼭 루시퍼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루시퍼처럼 바벨론 왕이 교만을 떨다가 이제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원관념이 바벨론 왕이요, 비유관념이 루시퍼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교만의 대명사인 루시퍼를 비유로 들면서, 바벨론 왕도 그러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원래 바벨론 사람들의 조상들이 바벨탑을 쌓았잖아요! “탑을 높이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해서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이렇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바벨론 왕이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교만을 떨었다는 것입니다. 15절에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호령하고 땅을 진동시키면서 수많은 성읍을 파괴하고 약탈하고 강탈하던 자가 이제는 지옥 가장 밑바닥에 떨어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세도를 부리던 자가 하루아침에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뉴스를 보니까 김기춘이라는 자가 초라하게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갇히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이 자가 그동안 세상을 호령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타락한 권력을 등에 업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난 주에는 어깨가 축 늘어져가지고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갇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세도를 부리는 자리에 있을 때,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섬겼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를 않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해가지고 깡통 차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려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이 바벨론 왕은 살아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서 죽게 했으니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고, 죽어서도 버림받는 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1절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것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하나님께서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대선 바벨론 제국을 향해 분노하셨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보내셔서 바벨론 제국을 깡그리 진멸하시고 쓸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는 것입니다. 24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바벨론을 진멸해 버리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것을 누가 능히 폐하겠으며, 누가 능히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바벨론은 자신들의 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망했던 것입니다.
 
이제 28절 이후에는 주변의 열방들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데, 블레셋도 망할 것이고, 15장, 16장에서는 모압도 망할 것이고, 17장에서는 다메섹도 망할 것이고, 18장에서는 구스도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스는 지금으로 말하면, 아프리카 이집트 남쪽에 있는 이디오피아를 말합니다. 그리고 19장에서는 애굽도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21장 이하에서는 아라비아도 망할 것이고, 두로와 시돈 등의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의 열방들이 전부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망하게 될 것인데, 이들 나라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만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금 나라가 커지고 부유해지고 군대의 힘이 막강해지면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군림하다가 망해버렸던 것입니다.
 
중근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이스라엘을 망케했던 앗수르 제국은 바벨론 제국이 무너뜨렸고, 유다를 망케했던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페르시아 제국은 헬라 제국이 일어나 무너뜨렸고, 헬라 제국은 또 로마 제국이 일어나 무너뜨렸습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이 바로 교만과 오만과 거만이었습니다. 이들은 군사적으로 힘이 생기고,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대던 나라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망했고, 바벨론 제국이 망했고, 페르시아 제국이 망했고, 헬라 제국이 망했고, 로마 제국도 망했습니다. 그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도 망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국도 망했고, 대영제국도 망했고, 나치제국도 망했고, 일본제국도 망했습니다. 군대의 힘을 믿고 까불대던 나라치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 진리는 개인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한 자들을 혐오하시고 반드시 물리치십니다. 교만한 자들은 자기 힘을 의지하고 우쭐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높이다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자리까지 넘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하와에서 와서 속삭이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들의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자리를 넘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피조물이 감히 창조자의 자리를 넘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달콤하게 속삭이니까, 하와가 그 말에 그냥 넘어가버려서 그만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죄사건의 본질은 교만과 불순종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능력과 부와 권세를 의지하고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식대로 살아버립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광대무변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교만한 자들의 능력과 부와 권세라는 것들이 쥐꼬리만도 못한 것인데, 교만한 자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교만을 떠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다가도 교만하면 버리십니다. 이스라엘의 사시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열어젖힌 사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참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자마자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예사로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이 어찌 될려고 저러지?” 이렇게 사울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울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임하셔서 “너 왜 그렇게 울고 있느냐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렸느니라” 하시면서 더 이상 사울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교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람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다니엘서 4장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하나님께 쓰임받다가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많던 지혜가 사라져서 권좌에서 쫓겨나서 7년 동안이나 들짐승과 함께 이슬을 먹고 살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물리치십니다. 그래서 잠언16장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했습니다. 또 시편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자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절대 복있는 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자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가까이 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교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하되 끝까지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조들은 한결같이 끝까지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 바울, 베드로, 요한 등등, 전부 끝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 겸손했다가 나중에 교만하게 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대부분 하나님나라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교만해질 위험성이 농후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열심인 자들일수록,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은 한 순간의 겸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교만한 자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도 언제나 교만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교만하게 되는 과정을 잘 알고 항상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1장21절 이하에 교만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을 보면, 한 순간에 교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교만하게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만하게 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더 이상 감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진실로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무덤덤해 집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는 것이 심드렁해지고,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교만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갑니다. 바로 생각이 허망해지는 것입니다. 허망해진다는 것은 그저 자나 깨나 자기 유익만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받들 줄 알던 자가 이제는 그저 자기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봉사를 해도 전에는 봉사하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는데, 이제는 자기의 봉사를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봉사를 해도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봉사고 뭐고 시들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교만기가 상당히 진척된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교만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되어 비상식적인 행동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분별력과 통찰력을 잃어버리고, 상황에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교만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모양의 우상과 바꿔버립니다. 다시 말해 우상숭배자가 되버립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 이제는 우상숭배자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실 조차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들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28이하에서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렇게 버림받은 삶을 살다가 인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샤론의 교우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교만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겸손한 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권세를 주시면 하나님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물질적인 부가 주어지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헌신하고, 자신의 건강과 재능과 시간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고 만족하는 모습을 절대로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이나 행동이 굳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교정하려는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 기득권을 내려놓고 절제하는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이런 말이 생각과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나님 앞에 끝까지 겸손한 자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양들꽃푸른샤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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