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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2018년 09월 20일 (목) 09:10:19 엄인영 목사 webmaster@cry.or.kr

(사6:1-13)

지난 주에 우리는 사1장-5장까지를 통해 이사야가 부름받을 때의 남유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남유다는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전국을 짓밟고 있었고, 예루살렘만 참외밭은 원두막처럼 겨우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팽개치면서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사6장1절을 보겠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 보좌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는 이사야가 본 하나님의 보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하나님의 보좌는 스랍이라는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스랍은 원래 세라핌이라고 하는데, 이 천사의 날개는 6개입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스랍이라는 천사는 하나님보좌를 중심으로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 보좌를 지키는 또 하나의 천사가 있는데, 우리 성경에는 그룹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원래는 케루빔이라고 합니다. 이 케루빔의 날개는 4개이고, 하나님을 수행하는 천사였습니다. 에스겔서1장과 10장에서 에스겔도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하는데, 그 하나님의 보좌를 묘사하면서 케루빔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이사야가 죄인된 몸으로 하나님을 뵈었으니 ‘나는 죽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반응이 정상입니다. 죄인된 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을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직접 하나님을 뵙고 직통계시를 받겠다고 나서는데, 아주 무지한 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직통계시 받았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대개 거짓이요 가짜입니다. 이사야처럼 진실로 죄인된 몸으로 하나님을 만나뵙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6절에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이렇게 이사야가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이사야의 입술을 뻘것게 단 숯으로 입술을 지젔습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함받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입술에 할례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입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입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혀가 배의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배의 키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큰 배가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의 몸 중에서 길어야 세 치인 혀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입술의 말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입술의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완전한 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역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그 입술의 죄를 사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하나님이 세상을 보시면서 한탄하시는 음성을 듣고 이사야가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옵소서“ 이렇게 자원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셔서 참으로 이상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야 너 가서 이 백성을 깨우쳐서 회개하게 하고 돌아오게 하라.” 이런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깨우치지 못하게 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조금 뚫린 귀도 막히게 하고, 조금 열린 눈도 마저 감기게 해서, 아주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분노케 했으면, 그 자비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음성을 듣고 이사야가 충격을 받고 물었습니다. 11절에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이렇게 물었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황무지가 되고, 거기 거하던 주민들이 전부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사야 당시의 예루살렘은 구제불능이었습니다. 이제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또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이사야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주민들이 십분의 일이 남았어도 그것마저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밤나무도 벨 것이고 상수리나무도 다 베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밤나무는 북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BC721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베어졌습니다. 상수리나무는 남유다를 상징하는데,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베어졌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씀 끝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 하반절에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했습니다. 나무를 베어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 땅의 그루터기’를 남겨 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돌아봐도, 모든 것이 불타고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그루터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사사시대나, 왕정시대의 사울시대나, 다윗시대나, 솔로몬 시대나, 비록 소수지만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땅의 그루터기들입니다.

 

왕상19장에 보면,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통치하던 시대에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함께 갈멜산에서 850대 1로 싸우지 않았습니까?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갈멜산의 장작더미를 태웠습니다. 그 결과 8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진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굉장한 이적을 보고서도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엘리야가 낙심을 하고 죽기를 자처하니까 하나님이 엘리야를 위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 타락하고 다 변질된 것 같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칠천 명이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그 땅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의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그루터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생명의 역사가 이어져왔던 것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바알 앞에 무릎꿇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우리 샤론의 교우들이 바로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에 ‘이 땅의 그루터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성도들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거룩한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씨를 품은 자들이 이 땅의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그 거룩한 씨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자라서 거기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가 오늘 이 땅의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성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예수님의 거룩한 씨를 그 마음과 생각 속에 품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씨를 품게 되면, 그 씨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 씨 안에 있는 DNA가 예수님을 닮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 딸의 발을 보면 발가락 5개 중에 엄지와 검지발가락은 정확하게 저를 닮았고, 나머지 발가락 세 개는 제 아내를 닮았습니다. 저의 DNA와 아내의 DNA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또 제 아들은 제가 하품할 때의 모습을 그대로 빼 닮았습니다. 제가 하품을 하면 왼쪽 눈이 작아지는데, 우리 아들도 꼭 그렇습니다. 그 안에 제 씨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안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씨가 들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씨를 소유한 성도는 자라면서 점점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의 DNA를 가진 새로운 생명을 낳게 됩니다. 거룩한 씨를 품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씨를 품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그루터기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거룩한 씨를 품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거룩한 씨를 품고 있는 교회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이 역사에 책임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데 헌신합니다. 시기와 다툼과 전쟁과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나아가 평화와 생명의 씨앗을 심어갑니다. 교회가 이 땅의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성도들마저 타락하고 변질되어 버리면 그 때야말로 하나님이 절망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 역사의 문을 닫으시는 것입니다.

 

7장1절을 보겠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여기 보면, 남유다왕 아하스가 나옵니다. 이 아하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지요? 괄호열고 정신나간 아하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하스가 왕으로 통치하고 있을 때, 아람 왕 르신과 북 왕국의 왕 베가가 연합군대를 편성해서 남유다로 쳐들어 온 것입니다. 열왕기하16장5절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똑같습니다. 7절에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나간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온갖 은금을 보내면서 “형님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애걸복걸해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이 정신나간 아하스가 뼛속까지 친앗수르파가 되어서 예루살렘 성전의 식양도 앗수르 신전을 본 따서 멋대로 바꿔버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를 보내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몇 번 말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이 7장과 8장입니다.

 

7장2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아람군대와 북이스라엘군대가 쳐들어오니까 남유다 왕 아하스와 백성들이 마치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이사야를 보내셨습니다. 3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했습니다. 여기 “윗못”이라는 곳은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기혼 샘을 가리킵니다. 그 윗못에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든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니 두려워 말고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아람 왕이나 북이스라엘이 강한 것처럼 보여도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으면, 아하스가 좀 담대하게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정신나간 아하스가 이사야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여전히 덜덜 떨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너 왜 이렇게 나를 못 믿니? 그럼 좋다 어떻게 하면 믿을래? 니가 믿을 수 있도록 징조를 구하라. 그러면 내가 어떤 징조라도 보여줄테니까. 그래서 믿는 자가 되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12절에서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아하스가 믿지도 않고 징조도 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니 징조를 구하지 않으려면 믿든지 해야 하는데, 믿지도 않으면서 징조도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전혀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눈앞에서 번쩍이는 북이스라엘군대의 위용에 눌려서 혼비백산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화를 버럭 냈습니다. 13절에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니가 그 동안 사람을 괴롭게 하고 이제는 하나님마저 괴롭게 하려느냐?”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니가 구하지 않으니까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보여 주실 거야” 하면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14절 하반절에,“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라”했습니다.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그러면 내가 친히 징조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어떤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여기 “처녀”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동정녀”라는 뜻을 가진 “뻬툴라”가 아니고, 그냥 보통 젊은 여인을 가리키는 “알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어떤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고, 그 아이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을 때, 그러니까 한 12~14살 정도 될 때, 그 때 북이스라엘과 아람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 왕을 보내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를 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8절에“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하나님이 애굽의 파리를 부르시고 앗수르의 벌을 부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결국 북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1절에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나라가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칼에 맞아 죽고 포로로 잡혀가서 적은 수의 양과 소가 내는 젖으로도 풍족할 만큼 그 땅에 남은 사람이 희소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23절에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일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북이스라엘 땅이 그야말로 황무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계속해서 아하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저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 저희들은 연기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아하스는 막무가내로 두려워하면서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또 8장에서도 계속 하나님이 당시의 남유다 왕 아하스와 백성들에게 안심을 시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사야가 둘째 아들을 낳았더니 하나님이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노략이 속히 이루어진다’라는 뜻이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이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아이가 두 세살이 되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으로 옮겨질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실로아 물은 예루살렘 성 동편 바깥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부터 바위 틈새로 흘러오던 것을 히스기야 왕 때 수로를 만들어 넓힌 물을 말하는데, 이 실로아 물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비록 많지 않은 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수인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북이스라엘의 베가나 아람 왕 르신의 군대의 능력을 더 믿고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저 북이스라엘 연합군대는 비까번쩍 하니까, 그들의 힘을 더 믿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보시고, 하나님이 속이 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하나님이 큰 강물 유브라데 강 앗수르를 끌어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능력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남유다는 작은 나라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똘똘 뭉쳤으면,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한없이 비관하면서, 상대적으로 멋져 보이는 북이스라엘과 아람 군대를 바라보면서 부러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상한 마음이 이 말씀 속에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앗수르 군대를 보내 북이스라엘을 멸할 것이지만, 또 북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앗수르도 하나님이 끝내는 패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앗수르가 지금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0절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아람이나 북이스라엘 군대가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장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11절에,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우리들이 정말 놀라고 두려워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신가? 만군의 여호와 그 분을 우리가 두려워할지언정, 주변 나라가 커 보인다고 두려워하며 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이고, 그 분만이 우리의 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4절 하반절에,“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다시 말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는 피할 집이 되지만, 악을 행하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사는 지배계층들에게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는 함정이 되고 올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사야가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명령을 내렸습니다.이사야가 그 때까지 존재하던 율법책들을 잘 챙겨서 어떤 제자들에게 보관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에 율법책들을 가져갔기 때문에, 훗날 바벨론 포로 시대에 율법책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가 율법책들을 보관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불타버려서, 아마 오늘날 우리들이 성경을 못갖고 있었을 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이사야 본인과 아들들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만을 두려워하고 그 분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이사야와 아들들이 그 이름까지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의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7:3에 보면, 첫째 아들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 뜻은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라는 뜻이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인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노략은 속히 이루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라는 이름 역시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앗수르 군대를 보내셔서 북이스라엘을 치시고 남유다를 구원하실 것임을 이사야 본인과 아들들이 알려주는 징조와 예표가 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굷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정말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드는 이 말씀을 신앙생활의 좌표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의 기준을 신접한 자와 마술사의 말을 따릅니다. 성령인지 악령인지 구분하지도 못하고 신령하다고 하면 따라가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경험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의 정에 못이겨 정을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성경의 기록된 말씀입니다. 율법에 맞지 않는 말을 따라 간 그들은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 우리가 살펴 본 말씀을 종합하면, 당시 북이스라엘 베가와 아람왕 르신의 연합군대를 보면서 벌벌 떨고 있었던 아하스와 남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진실로 두려워할 자는 따로 있다, 그 분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생각은 안하고, 눈앞에 보이는 북이스라엘 군대의 화려한 위용앞에 주눅들고 낙심하고 절망했던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면 전혀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주 103회 통합 총회에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명성교회 세습사건이 해결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총대들이 명성교회의 세습을 준엄히 꾸짖었고 현행 헌법을 수호했습니다. 그래서 한시름 놓게 되었는데,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일개 한 교회가 교단의 헌법을 능멸하면서 교단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이런 세습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협조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동남노회 임원들, 그리고 총회 재판국원들, 그리고 총회 임원들 가운데서도 상당한 사람들이 명성의 금력과 규모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저들은 입만 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실제현실의 삶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명성교회가 보여주는 금송아지를 두려워하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입니다.

 

“마귀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이 말이 진리입니다. 총론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다 썩어 있습니다. 각론이 총론의 정신을 실천하고 현실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총론은 총론이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각론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총론은 얼마나 아름답고 근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디테일한 각론으로 들어가서 보면 거기에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도 겉으로 볼 때는 회를 칠해서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썩은 시체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이해관계가 부딪치게 되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금력이나 맘모니즘 앞에 무릎을 꿇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정신나간 아하스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도 현대 물질문명의 화려함이나 규모 앞에서 주눅들고 쫄고 두려워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분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샤론의 교우들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총론 뿐 아니라 각론에서도, 다윗처럼 천만인이 진을 치고 둘러싼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노라! 그 어떤 위기의 상황속에서도,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의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기록하여 우리 손에 들려준 성경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과 신앙생활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기준이 성경말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내게 손해가 된다할지라도 따르고, 아무리 큰 대적이 몰려와서 진을 친다할지라도 끝까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가르침만을 따르는 이 땅의 신실한 그루터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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