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0.22 월 21:14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잠언19강 9:1-18 누구의 초대에 응할 것인가
2018년 09월 13일 (목) 07:38:58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누가 불러서 왔어요 누군가가 초대 했네요 그래도 오셔서 환영하고요 여기 왔다는 하는 사실 자체가 초대 받은 것이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부를 수 없는 것이어요 내 속에 죄가 없으면 죄가 발현될 수 없어요 누가 불렀건 초대하였기에 이게 굉장히 귀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어머니를 원망하지요 어떤 이들은 본인이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사람도 어려운 일을 겪으면 아이구 하나님 무신론자를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사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에 그것이 숨겨져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 초대 이야기를 했는데 누군가의 초대를 받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제일 기분 좋은 초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이 세상으로의 초대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으로 초대 받을 때 의식하지 못해요
 
  모든 사람들이 초대를 받는데 내가 배척된다고 한다면 굉장히 고통스러워 지지요 그것이 쓸쓸한 일입니다. 여러해 전에 우리 교회에서 홈 리스트들 어쩼던 집을 떠나가지고 거리에 살고 있는 분들이 성탄절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를 조직했던 분이 참 좋은 분이어요 이 분은 내가 누군가에 무엇을 해 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노숙인들을 초대를 했어요. 대게는 광장이나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추울 때니까 우리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리는 데 그 목사님이 하시는 일은 아주 예쁜 초대장을 만들어 가지고 봉투에 담아 가지고 그분들에게 드린 것이야 예배에 초대 합니다. 같이 하기를 원합니다.
 
  이 분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는 인생이 쓸쓸 해 졌지 않아요. 아무도 환대해 주지 않고 누군가가 자기를 초대했다는 사실이 행복해 진 것이야 그냥 와도 못 들어오지 않는데 다 초대장을 가지고 오셨어 나 초대 받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예배드릴 때 마음이 완전히 다른 것이야 이것이 참 감동적인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누군가를 내 삶의 자리에 받아드린다고 하는 것 이것은 바로 그것이 환대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적대감이 가득차 있는 세상인데 누군가를 배척하고 따돌리고 우리끼리 이런 세상 그러니까 닫힌 문 앞에서 울고 있는 자들이 많은 세상이지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저는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적대감이 가득차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환대해 줌으로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는 사실을 사람들 속에 각인시켜 주는 것 이런 것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가 있는 자리에 가서 그에게 필요한 주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를 내 삶의 자리에 초대하고 그를 맞아주고 그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을 일깨어 줄 때 무너졌던 내 삶이 새롭게 시작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환대의 요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어요 왜냐 하면 가족들끼리 평안하게 안온하게 지내고 싶은데 누군가가 낯선 사람이 안온한 환경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나의 평안함을 깨트리는 행위여요 나의 안일한 일상이 깨트리는 것이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게 싫어서 낯선 사람들을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안온한 일상을 깨트리고 삶 속에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세상에 꿈이 하나님 나라의 꿈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이 잔치에 비유하신 대목이 자주 등장하지요 자주 하셨어요 어떤 분이 잔치를 열고 그리고 초대장을 미리 보냈어요
 
  눅 14장 16절 몇날 며칠에 잔치를 하니 오십시오. 마침네 잔치 날이 되어 가지고 종들을 보내요
 
  17절 오늘입니다 오십시오 사람들이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18절 나는 밭을 샀기 때문에 밭에 가야 합니다.
  19절 겨리 소를 샀기 때문에 소가 일 잘하는 지 보러가야 됩니다.
  20절 온갖 핑계를 대는 것이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저 거절해도 괜찮은 초대도 있지만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 이게 어리석은 삶이지요 그 초대를 거절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삶이어요.
 
  그런데 우리가 공부하는 잠언은 그런 초대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잠언 9장인데 지혜의 초대를 보고자 합니다.
  잠언 9장 1절부터 18절까지이죠
 
  오늘 1절부터 보면 지혜가 그 집을 지었데요 지혜가 집을 지었어 참 아름다운 상징이네요 지혜의 여러 가지 이야기 그 지혜의 가르침이 지혜의 집입니다.
 
  여러분 지혜라는 것이 뜬 구름 잡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관계 없는 것이 아니다고 했지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인간들과 더불어 문화 창조 같은 능력 같은 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이야기 하면 지혜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근본 바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 대학의 석좌 교수였던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 오랫동안 계셨어요 감옥에 오랫동안 계시면서 주옥같은 글을 써서 가족들고 지인들에게 보냈는데 나중에 그 분이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책을 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인데 감옥에서 나온 편지들이 참 좋은 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 책은 아주 감동적이지만 읽다가 깜짝 놀란 것 하나 있습니다.
 
  감옥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 않아요 그 선생님이 목수 김씨에 대한 이야기 목수인데 목수였는데 어떤 일 때문에 감옥에 들어와 있는데 감옥 안에 있다가 운동하는 시간이 되어가지고 마당에 나가서 이야기도 하다 보면 자기들이 해 왔던 일을 이야기하는 일들이 있을 것 아니어요
 
  그분들이 집 짓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요 신영복 선생님은 깜짝 놀랬어요 바닥에다가 집을 그려가면서 집 짓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집을 지으면 위에서부터 집을 그리지요.
 
  그런데 목수 김씨는 목수가 정말로 집을 짓는 순서로 집을 그리는 것이야 바닥하고 그 다음에 벽하고 지붕하고 그것을 보면서 신영복 선생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관념 속에서 집을 짓는 데 그 분은 일상생활 속에 짓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고 관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를 이 선생님은 발견한 것이지요 그런데 진자 지혜라고 하는 것은 바닥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요 지혜가 집을 지었데 지금 그 지혜의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 집인재 일곱 기둥을 다듬고 그랬어요
 
  집마다 대 들보가 있어요 이 기둥을 이야기 하니까 대들보가 7개면 상당히 큰 집이어요
  왜 8개가 아닐까요? 완전수 그 이야기이지요. 성경에서 7이라고 하는 숫자는 언제나 완전수
 
  그래서 여러분 보면 하나님을 뜻하는 숫자가 3 삼위일체 하나님 세상을 뜻하는 숫자는 4입니다 동서남북 사방 그래서 3과 4를 더하면 7이고요 이것을 곱하면 12가 되어요.
 
  성경을 보면 7과 12라는 숫가 많이 나와요 하늘과 땅의 완전함이어요 이것은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와요 꼭 7 교회만 보낸 편지가 아니거든요.
 
  이 7이라는 숫자는 완전성을 이야기 하지만 닫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확장성도 있어요 더 많은 것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다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혜가 7 기둥을 다듬어서 세웠다는 것은 이 집이 튼튼해 어지간한 지진 강도 6.8 지진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요 우리 인생이 힘겨워 질 때는 언제이냐 하면  내가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생의 기초가 흔들릴 때 터전이 흔들어 놓고 있는 인생의 경험들이 있지요
 
  실패의 경험 누군가에게 따 돌림 당하는 이런 것들 누군가에 아픔을 당한 이런 것들인데 여러분 잘 지어진 집은 반석위에 지어진 집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요
 
 
  이 분이 집을 지을 줄 아네요 기둥부터 세우고 집을 든든히 세웠어요 흔들리지 않은 집을 세운 것이지요 그것만 해도 고마운데 무엇이라고 하냐 하면 잔치를 베풉니다. 귀한 잔치를 베푼 것이어요.
 
  어쩼던 아주 아름다운 집을 지어 놓고
  2절 그리고는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춥니다.
  자 왜 포도주를 혼합 할까요?  사실은 옛날 사람들은 포도주를 원액으로 먹는 것은 이것은 교만한 것으로 여겼어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섞어서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를 보더라도 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제물을 바치지 않아요 그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혼주기 그런 것을 바쳐요 술을 혼합하는 기구 이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말이어요
 
  포도주는 그렇게 섞어 먹는데 물하고 섞기도 하지만 향신료와 섞어서 술 맛을 더하기 위해서 섞기도 해요 그런 전통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지요 음식입니다. 재미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할 때 유다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잔치 비유를 해요 왜냐 하면 근본적으로 이야기 하면 잔치에는 무엇이 있나 하면 음식이 있어요
 
  음식이 먹는 것 좋아하지요 음식이 없는 잔치 여러분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파티 같은 것 하면 음식을 잘 차려져요 괜찮은 파티처럼 생각하지요 주인이 늘 그러지요 차린 것은 없지마는 결혼식장도 결혼식 보는 것 보다 밧이 맛 있어야 하지요
 
  이것이 비밀인데 우리 교회에 와 가지고 어떤 분은 밥 맛있어 이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어요 우리 반찬이 많지 않지만 정성껏 합니다. 그 음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생명을 주는 것이어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 나라의 잔치라고 하는 것이 생명의 잔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섞은 포도주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즐거움이어요 이것이 즐거움이어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여러분 포도주를 드시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해요. 지혜의 집에 초대를 받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생명의 풍성함 그리고 생의 즐거움 오늘 시대가 옛날에 비해서 굉장히 풍요로와 졌지요 많은 것을 누리고 삽니다.
 
  옛날에도 이웃 사람들이 집에 오면 흉허물 없이 이리 오세요 우리는 점점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개인성 속에 갇혀 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먹는 음식의 질은 좋아졌는데 생의 즐거움을 줄어들었어요 왜냐하면 함께 함이 없으니까 갑진 것 먹고 너무 많이 먹어서 성인병도 많아지고
 
 
  어쩼던 아무튼 지혜는 우리를 초대해 가지고 잘 지은 집 흔들리지 않는 터전위에 지은 집 속에 음식을 차려놓고 그리고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지요
 
  4절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이야기해요
  이 때 어리석음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고 그들을 뜻하는 것이지요 돌이켜 이리로 오라는 것이어요 와서 내가 차린 식물을 먹고 여기 식물은 나무를 뜻하는 식이 아니라 먹을 식자 내가 차려놓은 음식들을 먹고 내가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그것을 마시면 어리석음이 떠난다 그리고 생명을 얻어
 
  그래서 결국은 이 생명과 즐거움을 가지고 명철한 삶을 살게 된다 명철한 삶 명철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밝은 것이야 이것이 밝은 인생이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누구이냐 하면 자기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어리석은 삶이어요
 
  이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생명을 얻고 즐거움을 얻고  그래서 명철한 삶의 길을 살기 시작한다 여러분 이런 초대에도 거절하면 어떤 것이냐 하면 팔자이지요 제가 그런 이야기 하면 다들 좋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말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 거만한 사람이야기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나오는데 무엇이 거만한 사람이냐 남에게 가르침을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 그래서 어떤 자리에 자기가 결론을 내려야 속이 차는 사람 있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사실은 자기 한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대화라고 하는 것은 대화라는 것이 Dialog 다이아로그  Dia +Logos 다이아 + 로고스입니다. 다이아는 무엇이냐 하면 두 사람 로고스는 말씀 이 말씀을 서로 깨뚫어 주어야 하는 것이야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내가 변화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야 그런데 나는 절대 변화될 생각이 없고 내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그런 확신 역사적 사명감을 띄고 난 사람이 있어 그런 이들이 있어요 그런 이들이야 말로 대화의 장애물들이지요
 
  여기 성경은 그들을 거만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1) 거만한 사람들의 특색 가운데 하나가 쓴 소리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옳은 이야기를 해도 옳은 이야기를 받아 드릴 생각이 없어요 제 빨리 논점을 비껴갑니다.
 
 
  나의 잘못이 지적이 되었을 때 그래 나 잘못 생각했네 받아 드리면 좋은 데 그 말은 맞다 치다 너 몇 살이야 그러니까 말하는 태도가 왜 그래 논점을 비껴가요 그것은 그렇다 치고 너 말하는 태도가 무엇이야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요  
 
  그래서 쓴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일 수록 타자에게 폭력적인 경우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그런 말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7장 6절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그들이 너희를
  제가 잘 아는 어르신이 계신데 저는 성경 말씀 이 말씀이 비유적인 말씀이다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일하다 보니까 이런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다 보면  듣지도 않고 오히려 내게 화를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피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관습적 세게에서 피해야 할 때도 있지만 맛서야 할 때도 있어요
 
  성경을 그들의 위선과 거짓을 가감하게 폭로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위선과 거짓을 드러냈어요 그 사람이 나 싫어하겠지요 이 갈등이 싫어서 사람들은 갈등을 회피합니다. 우리 말에 아주 나쁜 말이 하나 있지요 좋은 게 좋은 거지 때때로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이것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공의가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때때로 불의와 거짓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 사람이 설사 나를 미워한다 할지라도 재미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규씨가 나를 향해서 쓴 소리를 마음이 불유쾌했어요 내 눈빛이 정규씨를 향해 달라졌어요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영향을 받았어 정규씨 말 때문에 한번은 생각해 보겠어 미란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 그러면 이전처럼 사고하거나 행동할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갈등을 회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신학자가 하는 말이 인상적인대요 여기 빵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분이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영어 문장인데 Justice 정의야 정의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단면이다 사랑을 쪼겠을 때 단면은 정의로 나타나야해 정의 없는 사랑은 허구일 수 있다
 
  사랑은 대립함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타나야래 내 자식이 초코렛 좋아한다고 날마다 초코렛 주면 사랑이 아니어요 아이를 망치는 것이 아니어요 내 자식 귀하니까 음식점 뛰어 다니던 말던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어요
 
  정의라고 하는 것이 사랑의 단면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 닿는 것이어요  그래서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지 말하는 그 이야기는 현상 유지를 위해서 주어진 교훈이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8절부터 보면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있는 자에게 교훈을 그가 더욱 의로운 자를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하고 말합니다.
 
  9절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면  책망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어요 교훈을 더하면 지혜로와 져요 그는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인식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서 교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에 의해서 교정되기도 하지만 상황에 의해서 내 생각이 바뀔 때가 많이 있지요 철부지적 생가과 나이가 든 다음에 생각이 같아 질 수 없지요. 저도 조금 나이가 드니까 나이 든다는 것이 참 좋다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나이 먹는 게 겁나지 않아요 참 좋아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들은 등장하지만 나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보는 내 눈이 조금 부드러워 지더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지고 이전에는 어떤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예리하게 판단하고 비평하고 그랬는데 때때로 그의 이면에 있는 아픔 같은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이게 나이 듦이 내게 주는 선물이어요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우리가 늘 부족한 사람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자꾸 깨우쳐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어떤 사람들을 가르칠 때 두 가지의 교육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는 훈도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편달 훈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이 훈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훈은 향풀 향기나는 풀 도라고 하는 것이 질그릇히거든요 더불어 감화시키는 것이 훈도야
 
  내가 교훈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덕스로운 사람이 살아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에 그 향이 보여 그것만 교육이 되지 않아요 편달 채찍질 해요 나를 채찍질해 가지고 또 편은 책찍질이고 달은 매질입니다.
 
  편달을 부탁드리는 것이야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훈도와 편달을 받아드리는 사람 그렇지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잘 가르치면 그 사람이 학식이 더할 것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숙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여 집을 지을 때 바닥부터 지었다고 이야기 했지요 문틀을 세우고 그 다음에 벽체를 세우고 이렇게 지었어요 잘 지었네 기둥이 있고 집을 지었는데 이게 지헤라고 이야기 했는데 지혜가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지혜가 집을 지은 동시에 지혜가 기초여요 그 기초의 내용을 보니까 여호와 경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지요 여호와를 경외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이 세상에서 최종 판단의 최종 심급이 내가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성호씨를 내가 대할 때 나와 성호씨와의 사이에 판단하지만 우리 사이의 관계에 근본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지내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삶에서 어떤 삶으로 나타날까요 존중하고 아끼는 것이야
 
  아끼는 것이야 무엇보다도 아낄줄 알아야 해 저는 우리 시대가 제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서로가 너무 아끼지를 안해 사람 낭비 아낄 줄을 몰라요 이것이 제일 속 상한 일인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이 사실 하나를 붙들고 가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련한 여자도 초대합니다.
  13절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요 왜 미련한 것이 여자인가 사실은 지혜도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불쾌하지 말고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문 앞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지혜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둑질 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도다 하는도다
 
  미련한 사람의 특생이
  첫째 아무것도 아지 못하고 그랬어요 무지해요 무지하다는 것은 거슬려 거슬려 가다 보면 여호와 경외하지 않는 사람 무지하기 때문에 여호와 경외가 없기 때문에 항상 그들은 자기와 대면하고 있는 타자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이용가치로 바라보는 사람들이어요 이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이야기한 것 처럼 도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누구를 대하든지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자기만을 목적으로 우리가 무엇이냐 하면 나하고 다르지만 존중해야 된다
 
  그런데 이 어르석은 미련한 여인의 특색은 무엇이냐 무지해요 무지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좋을 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능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자기 중심에 놓고 사는 것이어요 어리석음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로와 진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나만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 사람을 배려해서 나의 욕망을 컨트럴 하고 때때로 나를 희생해서 그를 살려 주려고 할 때 그 사람은 지혜로와 진 것이어요. 사람답게 된 것이어요
 
  이게 중요하다는 것이요
  13절 그다음에  미련한 여인은 떠들며 미련한 사람일수록 소란스러워요
  옛말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아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리고 얗은 여울물이 소리를 내며서 흘러갑니다. 큰 강물들은 조용히 흘러갑니다.
 
 
  미련한 사람일 수록 할 말이 많아 여하튼 여러분 소란하고 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가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서 초대합니다. 가르치려고 그래요 사람들을 그러면서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17절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여러분 그 제가 이 성경 공부를 하면서 늘 이야기를 해 왔는데 늘 금지는 유혹이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그러면 갑자기 그 순간부터 하고 싶어져요
 
  음식을 먹고 있는데 먹지 마 뺏는 순간 그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야 맞아요 그렇지요 늘 그런 것이어요  여기 가르치려고 자꾸 그런 것이어요 이 어리석은 사람이 그런데 여러분 여기 유혹하고 있는 것인데 미련한 사람들 유혹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앞에 우리가 음란한 여인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성적인 느낌이 담긴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바람 피우는 것이어요
  17절 그런 뜻입니다. 도둑질 하는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 이야기 하는 데 그런 뜻이어요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가게 하는 것이어요 성적인 뉘앙스 만이 아니지만 그런것도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유혹이라고 하는 것은 유혹은 달콤해요 그렇지 않으면 안 넘어가지요 어리석은 사람의 특색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에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혼합하고 내용이 있어요 잔치의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어리석은 여인은 잔치 준비를 안했어요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도둑질한 것 그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어 내실이 없는 것이야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무엇인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말의 올무에 사람들은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도둑질 몰래 먹는 것 이런 것들은 금지되어 있는 것들이지 않아요 금지되어 있는 것이기에 유혹이 되어요
 
  그것을 유혹자는 너무 잘 알아 그래서 그 길로 가지고 지금 하지요 가장 지혜로운 이들은 오히려 삶의 내용이 충실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내용은 없는데 사람들을 곁길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매혹은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봐야 할 대목입니다.
 
  결론 부분 18절 오직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잇는 것을 알지 못하느리라
 
  미련한 여인의 초대를 받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데 그들의 운명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스올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훔친 떡 도둑질 한 물 몰래 먹는 음식 이것이 달콤하고 내게 행복을 줄 것 처럼 생각했는데 사실 죽음의 음식이었다.
 
 
  우리가 그 음란한 여인의 초대에서 보면 침상은 어떻게 해 놓고 향으로 어떻게 해 놓고 이야기 했는데 거기에 사용 되었던 몰약이라든지 침향이라든지 그것은 장사 지낼 때 쓰는 것이지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가장 화려하게 준비되었는데 죽음의 침상인 것입니다. 세상에 유혹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경외에서 벗어나고 그 길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순간 우리는 스올로 내려가는 내림 길 하향 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여러분 누구의 초대에 응하며 살것입니까?  우리가 결단해야 되어요 지혜의 초대에 응할 것인지 세상에 허탄한 것에 초대에 응할 것인지 결단해 보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9월 각 교단 총회 결산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가짜뉴스와 개신교 연계 우려
사도신경 해설-5 (“모든 성도의 교
살겠다고 하라
2018년 자살률 통계 발표를 보면서
내가 죽고 너희를 살린다.
잠언21강 10:17-32 생명의 길
아들 결혼식 주례사
잠언22강 11:1-15 속이는 저울
최근 올라온 기사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인생을 산다는 것
하나님이 보우하사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은 말한다.
어리석은 예루살렘 딸들
가짜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